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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이회창의 ‘칼과 저울’ 강박관념과 균형감각

  • 정혜신

이회창의 ‘칼과 저울’ 강박관념과 균형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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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말하면 이회창은 전형적인 결벽증 또는 강박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한번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필자의 단정적인 해석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 말을 조금 바꾸어 보자. 이회창은 정신의학적으로 강박적 성격이라고 진단해도 무리가 없을 만한 외적인 특징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첫째 특징은 청결과 돈, 시간에 대해서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갈한 위생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시테크나 재테크에 관심이 좀 있다고 해서 다 강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박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유별나다고 느낄 만큼 뚜렷한 구별점을 가진다.

강박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우선 외견상으로도 다른 사람과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언제 봐도 사우나에서 막 나온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 잘 씻어서 언제나 빛나는 듯한 얼굴, 한가닥의 머리카락이라도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정한 머리 모양새, 군더더기 없이 말쑥한 옷차림 등 ‘지나친 깔끔함’ 때문이다.

이회창은 정치입문 이후 지방에 내려가서 숙박한 경우가 딱 한번이라고 한다. 거의 대부분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서울로 올라오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머리손질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자택에서 전속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는데 가르마가 조금만 달라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칫솔질도 10분 이상 할 정도로 청결에 철저하다.

이회창의 지나친 깔끔함은 그의 대국민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참모들에겐 걱정거리일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 분장의 키포인트는 차갑고 딱딱한 인상 대신 ‘부드러운 이회창’을 연출하는 것이었단다. 헤어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건의한 한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청결에 대한 집착

청결에 대한 그의 집착은 외모 같은 외형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의 ‘희대의 보복정치’ 발언으로 충격을 받은 이회창이 수덕사를 찾았다. 이 절의 주지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필자의 눈을 끈 것은 법장스님을 만나 자신의 심중을 토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던 이회창이 예산성당에 들러서 20분간 혼자 기도를 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울라프’라는 자신의 세례명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가톨릭 신도 이회창이 연상되면서 정신과의사로서 일종의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다.

혹시 스님과 밀담을 나눈 일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의 마음에 짐이 된 것은 아닐까. 부담스러운 일을 행(doing)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그것을 취소(undoing)하려고 성당에서 기도를 올린 것은 아닐까. 강박적 성향의 사람들이 부채의식을 느낄 때 흔히 사용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취소(undoing)다. 그의 결벽증은 물리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청결(순결)’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또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시간개념이 철저하다. 그들은 시간개념이 흐릿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경멸한다. 이회창도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상대를 15분 이상 기다리는 법이 없어서 ‘15분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돈에 엄격한 정치인

돈 문제도 철저하긴 마찬가지다. 이회창만큼 돈에 엄격한 정치인도 흔치 않을 것이다. 3김과는 차별되는, ‘돈 안쓰는 정치’를 실천하고 싶은 그의 정치적 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돈문제에 있어서 그는 거의 결벽을 고집한다.

이회창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돈으로 추종자와 권력을 만들어내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대선 때는 지정기탁금제 폐지를 선언하면서 여당 프리미엄을 포기했고, 지난 총선 막판에는 1000만원만 지원해주면 당선권에 들 수 있다는 지구당 사람들이 총재에게 다급한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그 요구를 거절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총선을 치르면서도 그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히 선거혁명이라 불릴 만하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고수한 데는 정치적 신념 외에도 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성향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는 돈을 직접 만지는 행위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아마 심리적 깨끗함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몇몇 기업인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수억원의 정치헌금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연락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전화를 수차례 하다가 끝내 돈을 받지 못하고 선거를 끝내버렸다. 그는 당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구기동 자택을 팔아 전세금을 제외한 5억원을 신한국당에 특별당비로 기부했는데, 그 집은 부인 한인옥여사가 “결혼생활 중 구기동 집을 장만했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라고 얘기할 만큼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집이었다. 이회창은 돈문제에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다.

또 그는 모든 일이 자신이 정한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는지, 일의 사소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강박적 성향을 보인다. 이회창과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는 항상 사전에 예상 질문지를 정확하게 써내야 한단다. 이회창은 예상질문지를 토대로 예상답변을 미리 만들어 완벽하게 익힌 다음에라야 인터뷰에 응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도 기자들은 이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만일 예상 질문지에 없는 질문을 하게 되면 나중에 그의 비서관들이 크게 혼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자신의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당황한다. 매사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이회창에게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이회창의 답변.

“김혜자, 고두심, 전인화 등 중견 연예인과 ‘와’의 이정현, 전지현, 핑클, 황수정, 채림, 김규리 등 여러 명이 있지만 이들 연기자 모두 특징이 있어서 어떤 연기자를 특히 좋아한다고 얘기하기가 사실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 방어 없이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정을 담뿍 드러내도 좋을 만한 질문에도 그는 비서관이 적어준 듯한 유명 연예인 리스트를 훑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치밀한 완벽주의는 정도가 지나쳐 그에게 생동감과 개인적 체취를 다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청결, 돈, 시간 등을 통제하기 위해서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에게 돈, 시간, 감정 등은 형이하학적이며, 악(惡)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제의 대상이며 없을수록 깨끗하고 완벽한 것이다.

정신적인 성숙이란 ‘본래의 자기(real self)’를 찾아 그것을 발현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본래의 자기’는 뒷전에 둔 채 지나칠 정도로 높게 설정된 ‘이상적 자기(ideal self)’를 향해서만 몰입하면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강박증이란 ‘이상적 자기’가 비대할 때 생기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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