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민주화 시민혁명의 물결은 황량한 사막을 넘어 많은 아랍 국가로 밀려가고 있다. 32년간 예멘을 통치한 알리 살리흐 대통령은 2013년으로 끝나는 자신의 현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입헌군주국 요르단도 내각을 해산하고 정치개혁 작업에 나섰다. 알제리도 19년간 이어진 비상계엄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권력 부자 세습에 성공한 시리아도 정치개혁을 공언했다. 바레인에서도 국왕이 나서 식량 보조금과 사회보장비의 증액을 정부에 지시했다. 그럼에도 이들 나라는 물론 팔레스타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타 아랍국가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간헐적이지만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이 걸려도 이어질 혁명”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아랍인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놓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아랍 내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것만은 틀림없다.” 미 해군대학원 중동학과 로버트 스프링보그 교수는 이번 시민혁명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아랍권 전체의 정치적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앞 다퉈 민주적 조치의 이행 공약을 내거는 등 자구책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면상으로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비슷하다.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에 더 가깝다. ‘아랍판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단순한 독재타도 혁명이 아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단순한 서민혁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혁명은 신권왕정의 절대주의체제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한 ‘사상혁명’이었다.
스프링보그 교수의 말처럼 아랍의 시민혁명도 ‘사상혁명’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아랍의 세속주의 지식인들도 20세기에 수많은 계몽적, 개혁적 성향의 글을 내놓았다. 이런 노력이 현재 시민 주도 민주화 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체계는 아랍권의 중요한 전통과 아랍인의 심리구조에 자리 잡았다. 지도자가 아버지로 여겨지는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부족을 수천 년 동안 지배해왔다. 근대에 와서도 무력을 기반으로 한 쿠데타 군부세력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국민은 공화정이든 왕정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과 심리구조를 떨쳐버리고 아랍인의 마음속에 ‘자신감’을 넣어준 것이 이번 시민혁명이다.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랍권 최대의 정치·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 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