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성숙한 민주국가’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입력2009-12-02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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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아주 재미있는 한국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한 ‘성숙한 민주국가(full democracy)’이면서도 이웃국가들의 비민주적인 독재나 인권유린을 섣불리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의 일반 대중은 한류(韓流)를 좋아해서 한국에 호의적일 수 있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의 정권의 경우엔 ‘스스로는 훌륭한 민주국가이지만 이를 뻐기지 않는 한국정부의 겸손한 태도’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부, 민주화투쟁으로 점철된 지난 시절이 이제는 말 그대로 아픈 역사이자 훈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20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2009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조사 대상 175개국 중 69위였다. 이명박 정부가 받아든 이 성적표는 지나치게 초라했다. 한국은 지난해 47위에서 무려 22계단이나 떨어졌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30계단이 하락한 것이다. 69위라는 언론자유 성적표는 보츠와나, 세르비아, 탄자니아, 토고, 불가리아보다도 못한 수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국제사회가 ‘이명박 정권 들어 한국의 언론자유가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언론자유, 일본보다 낫다”

    그러나 이번 발표대로 한국은 과연 보츠와나, 세르비아, 탄자니아, 토고, 불가리아 같은 나라보다도 언론자유가 떨어지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심지어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는 17위인 이웃 일본보다도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다. 언론계 주변에는 이번 수치를 두고 말들이 많다.



    나는 국경없는 기자회의 뱅상 브루셀 아시아 담당국장과 이번 순위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주제로 얘기를 나눠봤다. 나는 일부 한국인의 불만을 전했다. 그러자 브루셀 국장은 “MBC PD수첩, YTN 기자 해고사태, 미네르바 구속 등 구체적으로 드러난 팩트(facts)를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순위 선정은 나름 공정하다”고 설명했다. “그 평가가 지나치게 노조 편향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브루셀 국장은 “국경없는 기자회 측이 한국의 언론사 측, 정부 측에 면담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아 반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그러나 홈페이지의 한국관련 대목에서 “언론의 다원화(real news pluralism)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아시아 국가(very few Asian countries)”라고 이례적으로 평가했다. 언론 다원화란 특정 정치세력이나 계층의 언론독점 없이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보도하는 상태다. 이 같은 한국의 성숙한 언론 현실과 발표 순위는 모순이다.

    MB정권 언론관, 문제없나?

    순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대개의 이들 비정부단체(NGO)는 이상주의로 흐른다. 언론자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짐작할 때 더욱 그러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진보성향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실적 근거 없이 미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20단계나 껑충 올려 20위에 뒀다. 국경없는 기자회에 공식 항의하겠다는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안쓰러울 뿐이다.

    언론과 권력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love-hate relationship)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정도가 언론과 우호적으로 지냈다. 레이건은 일부러 토요일에 중요한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뉴스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일요일자 신문을 위한 배려였다. 닉슨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언론과 으르렁거렸다. 부시 대통령은 극우성향 ‘폭스뉴스’와는 동업자처럼,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는 원수처럼 지냈다.

    권력은 전통적으로 언론사 밖의 악명 높은 게이트 키퍼(gate keeper·문지기 : 뉴스 결정권자)였다. 그러나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는 사소한 부분에서는 성공했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보듯 역사를 바꾸는 고비에선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통제가 빌미가 돼 권력은 몰락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행동대들

    우리나라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인정하듯 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언론 다원화를 구현하고 있다. 언론 다원화는 성숙한 언론자유의 징표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화려한 IT기술은 블로거 문화를 꽃피우며 언론선진국으로 견인하고 있다. 비교적 공정한 사법부가 언론자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YTN기자 해고 무효’ 결정에서 속속 드러나듯 최근 우리 언론계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행동대들’이 나타나 설치고 있다. 이런 군상이 존재하는 한 우리 언론에 대한 나라 밖 평가절하는 계속될 것임이 뻔하다. 언론의 호된 비판을 견디고 살아남는 정권이 훌륭한 정권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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