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汎여권 투톱’?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

“나라 바로잡고 싶은 욕망… 왜 없겠습니까”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5-07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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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사원 출신’ ‘깨끗한 CEO’…이명박 대항마 적격?
    • 기업·정치 ‘경계인’으로 흥행 불쏘시개 역할?
    • “대선후보? ‘서울 사람’이라 정치적 연고도 없고…”
    • “3不정책 고수”…정운찬과 이념지형 차이
    • “양극화 사회, 꼭 바로잡고 싶다”
    • “대운하는 근시안적 기획물, ‘국내용’ 사고 버려야”
    ‘汎여권 투톱’?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
    대통령선거는 20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 구도는 크게 변한 게 없다. 한나라당에서는 여전히 이명박-박근혜라는 강력한 ‘투톱’이 고공비행 중이다. 범(汎)여권에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옹립을 놓고 이런저런 의견이 예전보다 좀더 활발히 나돌지만, 선거구도가 가시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한명숙 전 총리가 가세했으나, 지지율 1% 안팎의 군소후보군 외연이 확대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찾기 어렵다.

    “정운찬말고는 없을까?” “원점에서 다시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투톱을 번갈아 세워야 모양새라도 맞을 텐데”….

    국회의원, 혹은 4, 5급 보좌관에서 1년여 뒤 단순 ‘정당인’으로 신분이 바뀔까 노심초사하는 여의도 의원회관의 범여권 인사들이 요즘 심심찮게 건네는 말들이다. 정 전 총장의 지지도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자 진작부터 이름은 올라 있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오픈 프라이머리 영입 후보군도 거명된다. 최근 들어 대외활동 빈도가 높아진 문국현(文國現·58) 유한킴벌리 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문 사장에 대한 여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하나는 이른바 ‘정운찬 트랙’으로, 정 전 총장처럼 각고의 고민이라는 모양새 갖추기 끝에 결국은 정치권 합류를 기정사실화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 전 총장이 학계에서 더 올라갈 곳이 없으니 결국은 정계로 시선을 돌리듯, 12년 동안 우량기업 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 기업인으로서 ‘할 것 다 해본’ 문 사장 역시 정치권력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논리다.

    ‘문국현 조기 옹립론자’들은 현재 지지율 수위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의식한다면 여기에 맞불을 놓을 최적의 대항마가 문국현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두 사람 다 ‘평사원 출신 최고경영자 등극 케이스’이지만 문 사장 쪽이 윤리, 환경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개발시대 돈키호테형’ 대 ‘미래시대 청렴형’ 대결로 구도를 전환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구상이다.



    또 다른 시각은, 문 사장 본인은 여건상 출마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범여권 세력결집을 위한 ‘불쏘시개’ 노릇은 수행하리라는 것이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중반전까지는 완주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면서 경쟁상대를 교란하지만, 사실은 뒤에 있는 우리 편 선수가 막판에 치고나오도록 돕는다는 시나리오다. 그 때까지는 ‘기업인 같기도, 정치인 같기도 한 경계인’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길 바라는 시선이 많다. 그렇다면 문 사장 본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 사장은 평일엔 스케줄이 빈틈없이 짜여 있어 주말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한 일요일에도 그는 연신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휴대전화 시계 표시창을 훔쳐봤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글로벌 이슈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현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프리젠테이션’ 솜씨만 보면 당장 대선후보 TV토론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예민한 질문에 대해 적절하게 양비양시론을 구사하며 피해가는 언변은 웬만한 현역 정치인보다 유려했다.

    개성은 기회의 땅

    첫 질문은 한미 FTA 타결을 보는 그의 시각에 대해서였다. 현재 유한킴벌리 사장이자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총괄사장을 맡고 있는 ‘세계적 CEO’이지만, 그는 여태껏 한미 FTA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

    ▼ 그간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몇 차례 하셨죠.

    “이미 미국을 포함해 아세안 지역, 일본과 기본합의가 끝난 상태이고 중국과의 협상도 속도를 붙이고 있습니다. 유럽,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인도, 그리고 중동지역과도 협상계획이 있죠. 거의 모든 대형 경제권과 FTA를 준비 중이면서 미국과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타결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면 안 됩니다. 한미 FTA로 인해 미국 시장에서 몇 년 동안 관세인하 혜택 본다고 해봤자 일본, 중국 등도 미국과 FTA 타결하면 곧 별 차이가 없어질 거고요. 또 그 몇 년 사이에 우리 제품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제조업에서 중국과 우리 상품의 가격차이가 23% 정도 납니다. 우리 제품 가격이 4~5% 싸진다고 해서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거죠. 우리에겐 지금 중소기업 종사자 2000만명의 경쟁력 강화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 시장개방을 어떻게 연착륙시켜 대응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FTA에서 보다 관심을 두는 것은 ‘하는 건 하되 내부적 동의과정을 잘 거쳤는지, 조건은 좋은지’ 하는 부분입니다. 농업이나 일부 산업에 대한 피해를 어떻게 보전하고 어떤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 협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 아닙니까.”

    ▼ 개성공단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번 협상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개성공단 처리 문제를 당초보다 유리하게 이끌어낸 점입니다. 일단 개성에서 생산하는 것도 한국 원산지 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검토하자는 게 합의정신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미래전략이 뭡니까. 아시아 세력과 태평양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개방형 통상국가로 가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남북한과 미·일·러·중이 새로운 경제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데 있어 개성공단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지금 중국 노동자 임금은 한국의 5분의 1까지 따라왔습니다. 7, 8년 전에는 10분의 1 수준이었죠. 그러면서 중국에 진출한 4만1000개 한국 기업이 푸대접을 받고 있어요. 교묘하게 세금도 올리고 하면서 대우는 예전만 못한 상황이죠. 반면 중국 현지 인건비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곳이 개성입니다. 이쯤 되면 말이 통하는 개성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개성공단 활성화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남북협력 강화를 함께 도모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북한이 신의주나 나진·선봉 지역에서 개성공단 같은 것을 만들려다 중국의 방해 때문에 실패한 사례가 있잖아요. 지금과 같은 6자회담 정국에서는 중국의 대(對)북한 발언권이 너무 강하다는 게 걱정입니다.

    ‘돈키호테 같은 회사’

    북한의 개방을 통해 북미, 북일 수교가 이뤄지면 아마 북한에 외국 자본이 100억달러는 들어갈 겁니다. 머지않아 북이 핵만 포기하면 남한이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해 한반도 전체의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광업권, 항만이용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걸 보고 어느 국민이 좋아하겠습니까.”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 더욱 명쾌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럼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과 북한도 결국은 손을 잡으려 하잖아요.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이뤄진 것 아닙니까.”

    ▼ 서비스 분야 개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어떻게 봅니까.

    “교육과 의료시장 개방이 빠진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우리같이 정보통신 분야가 강한 나라에서는 IT 기반을 이용해 문진(問診)을 하거나 원격 메디컬 서비스를 해주는 시장도 노려볼 만한데…. 한국의 일자리는 1만5000가지 정도로, 3만개쯤 되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절반 수준입니다. 서비스 분야의 전문화, 고급화된 직업을 더 창출해야 합니다. 개방형 통상국가에서 서비스 역량이 미미하면,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어요. 몇 달 전 대외경제협력연구원에서 한미 FTA가 타결되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7.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던데, 그게 결국은 서비스시장 개방을 전제로 추산한 수치였거든요.”

    ▼ 유한킴벌리 CEO로서는 향후 FTA 효과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생활위생·건강용품을 취급하는 세계 여러 기업이 그간 P·G를 위시한 매머드 기업에 시장의 패권을 내준 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 70%대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P·G가 어떤 회사입니까. 시가총액 9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보다 큰 기업입니다. 우리처럼 압도적으로 세계적 경쟁자들을 누른 산업분야는 유례를 찾기 힘들 겁니다.

    저는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부터는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지역본부 CEO를 겸임하게 됐죠. 지금 대만과 중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선전(善戰)하고 있어 P·G가 깜짝 놀랐습니다. 곧 국내, 해외를 통틀어 약 4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전망인데, 이렇게 될 경우 은행, 보험 등 특수기업군을 제외하고 유통이나 일반 대기업체만 놓고 보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듯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마당에 중국과 FTA가 타결되면 우리는 아마 날개를 달게 될 거예요. 지금 관세를 물고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1위를 하고 있거든요.”

    노사 문제보다 큰 이슈 많아

    ‘汎여권 투톱’?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

    문국현 사장은 현 정부 초기에 대통령자문 ‘사람입국 신경쟁력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 노사 문제 해결로 기업 재도약의 발판을 만든 것으로 압니다.

    “1974년 유한킴벌리의 전신인 유한양행에 입사한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입사 21년 만인 1995년 사장이 됐을 땐 회사의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였죠. 외국산 제품들에 계속 밀리더니 시장점유율이 18%까지 떨어졌고, 이틀이 멀다 하고 노사분규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신뢰경영, 윤리경영을 대안으로 삼았습니다. 우선 회사 내부 정보를 전산 시스템을 통해 전 직원에게 개방했습니다. 서로 잘 알게 되면 그만큼 이해의 폭도 깊어집니다. 영업사원의 실적, 회사의 부채나 영업이익, 비용 등 모든 정보를 리얼타임으로 올려서 회사의 상황을 모든 직원이 가감 없이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다음에는 회사 내외부의 부정부패 요소를 다 없앴습니다. 납품업체들의 하도급 비리를 추적해 모두 없앴고, 우리가 물건을 납품하는 유통회사에 대한 비리도 근절했어요. 아무리 대형 거래처라 해도 일절 뒷돈 주면서 물건을 납품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 1년은 매출이 줄었어요. 하지만 얼마 뒤부터는 대형 할인매장에서도 ‘유한킴벌리처럼 돈키호테같이 노는 곳은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물건을 계속 받아주더군요.

    또한 저희는 그 1년 동안 영업수단을 바꿔 그때껏 찾아가지 않던 군소 슈퍼마켓, 약국을 찾아갔어요. 워낙 저인망식으로 훑다보니 경쟁력이 세졌고, 시간이 흘러 대형 할인점과 지역 군소 슈퍼마켓에서 모두 1등을 하니까 시너지 효과도 커졌습니다. 1995년에는 매출 2000억원, 순이익 50억원이었는데 10년새 매출은 5배 성장해 1조원, 순이익은 20배 성장해 1000억원대에 이르렀습니다.”

    ▼ ‘강성 노조’ 때문에 피해가 크다는 대기업의 시각과는 좀 달라 보입니다.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아직도 노사분규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선 왜 그렇게 됐는지를 봐야 합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사측에서 빌미를 제공한 횡령사건, 배임수재도 많고 불법·편법 상속도 공공연히 자행됩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노사분규도 함께 사라진다고 봐요. 상층부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2000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협약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를 제안했습니다. 인권, 노동기준, 환경, 반부패의 4대 분야 10대 원칙을 제시하고 동참할 것을 요구했죠. 7년이 흘러 세계적으로 4000여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했지만 한국에선 최근 들어서야 20~30개 기업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왜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이 기준에 사인을 못 했을까요. 물론 100% 기업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투명경영이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려는 노력이 미흡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저는 사장이 됐을 때 34평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해외출장 때는 주로 비즈니스석을 탔고 근거리의 경우 이코노미석도 탔어요. 대신 평직원이라도 긴박한 업무를 보러 갈 때는 비즈니스석을 타도록 배려했어요. 기계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을 때도 우리는 사람을 해고하는 대신 기계를 ‘해고’했습니다. 남는 인력은 ‘예비조’에 편성해 영어나 컴퓨터 교육을 시키고 지역봉사활동에 투입되도록 했죠. 돌이켜보면 이런 작은 노력들이 직원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아요.”

    ▼ 환경관련 시민단체 10여 개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기업이나 국가경쟁력과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장기적인 국가경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야입니다. 지난해 한국이 에너지 분야에서 40조원이나 낭비를 했어요. 산업재해 분야에서도 16조원을 썼죠. 노사분규가 아무리 잦다 해도 손해액으로 환산하면 2조원이 넘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산업재해로 인한 손해 규모는 그것의 8배나 됩니다.

    큰 그림을 봐야죠.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일본의 2배가 넘습니다. 10년 전 교토협약이 체결되면서 전세계가 에너지 소비량을 5.2% 정도 줄이자고 선언했는데, 선진 8개국(G8)은 지난해까지 그 2배에 가까운 10%가량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해의 경우 전년도보다 오히려 2배가 늘었어요. 집도 커지고 자동차도 커지고…에너지 쓸 곳이 참 많죠. 산업재해도 7년 새 2배 늘었습니다.

    얼마 전 다보스 포럼에 다녀왔는데, 참석자의 55%가 경영인이 실천해야 할 첫 번째 사명으로 ‘에너지 절감’을 꼽더군요. 12.7%는 양극화 막기, 12%는 인도와 중국의 급부상에 공동 대처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경영인들과는 눈높이가 달랐어요. 투명성 조사에서도 중국이 한국보다 덜 부패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정말 빠른 변화지요. 이러니 다보스 포럼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아예 실종된 것 같았어요.”

    “모든 게 시기가 있는 법인데…”

    환경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 이슈로 넘어가게 됐다. 최근 문 사장이 공저한 환경서적 ‘지구온난화의 부메랑-황사 속에 갇힌 중국과 한국’ 출판기념회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참석한 사연이 궁금했다.

    ▼ 손학규 전 지사와 교류가 있는 모양이죠.

    “허허…. 나무도 안 심는 분이 그 자리에 왜 오셨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참석자들은 황사와 지구 온난화에 관한 얘기만 나눴고요. 손 전 지사와는 안부인사만 주고받았습니다. 손 한번 잡지 않았어요. 그 행사는 환경재단과 출판사가 주최한 것이고, 저는 단지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습니다. 제가 손 전 지사를 초대한 게 아닙니다. 유한킴벌리 사업체의 약 3분의 1이 경기도에 있습니다. 그분이 도지사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뵐 기회가 있었죠. 그분이 유한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문 사장은 말미에 “(손 전 지사와) 한때는 같은 길을 걸었는데, 또 한동안은 워낙 다른 길을 걸어서…”라며 알듯 모를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

    아직 ‘본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문 사장은 연신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친 김에 까놓고 물었다.

    ▼ 대권에 도전하실 건가요.

    그는 예기치 못한 기습에 잠시 머뭇거렸다. 얼굴도 살짝 달아올랐다.

    “그쪽(여권)은…, 그쪽엔 10명도 더 계시지 않습니까. 쟁쟁한 분들이 포진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들이 제 역할, 그러니까 아시아 경영은 못하실 거 아닙니까. 역할분담이라는 게 있고요. 피터 드러커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자기만 원해서 가는 건 바보’라고요. 사람이란 자기의 장점에 맞춰 일을 해야 하고, 또 다른 훌륭한 분들이 다 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길도 아닌데 자기만 원해서 가는 건 리더로서 실격이란 뜻이겠죠.

    그 다음에 정치적인 것은…, 국내에서는…, 제가 지역연고가 서울입니다. 아버지 고향은 원래 강원도인데 이사를 와서 100년 이상 서울에서 산 집안이죠. 서울 사람이란 건 바꿔 말하면 ‘한 군데도 정치적 연고가 없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동서로 나뉘고,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여야가 나뉘고,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영어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이런 양극화를 바로잡고 싶은 욕망이야 왜 없겠습니까.

    또한 기업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봐도 빨리 통합해서 한국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합니다.

    얼마 전 골드만삭스에서 2050년이 되면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8만1000달러로 세계 2위의 부국이 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실현하려면…, 모든 게 시기가 있는 법인데….”

    “나가라고 말할 수는 있는 거죠”

    학계에 있는 문 사장의 몇몇 지인은 이런 문 사장의 ‘지도자적 사명감’에 대해 “(출마)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다”고 조심스레 추측하기도 한다.

    여권의 러브콜도 점점 더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최근 범여권의 한 분파라 할 수 있는 민생정치모임의 최재천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문국현 사장의 정치참여를 간곡히 촉구하고 있다.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정당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달간의 ‘민심탐방투어’를 끝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 전 의장의 한 측근은 “범여권 통합 원탁회의 구성이 1차 목표인데, 손학규 전 지사와 문국현 사장이 최우선 접촉대상”이라고 했다.

    ▼ 여권 인사들로부터 오픈 프라이머리 참여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저는 기업인입니다. 여권에서 전화가 오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밖에요. 제가 35년이나 사회생활을 했으니 아는 사람도 많고, 제 또래뻘이면서 이래저래 활동 중인 친구들이 정치권에 많습니다. 그 양반들이 지나가는 말로는 그런 이야기를 더러 합니다.

    그렇지만 특정 정당에서 공식적인 제안이 온 적은 없어요. 사실 저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현재 (대권후보로) 거명되는 분들과 대충 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입니다. 박근혜 후보만 잘 모르고요.”

    ▼ 문 사장께서 정운찬 전 총장을 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정 전 총장과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다기보다는 건국세대, 동시대 인물이란 점에서 호감이 가는 편입니다. 몇 해 전 대통령자문 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의견을 구하느라 몇 번 전화통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또래(문 사장은 1949년생, 정 전 총장은 1947년생)다보니까 제 친구의 친구가 주선한 자리,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사석에서 만나 적도 있으니 그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아는 편입니다. 남들도 다 훌륭하다고 하니까 저도 그런 분한테 (대선에)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꼭 무슨 (출마)선언을 할 필요는 없지만 총장 경력에 기대거나 교수 자격으로 언론에다 좋은 말씀도 더 하고 바람도 잡고 토론도 좀 하시라, 뭐 이런 취지의 말씀은 드린 적이 있죠.”

    ▼ 정 전 총장의 이념, 정책과 생각을 같이하십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아닌 면도 있죠. 정 전 총장이 후보군 중에는 가장 프레시해 보이기는 하더군요. 공통점이라면 사회개혁을 할 의지가 있는 것, 젊은이들에게 세계시장 진출에 필요한 비전을 심어주려는 생각이 있는 것, 뭐 그런 정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정 전 총장은 ‘3불(不)정책’(대입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저는 그 대목에선 ‘지속’이 옳다고 봅니다. 지금 그런 걸로 내부에서 싸움할 시간이 없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협력체제를 갖춰야 하는 시기 아닙니까. 나라의 부패를 없애고, 개성공단을 키우고, 창조적 경영 마인드를 전파해도 시간이 모자란 판국인데요.”

    생각지도 않게 교육 이슈로 이야기가 흘러 사학법 얘기도 꺼내봤다. 문 사장은 유한학원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창업주인 유일한 선생께서 작고하시면서 제게 유한공고, 유한대학, 유한디자인스쿨을 관할하는 유한학원 운영을 맡기셨죠. 이들 학교에서 매년 3000명 정도가 사회로 배출됩니다. 사학법에 물론 장점도 있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어요. 저희 재단의 경우 예전부터 이사 9명 중 6명을 외부에서 개방 이사로 초빙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두 분의 임기가 끝나 그 자리를 내주셔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임기가 차면 무조건 학교평의회에서 다시 새 인물을 추천하게 돼 있으니까요. 이 두 분이 종교계와 벤처기업계에서 정말 청렴하고 존경받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까지 억지로 나가시게 한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우리가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건가요.”

    ‘긍정적 개혁주의’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계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 담론을 꺼내는 자리 아닙니까. 한미 FTA를 통해 지금 GDP 1조달러를 바라보는 한국이 14조, 15조달러 규모의 미국 시장으로 가는 길을 겨우 연 상태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필요한 전략과 대운하 계획 중에 어느 것이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겠습니까. 아직도 2000만명에 달하는 중소기업 종사자의 생산성이 130만명 대기업 종사자의 절반도 안 됩니다. 기업과 사회에서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도 더 늘려야 합니다. 저는 대운하 계획이 아주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은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공약으로 채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터뷰가 막바지로 향해가면서 왠지 2, 3년 전 열린우리당의 ‘순수 386’ 인사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사회가 깨끗해지면 노사 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 중소기업 육성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면 재벌도 저절로 개혁된다, 지금 북한은 한국 외에는 대안이 없으므로 잘 달래서 열심히 교류하면 우리가 동북아시대 경제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분히 이상적인 시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개혁에 대해 긍정적인 점은 여느 386 인사들과 분명히 차별화됐다. 문 사장도 지난날 ‘순수 386’들과 비슷한 궤적을 걸었을까.

    ▼ 과거에 학생운동 같은 것도 했습니까.

    “글쎄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좀 다른 방법으로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대학(한국외대 영어과) 재학시절 문학회 활동을 오래했고, 문학 관련 상도 많이 탔죠. 당시 또래들보다는 좀더 포지티브한 측면에서 사회개혁의 꿈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83년 직장에서 안식년을 얻었을 때 호주와 미국을 돌아다니다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숲 가꾸기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꽤 화제를 모았죠. 회사 근로자들에게는 평생학습운동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고요. 좀더 실질적인 측면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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