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포츠화제

윤미진의 최면법 VS 강초현의 명상법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xman@donga.com

윤미진의 최면법 VS 강초현의 명상법

2/2
사격 선수들은 정신집중을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사격장에 가보면 총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손으로만 조준과 격발 동작을 반복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이미지 트레이닝의 일종이다. 마음 속으로 사격을 생각하면서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캄캄한 밤중에 촛불 앞에서 자세를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격발 타이밍을 조절한다.

강초현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게 정신 집중의 노하우를 물었더니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원래 집중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사격을 시작하면서 매사에 자제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강초현은 유성여중 1학년때 왠지 사격이 멋져 보여서 사격부에 들었다. 그때부터 강초현을 지도해온 8촌 오빠 강재규 감독은 한사코 만류했지만, 강초현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강초현. 그는 책을 붙잡으면 밤을 새서라도 다 읽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 바람에 다음날 졸면서 훈련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격을 시작하면 집중은 기본이예요. 집중하지 않으면 사격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집중하지 않고 100발을 쏴봐야 소용없어요. 집중해서 10발 쏘는 사람을 당할 수가 없어요. 공부도 그렇잖아요. 딴 생각하면서 3시간 앉아 있는 것보다 30분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낫잖아요. 사격은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사격을 오래 하면 한번 더 생각하고 자제하는 태도가 저절로 생기는 거죠.”

기자가 강초현을 만나는 동안 유성여고 학생들이 사인 공세를 퍼부었다. 유리창에서 환호하는 후배들에게 강초현은 손을 흔들었다.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쉴새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고 사격장으로 들어섰을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생글생글 웃던 얼굴은 간데 없고 차분히 표적을 응시하는 총잡이가 그곳에 있었다.



“모든 생활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죠. 그날의 훈련 목표를 생각하고 자꾸 되뇌이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잘 안됐어요. 자꾸 연습하니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되더라구요. 집중을 해야 한다고 자꾸 마음 속으로 강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강초현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침착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저절로 차분해지고, 그 반대로 ‘활발하게 어울려야겠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운동에 열중하면서도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상태를 조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명상이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사격장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죠. 저는 워낙 산만한 성격이라서 침착해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잖아요. 노력하면 됩니다. 이건 확실해요.”

강재규 감독에 따르면 강초현의 심리상태 조절 능력은 어릴 때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강초현은 집안 어른들의 얘기를 항상 귀담아 들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작은 일에도 끝까지 몰입하는 아버지와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어머니 밑에서 강초현의 해맑은 미소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명상법을 공부에도 활용했다

강초현의 명상법은 다른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강초현은 고2때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명상법을 공부에 활용한 적이 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새벽까지 책과 씨름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였지만, 명상훈련의 효과는 충분히 보았다고 한다. 강초현은 비록 합숙 훈련에 따른 체력부담이 가중돼 공부를 포기했지만, 암기과목 시험에서는 노력한 보람을 찾았다고 한다.

“총을 쏘는 것과 책을 읽는 건 분명히 달라요. 감각적으로 다른 분야잖아요. 하지만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점에서는 같아요. 목표를 정해놓고 ‘이것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라붙는 것도 비슷하구요. 하지만 영어나 수학은 워낙 기초가 부족해서 노력해도 안 되더라구요.”

강초현은 책을 좋아한다. 소설과 자서전을 주로 읽는다. 이런 영향으로 체육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란다. 그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아버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더 열심히 훈련해야겠다는 목표를 되새겼다는 강초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언가에 몰입하는 성격을 물려받은 것이 사격 선수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연습을 통해 사격에 몰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격 선수는 정조준이 됐을 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목표물이 들어올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당겨야 돼요. 일종의 무아지경에서 쏘는 거죠. 이런 느낌은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격도 스포츠다. 그런 점에서 승부근성도 필요할 것 같다. 금메달에 대한 도전정신과 기록에 대한 욕심.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경기를 망치기 쉽다. 특히 사격처럼 정적인 운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한 강초현의 해법이 궁금해졌다.

“어느 정도까지는 승부근성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면 욕심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해요. 연습할 때나 초창기 때는 승부근성이 중요해요.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메달이나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냥 맡겨야 돼요. 그런 데 신경을 쓰다 보면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워요. 특히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생각은 금물이에요. 몸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쏘는 거예요.”

강초현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사격장에서 살았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소풍이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 누구보다도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가 숲과 맞닿은 어둠침침한 사격장에서 총만 쏘아댄 것이다.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 저는 원래 억압받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그래요. 사격이 워낙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껏 달려온 세월이 아깝잖아요. 사실 대학에 가려면 사격을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구요….”

―대학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어요?

“공부하고 싶어요. 어렵겠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강초현은 올림픽이 끝난 뒤 더 바쁜 듯했다.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3개 대학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강초현은 각종 TV 오락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연예계로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렇게 분주한 틈에 이루어진 인터뷰였지만, 강초현은 시종 차분하게 질문에 답했다. 열여덟살 여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논리정연한 말솜씨를 선보였다. 올림픽이 인생을 걸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강초현.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사격 선수로서, 내년엔 대학생으로, 그리고 미래엔 체육선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단다.

[강초현이 말하는 정신집중법]

“놀 땐 놀고 쉴 땐 쉬세요”

강초현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피곤하면 쉬고, 졸리면 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정신을 집중하면 효과가 몇배로 커진다는 것이다. 강초현은 “정신집중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며 수개월 이상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간이 나는 대로 생각에 잠긴다.

● 지난 일은 잊으려고 노력한다.

●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항상 침착하게 행동하겠다고 다짐한다.

● 일이 잘 안 돼도 ‘잘 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다.

●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 집중이 잘 되는 순간의 느낌을 자주 떠올린다.

● 집중이 잘 안 되면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 향을 피워놓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 눈을 감고 앉아서 아랫배에 공기를 모으는 기분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

2/2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xman@donga.com
목록 닫기

윤미진의 최면법 VS 강초현의 명상법

댓글 창 닫기

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