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굶주린 영혼을 달래는 책을 찾아서

  • 김미현 < 문학평론가 > penovel@ewha.ac.kr

    입력2004-09-01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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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는 밥이 되는 책과 밥이 되지 않는 책이 있다. 밥이 되는 책을 읽을 때는 흔히 독서노트를 만들지만, 밥이 되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독서일기를 쓴다. 나는 문학평론을 한다. 그 중에서도 소설평론이 주다. 당연히 내게 소설 읽기는 남들처럼 취미나 재미를 위한 놀이가 아니다. 오히려 직업적 의무를 느끼는 노동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는 날카로워지지만, 소설 이외의 것을 읽을 때는 너그러워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인문교양서나 미술에 관한 책, 영화에 대한 책을 즐겨 찾는 이유다. 이제는 ‘제2의 한국인’이 된 히딩크 감독식으로 말하자면 정신이 아직도 굶주릴 때면 ‘소설이 아닌, 소설일 수 없는, 소설과 거리가 먼’ 책들을 찾는다.

    물론 T. 무어는 “책이 유익한 것이었다면 세계는 훨씬 전에 개혁됐을 것”이라면서 책의 가치를 의심했다. “모두들 책을 믿는다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라며, 책에 대한 맹신을 경계한 이는 맹자다. 때문에 필요해서 읽든 필요 없어도 읽든 중요한 것은 ‘왜’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일 것이다. 유익한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나쁜 책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절반은 독자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영화, 인터넷, TV 등 책 이외의 것에서 쉽게 더 큰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때에는 무슨 책을 어떻게 읽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홍보 포스터에 안성기나 조수미가 모델로 나와야 효과가 있는 시대이니 말해서 무엇하랴.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2001)는 ‘놀라운’ 책이다. 실용서도 아니고, 전공서도 아니며, 문학서도 아니다. 엄청난 이야기들을 목청껏 외치는 시끄러운 책도 아니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위로하는 책도 아니다. 그런데도 작년 주요 일간지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 ‘이상한’ 책이다. 그저 이름만으로도 보증수표가 되는 각계 저명인사 26명이 13쌍을 이뤄 출연(?)했기 때문에? 읽었다면 교양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따근따끈한 주제들을 다뤄서? 글 아닌 말로 된 대담집이라 읽기에 부담 없어서? 현장감 있는 88컷의 사진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지적들이다. 이런 점들은 무시 못할 이유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체 왜 이런 ‘괴물 같은’ 책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일까.

    삶과 유리되지 않는 책



    ‘우리 시대의 삶과 꿈에 관한 13가지 이야기’란 부제에 걸맞게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라는 대담집의 기획의도는, 책머리에서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유해 밝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돌로 변하는 메두사란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고 공격했다. 이때의 방패는 ‘반성’과 ‘성찰’의 도구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메두사 같은 공포스럽고 위험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한번 터놓고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인터넷, 신화, 자본, 이성, 여성, 환경 등 현재 우리를 둘러싼 키워드들을 화두로 제시한다. 책 중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 있고, 대답을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제대로 된 질문이 곧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칙칙하거나 무겁지 않다. 잘난 사람들이 무게 잡으면서 지극히 타당한 교훈을 계몽적 어조로 풀어놓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제 삼는 책이다. 삶과 유리된 책이 가장 무서운 메두사임을 아는 책답다.

    때문에 이 책의 대담자들은 자신의 ‘머리’를 드러내는 대신 ‘가슴’을 드러낸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했던 것도, 그리고 그 속에서 인쇄 잉크의 냄새가 아니라 삶의 리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대담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울림이 큰 만남들은 그 자체로 책을 책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연구가인 이윤기가 신화에 빠진 배경엔 어릴 적 뜻도 모른 채 부르고 다녔던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란 우리 무가(巫歌)가 있다. 신화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우리의 무의식에 반응하는 가장 인간적인 영역이란 말을 그는 이 노래 하나로 전달한다. 동물학자 최재천이 생물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평생 강과 바닷가로 돌아다녀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단다. 이 우스갯소리엔 생명이란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란 오묘한 진리가 담겨있다.

    소설가 이문열에 따르면 그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원래 결말은 지금과는 달랐단다. 엄석대가 깡패로 성공하고, 주인공이 비굴하게 그의 차문을 열어주는 것이었는데, 악당의 성공을 현대적 리얼리티로 보는 매너리즘에 맞서기 위해 오히려 지금의 결말처럼 엄석대에게 수갑을 채웠다는 것이다. 왜 그가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면서도, 과연 진정한 현대성이나 진보의 개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경영하지만 과거엔 운동권이었던 조유식 사장이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 ‘전태일 평전’인 것은 이해되는데, 그 책과 함께 ‘캔디 캔디’를 말할 때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과연 그에게 인터넷은 ‘人터넷’인가 보다.

    이처럼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지 않는 대담자들의 인간적인 면을 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멍석’이 제대로 깔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무리 속내를 보여주고 싶어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의외의 만남’을 주선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여기서 의외라 함은 벌써 만났어야 할 사람들이거나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한데 묶었다는 의미다. 부녀간(이윤기/이다희), 친구 사이(최인호/윤윤수), 동업자나 선후배 사이(이강숙/김병종, 김화영/이문열, 김춘수/이승훈, 함인희/이숙경, 최창조/탁석산, 최장집/강유원, 김우창/김상환)는 사실 생각보다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적은데,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경우다. 이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쌍들이다. 이 책은 이런 여러 쌍들이 만들어내는 질문과 대답 중에서 골라 읽게 하는 미덕이 있다.

    밥이 되는 책, 밥이 되지 않는 책

    그래서인지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신선한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고,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흔히 돈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야 한다지만, 오히려 정승처럼 벌어야 정승처럼 쓸 수 있다는 것, 자족적이거나 자학적인 70점짜리 예술이 아니라 자신 속의 어둠을 직시하는 자아성찰적인 90점짜리 예술만이 살아남는다는 것, 가난한 사람들에겐 자연의 은총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은 땅을 닮고 땅은 사람을 닮는다는 것 등은 고수(高手)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고단백 영양식’에 해당한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기에 질리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으며, 소화에도 부담이 없다.

    물론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 인간의 의지와 사회의 변화, 예술의 다양성과 보편성 등에 대해 서로 충돌하는 말이 공존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진짜 생산적인 대화이지 않은가. 책에는 방패가 되는 책과 창이 되는 책이 있다. 이런 ‘모순(矛盾)’의 공존이 이 책을 인간과 가장 닮은 것이게 한다.

    하지만 이런 모순은 결국 ‘인간’이란 ‘단 한 권의 책’으로 수렴된다.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사람이 책보다 위대하다고. 책을 쓴 존재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살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는 ‘살아있는’ 책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 대담자들의 다른 저서들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정말 ‘두꺼운’ 책이기도 하다. 26권의 책이 한 권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책 속에 여러가지 다른 책들을 알처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디저트’라기보다 ‘애피타이저’에 더 가까운 책이다. 이제부터 식사가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는, 그리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역시 책에는 밥이 되는 책과 밥이 되지 않는 책이 있다. 사람들이 ‘밥’만 먹고 살지 않아서 문제 아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어느덧 밥으로 변하는 밥 아닌 것들도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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