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주민들이 스스로 생활을 개선하고 기업을 일으키며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정부를 향해 손을 벌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산시성 관리들에게 이같이 강조했다.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정부의 투명도를 높이는 일도 병행했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본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는 2006년 5월 시안(西安)에 2억5000만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영국의 엔진 생산 업체인 커민스는 2005년 12월 산시(陝西)자동차그룹과 합작으로 산시성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1949년 3월 상하이(上海)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무선전파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고교를 졸업할 때는 스스로 TV를 조립할 정도였다. 지금도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이 망가지면 스스로 고친다. 고치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평소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천 부장의 설명이다.
대도시에서 평안한 생활을 누리던 그에게 천지개벽과 같은 삶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문화대혁명 때문이었다. 1968년 12월22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지식청년은 농촌에 가서 빈한한 농민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듬해 그는 다른 267만명의 청년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산간 오지인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현 셰팡(謝坊)진으로 하방됐다.
매일 농민들과 함께 일했지만 항상 쪼들리고 배고픈 삶에 밤에는 몰래 오이를 훔쳐 먹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쿵이지(孔乙己)처럼 “책을 훔치는 것은 절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5년간 농사일을 하던 그는 1974년 장시 공산주의노동대학(현 장시 농업대학) 농기계과에 들어가 3년간 공부한 뒤 장시성 농기국에 배치됐다. 그의 관운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 11월 장쑤(江蘇)성 식품공사로 배치되면서부터다. 그는 이후 거의 2년을 넘기지 않고 계속 승진할 정도로 순조롭게 달렸다.
1988년에는 난징(南京)대 국제상학원에서 수량경제 석사과정에 입학하기도 했다. 일과 공부를 함께 하기가 어려웠을 무렵 그의 지도교수인 저우싼둬(周三多) 교수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난징대 중미문화센터에서 매일 외국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영어실력이 부쩍 는 것도 이 기간이었다. 1996년 그는 관리학 박사까지 취득하며 몇 안 되는 박사 관원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는 일할 땐 집중하지만 근무시간이 끝나면 홀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산시 성장 시절에도 주말만 되면 부인과 함께 조용히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이 같은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서양 물을 제대로 먹은 중국 관리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역시 조만간 일과 휴식의 조화가 일반화되는 중등 사회로 갈 것임을 감안하면 천 부장은 이런 사회에 걸맞은 중국의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인 셈이다.
게다가 주위 사람과 어울리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원원얼야(溫文爾雅·온문이아)’, 태도가 온화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다는 뜻으로 2007년 12월29일 국무원 상무부 수장에 임명된 천 상무부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주위 사람들은 남에 대한 비판도 천 부장이 하면 ‘화풍세우(和風細雨)’같다고 한다. 산들바람과 보슬비처럼 온유하고 부드러워 상대방이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상무부장에 임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막대한 무역흑자, 미국 유럽과의 무역 마찰, 위안화 절상, 외국자본의 M·A 등 화약내 풀풀 나는 문제들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를 탈 때마다 운전사에게 “편하게 해. 물 마실래? 담배 피워도 돼. 나 상관하지 말고” 하고 말할 정도로 주위 사람에게도 아주 편안하게 대한다. 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상무부 직원들은 전임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 서기와 천 부장을 자주 비교한다. 나이는 같지만 성격은 판이하기 때문이다.
천 상무부장이 2012년 가을 열릴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직후 25명의 당 정치국 위원에 선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화권에서 그를 정치국 위원 후보로 꼽는 학자나 언론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역시 한 명의 ‘헤이마(黑馬·다크호스·dark horse)’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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