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도 사람인지라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골퍼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게 마련이다. 아주 드물게는 ‘장난’을 치는 캐디가 있다. 골퍼가 눈치 채지 못하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충북의 한 골프장 캐디는 애교 수준이라고 말한다.
“에티켓은 클럽하우스에 두고 나오고, 안 맞으면 캐디 탓으로 돌리는 골퍼가 있다. 마음까지 힘들게 하는 골퍼에게는 슬슬 ‘작업’에 들어간다. 정확한 거리를 불러주지만, 바람의 영향을 말하지 않는 식이다. 그린에서는 반 컵 정도 빠지도록 말해준다. 그러곤 정말 아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론 아주 간혹 있는 일이다. 모든 캐디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캐디를 내 편으로 만들면 라운드가 즐겁고 스코어가 좋아진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캐디를 클럽만 갖다주는 보조원이 아닌 전문직으로 대해주면 된다. 선심을 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부 캐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캐디는 대우를 받을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골프장을 대표하는 베테랑 캐디의 운영능력은 예술에 가깝다.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재치로 위기를 넘긴다. 이런 캐디에게 ‘언니’란 호칭과 뜬금없는 반말은 금기사항이다. 기계적인 서비스만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나이 들어서도 가능한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라고 한다. 노년에 골프를 즐기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경제력, 그리고 친구다. 골프에서 친구는 통상 동반자를 의미한다. 국내에선 거의 불가능하지만, 외국에선 나 홀로 골프가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서 도는 라운드는 골프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골프는 역시 어울려야 제격이다.
뛰어난 캐디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동반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유형의 동반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골프인생이 달라진다. 게임에 집착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동반자는 차선이다. 매너가 좋으면서 실력까지 준수한 동반자는 최선이다. 클럽메이커의 입지전적인 인물인 정모 대표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내 나이 일흔이 다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골프를 즐기지만, 라운드 전날 여전히 설렌다. 수십 년 골프 친구들과 라운드를 한다는 게 흥분의 주된 이유다. 친구들과의 라운드 횟수가 늘면서 타수가 줄었고, 삶의 재미도 깊어졌다. 나처럼 평생을 함께하는 골프 동반자가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골프 동반자는 인생의 친구와 똑같다.”
훌륭한 동반자의 두 가지 조건
훌륭한 동반자란 매너 좋은 골퍼와 같은 말이다. 골프는 유난히 에티켓을 따진다. 실력이 떨어지는 골퍼와는 동반해도 매너 없는 골퍼와는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기 있는 동반자는 매너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초보에게 골프 룰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른 에티켓을 세심하게 가르쳐준다. 그래야만 골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는 초보에게 스윙보다 골프 룰과 에티켓을 먼저 일러준다.
훌륭한 동반자 한 명은 열 명의 캐디 부럽지 않다. 훌륭한 동반자란 또 다른 의미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춘 골퍼를 뜻한다. 이런 동반자는 비기너나 보기 플레이어에게 뛰어난 레슨 프로가 된다. 라운드에서 굳이 팁을 주지 않더라도 게임 운용 자체가 하나의 교본이다.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을 다른 동반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상황에 따라 어떤 클럽을 선택하는지, 트러블샷은 어떻게 하는지 눈앞에서 재생한다. 훌륭한 동반자와 라운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조건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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