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당에 복귀한 이강철 전 특보.
1월6일 오전 9시, 열린우리당 중앙당 당의장실에서 열린 첫 번째 임시집행위원회에 참석한 이강철 집행위원의 인사말이다. 이 위원이 당 공식회의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4년 4·15총선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그해 5월 국민참여운동본부(본부장 이강철)가 해체된 후 처음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를 둘러싼 ‘루머’가 그치지 않았다. 물론 미확인 소식통의 말을 근거로 한 것들이었다. 가장 흔한 것이 인사설. 국정원 차장, 청와대 인사수석 또는 정무수석, 주택공사 사장,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 위원이 참여정부에서 뭔가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런 인사설을 부추긴 면이 강하다.
이 위원의 정치 재기와 관련해서는 공주·연기 재보궐선거 출마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 그동안 이 위원이 닦아온 대구·경북지역을 떠날 명분이 미약하지만, 공주·연기는 행정수도가 들어서는 상징성이 있기에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는 것.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물거품이 되자 이 같은 소문도 하루아침에 사그라졌다.
이 위원이 각종 이권이나 인사에 개입하는 등 ‘참여정부의 권노갑’이라는 악성 소문이 나돌아 일부 언론에서 이를 추적한 경우도 있다. 혹자는 그를 ‘무관의 제왕’이라 칭한다. 최고 권력자인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기에 흘러나오는 이야기일 공산이 크다.
이 위원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측근에 따르면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낸 게 사실인 듯하다. 그는 지난 총선이 끝난 후 골프를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이 위원은 골프에 푹 빠져서 지냈다고 한다. 매일 보는 것이 골프 TV채널이고, 시간만 나면 연습장과 필드를 누볐다는 것. 불과 6개월 만에 90타대를 칠 실력이라니 어느 정도로 빠져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강도 꼼꼼히 챙겼다. 이 위원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오랜 감방생활을 하는 동안 치아가 크게 상했다. “독방에 감금돼 있을 때 분을 이기지 못해 이를 갈면서 상한 것으로 안다”는 것이 한 측근의 설명이다. 그 때문에 틀니를 끼고 지내야 했던 그는 지난해 치아 수술을 받았다. 틀니를 빼고 그 자리에 인공 치아를 심은 것. 또 고질이던 치질 수술도 받았다. 여기저기 ‘고장’난 신체부위를 깔끔히 ‘수리’한 셈이다.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위해 몸을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라는 게 보통사람의 체력으로는 쉽게 소화할 수 없다. 특히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이래저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골프도 정치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선 대화와 협상을 위해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스포츠다. 골프도 배우고 몸도 만들었으니 이제 어딘가에 활용할 차례다.
당에 공식적으로 복귀하면서 그의 행보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4월 전당대회에 당의장으로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부터 전당대회 직후 청와대 입성설까지 다양하다. 대구·경북지역 당원들은 이 위원에게 당의장 출마를 적극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은 “요즘 대구·경북지역의 민심이 너무 나쁘다. 그런데도 당은 각 계파별 당권경쟁에만 열을 올리면서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대구·경북지역에선 이 특보(위원)가 뭔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노 대통령과 이 특보도 적절한 자리와 역할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의 말대로라면 4월 전당대회까지 집행위원으로 당을 정상화시키는 것 이외에 아직까지 별다른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한 측근은 “노 대통령과 이 특보가 부산과 대구의 지방자치연구소를 각각 이끌던 1994~95년 무렵 함께 영국을 방문해 정치제도를 연구하면서 국내의 공천제도와 정당운용문제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적이 있다”며 “이 특보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그런 것 아니겠냐”고 했다.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회 회의는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열리고, 그 사이에 ‘비전 2005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회의가 빈 요일을 채운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회의가 열리는 셈이다. 이 위원은 되도록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당원협의회 분쟁심의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