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돌아온 장고’, 이강철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

“내가 만든 당, 바닥부터 챙겨 4월 전당대회서 확 바꾼다”

  •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5-01-24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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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 이강철에겐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회 집행위원’보다 ‘전 노무현 대통령후보 조직특보’가 더 잘 어울린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여전히 그를 ‘이 특보’ 또는 ‘왕특보’라고 부른다.
    • 그에게 실리는 무게가 당이 아닌 청와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8개월 만에 당에 복귀한 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돌아온 장고’, 이강철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당에 복귀한 이강철 전 특보.

    “우리당을창당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로 이번에 저를 집행위원으로 뽑아준 것 같습니다. 지도부가 공백상태고 당이 어려워 조그만 힘이 되고자 왔습니다.”

    1월6일 오전 9시, 열린우리당 중앙당 당의장실에서 열린 첫 번째 임시집행위원회에 참석한 이강철 집행위원의 인사말이다. 이 위원이 당 공식회의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4년 4·15총선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그해 5월 국민참여운동본부(본부장 이강철)가 해체된 후 처음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를 둘러싼 ‘루머’가 그치지 않았다. 물론 미확인 소식통의 말을 근거로 한 것들이었다. 가장 흔한 것이 인사설. 국정원 차장, 청와대 인사수석 또는 정무수석, 주택공사 사장,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 위원이 참여정부에서 뭔가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런 인사설을 부추긴 면이 강하다.

    이 위원의 정치 재기와 관련해서는 공주·연기 재보궐선거 출마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 그동안 이 위원이 닦아온 대구·경북지역을 떠날 명분이 미약하지만, 공주·연기는 행정수도가 들어서는 상징성이 있기에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는 것.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물거품이 되자 이 같은 소문도 하루아침에 사그라졌다.

    이 위원이 각종 이권이나 인사에 개입하는 등 ‘참여정부의 권노갑’이라는 악성 소문이 나돌아 일부 언론에서 이를 추적한 경우도 있다. 혹자는 그를 ‘무관의 제왕’이라 칭한다. 최고 권력자인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기에 흘러나오는 이야기일 공산이 크다.



    이 위원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측근에 따르면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낸 게 사실인 듯하다. 그는 지난 총선이 끝난 후 골프를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이 위원은 골프에 푹 빠져서 지냈다고 한다. 매일 보는 것이 골프 TV채널이고, 시간만 나면 연습장과 필드를 누볐다는 것. 불과 6개월 만에 90타대를 칠 실력이라니 어느 정도로 빠져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강도 꼼꼼히 챙겼다. 이 위원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오랜 감방생활을 하는 동안 치아가 크게 상했다. “독방에 감금돼 있을 때 분을 이기지 못해 이를 갈면서 상한 것으로 안다”는 것이 한 측근의 설명이다. 그 때문에 틀니를 끼고 지내야 했던 그는 지난해 치아 수술을 받았다. 틀니를 빼고 그 자리에 인공 치아를 심은 것. 또 고질이던 치질 수술도 받았다. 여기저기 ‘고장’난 신체부위를 깔끔히 ‘수리’한 셈이다.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위해 몸을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라는 게 보통사람의 체력으로는 쉽게 소화할 수 없다. 특히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이래저래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골프도 정치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선 대화와 협상을 위해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스포츠다. 골프도 배우고 몸도 만들었으니 이제 어딘가에 활용할 차례다.

    당에 공식적으로 복귀하면서 그의 행보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4월 전당대회에 당의장으로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부터 전당대회 직후 청와대 입성설까지 다양하다. 대구·경북지역 당원들은 이 위원에게 당의장 출마를 적극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은 “요즘 대구·경북지역의 민심이 너무 나쁘다. 그런데도 당은 각 계파별 당권경쟁에만 열을 올리면서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대구·경북지역에선 이 특보(위원)가 뭔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노 대통령과 이 특보도 적절한 자리와 역할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의 말대로라면 4월 전당대회까지 집행위원으로 당을 정상화시키는 것 이외에 아직까지 별다른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한 측근은 “노 대통령과 이 특보가 부산과 대구의 지방자치연구소를 각각 이끌던 1994~95년 무렵 함께 영국을 방문해 정치제도를 연구하면서 국내의 공천제도와 정당운용문제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적이 있다”며 “이 특보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그런 것 아니겠냐”고 했다.

    열린우리당 임시집행위원회 회의는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열리고, 그 사이에 ‘비전 2005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회의가 빈 요일을 채운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회의가 열리는 셈이다. 이 위원은 되도록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당원협의회 분쟁심의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이 위원은 비상상황에 빠진 당을 위해 과연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까. ‘신동아’는 이 위원에게 몇 차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극구 사양했다. 4월2일 전당대회 전까지는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위원은 1월11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만난 기자에게 자신이 구상한 밑그림의 얼개를 짤막히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동안 당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아닙니까.

    “대통령 측근이라는 굴레 때문에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해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사실 내가 만든 당입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엉망입디다.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요.”

    -가장 시급한 당내 현안이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요. 당헌당규도 그렇고, 진성당원 문제도 그렇고. 4월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이전까지 정리해야죠. 당헌당규는 전당대회에서만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

    -당 정상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일단 당을 바닥에서부터 맨 위까지 총체적으로 진단해볼 생각입니다. 초선 의원부터 최고참 의원까지 일대일로 만나서 무엇이 문제고, 무슨 불만을 갖고 있는지, 본인들이 생각하는 해결방안은 뭔지 확인해볼 참입니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고,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해서 통과되면 해보겠다는 겁니다.”

    -당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습니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당 지도부에서 결정된 것을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요. 민주주의라는 게 서로 의견이 다르면 토론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요.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요즘 의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뻑 하면 김병준 정책실장(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게 전화해서 항의를 해요. 요즘 김 실장이 (청와대) 창구역할을 하거든요. 그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더군요. 그게 문제죠. 특히 젊은 의원들이 심해요. 지나치게 이상만을 쫓으려 하는데,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되죠.”

    -김 실장과는 자주 만납니까.

    “동향 출신이라 오래 전부터 친했어요. 가끔 식사나 같이하는 정도죠 뭐.”

    -4월 전당대회에서 당 의장에 출마할 생각은 정말 없습니까.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자꾸 출마하라고 하는데 그게 내 맘대로 됩니까. 청와대가 시켜야 하는 것이지.”

    -이 특보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던데 들은 게 있습니까.

    “무슨 문건을 직접 보지는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죠. 참 기막힌 ‘소설’이 많더라고요.”

    -직접 나서서 해명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 측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러려니 해야지 어떻게 일일이 신경을 씁니까.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나오면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에 폐가 되지 득 될 건 없어요. 괜한 억측에 기름만 붓는 꼴이니까요.”

    -그동안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측에서 청와대에 들어와 도와달라는 연락은 없었나요.

    “일단 당이 급하니까요. 그리고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노 대통령인데, 청와대 안에서 누가 나를 추천하겠습니까. 노 대통령이 나중에 필요할 때가 되면 부르시겠죠.”

    -원내 진출을 위해 오는 4월 다른 지역 재보궐선거에 출마를 고려해본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전반적으로 경제가 많이 힘든데, 특히 대구·경북지역이 힘듭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큽니다.”

    이 위원은 “아직은 특별히 이야기할 게 없어요. 4월2일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에 봅시다”라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날 같은 건물에서 치러진 대구 모 일간지 신년하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의 그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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