2001년 10월호

세계적 허브공항, 프랑스 드골공항의 경쟁력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5-04-04 15: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공항속 호텔
    • 박람회 천국
    • 사통팔달 고속철
    • 동북아 중심공항을 목표로 개항한 인천공항이 주변 유휴지에 대한 골프장 건설 특혜 시비로 삐걱거리고 있다. 과연 유휴지에 골프장을 짓는 것이 인천공항을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 만드는 방안인가? 프랑스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드골2공항을 유럽 최대의 중심공항으로 만들었다. 공항 주변에 박람회장과 호텔을 유치하고 공항 청사 안에 프랑스와 유럽 각지로 이어지는 TGV선을 연결함으로써 세계인의 발길을 파리로 잡아 끈 것이다. 한국은 보다 정교한 계획을 세워야 인천공항을 동북아 중심공항으로 만들 수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7조8000여 억원이 투입돼 건설된 인천공항이 개항한 것은 21세기의 초엽 2001년 3월22일이었다. 이처럼 새시대를 연 인천공항은 활주로를 힘있게 달리다 날렵하게 도약하는 여객기처럼, 한국을 번영된 미래로 이끄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항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인천공항은 구설수에 올랐다. 인천공항 옆 유휴지에 골프장을 짓기로 한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특혜 시비가 그것이다.

    인천공항이 어떤 공항인가? 동북아의 중심공항을 목표로 건설된 공항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여객기나 열차를 이용해 인천공항에 모여들고, 이곳에서 대형 여객기로 갈아타 유럽과 미주로 날아간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올 때는 대형 여객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후, 작은 여객기나 기차 등으로 갈아타 한·중·일의 도시로 흩어지는 것이다. 중심공항은 대형 공항을 짓는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그 계획을 달성하려는 중단 없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동북아 중심공항의 지위는 부지불식간에 빼앗기게 된다.

    박람회의 천국 프랑스 파리

    동북아에는 중심공항을 목표로 만들어진 공항이 여러 개 있다. 일본 도쿄의 나리타(成田)와 홍콩의 첵랍콕공항, 중국 상하이(上海)의 푸동(浦東)공항은 이미 영업중인 중심공항이다. 인천공항이 이들을 누르고 동북아 최고의 중심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다행히 인천공항은 항공기의 이·착륙 이용료가 싼 편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 기존의 중심공항들이 공항 이용료를 낮춰 출혈경쟁을 불사한다면, 신생아인 인천공항의 수지는 급격히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심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손님을 오게끔 하는 정밀한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천공항 주변에서 국제행사가 자주 열리고 행사장 접근이 용이하다면, 인천공항은 상당한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다. 둘째로는 항공과 철도 교통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인천공항을 항공기의 이·착륙뿐만 아니라 다양한 열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곳으로 만든다면 더욱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들 것이다.



    유럽 최대의 공항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를 드골2공항이다(이하 드골2공항). 지난 8월 말 기자는 TGV 제작사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스톰사와 드골2공항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TGV는 ‘고속열차’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Train a ̄Grande Vitess’의 머리글자를 딴 약어다. 이 말을 영어로 바꾸면 ‘Train for High Speed’가 된다).

    드골2공항은 그 크기 때문에 유럽의 중심공항이 된 것은 아니다. 파리는 적잖은 외국 손님을 끌어들이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이지만 프랑스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였다. 파리를 세계적인 박람회 도시로 만든 것이다. 파리와 그 주변에서는 ‘파리에어쇼’를 비롯해, 직물전시회·의류박람회·국제패션쇼 등이 연중 무휴로 펼쳐진다. 박람회에 오기 위해 드골2공항에 내리는 승객이 연 300만명이다. 파리를 박람회 도시로 만듦으로써 드골2공항은 연 300만의 승객을 창출한 것이다.

    공항 주변에 호텔 지역을 만들자

    이처럼 수많은 박람회를 위해 프랑스는 드골2공항 인근에 대형 박람회장을 만들었다. 드골2공항에 내린 외국업체 대표는 파리 도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박람회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또 프랑스는 드골2공항과 박람회장 부근에 대규모 호텔 단지를 조성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비즈니스맨들은 호텔을 구하려고 ‘교통지옥’인 파리로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드골2공항은 2A·2B·2C·2D·2F의 다섯 개 터미널로 구성돼 있다(2E터미널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 이 중 가장 큰 2F터미널과 2D터미널 사이 회랑에는 350개의 방을 갖춘 쉐라톤호텔이 있다(그림1 참조). 이외에도 드골2공항 주변에는 호텔들이 군(群)을 이루고 있는데 객실은 모두 3000여 개에 달한다. 따라서 1분 1초가 아까운 비즈니스맨들은 공항 주변의 호텔에 투숙해 일을 본 후, 재빨리 파리를 떠날 수 있다. 손님들이 편리하게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재빨리 파리를 떠날 수 있게 한 것이 드골2공항을 유럽 최고의 중심공항으로 만든 요인이었다.

    서울은 어떤가. 서울에서 대표적인 도심인 강남구 삼성동에 코엑스 전시관이 있다. 때문에 외국 비즈니스맨들은 국제선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도착해, 다시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교통이 혼잡한 삼성동으로 달려와 코엑스 인근의 호텔에 투숙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복작이는 삼성동은 더 더욱 ‘콩나물 시루’가 됐다.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이라면 삼성동 일대에 몰려든 인파에서 한국의 활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자주 찾는 비즈니스맨에게는 ‘교통지옥’에 불과할 뿐이다.

    앞서 밝혔듯 인천공항은 주변 유휴지에 골프장을 지으려다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인천공항공사가 골프장을 지으려고 한 것은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파리에서 만난 한 토목 전문가는 이렇게 비판했다. “골프장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인가? 아무리 큰 골프장이라도 최대 1000명 이상은 수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골프장과 박람회장은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수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인천공항공사가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무엇이 더 많은 사람을 유인하는지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

    강동석(姜東錫)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최대 고민은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버는 것이다. 빠른 시간에 투자비를 회수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을 공항 확충 공사에 재투자하는 것만이 인천공항을 확고부동한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 만드는 길이다. 이 전문가는 이렇게 충고했다.

    “비즈니스맨의 소비력은 관광객 이상이다. 그들은 회사 체면 때문에 고급 호텔과 고급 식당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는 비즈니스맨의 소비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드골2공항 주변에 박람회장과 고급 호텔지대를 만들어, 파리 시내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고급 소비지대로 만들었다. 인천공항 주변에 골프장이 들어섰다고 생각해보자. 한국 현실에서는 골프장 주변에 러브호텔과 주점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영종도는 고급 소비지대가 아니라 인천의 월미도처럼 노래방과 횟집 그리고 여관촌이 번성하는 저급 소비지대가 될 것이다. 인천광역시와 인천공항공사는 영종도를 드골2공항 주변으로 만들 것인가, 월미도로 만들 것인가. 인천시와 인천공항공사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한다.”

    인천공항을 동북아 최대의 중심공항으로 만들려면, 인천공항과 주변 도시의 교통 연계성이 좋아야 한다. 인천공항은 국제선 전용이고 국내선 전용은 김포공항이다. 때문에 부산을 최종 목적지로 한 승객은 인천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가야 한다. 부산의 김해공항도 부산 시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는 김해공항에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 여행 과정이 길고 복잡하면 사람은 지치고, 교통은 복잡해진다.

    프랑스로 시선을 옮겨보자. 프랑스 역시 드골2공항은 국제선 위주, 오를리공항은 국내선 중심으로 운영한다(그러나 미국과 아프리카 등지로 이어지는 국제선은 오를리공항에서 도착·출발한다). 드골2공항과 오를리공항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는 파리에서 900㎞쯤 떨어져 있다. 때문에 마르세유를 최종 목적지로 하는 승객은 드골2공항에 내려 오를리공항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마르세유공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나 택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로 이동해야 한다. 프랑스는 승객의 이러한 고단함을 드골2공항에 TGV 열차를 끌어들임으로써 크게 덜어 주었다.

    드골2공항의 쉐라톤호텔 지하에는 거대한 기차역이 있다. 이 역에는 마르세유를 비롯한 프랑스 각 도시로 이어지는 국내선 TGV와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로 가는 국제선 TGV가 들어온다. 오를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마르세유공항에 도착하는 데는 1시간30분이 걸린다. 그러나 드골2공항에서부터의 이동과 대기시간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드골2공항역에서 출발한 TGV는 3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마르세유 도심에 있는 역에 도착한다. 이러니 마르세유 행 승객은 오를리공항으로 가지 않고 드골2공항에서 시간마다 출발하는 TGV를 타게 되는 것이다.

    드골2공항에 철도를 연결한 것은 드골2공항과 오를리공항 사이의 교통량을 현저히 줄인 것 외에 다양한 효과를 가져왔다. 1970년 7월7일 한국은 경부고속도 개통을 계기로 주력 교통체제를 철도에서 고속도로로 바꾸었다. 이러한 정책 변화 덕분에 한국은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으로 발전했지만, 열차 산업은 퇴보를 거듭했다. 반면 프랑스와 일본은 자동차 산업과 함께 열차 산업을 발전시켜, 시속 300㎞의 고속열차를 개발해 냈다. 철도는, 더군다나 요즘 열차는 대부분 전철(電鐵)이기 때문에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해 배출량이 적다. 버스나 트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인원과 물자를 수송한다는 장점도 있다. ‘열차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집약적인 공간 이용

    한국은 전국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난 후에야 열차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TGV 기술을 들여와 2002년 완공을 목표로 경부고속철도를 짓게 되었다. 한 전문가는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면 수원이나 안양쯤에서 인천공항까지 지선을 깔아, 부산을 최종 목적지로 한 승객은 인천공항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바로 부산 시내로 가게 하라”고 권유했다. 그는 또 이렇게 조언했다.

    “한국에 도입되는 고속전철은 프랑스의 TGV와 같은 형이다. TGV는 TGV 전용노선뿐만 아니라 일반 전철선로도 달릴 수 있다. TGV 전용노선은 굴곡과 경사가 거의 없어 시속 300㎞로 달릴 수 있으나, 굴곡과 경사가 있는 일반 전철선로에서는 100㎞ 내외로 달리는 차이점만 있다. 부산으로 가는 승객을 태운 TGV는 300㎞로 달리나, 호남으로 가는 TGV는 일반 철도선이 연결된 천안 이남에서는 시속 100㎞ 정도로 달리면 된다.”

    장차 통일 한국시대가 열린다면 인천공항은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중국 만저우(滿洲)의 대도시까지 잇는 철도의 연결점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철도는 아직도 국영 사업이다. 그러나 철도는 무조건 정부가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다. 일본만 해도 일본 철도청이 건설한 국철(JR)과 민간기업이 건설한 다수의 사철(私鐵)이 여객과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한 프랑스인 전문가의 말이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는 영종대교 하나 뿐이다. 아직은 교통량이 많지 않아 문제가 없지만, 교통량이 폭주할 경우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형 버스나 트럭이 영종대교나 신공항 하이웨이에서 전복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 즉시 엄청난 교통 체증이 일어나 비행기를 놓치는 승객이 속출할 것이다. 이들 중에는 외국 업체와 중요한 계약을 앞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신공항 하이웨이(주)나 한국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은 하루빨리 영종도를 잇는 또다른 교통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나 일본처럼 국내외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제2의 연륙교나 사철을 놓게 하는 것이 한 방안일 수 있다.”

    드골2공항과 인천공항은 땅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서도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전국토가 평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도 이들은 땅을 콤팩트하게 이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하 시설이다. 파리 시내에 건설된 지하 시설의 연면적은 지상 연면적보다 4배 이상 넓다고 한다.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는 지하 7층 구조다. 지하 7층에는 드골2공항과 파리 시내를 잇는 RER 전철선이, 6층에는 ‘메트로(metro)’로 불리는 파리 지하철 1호선이 달리고 있다. 지하 5층에서부터 1층까지는 주차장이다.

    이러한 지하 활용은 드골2공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드골2공항의 다섯 개 터미널은 ∞ 모양으로 연이어 있다. 때문에 엉뚱한 터미널로 잘못 들어섰더라도 올바른 터미널을 찾아 이동하는 거리가 짧아진다. 또 드골2공항은 터미널 지하 2~5층에 대형 주차장을 마련해 토지 이용을 극대화하고 승객의 이동거리를 줄였다.

    인천공항 터미널은 일직선인데, 그나마 새로 짓는 터미널은 이 터미널과 멀리 떨어져 있다. 터미널을 잘못 찾아온 승객의 동선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은 주차장을 터미널 밖 지상에 대규모로 설치해 놓았다. 노상 주차장과 터미널 사이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적잖은 수의 승용차가 터미널 램프로 올라와 승객과 짐을 내린 후 주차장으로 간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더욱 심해진다.

    인천공항은 아직은 공간에 여유가 있어 주차난과 교통난이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과 이용객이 두세 배로 늘어나는 2010년쯤엔 비효율적인 토지 이용으로 인해 심각한 주차난과 교통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인천공항은 드골2공항의 지하주차장 건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인천과 김포공항은 공통적으로 지붕이 높고 내부 치장이 화려하다. 인천공항은 터미널 안에 거대한 인조 소나무까지 심어 놓았다. 드골2공항의 천장은 결코 높지 않다. 내부를 도색(塗色)하지 않고 시멘트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오색 천으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승객이 빨리 내리고 탈 수 있는 ‘공항 고유의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드골2공항이다.

    드골2공항에서 에어프랑스를 비롯한 항공사들은 TGV와 연결된 항공권을 판매하는 마케팅으로 많은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에어프랑스와 TGV 측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승객이 폭증하면, 전세기와 연계된 전세열차를 집중 배치해 처리했다고 한다.

    인천공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김포공항까지 전철을 놓는 것이다. 이 전철은 2층으로 건설된 영종대교 하단을 지나 김포공항으로 연결된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잇는 전철 노선이 완공되면 2차로 이 선을 서울 도심인 서울역까지 연장한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사이에 들어서는 전철은 어떤 모습일까? 드골2공항과 파리 시내 사이에는 RER 전철이 지나고, 일본의 나리타(成田)공항과 도쿄 시내 사이에는 게이세이(京成)전철이 지나간다. 그러나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그리고 서울 시내를 잇는 전철은 이보다 앞선 시스템이어야 한다. 알스톰은 이러한 모델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과 그 외곽에 있는 알란다국제공항을 잇는 ‘알란다전철’을 보여주었다. 알란다전철 노선에는 서울과 수도권을 달리는 전철과 비슷한 모습의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을 살펴보니 시스템은 전연 딴 판이었다.

    알란다전철은 무려 시속 200㎞로 달릴 수 있었다. 새마을호 열차의 최고 속도가 140㎞인데, 도심과 국제공항을 잇는 일개 전철이 200㎞로 달린다니 믿기 어려웠다. 이러한 의문은 알란다전철 운전석에 탑승해 200㎞로 질주하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해소됐다. 알란다공항에서 스톡홀름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지만, 알란다전철은 20분만에 주파한다.

    이렇게 빠른 전철이 있기 때문에 승객이나 마중객들은 자동차 대신 알란다전철을 이용한다. 그로 인해 스톡홀름과 알란다공항 사이의 자동차 교통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스톡홀름시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지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난 것이다.

    일본의 게이세이전철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사철(私鐵)이다. 그러나 알란다전철은 스웨덴 정부와 스웨덴의 국내외 기업들이 공동 투자한 제3섹터 방식의 ‘알란다 전철(주)’이 운영한다. 이 회사는 2040년까지만 운영되는 한시(限時) 회사다. 2040년까지 투자비를 회수해 주주들에게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주고, 2040년이 되면 스웨덴 정부에게 시설과 운영기술 일체를 넘겨주는 기부채납 형식의 회사인 것이다. 2040년까지는 수지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알란다전철의 운임은 2만원 가량으로 매우 비싼 편이다. 일본의 게이세이 전철 요금도 2만원(1920엔)선이다.

    요금이 비싼 만큼 알란다전철은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라는 마케팅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스웨덴은 겨울에 많은 눈이 내린다. 폭설이 내리면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전철까지 끊어질 수가 있다. 알란다전철(주)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전철이 30분 이상 연착하고 그로 인해 비행기를 놓친 승객이 있다면 최고 1200달러를 배상한다’고 광고했다(전철이 끊길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면, 비행기도 이륙할 수 없다. 알란다전철의 마케팅 전략은 교묘하면서도 프로페셔널했다). 이러한 광고를 통해 알란다전철(주)은 승객을 확보하고 직원들에게는 ‘정시 출발, 정시 도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게 하였다.

    철도 르네상스 시대

    알스톰측은 알란다전철과 비슷한 시스템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사이에 건설하라고 제의하였다. 알스톰은 알란다전철(주)의 주주일 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 공급자다. 그러나 한국은 토목 기술과 철도 차량 제작 기술이 충분히 발전해 있으니, 한국에는 신호체계만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알스톰 측은 왜 신호체계만 공급하겠다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열차의 운행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이해되었다.

    열차 조종칸에는 자동차 운전석에 달려 있는 것같은 ‘핸들’이 없다. 핸들이 없는데도 굽은 선로를 따라 빠르게 달리는 것은, 열차 바퀴와 선로가 꽉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선로가 나눠지고 합쳐지는 분기점(分岐點)에서는 오직 한 개 선로만 기차 바퀴와 맞물리도록 연결되므로, 열차는 그 방향으로 달릴 수 있다. 이처럼 분기점에 도달한 열차의 바퀴가 맞물려야 할 선로를 결정해 줌으로써 열차의 방향을 바꿔주는 것이 역(驛)이나 중앙통제소에 있는 신호체계다. 신호체계는 속도를 내는 구동(驅動)체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인천공항은 5년 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연 280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쯤에는 드골2공항 수준인 5000만명 정도로 이용객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여객 증가를 감안하면 한국은 시발지 기준으로 1분30초마다 한 편씩 열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1분30초에 한편씩 열차를 출발시키려면 매우 복잡한 신호체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인체에 빗대 설명해보자.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의 구동체제는 튼튼한 뼈대와 우람한 근육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님이거나 두뇌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근육은 전혀 쓸모가 없다. 열차의 신호체계는 인체의 눈과 두뇌에 해당한다. 강력한 구동체제를 갖춘 열차일수록 사고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한국 실력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할 수가 없다.

    알스톰은 철도 제작에 관한 한 세계 최선두 기업이다. 이 회사는 시속 300㎞로 달리는 TGV에 이어, 500㎞로 달릴 수 있는 2세대 TGV를 개발했다(그러나 500㎞로 달리면 어떤 환경 문제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해, 상업운전에 들어간 2세대 TGV는 300㎞대로 달리고 있다). TGV열차가 고속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굴곡과 경사가 거의 없는 전용 노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알스톰은 구비와 경사가 큰 일반 기차길에서도 시속 250㎞로 달릴 수 있는 틸팅(tilting; 기울기라는 뜻)열차를 만들어냈다. 고속으로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굽은 길에 들어서면 원심력이 작용하므로 전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TGV는 구비가 거의 없는 전용의 직선 선로를 까는 것이다.

    전용선로를 까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때문에 일반 철도를 빠르게 달리는 새로운 열차 개발이 요구돼 왔는데, 그것이 바로 ‘틸팅 열차’다. 이 열차는 굽은 길에서는 스스로 몸을 기울여 원심력에 맞서는 구심력을 만든다. 알스톰은 복잡한 유압시스템을 만들어 일반 철도의 굽은 길을 고속 질주해도 전복되지 않는 틸팅 열차를 개발한 것이다.

    틸팅 열차와 이 열차가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호체계를 알스톰은 ‘펜돌리노(PENDOLINO)’로 명명했다. 틸팅열차와 펜돌리노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TGV 전용선이 없는 호남선에서도 최고 시속 250㎞로 달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알스톰은 최고 200㎞로 달릴 수 있는 광역 전철시스템 ‘코라디아(CORADIA)’와 대도시에서 쓰이는 전차와 지하철 등도 개발했다. 이러한 철도 산업의 발전은 드골2공항을 유럽 최고의 중심공항을 만드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한국은 너무 빨리 철도를 포기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TGV 차량 제작술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와 있는 한국 기술자들이, 예상보다 빨리 고속철도 차량 제작술을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4년 전 프랑스 의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고속철도 기술 이전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야당은 “독일과의 경쟁에 이기기 위해 장차 프랑스의 라이벌이 될지도 모를 한국에 너무 많은 기술을 넘겨 주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궁지에 몰린 프랑스 교통부 장관이 이때 꺼내든 무기가 시속 500㎞로 달릴 수 있는 2세대 TGV였다. 교통부 장관은 “한국에 제공한 기술은 300㎞로 달리는 1세대 TGV다. 프랑스는 2세대 TGV를 개발했으므로 장차 한국의 도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야당의 공세를 잠재웠다고 한다.

    프랑스 국회가 걱정할 정도로 한국 기술진이 고속철도 차량 제작 기술을 빨리 익히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술을 토대로 한국도 철도 르네상스를 맞이 한다면, 인천공항이 동북아의 중심공항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