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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2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벨금속공업 이희평 사장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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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깎이 한 개의 공장 출고 가격이 200원입니다. 아이들 군것질거리인 아이스크림 하나도 500원씩 하는 세상 아닙니까. 수출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어요.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격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죠. 결국 장비를 자동화해서 생산비를 낮추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벨금속의 손톱깎이를 그대로 모방해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팔리고 있는 중국산 싸구려 유사품이 그 원흉이다. 이들 유사품은 아예 ‘BELL’이라는 브랜드를 똑같이 달고 소비자를 현혹한다. 벨금속에서 생산하는 12개들이 손톱깎이 한 세트의 도매가격은 3.4달러. 그러나 벨 제품과 똑같은 상표를 붙인 중국산 유사품의 가격은 1.7달러에 불과하다. 정품과 유사품을 구별하기 어려운 일반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흡사 우리 소비자들이 가짜 나이키 운동화나 가짜 샤넬 지갑을 무턱대고 선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남아나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매장 진열장엔 벨금속에서 생산한 진품을 전시해놓고 그 밑에 유사제품을 숨겨놓고 파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겐 진품을 보여주고, 정작 손님들이 사갈 때는 싸구려 모조품을 내주는 수법이다.

싸구려 유사품으로 인해 분통 터지는 일을 수도 없이 당하면서 이사장도 생각해볼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해봤다.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대통령이나 장관을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천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들여가며 유사품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법원이 이 회사에 겨우 벌금 600달러(약 72만원)를 물리는 것을 보고는 맥이 탁 풀려 다시는 소송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비 자동화를 통해 유사업체들을 따돌리는 것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후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고, 검사장비 역시 모두 디지털화했다.



매출 95%가 수출

이희평 사장이 이들의 ‘저가공세’에 무작정 맞대응하지 않은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단돈 100원도 숨기지 않는 투명경영 원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고서는 단 한 개의 손톱깎이도 팔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지금껏 지켜온 경영철학이다. “그래 가지고서야 사업이 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쩔 수 있나요. 교회 장로까지 맡고 있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린다.

이러다보니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으로 부딪치면 다른 업체에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시장에서도 이 원칙을 고수하면 다른 업체들보다 10% 정도 비싸게 팔 수밖에 없어 내수시장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그 결과 매출의 95%가 수출에서 발생한다. 벨금속은 현재 연간 250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 85개국 소비자들에게 해마다 팔려나가는 손톱깎이 숫자만 해도 줄잡아 8000만개. 세계시장 점유율은 39% 수준이다. 1980년대 초반에 잠시 주춤한 것을 빼면 매출은 해마다 약 10%씩 신장하는 추세라고 한다. 물론, 이런 성장세가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시카고박람회 같은 델 가면 한국제품 전시부스는 아예 지하실에 처박혀 있곤 했어요. 1주일 내내 목이 쉬도록 제품을 홍보해도 바이어라곤 눈에 띄질 않고…. 어쩌다 들른 사람이 ‘일본 회사냐’고 물어서 ‘코리아’라고 대답하면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곤 그대로 발길을 돌렸어요. 그럴 땐 정말 힘이 쭉 빠지죠.”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였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외국인들이 한국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대기업보다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사장이 해외에서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침 이희평 사장과 인터뷰를 한 날은 한국 축구팀이 스페인을 꺾고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직후였다.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다 수출기업들에게는 돈입니다, 돈. 이제 해외 나가서 영업할 때도 월드컵이나 축구 얘기를 꺼내면 술술 통할 겁니다. ‘한국=축구’가 되는 거죠. 우리처럼 수출만 하는 기업들에게 월드컵은 단비가 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손톱깎이는 다른 생활용품과 달리 디자인이 거의 비슷하다. 동네 대중 사우나든 군부대 내무반이든 주변에 굴러다니는 손톱깎이는 다 마찬가지다. 손톱깎이의 양 날을 이루는 철판 사이에 깡통따개와 소형 칼이 하나씩 붙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손톱깎이가 말하자면 ‘대한민국 표준모델’인 셈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바로 이 대한민국 표준모델은 1970년 벨금속공업에서 실용신안특허를 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손톱깎이에 칼과 깡통따개를 붙인 디자인은 획기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특허기간이 끝나 다른 회사들도 이런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그 무렵엔 이런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은 벨금속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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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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