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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유목민’ 김수영

“헬조선? 꿈을 찾아 판을 깨라”

  •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꿈꾸는 유목민’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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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꿈꾸는 유목민’이 있다. 김수영(35). 남녘 항구도시 여수에서 자랐다. 10년 넘게 세계를 누볐다. 비행소녀였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질을 밥 먹듯 했다. 칼 맞은 적도 있다. 검정고시를 거쳐 또래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실업계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KBS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렸다.
여행가, 작가, 강연가, 기업인, 콘텐츠 제작자, 작사가, 배우다. 책 네 권을 냈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드림 레시피’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214만 명이 김수영의 블로그를 찾았다. 80개국을 여행했다. 인도 ‘발리우드’에서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0년 연세대에 입학해 영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골드만삭스와 로열더치셸에서 일했다. 스물다섯 살 때 암을 앓았으나 완치됐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30만 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20만 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는 지구촌 365명의 꿈 이야기다.
2005년 꿈 목록 73개를 적었다. 1번은 한국을 뜨는 것. 목록은 현재 83개로 늘었다. 그중 68개는 달성했거나 진행 중이다.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대만 언론에서 그를 다뤘다. “꿈이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김수영은 말한다. 지금껏 겪은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꿈을 나누고 있다.
꿈 목록의 일부는 이렇다. △인생의 두 번째 3분의 1은 전 세계 돌아다니기 : 진행 중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 : 성공! △고향에 부모님 집 사드리기 : 성공! △살사 퀸으로 무대에 서기 : 성공! △재정적 자유 얻기 : 진행 중…. 사망 후를 전제로 한 꿈도 있다. ‘전 재산과 장기 기증’이다. 
김수영은 “사람의 인생 크기는 꿈의 크기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꿈 중 하나는 더 많은 사람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소녀 시절 그를 삐뚤어지게 한 것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꿈을 꾸면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고 꿈을 하나씩 이뤄갔다. 말마따나 행복은 꿈꾸는 자의 몫일 것이다. 



노마디즘 욕망

▼ 페이스북에 ‘꿈꾸는 유목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더군요. 수영 씨 인생에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 고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거, 예컨대 태어난 국가, 성별 같은 것 중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바꿀 수 없는 게 있잖아요. 국적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실제로 바꾸기도 하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고 꼭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세상에는 검은 머리칼만 있는 게 아니라 빨강 머리칼도 있고, 노랑 머리칼도 있잖아요. 다양한 색의 삶이 있는데, 꼭 한곳에 정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꿈 목록을 처음 썼을 때는 적어도 30년은 돌아다니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0년 넘게 지구촌 곳곳을 쏘다녔어요. 지금은 대한민국이 좋아요. 추운 겨울은 싫지만요.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말에는 방랑하며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면서 살겠다는 의미가 담겼죠.”  
▼ 여행하면서 실제 유목민을 만나보기도 했나요.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대륙에서 유목민의 생활을 들여다봤는데, 그분들이 그냥 막 돌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들 나름의 경험에서 축적된 아주 정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더군요.”
그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한다. 
▼ 인간의 삶에서 ‘집’이 차지하는 의미가 상당한데요. 유목민 집은 몽골의 이동식 집 ‘게르’에서 확인되듯 고정돼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동할 수 있게 설계됐어요. 꿈꾸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유목민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현대인이 유목민화하는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를 주로 이용했어요. 20㎏ 배낭에 전 재산을 담고 도시마다 한 달씩 살았습니다. 뉴욕에서 한 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달, 이런 식으로 막 돌아다녔거든요. 에어비앤비가 붐을 일으킨 것은 현대인의 노마디즘에 대한 욕망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르완다의 한국인 커피숍

노마디즘(nomadism)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지향을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 용어로 자리 잡았다.
“맨 처음 꿈 목록을 적을 때는 소유와 관련한 게 많았는데, 유목민처럼 각지를 쏘다니다보니 소유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더군요. 예전에 가진 꿈 중 하나가 요트를 갖는 거였는데,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요트를 소유한 친구들을 보니 정박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더군요. 그래서 요트 항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그때 빌려서 항해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고정된 집이 하나 있는 것도 좋지만 꼭 한곳의 집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국 겨울이 춥잖아요. 겨울철에는 동남아시아에 가서 살고 싶어요. 동남아에서는 수십만 원 월세로도 아주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거든요.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보면 선택지가 굉장히 많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 DNA에는 북방계 유목민적 특성이 70% 안팎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꿈꾸는 유목민의 위치에서 한국인의 어떤 점이 유목민적 DNA라고 봅니까.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고 감탄할 때가 아주 많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성공한 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우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와 삶을 개척했을까, 감탄이 나와요.”
▼ 태평양 조그만 섬에도….
“맞아요. 르완다에 갔는데 한국 대학생들이 거기서 커피숍을 열어 대박을 친 거예요. 한국에서는 커피 가게가 레드오션이지만, 르완다에서는 다르거든요. 대학생들이 커피숍이라는 흔한 아이템을 갖고 블루오션을 찾아 아프리카까지 찾아간 겁니다. 한국인은 생존력, 생활력이 굉장히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뜻한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독기가 없어요. 추운 나라 사람들이 독한데, 한국인은 침략을 많이 받고, 위기를 자주 겪어선지 본능적으로 생존의 길을 잘 찾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낙원을 꾸려라”

▼ 시선을 밖으로 돌려라….
“헬조선 같은 조어가 유행하잖아요. 청년들을 보면 안타까운 게, 밖으로 나가면 기회가 정말로 많아요. 외국에 나가서 뭘 한다는 게 언뜻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힘든 거나 외국에서 힘든 거나 힘들기는 똑같은 반면 기회는 바깥 세상에 더 많아요. 한국은 성숙 단계의 나라인데, 성장 단계의 국가에 가면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성장 단계인 나라가 더 이득이고요. 라오스나 베트남에 가면 예금 금리가 10%를 훌쩍 넘습니다.
요즘 아프리카가 중국인 판으로 바뀌고 있어요. 중국인의 해외 진출이 정말 장난 아니에요. 다들 아프리카로 가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또 다른 세상에 기회가 널려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선택지는 세 갈래일 겁니다. 첫째는, 떠난다. 둘째는, 바꾼다. 셋째는, 불평하면서 그냥 산다. 세 번째가 제일 안타까운 경우라고 생각해요. 능력 범위에서 상황을 바꾸든지, 그게 아니면 새로운 곳을 찾아가 나만의 낙원을 꾸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 대목에서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를 인용했다. 매슬로는 인간의 동기가 작용하는 양상을 설명하고자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를 구분했다. 매슬로에 따르면 각 욕구는 우성 계층(hierarchy of prepotency) 순으로 배열됐으며, 욕구 피라미드의 하단부에 위치한 욕구가 충족돼야만 상단부의 욕구가 나타난다.
“헬조선에 태어났다면서 다 같이 불평, 불만만 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80개국을 쏘다니면서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를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국은 자아실현을 못해서 난리인 거거든요. 자아실현 탓에 아파하는 단계라는 점은 사실 축복받은 상황인 거예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생존 자체를 두고 고민합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가보면 안전이 가장 시급한 욕구고요.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환경에서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요. 청년들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 유목민을 보면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초원에서 생활하는 덕분에 멀리 보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맞히는 집중력도 대단하고요. 유목민 DNA 덕분인지 남녀 양궁이 세계 최강이고, 여자 골프도 세계를 제패합니다. 유목민의 장점 가운데 배우고 싶은 것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유연함이요. 초원 생활 경험은 단편적인 것일 뿐이어서 현대의 유목민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게요. 현대의 유목민은 한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금리가 너무 낮다는 불만이 있으면 라오스에 가서 저축하면 돼요. 홍콩이나 동남아에 가면 저렴한 베이비시터를 구해 육아의 시름을 덜 수도 있지요. 돈은 어떻게 버느냐고요?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든 부딪쳐 일을 구해야죠. 내게 주어진 한계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어느 곳이 유리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궁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배우면서 두 달을 지냈습니다. 탱고를 배우러 아르헨티나에 온 현대적 유목민이 적지 않아요. 미국에서 IT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IT 기업을 창업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탱고를 춥니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잖아요. 미래에는 노동의 형태도 바뀔 겁니다. ‘내가 살 곳’과 ‘내 삶’을 ‘내가 선택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늘어날 거예요.”


‘디지털 노마드’의 삶

김수영은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벨리댄스에 빠져 지낸 적이 있어요. 중동과 북아프리카 문화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이태원에 아라비안 라운지를 여는 것을 구상해봤어요. 모로코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해 물담배를 피우면서 벨리댄스 공연을 보는 공간을 생각했는데요. 사업계획서도 다 썼는데, 큰돈을 대출받아 매달 고정비가 나가는 사업을 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싶었습니다. 성공하기도 어려울 테고, 혹여 성공하더라도 한군데에 묶여 있으면 지루해질 것 같아 구상을 접었습니다. 한군데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게 맞는 사람이 있지만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는 게 맞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 세컨드 잡으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재미는 정말로 없는데, 돈은 꽤 됐어요. 영국 회사의 급여는 많았지만 월세가 200만 원가량 되고 세금 등 떼가는 것도 많았어요. 서른 살까지 부모님 집을 사드리겠다는 명확한 꿈이 있었는데, 계산서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번역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 일이 너무나 하기 싫은 거예요.
번역을 내가 직접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번역 회사를 아예 차려버렸어요.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나눠주고 저는 회사 운영만 하는 것으로요. 파이가 더 커지면서 여행 다니면서도 e메일만 체크하면 되는 형태가 됐습니다. 여행을 다니게 된 것도 이 같은 발상의 전환 덕분이고요.



소녀 가장

그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일을 했는데, 일을 도와줄 사람들을 다 온라인에서 구했습니다. 온갖 언어의 번역자도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어요. 이게 5년 전 얘기예요. 지금은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가 더욱 수월해졌습니다. 컴퓨터만 있으면 되거든요. 제가 하는 일 중 강연 외 다른 활동은 세계 어디서나 할 수 있죠. 필요한 것들을 직접 소유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습니다. 널려 있는 자원을 골라 쓰면 되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블로그에 꿈 목록을 정리해 올려놓은 것을 봤습니다. 목록이 83개인데, 68개를 달성했거나 진행 중이더군요. 어떤 꿈을 이뤘을 때 가장 기뻤습니까.   
“부모님 집 사드린 게 상징적 의미가 컸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고는 하는데, 나중에 깨달은 바에 따르면 ‘분노 에너지’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에 대한 분노 에너지를 말하는 겁니다. 무의식 속에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즐겨 하신 말씀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형편을 볼 때 너는 여수 공단에 취직해 남자 잘 사귀어 결혼하는 게 팔자로는 최고라고 하셨거든요. 한계를 그렇게 정하고 사신 분들입니다. 집을 사드리고 난 후 아버지가 바뀌셨어요. 꿈이라는 게 이뤄질 수도 있는 거구나 하신 거죠. 아버지가 지금은 저의 팬입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세계 각국을 돌며 108개의 사랑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건데요. 아프리카에서 원시적이고 가부장적이면서 폭력적인 이야기를 주로 접하면서 사랑에 대해 무척 회의를 품었습니다. 그런데 우간다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접했어요.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는데, 그것을 품어주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헌신하는 아내를 봤습니다.
빈민가에 살면서 자식을 넷 둔 사람이 있었어요. 장사하고 싶은데 종자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더군요.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너무 큰돈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계속 물으니까 대답했는데 한국 돈 40만 원가량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40만 원을 드렸어요. 옷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잘됐어요. 잊을 법도 한데 지금도 연락이 옵니다. 내 꿈을 이뤘을 때만큼이나 남의 꿈을 이뤄주는 경험을 한 것도 좋았습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낸 것으로 압니다. 시쳇말로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 출신인데요. 이른바 ‘아픈 청춘’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불평, 불만할 틈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 서럽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무력하게 있을 순간이 없었습니다. 제 앞가림만 해서 되는 상황이었다면 장말로 감사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법

▼소녀 가장으로서.
“맞아요. 소녀 가장이죠. 가족이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고요. 되돌아보면 불평, 불만할 틈조차 없었기에 더 강해지고,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청년에게서 e메일을 받습니다. 돈이 없어 서럽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님한테 용돈을 많이 못 받는 현실을 괴로워하는 거였습니다. 저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그 친구 정도만 됐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군요. 현실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흙수저이기에 꿈조차 꿀 수 없는 세상이라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꿈을 현실에 맞춰 줄여 살 것인지, 현실을 개척해 꿈을 이뤄낼 것인지의 선택일 겁니다. 1년 후 호주 유학을 가고 싶은 대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봐요. 6000만 원이 드는데, 1년에 1200만 원씩 5년을 모아야 하는 큰돈입니다. 1년에 6000만 원을 벌 방법을 궁리하는 게 먼저여야 해요.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안 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뤄낼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아픈 청소년기를 극복하고 명문대에 입학했으며 세계적 기업 골드만삭스에 취업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유수의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에서 일했고요. 암을 앓아 고비를 맞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의 청년들이 다종다양한 문제로 고민, 방황, 좌절, 고통을 경험하는데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때 필요한 지혜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2005년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꿈 목록을 처음 썼어요. ‘열심히 살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열심히 산 게 죄가 아닐진대 왜 다들 나를 힘들게 할까’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한국이 저에겐 헬조선이었어요. 세상은 저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제 잣대로만 세상을 멋대로 판단하면서 괴로워했죠. 한국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한국을 뜬 거죠. 돌이켜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 마음이 헬이었던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분노 에너지가 힘이 됐습니다. 산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에베레스트와 킬리만자로에 올랐어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도전하려 했습니다. 작은 세계에서 억눌려 지낸 것에 대한 반동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축복받은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외적 도전이 내적 탐색으로 이어지더군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귀한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인간의 아주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욕망을 충족하고자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존과 안전의 문제는 해결됐거든요.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에서 자존감의 문제, 그러니까 자아실현을 두고 괴로워하는 것인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면 스스로를 토닥거려주면서 ‘나’를 충분히 사랑하는 게 해법 혹은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값진 여정을 겪은 것 같습니다.
“깨닫기까지 정말로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정보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 같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국인은 유목민적 DNA와 농경문화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전된 ‘비빔밥 문화’ 등을 발전시켜 ‘디지털 유목민’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세계 문명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꿈꾸는 유목민’과 같은 자유로운 정신, 도전 정신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꿈꾸는 유목민’이 바라는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떤 걸까요.



‘놀아본 언니’가 청년에게

“흙수저론이 상징하듯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좋아졌어요. 진입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정보와 기회가 인터넷이나 미디어의 발달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 각지의 주옥같은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돈이 많아야 과외를 받았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강의가 널렸어요. 지인이 페이스북에 웃기는 동영상 같은 것을 올려 팔로어 100만 명을 만든 후 200억 원을 투자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죠.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들어가는 전통적 방식의 성공만 생각하니 흙수저론이 나오는 겁니다. 판이 마음에 안 들면 판을 깨뜨리면 됩니다. 한국의 문제는 절대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불평등이잖아요. 미디어를 통해 보면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만 못사는 것 같은 거죠.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흔히 북유럽을 얘기하는데,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곳이나 장단점이 있거든요. 개개인이 나한테 맞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겁니다. 국가도 나한테 맞는 곳을 고를 수 있고요. 꿈 부자가 돼야 해요. 학원에 갖다 바칠 돈과 에너지로 경험이라는 공부를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래의 한국은 청년들이 각자의 로드맵으로 꿈을 찾아 나아가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미래전략연구원과 ‘신동아’가 함께 진행하는 ‘대한민국 청년열전’의 첫 순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북녘인 두만강변에서 살다 탈북해 세계가 주목하는 인권운동가가 된 이현서(35) 씨였습니다(2016년 1월호, '탈북소녀 ‘생존투쟁’ 세계인 가슴 적시다' 제하 기사 참조). 2월호의 주인공은 한반도의 남녘 항구도시 여수 출신의 꿈꾸는 유목민 수영 씨고요. 북한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탈북한 분들의 경험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북한 체제에서는 꿈을 꾸는 데 한계가 상당할 듯싶어요. 통일을 이루고 난 후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나 한국 청년이 갖지 못한 독기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된 나라에서 엄청나게 성공하는 북한 청년이 있을 거예요.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북한 청년과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 청년의 격차가 줄어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통일이 언제쯤 이뤄질까요. 제 소망 중 하나가 북한 청년의 인력 개발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 청년들이 꿈꾸는 일을 이루는 것을 돕고 싶어요. 통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가 CD 두 장을 꺼내 인터뷰어 두 명에게 선물하면서 말했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 데 왜 나만 불행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면 삶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또래의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누렸습니다. 경험한 것을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하다 생각한 게 창작입니다.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를 쓰기도 했어요. 노래도 두 곡을 작사했는데요. 직접 불러 CD로 제작한 겁니다.
하나는 제목이 ‘Fly to your dream’이고요. 다른 하나는 제목이 ‘I-YA’인데, 아이는 I(나)와 child(어린이)를 뜻합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심리학 용어로 ‘내면의 아이’를 가리키는 건데요. 내(I) 안의 어린아이(child)에게 불러주는 치유의 노래예요. 직접 만든 ‘I-YA’ 뮤직비디오 링크를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창작활동입니다.”  
잠시 후 드림아이중창단 어린이들이 부른 뮤직비디오가 카카오톡으로 배달됐다. ‘I-YA’의 가사는 이렇다.
“이제껏 토닥거려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이젠 말할게. 아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살아줘서 고마워. 널 사랑해, 나의 예쁜 아이야. 귀한 아이야, 소중한 아이야.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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