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죽겠다”

‘일 중독’ 박원순 서울시장

  • 조성식 기자│mairso2@donga.com

    입력2011-12-20 13: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죽겠다”
    시장실이 헌책방 같다. 책장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책이 쌓여 있고 널려 있다. 번잡스러워 보이지만 그 나름 질서가 있고 무엇보다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공무원 집무실에 대한 선입관이 깨진다. 백보드 같은 게 무질서하게 놓인 바닥도 어지럽긴 마찬가지. 한쪽 벽면은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으로 메워져 있다. ‘박원순에게 바란다’라는 제목의 이 포스트잇 판에는 시민들의 요구와 희망이 빼곡히 적혀 있다. 굳이 의미를 두자면 변화의 바람이 시장실에서부터 불고 있는 것이다.

    이 방의 주인인 박원순(56) 시장은 무척 바쁘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한다. 그래서 인터뷰 일정도 어렵사리 잡았다. 언론담당 직원 3명이 배석했다.

    안철수 교수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할 때의 털북숭이 같던 구레나룻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겨선지 미끈한 얼굴이 낯설다. 마치 원시인에서 문명인으로 탈바꿈한 것 같다. 양복을 입었는데, 선명한 분홍색 넥타이가 눈길을 끈다. 부인이 골라준 것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강요하더라고요.(웃음) 저는 별로인데 (이걸 매면) 사진이 잘 나와요. 그간 넥타이를 잘 안 매고 다녀서….”

    시장이 된 후 외부 행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넥타이를 맨다고 한다.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원래 폴라티를 좋아하거든요. 며칠 안 빨아도 되니까.(웃음)”

    소셜 디자이너

    ▼ 보통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시나요?

    “아침엔 늦어도 6시 반에 일어나야 합니다. 7시에 조찬이 있으니. 거의 매일 조찬이 있어요. 시장이 되기 전에도 한국에서 가장 바쁜 10명 중 하나였으니 새로운 건 아니죠.”

    ▼ 밤에도 늦게까지 일하시나요?

    “가능하면 일찍 퇴근하려고 합니다. 공무원들을 위해서. 모임도 많고 해서 12시를 넘길 때가 많죠.”

    ▼ 서울시를 접수한 소감을 간단히 말씀하신다면?

    “접수했다는 건 언론이 갖다 붙인 표현이고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공공의 일이었어요. 이른바 소셜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한 일들이 행정에 관계됐던 거지요. 여기 와서 일하는 게 낯설지 않아요. 물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와 관련해선 많은 분과 상의해야겠지요. 예전엔 좋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면 됐는데. 그런 방식의 차이는 있지요. 그렇지만 업무 내용은 같아요. 포괄적이고도 미시적인 것을 다뤄왔기 때문에. 특히 희망제작소 시절엔 민간 싱크탱크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정책을 다뤘죠. 제대로 받아주는 데가 별로 없었지만. 성공한 데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개념을 완주와 순천에서 도입해 성공했습니다. 지금 희망제작소 직원 세 명과 완주군 공무원들이 파견돼 있어요. 공무원들이 가진 전문성, 안전성과 새로운 시대의 생산력을 결합하면 새로운 시너지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복상의 바깥 주머니에 형광펜 2자루가 꽂혀 있다. 와이셔츠에 걸쳐 입은 조끼는 단추 하나가 풀어져 있다.

    ▼ 2040세대의 지지가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세대 간 문제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관점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50~60대는 아무래도 과거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분이 많죠. 젊은 세대는 새로운 변화를 바라죠. 정치, 행정, 인물에서. 제가 내세운 정책도 변화를 반영한 거죠. 복지나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

    ▼ 취임하고 나서 공약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까. 최근 예산을 두고 시의회와 갈등도 겪는 것 같은데요.

    “수정할 필요도 있죠. 인수위원회를 거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공약을 충분히 점검하고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했지요. 여러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시의회와도 계속 논의해서 내년 초에는 좀 더 정교한 정책을 발표할 겁니다.”

    ▼ 복지에 중점을 두는 거죠? 반대하는 쪽에서는 실생활 관련된 건설 예산을 늘리려는 거고.

    “시의회 기본 역할이 견제와 감시니까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삼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도 있고. 법정기한 때문에 예산안을 취임 15일 만에 제출했거든요. 충분히 가다듬지 못한 면이 있지요. 예산 편성 과정의 줄다리기는 건강한 과정입니다. 시의회도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보편적 복지가 당론인 민주당이 잡고 있으니까요. 특별한 이견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아닌 시민이 꿈꾸는 서울

    ▼ 전임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 서울’을 내세웠는데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야말로 디자이너의 원조죠. 소셜 디자이너이기도 하고. 디자인진흥원에서 대한민국 디자인 홍보대사로 임명받았습니다. 도시 디자인은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외형적 디자인이 아니라 삶 속에서 우러나는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간 외관을 꾸미는 쪽으로 진행돼왔죠. 그러다 보면 관 주도가 되고 획일화되죠.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데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디자인 정책은 계속돼야 하지만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 박 시장께서 꿈꾸는 서울시의 모습은?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 꿈꾸는 서울이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 얘기를 많이 듣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해야죠. 과거에 대권을 꿈꾸며 무리한 행동을 하고 눈에 보이기 위한 정책을 편 자리였다면 이제는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저는 시민들이 굉장히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무너져내리는 현장을 너무 많이 봤어요. 시민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여드려야죠, 그것이 주거든 일자리든.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 토양과 조건을 만들어드리는 거죠.

    그것이 반드시 경제적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나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피폐해진 사회를 다른 사회로 바꿔야 희망이 있습니다. 경제성장 4만달러를 목표로 삼은 지 오래됐는데도 아직 2만달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정책이 잘못됐다는 거죠. 경제에 올인한다고 경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문화와 예술, 공동체, 공정한 배분, 교육 이런 분야가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경제에 올인한다고 이걸 다 무시하니 경제마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과거에 머물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임기 중 이것만은 꼭 관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있다면?

    “저는 서울시의 먼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봅니다. 100년의 미래. 예컨대 도성 사대문 안을 어떻게 꾸밀지 청사진이 충분치 않아요. 외국에 가보면 딱 느낄 수 있습니다. 런던에는 뉴 런던 아키텍처 파운데이션이 있어요. 거기선 런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이 있습니다. 베를린에 가도 구시청 별관에 그런 게 있어요. 도시가 그간 어떻게 발전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자세히 나와 있죠. 시드니, 싱가포르에도 있고. 서울은 없어요. 먼 미래의 방향이 없는 거죠. 그런 그림들이 필요합니다.

    복지는 기본입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삶도 힘들고 경제발전도 한계가 있어요. 또 복지는 일자리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내년에 복지에 8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겁니다. 현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보육과 육아를 정부가 책임져줘야 여성이 출산을 하고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이런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두고 포퓰리즘 논쟁이 이는 게 우습죠. 교육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국민의 교육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시대

    공무원들과의 소통에 대해 묻자 배석한 직원들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건 직원들에게 물어봐야지.”

    ▼ 아이디어가 많아 독단적으로 결정할 때가 많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서울시 업무가 워낙 방대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와도 혼자 다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 위키피디아로 바뀌었습니다. 대중의 집단지성이 수시로 업그레이드되고 그것이 또 진실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이나 간부들이 혼자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짜내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을 따라잡기 힘들죠. 오전에 스마트 행정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어요. 이제는 시민들이 정책 입안가가 되는 시대입니다.”

    ▼ 향후 시민운동의 진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박 시장께서 시민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것도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보는 겁니다. 이미 정부, 기업, 시민사회 간의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이 그런 겁니다. 착한 기업이 장수한다는 말도 그런 뜻이고. 시민단체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영리단체가 영리를 만들어내 공공이익에 이바지하고 있어요. 또 대기업이 사회적 공헌을 얘기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도 중요하죠. 시민사회도, 특히 복지 관련 단체나 풀뿌리 주민단체는 정부기관과 함께 호흡하며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보육시설 같은 걸 공무원이 다 할 수는 없잖습니까. 어머니들이 할 수 있죠. 학교 보안관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하는 게 훨씬 낫죠.”

    ▼ 아름다운재단은 잘되고 있나요?

    “잘된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에서 그토록 공격했는데도 2010년과 다름없이 모금했다고 합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 늘고 있다는 뜻이죠.”

    박 시장은 11월8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당선 후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대면했다. 이날 두 사람 사이에 주목할 만한 대화는 없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갔을 뿐이다.

    그는 “내게는 배석권만 있다”며 “만약 국무회의 정식 구성원이라면 매일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 닫힌 행정을 하고 있잖아요. 소통이 너무나 중요한 시대 가치인데.”

    청책(聽策)토론회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죽겠다”

    사방이 책으로 뒤덮인 시장 직무실.

    박 시장은 국가정보원과 소송을 하고 있다. 2009년 6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던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기업들을 국가정보원이 조사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게 계기였다. 국정원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박 시장 손을 들어줬다. 국정원은 1, 2심에서 모두 패했다.

    ▼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할 때는 관계가 좋았는데 왜 탄압받는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이 대통령에게 물어보셔야죠. 저야 조용히 일 잘하고 있었는데.”

    ▼ 제가 아는 법조계 인사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고 국정원에서 연락받았다고 하더군요.

    “국정원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지. 저의 모든 행동이 언론에 공개되고 아름다운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재단인데. 장부도 인터넷에 다 공개하고.”

    ▼ 강용석 의원이 열심히 공개하더군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드러났나요? 이해가 안 돼요. 이 대통령 자신도 월급을 내놓았던 곳인데. 도대체 우리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 이 대통령이 일은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왜 국민의 신뢰를 못 받을까요?

    “독단이 문제죠. 국정이라는 방대한 분야를 혼자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비판받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관료주의라는 게 윗사람이 한마디 하면 함부로 토론하거나 반박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들을 수 있는 채널을 많이 만들고 언론과 국회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있죠. 권력에서 물러나면 4대강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가 나올 겁니다.”

    ▼ 박 시장께서 이 대통령과 닮았다는 평도 있습니다. 혼자 너무 열심히 일해서 아랫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거죠.

    “그런 점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듣는 데 바쁘잖아요. 청책(聽策)토론회만 댓 번 했어요. 일반 직원들의 인사 불만이나 정책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시장만 보는 창을 운영하고 있어요. 오늘 보니 110개 더 올라왔던데.”

    ▼ 간부들이 불안해하겠네요?

    “그렇죠.(웃음) 좋은 제안이 많이 올라와요.”

    ▼ 직원들을 다 함께 끌고 가면서 일 잘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게 훌륭한 리더라고 하지요. 박 시장께서도 그런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겸허하고 겸손한 게 중요한데, 잘 안 되잖아요? 늘 경계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많은 경로를 통해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를 솔직하게 비판할 수 있는 사람들.”

    ▼ 워커홀릭이신가요?

    “이 방대한 업무를 워커홀릭이 아닌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봐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겠다

    박 시장이 신문기사 쪼가리를 들어 보였다.

    “이거 제가 오려놓은 건데, ‘조선시대 왕의 하루는 고달팠다’라는 기사입니다. 이걸 보고 제가 큰 위안을 받았어요. 새벽 5시부터 일과가 시작됐다는 겁니다. 저녁에도 강의 듣고. 세종은 새벽 두세 시에도 일어나 밀린 결재를 했다고 해요.”

    ▼ 시장 되기 전에도 일중독자 아니었던가요?

    “그렇죠. 그래서 새해에는 무조건 일주일에 하루는 일정을 비우려고 해요. 면담과 보고 없는 날. 구상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연말엔 무조건 휴가를 갈 겁니다. 휴가는 다 찾아먹자는 주의니까.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놀아야죠. 사실 노는 것도 아니지만. 재충전하고 사업 구상을 하게 되니까.”

    ▼ 성탄절에 가족과 함께하는 계획이 있나요?

    “23~24일은 서울의 가난한 동네를 둘러볼 겁니다. 25일부터 27일까지 휴가를 떠날 예정입니다.”

    여행을 떠날 예정이란다. 화제가 됐던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비판에 대해 물어봤다. 강 교수는 월간 ‘인물과 사상’ 12월호에서 “박 시장의 협찬인생은 그의 권력 향유 쟁취 방식의 핵심”이라고 공격했다.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박 시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선거과정에서 맷집이 단단해졌어요. 하도 많은 얘길 들어서.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 상당히 독하게 얘기했는데 다른 사정이 있나요?

    “알 수 없죠.”

    ▼ 안티조선운동 할 때 노선이 달랐기 때문인가요?

    “모르죠. 뭐 저 비판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인가요?”

    강 교수의 비판을 무시하겠다는 태도로 비쳤다.

    ▼ 일부에선 종합편성채널 출범할 때 축하 메시지 보낸 것도 비판하던데요.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서울시민 모두의 자리입니다. 모든 걸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개인적인 선호도와 상관없이 따라야 하는 관례도 있고. 서울시의 미래를 위해 원칙과 철학, 관점이 분명하다면 뭐든 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안 하겠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 진보를 지향하시죠? 살아온 길도 그렇고.

    “진보를 지향하기보다 그것이 정당하고 바르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온 겁니다. 하나의 잣대로 사람을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진보적일 때가 많긴 하죠. 보수적일 때도 있고.”

    ▼ 어떨 때 보수적입니까?

    “저 정도 나이가 되면 행동이 보수적이죠. 이런 옷 입는 것도 저한텐 혁명입니다.(웃음)”

    과로사가 꿈

    ▼ 가정에서도 보수적인 편인가요?

    “예전엔 그랬는데, 여성운동 관여하면서 많이 바뀌었죠.”

    ▼ 강남좌파라는 비판도 있지요?

    “그게 뭔지 잘 몰라서…. 사람들이 판단하겠죠.”

    ▼ 안철수 교수와 오랜 친분이 있죠? 안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 원칙을 가진 분입니다. 매우 겸손하고 유연한 분이고요.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오셨지요. 그것을 갖고 뽐내거나 보상을 바라는 분도 아니고요. 젊은이들이 존경할 만한 분이지요. 우리 시대에 갖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 대통령감으로는 어떤가요?

    “그건 제가 말하면…(웃음). 국민이 판단하겠죠.”

    ▼ 안 교수가 시장 하고 싶어하지 않던가요?

    “꽤 생각했던 것 같아요.”

    ▼ 박 시장께서 더 잘할 거라 생각해 양보하신 건가요?

    “그분은 그렇게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박 시장은 11월27일 안철수 교수와 만나 “신당 창당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후 안 교수는 신당 창당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죽겠다”

    시장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포스트잇.

    ▼ 언제 시장 출마를 생각하셨나요?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진 이후. 그전에는 생각한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많은 분이 오랫동안 요청하긴 했지만. 지난 지방선거 때도 나가라고 아우성이었죠. 민주당이나 시민사회에서. 그때는 제가 거절했습니다.”

    ▼ 일하다 죽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면서요?

    “아름다운가게 신년행사에서 과로사가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요즘 ‘9988234’라고 하잖아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안에 죽는 게 어르신들의 꿈이잖아요. 제 말도 일찍 죽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99세까지 살 거예요.(웃음) 롱펠로 시에 나오듯이 현장에서 살다가 현장에서 죽는 게 아름답지 않으냐는 뜻이지요.”

    ▼ 사생활은 없나요? 취미생활이나.

    “왜요? 그런데 지금은 거의 못하죠. 백두대간을 한 번 쭉 걸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몇 년에 한 번씩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해왔죠. 1998년엔 아이젠하워재단 초청으로 미국 곳곳을 두 달간 둘러봤고, 2000년엔 재팬파운데이션 초청으로 석 달간 일본을 돌아다녔습니다. 2004년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초청으로 독일에 갔다 왔죠. 그럴 때마다 책도 한 권씩 썼고. 이런 게 새로운 운동을 할 때 자양분이 됐죠. 기존의 일상과 떨어져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는 기회가 된 거죠. 그래서 제가 일했던 기관에서는 3년 되면 3개월씩 쉬게 하고, 7년을 일하면 1년의 안식년을 갖게 해줬습니다.”

    ▼ 지난번에 부인이 투표하시는 모습이 공개된 후 미모가 화제가 됐는데요. 어떤 점에 반해 결혼하셨나요? 미모에 반하셨나요?

    “조 차장님은 그렇게 보시나요?(웃음)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기까지는 뭔가 전기가 통하는 게 있지 않나요? 대구지방법원에서 시보를 할 때였어요. 동기생이 소개해줘 사귀었습니다. 그때도 내가 평생 검사로 살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지요. 보통 여자들 그런 얘기하면 도망가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이혼 안 하고 살고 있는 거죠.”

    대권 생각하면 안 된다

    ▼ 생각이 잘 통했나 보죠?

    “미래의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나는 관계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어요. 사실 반대할 만한 일도 많았는데 반대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제가 이런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거죠.”

    ▼ 검사 내던지고 시민운동 하는 남편 돕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죄를 많이 지었지요. 그래서 제가 유언장에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자고 할 염치도 없다’고 쓴 거지요.”

    박 변호사는 2002년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여기에 그의 유언장이 실려 있다.

    ▼ 연임 생각도 하십니까?

    “우선 남은 기간에 열심히 해야죠. 2년7개월이 짧은 시간이 아니니. 만약 변화가 미진하다면…. 시민들이 다시 뽑아줘야 하니까.”

    ▼ 대권에 대한 꿈은?

    “그런 것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시를 바꿀 마음으로 나라를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요?

    “권력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면 예전에 그 길로 갔겠죠. 서울시만 해도 일이 너무 많아요. 작은 시골 군수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상적인 자치단체의 모델을 보여주고 싶었죠. 하여튼 거대 도시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약속한 한 시간이 다 됐다. 그간 언론 인터뷰를 30분 이상 한 적이 없다니, 더 조를 수도 없다.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쯤에서 접을 수밖에.

    ▼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요?

    “너무 많아서 가치사전을 만들었어요. 25개 키워드를 제시했죠. 겸손이 역시 중요한 것 같아요. 자칫 교만해지기 쉽거든요. 늘 비우고 낮추고. 그래야 많은 것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소통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 얘기를 듣는 걸 제도로 만든 게 청책토론회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듣기만 하죠. 마지막 코멘트 정도만 해요. 이처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