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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⑭

역사서 전문 문필가 이덕일

서기묵향(書氣墨香) 밴 광야에 자유롭게 갇혀 쓰다

  •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역사서 전문 문필가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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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첫 책을 낸 후 8년 동안 27권의 역사서를 저술했다. 하루에 원고지 10매씩은 꼬박꼬박 써내려간 것이다. 우리 역사를 축소해 바라보는 실증주의 사관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덕일 선생은 “인조반정은 잘못된 쿠데타이고, 이후 집권한 노론 세력이 나라를 망친 주범이며 친일파로 이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는 그의 손가락은 한순간도 컴퓨터 키보드
  • 위를 떠나지 않는다.
역사서 전문 문필가 이덕일

부드럽고 수더분한 인상이지만 기존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할 때는 날카롭고 매섭다.

문필가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다. 흔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 연조를 따져 보면 매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논어’의 ‘위령공편’을 만난다. ‘학야녹재기중(學也祿在其中)’이라는 대목으로 ‘공부를 하면 녹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특별하게 먹고 살 궁리를 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먹을 것이 따라온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하면 벼슬뿐만 아니라 녹봉도 같이 따라왔기에, ‘학야녹재기중’은 전적으로 옳은 가르침이었다. 어디 녹봉뿐이었나, 잘만하면 권력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요즘은 학문을 많이 했다고 자연스럽게 녹이 들어오는 시대가 아니다. 박사학위를 따봤자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문한다는 것은 연못 밖 맨땅에 내튕겨진 붕어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문필가는 다르다. 연못 밖의 맨땅에 나와서도 먹고 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가(家)’자가 붙는 또 다른 직업인 소설가도 범(汎)문필업에 속한다. 하지만 문필가와 소설가는 다르다. 한국의 소설가들은 ‘신춘문예’라는 일종의 ‘문예고시(文藝考試)’를 통과한 사람들이라서, 소설가라는 직함에는 어느 정도의 아우라가 따라다니고 사회적인 대접도 깔려 있다. 신문사도 소설가에겐 언제든지 문화면에 기본적인 지면을 할애해 준다. 작가협회도 있다. 하지만 문필가는 그런 것도 없다. 소설가는 창작을 하는 예술가지만, 문필가는 사실과 기록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추구하는 지향점도 약간 다르다. 한마디로 문필가는 소설가보다 외롭다.

‘학야녹재기중’과 ‘1인 기업가’

문필가라는 직업이 내포한 또 하나의 면은 ‘1인 기업가’라는 관점이다. 그 자신도 문필업으로 먹고 사는 공병호 박사가 몇 년 전 ‘1인 기업가로 홀로서기’라는 책을 내면서 한 말이다. 그렇다. 문필가는 철저히 1인 기업가다. 조직도 없고 상사도 없고 울타리도 없고 출근부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외로운 만큼 자유롭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 아니던가. 침 잘 놓는 침쟁이가 오직 침 한 통만 들고 천하를 표주(漂周)하듯, 사진작가가 카메라 한 대 둘러메고 명산대천을 방랑하듯, 사주쟁이가 만세력 한 권 달랑 보따리에 넣고 세상을 굴러다니듯, 문필가는 펜 하나 달랑 둘러메고 화택(火宅)과 같은 사바세계의 생업전선을 통과한다. 펜 하나 달랑 둘러메면 굶어 죽지 않는 직업. 명예퇴직도 없고 정리해고도 없다. 따지고 보면 이만한 직업도 없다. 문필가는 ‘학야녹재기중’과 ‘1인 기업가’의 두 가지 면이 결합된 직업이다. 이 두 가지 조건에 충실한 문필가 중 하나가 천고(遷固) 이덕일(李德一·44) 선생이다.

글을 쓸 관상과 사주

그의 집필실은 서울 수유리에 있다. 25평 남짓한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가자 방마다 역사 분야에 관한 책들이 촘촘하게 꽂혀 있다. 어림잡아도 4000∼5000권은 될 것 같다. 집은 비록 허름하지만, 그 내부에는 고금을 관통하는 서적들이 빽빽하다. 권력자의 집에 가보면 냉기가 감돌고, 부잣집에 들어가 보면 윤기가 감돌고, 학자의 집에 가보면 서기묵향(書氣墨香)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의 집필실에는 서기묵향이 충만해 있다.

첫인상은 수더분하고 부드럽다. 충청도 사람이라 그런지 말씨가 느리다. 말씨가 느리면 사람이 원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관상을 보니까 얼굴에 비해서 입이 작다. 입이 작은 사람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말수가 적어지면 글은 많아지게 마련이다. 마치 모래시계와 같아서 말로 뱉어버리는 게 많으면 글은 반대로 적어진다. 그래서 자고로 문장가 치고 웅변가는 없고 눌변이 많은 법이다.

이덕일 선생도 그런 스타일이다. 대체로 상명불이(相命不二), 즉 관상과 사주는 둘이 아니라 했다. 관상에는 사주가 따라붙는다. 고수들은 그 사람의 관상을 보면 사주가 짐작되고, 사주를 보면 관상이 짐작된다고 한다.

명함을 받으면서 생년월시를 물어보니 신축(辛丑)년, 정유(丁酉)월, 계유(癸酉)일, 을묘(乙卯)시가 나온다. 태어난 날이 계유(癸酉)일이다. 계(癸)는 조용하게 내리는 가랑비다. 소리가 별로 나지 않는다. 부지런해서,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는다. 짐작건대 원고 마감을 넘기는 스타일이 아닐 것이다.

계(癸) 일간(日干)은 일명 ‘용각산 사주’다. 용각산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생기면 절대 소문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사주는 가을의 물이라서, 물을 어느 정도 빼내야 한다. 그러려면 수생목(水生木)으로 목이 필요한데, 태어난 시가 을묘(乙卯)시로 목에 해당하는 시간대다. 더군다나 묘(卯)는 문창성(文昌星)이다. 문장이 빛난다는 별 아닌가. 자기를 표현하는 식신(食神)이 문창성과 겹쳐 있으면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날리는 법인데, 이 선생의 팔자가 바로 이런 사주다. 마치 누에고치가 똥구멍으로 실을 뽑아내듯이 문장을 뽑아내는 명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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