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란 전 대법관이 전수안 대법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그의 행복이 물씬 묻어난다.
▼ 소속 없이 사시는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늘 바쁘던 삶에서 놓여나셨는데 지루하지는 않으세요.
“전혀요. 굉장히 좋아요. 대법관 때는 출근해서 e메일 체크하고 나면 하루 종일 기록에 묻혀 살았습니다. 오전내 읽다가 12시30분쯤 구내식당에 가서 점심 먹고, 오후가 되면 다시 또 읽었지요. 퇴근할 때는 싸들고 집에 왔어요. 그동안 보고 싶은 책을 많이 미뤄뒀는데, 이제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아요.”
▼ 그래서인지 퇴임 때보다 훨씬 젊어 보입니다. 그때는 머리가 새하얗게 센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검어지고 붉은 기운도 도네요.
“코팅을 했거든요. 퇴임하자마자 친구들이 미장원에 끌고 가서 이렇게 해놓았어요. 고등학교 동창들인데, ‘김영란 대법관의 퇴임을 기념하며’라고 적은 케이크도 구워 와서 다 같이 파티를 했지요. 주위에서 축하를 많이 해줬습니다.”
▼ 판사 시절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매사 자기 검열을 한다고 말씀하셨죠. 코팅 펌을 하신 건 그동안 갇혀 있던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대법원 안에 있으면서 나가면 염색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대법관 된 뒤 흰머리가 많이 늘었는데, 저만 염색하는 게 불편해서 안 했거든요. 이제 자연인이 됐으니 상관없다 싶었지요. 금발로 염색하라고 한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못했어요.”
▼ 30년 만의 자유이니 판사 시절엔 상상도 못한 일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실 것 같습니다.
“일탈은 원래 고백하는 게 아니잖아요. 한들 제가 뭘 했다고 얘기하겠어요? 사실 아직은 일탈해볼 시간이 없었어요. 평생 답답하게만 살아온 것도 아니고요. 여행을 좋아해서 판사 시절 배낭 메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페인 같은 데를 호스텔에 묵으면서 돌아다니곤 했어요. 재판연구관들과 네팔 트레킹도 다녀왔고요. 전에 TV 프로그램에 안철수 교수가 나와서, 살면서 해본 최고의 일탈이 극장에 영화 보러 간 거라고 하던데, 저는 어릴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많이 봤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살던 부산 집 앞에 동시상영관이 있었거든요. 어른 치마꼬리 잡고 따라 들어가면서 뜻도 모르는 영화를 많이 봤지요. 고등학교 때 수업 빼먹고 연극 보러 간 적도 많고….”
“시험에 붙어버렸어요”
두꺼운 안경테 너머 선량한 눈 속으로 장난기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그는 어린 시절 전형적인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경기여고 시절 교내 신문반에서 문재(文才)를 떨쳤고, 남학생들과 어울려 문학 서클 활동도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교과서만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요. 그때는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경기고와 경기여고가 같이 하는 문학 서클에 들어가서 매년 발표회를 했지요.”
초등학교 때 부산시 주최 백일장에서 동시 장원을 하고, 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최고상을 받을 만큼 재능도 있었다. 철들기 전부터 ‘사상계’를 읽고, 실존주의 철학에 몰두했으며, 카프카와 토마스 만을 좋아했던 그의 소녀 시절 꿈은 독문학과에 진학해 문학평론가가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