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살기 좋은 세상과 ‘진보’에 대하여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09-07-01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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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좋은 세상과 ‘진보’에 대하여

    ‘진보를 연찬하다’ 이남곡 지음/ 초록호미/ 366쪽/ 1만3000원



    탈무드의 웃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유머다. 유대인 둘이 대화를 나눈다.

    “옛날 사람들은 전화도 없고, TV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자동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살았지?”

    “그래서 못 살고 다 죽었잖아.”

    현대인도 결국 죽겠지만 옛날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9세, 미국은 78.5세, 세계 최장수국 일본은 82.5세다. 반면 북한은 66세에 머물러 있다. 어쨌든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매년 1.5세가량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에는 평균수명이 100세가 될 거라고 한다. 보험을 들 때 80세 만기가 아니라 100세 만기로 해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평균수명이 선진화의 지표 중 하나라면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선진화하는 나라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26년 무렵 20%를 넘을 전망이다.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압축성장을 해온 만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장수국 일본도 고민은 있다. 일본의 영양학자 마쿠우치 히데오는 ‘초라한 밥상’(참솔 펴냄)이라는 책에서, 야마나시현에 있는 장수촌의 고령 노인들은 정정한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중년 세대가 암, 당뇨, 고혈압, 비만, 변비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것에 주목했다. 고령 노인들은 불편한 교통 때문에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어왔지만, 중년층은 ‘영양개선 보급운동’으로 서구형 식사를 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름에 우물에 담가놓았던 수박을 쪼개 먹으며 갈증을 달래는 대신,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수박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 먹으며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밥상은 사람들을 ‘광우병과 멜라민 파동’같은 먹을거리 공포에 빠뜨렸고, 빚을 상품화해 자산을 뻥튀기하는 미국식 ‘폭탄 돌리기’ 금융은 전세계를 경기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던 살기 좋은 세상이었나?

    “나는 진보란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해왔고, 지금도 진보하고 있다.”

    ‘타파’에서 ‘생성’의 진보로

    농부 이남곡이 지난 20여 년간 써온 글들을 엮어낸 ‘진보를 연찬하다’(초록호미 펴냄)는 진보에 대해‘진리를 향해 고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이야기한 책이다.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해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마르크스주의가 재조명되고 신자유주의가 재평가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을 위한 이정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남곡은 “아마도 한 세기 전이라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드디어 자본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노라고 내심 반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나타나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을 반드시 ‘타도’하고 ‘전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난 세기의 진보가 낡은 제도와 인습을 타파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세기의 진보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진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저자 이남곡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보자. 그는 1945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60년 서울 경기고에 입학하자마자 4·19혁명을 체험했고, 196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회변혁운동을 하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대학시절 그를 이끈 것은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불교였다. 특히 자유와 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마르크스주의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는 농촌지역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어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시기에 그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즉 사회주의권의 ‘사람과 물질이 준비되지 않은 혁명의 실패’를 지켜보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그 길은 계급투쟁이나 독재의 길을 통해서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때부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아집(無我執), 무소유(無所有), 일체(一體)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즘’을 접하고 8년 동안 ‘무소유 공용의 일체 사회’를 체험한다. 지금은 전북 장수에서 ‘작은 마을’ 운동을 통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변혁운동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그가 말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일단 진보는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 정치적 입장이나 정서, 사회 시스템 등과 결합된 ‘고정된 무엇’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무엇인가로 고정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진보(때로는 좌파)와 보수(때로는 수구)로 경계 짓는 우리 안의 이분법적 사고부터가 ‘진보’의 길을 가로막는다. 이남곡의 설명을 들어보자.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자본주의를 선호하면 보수이고 사회주의를 선택하면 진보라든가, 투쟁은 진보의 길이고 타협은 보수의 편이라든가, 친북 반미면 진보이고 반북 친미면 보수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실의 세계에서 의미가 없어진 사고방식을 관념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진보니 보수니 하기보다 그저 ‘막힌 사고’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혁명 당시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자코뱅당이 왼쪽에 앉은 데서 유래한 단순한 좌석 구분이었다.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은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당시는 둘 다 부패한 왕정을 타도한 ‘진보’였던 것이다.

    이남곡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침범하지 않도록 한계를 정해서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령 후세인의 독재정치는 이라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침범’했고, 이러한 폭압정치를 끝내는 것이 진보를 위한 가장 큰 목표가 된다. 한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 국민의 자주에 대한 요구를 침범했다. 이것은 진보에 반(反)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라크에 한국도 파병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높은 생산력이 진보의 바탕이다. 즉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히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않고는 진보를 말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가난’과 ‘내핍’을 이야기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사회에서 대두한 ‘단순 소박한 삶’이나 ‘생태적 삶’도 어느 정도 물질적 수요가 충족된 이후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다투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재화의 생산’은 진보의 중요한 요소다.

    셋째, 의식혁명이다. 인간 자체를 에고(ego)와 소유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인간으로 진보시키는 것이다. ‘지키는 사람 열이라도 도둑 하나 막기 어렵다’는 말처럼, 아무리 제도나 규범을 바꾼다 해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이남곡은 의식혁명의 시작을 남을 침범하는 행위의 천박함과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누가 옳은가 대신 무엇이 옳은가

    ‘진보를 연찬하다’는 완성된 이론을 제시한 책이 아니다. 연찬(硏鑽)이라는 방식 자체가 이론이나 사상, 방법, 실천의 모든 영역에서 무엇이든 한 가지로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함께 진리를 추구한다. 저자는 야마기시에서 배운 연찬의 방식에 대해 “누가 옳은가를 서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서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함께 물어가고 끝까지 규명해가는 모습이 작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회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향해 함께 가는 상생과 협력이다. 이남곡은 흔히 “좌파는 독선으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에서도 방법을 찾는다. 즉 아집과 탐욕이라는 각각의 약점을 지적한 이 말을 교훈 삼아 좌파와 우파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가 그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특성을 이해하고 개방의 확대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거기에는 반미적 성향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한미FTA를 오히려 적극 수용하며, 국가 이익과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 이니셔티브를 취하라는 조언도 포함된다. 북한의 민주화, 노사 대타협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도 좌파의 몫이다.

    자유를 지향하는 우파는 오히려 과거 좌파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자유경쟁에서 불리한 사람이나 집단의 실질적 자유에 관심을 갖고 그러한 정책에 이니셔티브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 북한 원조, 과감한 좌파의 주장을 수용한 조세정책 등을 우파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뉴라이트나 뉴레프트 운동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국은 보수세력의 분열과 진보대연합의 약진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진리를 향해 고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좌우익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막힌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 ‘진보를 연찬하다’를 읽으며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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