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화로운 삶’<br>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지음, 도서출판 보리, 220쪽, 9000원
이런 네오러다이트 생활운동의 중심에는 미국의 스코트 니어링·헬렌 니어링 부부가 있다. 스코트는 경제학 교수였고 헬렌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운동인 신지학(神智學·Theosophy)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에 거대도시 뉴욕의 문명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버몬트 주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니어링 부부의 ‘단순하면서도 충만한 삶’에 대한 실험은 전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문명을 떠나 사는 동안 그들 부부는 문명인의 정신적인 지주로 높이 떠올랐다. 네오러다이트 운동이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가장 활성화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버몬트 주 숲 속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체험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록한 ‘조화로운 삶’(원제 Living the Good Life)은 검박한 자연주의 삶을 추구하는 세계인에게 ‘교범’이자 ‘지침서’가 됐다. 버몬트는 ‘가지 않은 길’로 널리 알려진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만년에 살던 곳이기도 하다.
니어링 부부의 자연주의 삶의 철학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닮았다. 하지만 아직 도시화가 덜 진행되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에머슨·소로의 19세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니어링 부부는 둘 다 농사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도시내기였다.
버몬트 농가의 헌법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 시골로 들어간 것은 네오러다이트 운동이 싹트기 전인 1932년, 대공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시절의 일이다. 한국인 대다수가 아직 농경사회에서 엄혹한 일제강점기를 보내던 사실을 반추해보면 니어링 부부의 결단은 선구자적 모험이다. ‘조화로운 삶’이 첫 출간된 1954년으로 따져봐도 한반도의 사람들은 삶의 여유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던 6·25전쟁 직후였다.
니어링 부부는 버몬트에서 돌집을 짓고 살면서 ‘단풍나무 시럽 만드는 법’을 글로 썼다. 출판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의 남편이 경영하는 ‘존 데일리 출판사’에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펄 벅 부부가 니어링 부부의 거처로 찾아왔다. 그곳 풍광을 보고 감탄한 펄 벅 부부가 버몬트 농장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라고 권해서 나온 책이 ‘조화로운 삶’이다. 이들의 경험담 속에는 전원생활의 기술, 경제, 사회, 심리적인 면이 두루 담겼다. 땀과 영혼으로 쓴 전원일기라고 하겠다.
스코트와 헬렌은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독립된 경제 꾸리기,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한 네 가지 기본 가치는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였다. 좀 더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평화주의, 채식주의, 환경주의다.
구체적인 원칙도 세웠다. 채식주의를 지킨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한다. 하루를 오전 오후로 나눠 빵을 벌기 위한 노동은 반나절만 한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한 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는다. 집짐승을 기르지 않는다. 자연에 있는 돌과 바위로 집을 짓는다. 방문객이 찾아와도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얘기를 나눈다. 누구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설거지하게 한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손으로 일한다. 최저 생계비가 마련되면, 먹고 남은 채소나 과일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다. 하루에 한 번씩은 철학, 삶과 죽음, 명상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우리 집이라는 작은 조직체의 헌법과 같은 것이었다”고 표현한다.
니어링 부부에게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었다. 니어링 부부는 자신들의 삶의 중요성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버몬트 계획을 실천하며 산 스무 해 동안에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캘리포니아대를 스무 해 다니면서 알게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더 많이 배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