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2011년 다보스포럼 참관기

‘새로운 현실’의 우울한 불확실성 공동의 대안은 가능한가

  • 문정인│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cimoon@yonsei.ac.kr

    입력2011-02-22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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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다보스포럼 참관기
    35개국 정상 참석, 100여 개 국가 주요기업 CEO 등 총 2500명의 참석자, 총 250개의 세션. 숫자로 본 올해 다보스포럼의 규모다. 올해로 네 번째 참석한 필자가 느끼기에 포럼은 최근 2~3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했다. 41년 전 포럼이 처음 시작할 때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회의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 외에도 매년 여름 중국에서 열리는 하계 포럼과 11월말 두바이에서 열리는 글로벌어젠다 정상회의 같은 세계적인 차원의 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역별 모임이나 주제별 포럼도 세계 곳곳에서 수시로 열리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모임과 네트워크를 통해 다보스포럼은 이제 사실상 유엔에 견줄 만한 비정부 세계조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무서운 변화다.

    그러나 이번 포럼을 돌아보고 난 후 필자가 느낀 솔직한 소회는 현실진단은 타당성이 있으되 처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갖가지 위험(risk)에 노출돼 있다는 인식에는 나름대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이를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쇠락, 인도의 부상

    이번 포럼에서 필자의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전에 크게 부각됐던 미국과 중국의 이른바 G2 구도가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불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천더밍 상무부장이 기업인 66명을 이끌고 참석한 중국의 경우, 원자바오 총리와 리커창 부총리 등 최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던 이전에 비해 정치적 위상이 사뭇 낮은 참석자들이 주를 이뤘다. 이미 명실상부한 G2의 반열에 올라섰으므로 더 이상 공연히 목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는 중국의 묘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대신 유럽의 금융위기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다 보니 이들 국가의 수반들은 거의 대부분이 참석했다. 사실상의 비공식 정상회의가 열린 셈이다. 특히 이들은 유럽통화동맹(EMU)에 속한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위기가 유로화의 해체라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공유하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참여한 정상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유로화 동맹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 이유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힘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1월27일 오후 메인홀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조발제를 맡은 개발도상국의 만성질환에 관한 포럼이 열렸다. 다음 차례는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과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참석한 WTO 관련 토론이었고, 마지막 순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기조발제를 맡은 세션이었다. 첫 번째 세션이 열렸을 때는 빈 자리가 많았던 메인홀이 두 번째 세션에서는 꽉 찼고, 마지막 세션에서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유엔 사무총장보다는 중국 상무부장이나 WTO 사무총장에게, 다시 그보다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최근 국제무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일본의 쇠락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기조발제를 맡은 1월29일 오전 세션의 흥행이 극히 저조했던 것이다. 자국 총리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흥행에 실패하자 일본 측 참석자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같은 날 오후 열린 ‘일본의 부활’세션에서도 총리가 개회사를 하고 일본 정재계의 기라성 같은 인사들이 패널로 나섰지만 참석자는 60~70명에 불과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 일본의 자신감이나, 잦은 총리 교체로 상징되는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에 대해 국제사회가 품고 있는 불신이 한꺼번에 확인된 셈이었다.

    반면 인도에 대한 관심 집중은 가히 눈부시다 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려 800만달러가 들었다는 ‘인도의 밤’ 행사는 최대의 성황을 이뤘고, 이는 인도가 새로운 힘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세리머니와 다름없었다. 20세기를 지배했던 서구의 패권이 사그라지고 대신 브릭스(BRICs)로 상징되는 신흥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로 힘이 옮겨오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

    이번 포럼의 세션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른바 ‘새로운 현실(new reality)’에 대한 진단, 2011년 이후 중장기 경제전망, G20의 역할과 평가, 지구촌이 맞닥뜨린 갖가지 위험에 대한 효과적 대응 메커니즘이 그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이들 주요 주제와 관련해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겠다.

    ‘알 수 없다’는 불안감

    2011년 다보스포럼 참관기

    1월27일 세계경제포럼이 열리고 있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한국의 밤’ 행사에서 한승수 전 총리, 마이크 리스 스탠더드차터드뱅크그룹 총괄이사,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왼쪽부터)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우선 ‘새로운 현실’과 관련해 가장 강조된 것은 전세계 차원의 힘의 전환(power shift)이었다.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의 쇠퇴, 그리고 중국과 브라질,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비서구권의 등장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힘의 전환이 국제사회에 심도 있는 균열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위상이 쇠퇴하고 있다고 느끼는 국가들이 계속해서 보호주의 무역 정책에 경도되거나 환율개입을 시도함으로써 통화 전쟁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경제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G20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보적 갈등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힘의 전이가 불러온 극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5대 핵 보유국 외의 나라들이 속속 핵무기를 손에 넣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물론 북한과 이란까지 핵 보유에 나서는 흐름은 힘의 전이가 국제사회에 불러온 새로운 난제다.

    2012년 이후 세계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미래 경제의 불확실성에 관한 지적이 주를 이뤘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며 세계 경제가 호전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과연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특히 중국의 저임금 구조를 바탕으로 그간 지구촌이 누려왔던 높은 수준의 구매력이 과연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불안정성이 국가 재정의 문제, 국가 채무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특히 최근 각 나라가 부딪힌 가장 심각한 고민이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의 소버린 리스크 등 최근 세계 경제를 뒤흔든 주요 사안이 모두 이 부분에서 시작됐음은 우연이 아니다. 포럼에서 제시된 2011년 전망치 가운데 일본의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44%에 달하고 그리스(139%), 이탈리아(120%), 미국(99%), 영국(88%), 프랑스(82%)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이 모두 빚더미에 앉아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국은 재정을 쏟아 부어가며 경기를 부양했고, 이로 인해 재정적자가 늘어나면서 국가 채무 확대와 소버린 리스크 위기가 등장했다. 최근 신용평가회사 S·P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도 이와 관계가 깊다. 세계 경제를 구동하는 힘이 선진국의 구매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나라의 무역적자 증가와 구매력 쇠퇴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브릭스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들의 구매력은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구매력 전환에 따르는 적응구도가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각국의 환율 조작과 보호무역 강화로 이어졌고,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전혀 진척되지 못해 자유로운 무역환경 조성이 지연되거나 국제통화질서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1년 이후 세계 경제가 어디로 갈지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울한 부분이다.

    폭증하는 인구와 자원배분도 이번 포럼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2010년 69억명으로 추산되는 세계인구는 2050년까지 91억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인구증가의 상당부분이 후진국에 집중되고 있는 만큼 자원배분 문제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다. “식량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인도네시아의 정치사회적 안정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유도 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토로가 대표적이다. 식량과 에너지 등 1차 상품을 선진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독점함으로써 가격이 요동치고 많은 제3세계 국가가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 어려운 현재의 구조가 계속되면 극심한 사회불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국가 간의 빈부격차 혹은 국가 내부의 불평등 문제도 세계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지목됐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도 피해갈 수 없는 청년실업 문제다. 중국의 경우 매년 600만명의 대학 졸업자가 쏟아지지만 중국 경제가 소화할 수 있는 수는 200만에도 못 미친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의 공통적인 고민으로,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은 전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G20 對 G제로

    이렇듯 겹겹이 쌓인 ‘새로운 현실’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포럼의 다음 주제가 바로 국제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대응방안에 관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테마가 현재의 G20 논의구조에 대한 반성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지난해 11월 열린 G20 서울 정상회의에 관한 평가나 언급이 이번 포럼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이를 국가브랜드 강화 차원에서 열정적으로 홍보했던 것에 비하면 사뭇 놀라운 일이었다. 오히려 이번 포럼에서는 20개 나라가 지구촌 이슈를 한꺼번에 협의하는 현재의 G20 체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제기한 이른바 ‘G20 대(對) G제로’ 논쟁을 보자. 그간 G20 체제가 환율 갈등이나 금융부문 규제, 기후변화 대응 등의 핵심과제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비판하면서, 세계 경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어떤 나라도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없는 것(zero)이나 다름없다고 비꼰 그들의 주장은 포럼 기간 내내 많은 관심을 받으며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분위기는 오는 11월 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말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포럼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기존의 통화질서를 재구성해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브레튼 우즈 체제에 상응하는 새로운 제도적 대안을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포럼에서 그는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과제들, 예를 들어 국제경제 불균형을 다루는 공동지표의 구성 정도에만 합의해도 성공적인 정상회의가 될 것이라며 한껏 목표치를 낮췄다.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G20 국가들의 합의 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고는 칸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줄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G20과 관련한 또 다른 이슈로는 금융규제 문제가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래 한동안 참석을 자제했던 월가(街) 주요 금융회사 CEO들은 이번 포럼에는 다수 참석해 “G20 국가들의 지나친 규제가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쉽게 말해 이제 그만 괴롭히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등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실적이 개선되긴 했지만 금융부문의 투명성은 여전히 불충분하며 추가적인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각국의 재정정책 조율과 관련한 G20 국가들 사이의 입장 차이도 관심을 모았다. 재정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에 대해 경계심이 커지면서 독일 등 몇몇 나라이미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아직은 이르다”며 선을 그었다. 섣불리 긴축재정 기조로 돌아섰다가는 세계 경제가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반론이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던 이러한 고민은 여전히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게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마지막 어젠다로는 전 지구적인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다. 금융위기나 자연재해 등 대규모 위험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실제로 닥쳤을 때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닥친 뒤에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는 대신 위험의 발생가능성을 조기에 완화하는 메커니즘의 필요성도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각국 전문가들을 한꺼번에 연결한 글로벌 전문가 네트워크라는 결론이었고, 다보스포럼이 앞장서서 이러한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겠다는 결의로 이어졌다. 필자 역시 새로 결성된 글로벌 리스크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초청받았다.

    낙관과 비관의 기로에서

    돌이켜보면 2008년 이전의 다보스포럼은 세계 경제를 장밋빛으로 보는 낙관론이 대세였고,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열린 2009년의 포럼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비관론과 반성이 주류였다. 이번 포럼은 정확히 그 중간,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불확실하므로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루비니 교수가 표현했듯 ‘half full’, 즉 물이 반쯤 들어 있는 컵을 보고 반이나 남았다고 봐야 할지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2011년 세계 경제의 현실인 셈이다. 각국이 동반성장과 자원배분의 평등이라는 대의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지구촌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이번 포럼의 가장 큰 메시지였다.

    필자가 느낀 개인적인 소회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존재감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적 위상이나 세계 경제 흐름으로부터 받는 영향의 크기를 생각하면, 다보스포럼은 그렇듯 가볍게 생각해도 좋은 자리가 아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한국 측 인사들은 대부분 전직 혹은 각료급에 불과했고, 그나마 개최된 ‘한국의 밤’ 행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호스트를 맡았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을 당시의 열의와 비교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다보스포럼은 20세기 역사가 만들어놓은 네트워크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대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포럼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네트워크가 지구촌이 맞닥뜨린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나갈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를 먼저 생각하며, 기업인·금융인들은 여전히 더 많은 이윤추구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돈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배경과 처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만났다는 것, 이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도 인류 역사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의의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역시 우물 안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보스포럼을 포함한 국제무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정부가 소리 높여 외치는 국가브랜드 가치의 향상이나 국가 위상의 제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실력 있는 정치인들, 학자들, 기업인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다보스포럼에서 논의된 한반도 통일 문제

    日 “통일한국 핵 보유 절대 불가” vs 中 “상관없다”


    이번 포럼에서 열린 한반도 문제 관련 세션에서는 통일 문제를 다뤘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연구센터(CNAS) 선임고문과 가와구치 요리코 전 일본 외상,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 한국에서는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필자가 패널리스트로 참석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열린 토의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객석이 꽉 차는 성황을 이뤘다.

    크로닌 선임고문은 남북한이 각각 미국과 중국을 등에 업은 채 대립하는 현재 상황에서 무력통일 시도가 발발할 경우, 두 열강이 한반도에서 맞부딪치는 ‘제2의 6·25전쟁’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러한 새로운 패권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통일 이후에 주한미군의 위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합의를 구축해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가와구치 전 외상은,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지만 두 가지 전제조건이 지켜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통일한국이 절대로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또한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옌 소장은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찬성할뿐더러 통일한국이 핵을 갖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 주변에는 이미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핵 보유 국가들이 즐비하지만, 이들 국가가 자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한은 개의치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통일한국과 중국의 관계지 핵 보유 여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옌 소장은 “7000만 인구의 통일한국이 일본에는 부담이 될지 모르겠지만 13억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에는 별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여 가와구치 외상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남북한의 통일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 통일이 될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시장경제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므로 통일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통일한국이 섣불리 핵을 보유하거나 다른 나라에 위협을 가할 리 없으므로 주변국들도 미리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다. 오히려 통일한국이 동북아에 평화와 협력을 만들어가는 구심점이 된다면 중국과 일본은 물론 모든 국가가 이익을 얻는 ‘포지티브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김삼환 목사도 한반도 통일은 신의 섭리이며 그러한 통일은 누구에게도 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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