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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⑨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안성기

“무채색의 여백, 그게 내 장점이자 한계”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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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이 영화계로 이끌어준 셈이네요.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김 감독의 스타일이 독특해 보이던가요.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납니다만, 특이한 버릇이 있었어요. 땅 한번 내려다보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하는. 나중에 보니까 조감독이었던 분이 그걸 그대로 배우셨더라고요. (웃음) 김기영 감독님이 확실히 기인이기는 했어요. 늘 흰 고무신 신고 다니고 음식도 개장국 같은 묘한 것만 드시고. 그런 면에서는 우리 아버님이랑 굉장히 안 맞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부친은 영화제작자로 성공한 케이스였나요? 당시에는 제작자가 굉장히 부침이 심했는데요.

“성공한 작품이 하나도 없어요, 몇 작품 안 하시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세경영화사라는 회사에서 기획 일을 하셨어요. 이후에는 돌아가신 김원두 사장님 청으로 현진영화사에서 잠깐 사장을 지내기도 하셨고요. 그 뒤에는 일을 안 하셨죠. 제가 아들 3형제 중 둘째인데, 어머니는 제가 나중에 영화를 한다니까 많이 말리셨어요. 아버님이 영화 제작일을 하시는 동안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를 잘 아시니까요. 그래도 아버님은 한번도 망설이신 적이 없어요. ‘또 한번 해봐야지’ 그러면서 다음 작품에 나서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인터뷰나 여러 가지 자료를 보니 안성기씨를 ‘조숙한 아이’라고 평하는 내용이 많더군요.



“진짜로 머리가 좋아 조숙했던 것은 아니고, 당시 신문에서 꼭 한문으로 ‘천재소년 안성기’라는 제목을 붙여줬어요. (웃음)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촬영현장에서 함께 생활하는 어른들이 조숙한 아이를 재미있어했거든요. 또 밤샘촬영이 계속될 때면 어른들이 잠자지 말라고 화투장을 쥐어주는데 ‘섰다’나 ‘도리짓고땡’ 같은 투전판에 끼여들면 돈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미국식으로 따지면 어린이 학대에 해당할 만한 일이죠. (웃음)

‘평범한 학창시절’은 큰 자산

어렸을 때부터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란 편이지만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요. 모르겠어요. 잘 몰랐다고 할까, 좋게 얘기하면 그런 것과는 별 상관없는 성격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인기 있다고 으스대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던 것 같고.

학교보다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싫은 부분도 있었어요.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하도 학교를 빠지니까 뭔가 좀 불안했던 거죠. 물론 다른 아이들은 저를 많이 부러워했어요. ‘야, 쟤는 공부도 안 하고 너무 좋겠다’ 그러면서. 중학교 때는 모두 빡빡머리였는데 나만 머리를 기르기도 했죠. 점심시간만 되면 학생부 선생님이 달려와서 머리 끝을 잡고 혼을 내셨어요. 나는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충무로 분위기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 무렵 영화사 제작부장들은 전부 주먹 출신이었어요. 그러니 배우들 때문에 서로 힘겨루기를 많이 했죠. 배우들 스케줄이 워낙 빠듯하니까. 요즘에야 남녀 배우 한 명씩에 나머지 조연, 이렇게 해서 영화 하나를 만들지만, 그때는 작품 하나에 황해 선생님, 장동희 선생님, 김진규 선생님, 거기다 신성일 선배, 윤일봉 선배까지 굴비두릅처럼 줄줄이 출연했어요. 여자들도 주연부터 조연, 단역까지 한 묶음으로 다녔고요. 그러다 보니 힘이 좋은 제작부장은 스케줄을 잘 뽑는 거예요. 별일이 많았죠, 현장에서 납치도 하고.

배우마다 서너 편은 겹치기로 출연하던 때잖아요. 그러니 한 사람만 없으면 촬영을 못하고 전부 기다리는 거예요. 선후배 관계가 매우 엄해서 후배가 늦으면 마구 혼도 내고. (웃음) ‘어부들’이라는 영화를 찍을 땐데, 강대진 감독님이 속초로 지방촬영을 가서는 배우들을 두 달 동안이나 올려보내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촬영을 하다 만 영화사들이 난리가 났죠. 하루는 그 중 한 회사 제작부장이 속초에 내려와서 ‘어부들’ 제작부장을 만나서는 상 위에 느닷없이 칼을 딱 꽂더라고요. ‘나 죽여. 어차피 쟤 못 데리고 가면 나는 죽은 목숨이야.’ 그래서 저는 그날 바로 서울로 끌려 올라왔잖아요. (웃음) 그런 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늘 그런 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으니 그저 순진한 애일 수가 없었던 거죠. 근본은 안 그랬지만 그저 어른들 흉내내고 말투 따라하면 다들 좋아하니까 일부러 더 그랬을 거예요. 어렸을 때 지방촬영 가면 어른들은 다 술 마시러 나가고 여관방에 나 혼자 남아 있던 기억이 많이 나요.”

-아역 배우가 훌륭한 성인 연기자가 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일 텐데요, 이를 위해 필수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경우에는 10년 남짓한 공백이 있었던 것이 굉장히 좋았어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 다시 일상의 감정을 갖고 사람들이 흔히 마주하는 인생의 계단을 밟으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죠. 정상적인 생활을 해봐야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되니까요. 배우의 몸짓이나 눈빛에 그런 경험이 모두 담기게 된다고 봐요. 아역 배우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연기를 계속하면 상당히 힘들죠. 관객들도 배우가 나이 드는 걸 인정해주지 않아요, 항상 아이처럼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본인은 굉장히 부대끼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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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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