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반신욕을 하다가 영면했다. 황장엽씨는 생전에 반신욕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간동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97년 귀순 직후에는 오리고기 등을 하루에 두 번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식사 횟수를 줄이고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거르지 않고 반신욕을 했다.”(주간동아 758호)
반신욕이 건강법으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각종 언론매체가 앞 다퉈 반신욕을 홍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필자는 대학한방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병원에는 주로 중풍이나 구안괘사(口眼·#54034;斜)로 고통받는 환자가 많았다. 그런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병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그들 중 상당수가 반신욕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반신욕을 통해 효험을 보았다는 분도 많지만 그 반대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반신욕으로 하반신이 데워지면 하부에 있던 혈액이 따뜻해져 상반신으로 올라가 상반신의 혈액량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올라온 혈액은 열기를 동반하다 보니 뇌신경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을 한의학에서는 기가 넘친다고 하는데, 기가 넘치는 것은 흔히 ‘풍’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안면이 마비되는 구안괘사는 와사풍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 상태가 심해지면 ‘풍’은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마비되는 중풍으로 이어진다. 위에서 소개한 주간동아 기사도 한의학적 추정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사망하기 얼마 전인) 10월1일 그(황장엽)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화색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색은 일반적으로 생기의 표현이지만 그 내부에는 붉은 화기가 있다는 것으로 반신욕의 부작용이 회광반조(回光返照·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처럼 마지막 불꽃을 피운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인체는 직립의 자세로 서 있다. 직립의 자세는 필연적으로 퍼 올리는 혈류량에 에너지 부담을 크게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반신욕을 통해 혈류량이 많아지면 머리도 맑아지고 피로도 풀리는,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혈액이 지나치게 많이 올라오면 오히려 심장과 뇌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심장은 펌프처럼 외부로 혈액을 밀어낸다. 혈액이 심장에 집중되면 팽팽한 풍선처럼 늘어나며 수축하기 힘들어져 펌핑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엄청난 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며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황씨는 사망 당시 과긴장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긴장하면 혈관은 수축한다. 특히 수족의 혈관이 좁아지고 수족에 있던 혈액이 심장으로 몰려 심장 펌핑에 부담을 준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반신욕으로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몸속의 어느 부분에 혈액이 필요 이상으로 흐르면 몸속의 다른 부분에 흐르는 혈액의 양은 반드시 줄게 된다. 이런 상태와 비슷한 예는 코피 치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코는 뇌와 통해 있다. 그러므로 피가 뇌로 넘쳐 올라오면 코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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