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서울의 美·日·中·러 스파이전력 총점검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입력2004-11-05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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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미국 탐정회사 핑클톤 비밀사무실
    • 영어강사·러시아 쇼걸로 변신한 미·러 스파이
    • 일본 외신기자는 일본정보당국의 최선봉
    • 여의도와 신촌의 중국식당은 중국정보기관의 안가
    • 신축 정동 러시아대사관은 최첨단 정보기지
    《1997년 7월 이전, 홍콩은 세계 최고의 정보 전쟁터였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그 무대가 이제는 대한민국 서울로 옮겨왔다. 서울이 스파이 천국이 된 것은 이들을 꾀는 미끼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은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다. 특히 북한은 외국의 스파이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미끼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일·중·러 등 세계 초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선 곳이다. 이들이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스파이를 서울로 파견한다. 3개월 뒤면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월드컵 기간중 수많은 외국인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스파이와 테러요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말이면 한국의 차기 정권을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이래저래 서울은 스파이 천국이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일·중·러 초강대국의 스파이 전력을 총점검해본다. 》



    ▲ 미국 : 기계정보에 강해


    자유기고가 겸 영어강사로 활동중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제임스 스미스’(가명)의 공식 직함은 외국어학원 영어 강사, 그는 국내 H출판사에서 한국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경력도 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의 VIP를 인터뷰하거나 고급 영어를 가르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미국에서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한 여자와 동거하며 그냥 눌러 앉았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렇게 둘러대지만, 그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과거가 있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정보부대 장교 출신이다. 그의 비밀직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의 사립탐정회사 ‘핑클턴(Pinkelton)’요원. 핑클턴은 현재 서울과 평택에 사무실을 두고 주로 미국측 고객의 주문에 따라 한국내 경제 기밀을 넘기고 있다.



    스미스씨가 근무하는 서울 양재역 외교센터 건너편의 비밀 사무실은 간판이 없다. 사무실은 밖에서 들어가는 문은 하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길쭉한 방 세 개로 나뉘어 있다. 이 방은 모두 서로 연결된다. 이 가운데 두 개는 직원 두 명이 하나씩 쓰고, 나머지 하나는 스파이장비를 보관하는 창고다. 창고에는 파라볼라 안테나가 붙어있는 원거리 도청기, 적외선 망원경, 콘크리트벽을 뚫고 내부를 볼 수 있는 자외선 투시경, 소련제 망원경 등 스파이 장비로 가득 차 있다. 스미스씨와 다른 한 명의 핑클턴 직원은 이 사무실을 공개하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 주로 외부 호텔을 이용한다.

    180cm 키에 금발 백인인 스미스씨는 양복보다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데, 최대 강점이 여성을 후리는 재주다. 이런 강점을 이용하여 그는 서울의 특급호텔 나이트클럽이나 바, 레스토랑에서 고관대작이나 재벌가의 부인이나 딸, 며느리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맺고 주요 정보를 캐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중·러 가운데 서울에 정보 역량을 가장 많이 투입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코 미국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핵과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다. 또 각종 테러와 위조지폐, 마약 등 국제 범죄와 연결된 전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는 미 지상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내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단위는 대사관의 공식조직과 ORS(Office of Regional Study:지역조사과), FBIS(해외방송청취반), DIA(미국방정보본부), 501정보부대, OSI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미공군방첩수사대) 등이다.

    이중 핵심은 ORS다. 이곳은‘CIA 한국지부’로 인원만 수십명에 이른다. ORS와 FBIS는 세종로 미대사관 내에 설치돼 있고, DIA, 501정보부대, OSI는 모두 서울 용산 미8군 영내에 있는 군사정보기관이다. 501정보부대는 주로 특수장비를 동원하여 국내의 주요 통신을 감청한다.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측 정보 활동의 기지는 용산 미8군기지다. 우선 각 정보단위의 회합 장소. 용산의 미8군기지 10번 게이트로 들어가서 왼쪽편으로 꺾으면 드래곤힐호텔이 나온다. 호텔 뒤에는 하텔하우스라는 장성전용 레스토랑이 있다. 아늑한 이 레스토랑의 별채에서는 매주 금요일, 남북한의 최고기밀이 오가는 비밀회의가 열린다. 바로 이곳이 서울에 파견된 미국의 여러 정보조직이 한주일 동안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하는 자리다. 이 연석회의를 통해 미국 정보요원들은 두 가지 보고서를 만든다. 한 가지는 미국만 보는 대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대사관, 영국대사관, 호주대사관과 돌려서 보는 대외용이다.

    이 드래곤힐호텔 옆에는 군청색의 큰 파라볼라 안테나가 걸려 있다. 이 안테나 밑에는 지하벙커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북한군의 교신내용을 감청해서 녹음하고, 이를 영어로 번역한다. 이 벙커에서는 평상시에는 북한 교신 내용을 감청하지만, 한국의 통신을 감청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미국대사관 공식조직뿐이고 미국의 여러 정보조직들은 대부분 막후에서 움직인다. 그 가운데 정치과가 가장 민감한 현안을 다루는데, 현재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정치참사관 밑에 1등서기관 세명이 ▲북한·군사문제 ▲북한·정치문제 ▲한반도 외교·통일문제로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 이 1등서기관 세 명 밑에 각각의 스태프들이 있다. 정치과는 보안 때문에 한국인 직원은 여직원 두 명만 쓰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화이트 요원(공개 정보원)과 블랙 요원(비공개 정보원)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협조자를 운영하며 인간정보(Humau Intelligence:HUMINT)를 획득하고 있다. 지난 1월 말부터 주한미국대사관은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여러가지 업무가 많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한국민들의 여론이었다. 이는 기계정보로도 잡아내지 못한다. 미국대사관이 공식적인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여론주도층을 접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론주도층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계층은 대학교수 집단이다. 이들을 대사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해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다.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정보조직과의 연관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인의 정보 수집에는 사설 탐정회사 같은 민간라인도 동원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외국어학원의 영어강사를 동원한 저인망식 여론 수렴과 정보 수집이 한 예이다.

    미국의 정보조직이 정보를 캐기 위해 기를 쓰고 있지만, 한국인이 갖다 바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VIP들이 미군 정보부대의 거점인 용산 미8군 기지 안으로 들어와서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용산의 미군부대에 차량을 타고 입장하기 위해서는 ‘데칼(Decal)’이라는 미군부대 차량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이 차량출입증이 발행된 차량의 주인은 대부분 한국 관계나 재계의 고위 간부들이다. 이들은 중요한 인사를 만날 때, 미군부대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미8군 영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이때 이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이 미8군 영내 골프 윈도(Golf Window) 옆에 있는 ‘촘스키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하는 한 정보 관계자는 “이 레스토랑에는 가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가들이 식사를 하러 온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공무원들에게 뇌물 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 한미연합사나 국방부,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의 고급 장교들도 이곳에 출입한다. 여기서 또 고급 군사정보가 오간다. 중요한 것은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모두 미군에 협조하는 정보 끄나풀이라는 사실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전부 미군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미국 정보력의 강점은 영상정보·신호정보·측정정보를 총괄한 기계정보다. 미국은 첩보위성과 전세계적인 도감청시스템 에쉴론(echelon)을 통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사항들은 다 잡아내고 있다.

    한반도에서 이를 총괄하는 곳이 바로 경기도 오산의 ‘미 제7공군’ 기지에 있는 복합정보정찰지상센터다. 이곳은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시에 있는 험프레이기지를 연결하며 전시 지휘·통제를 담당하는 종합센터다.

    오산 복합정보정찰지상센터는 비밀정보를 수집하고 한미 연합군 사령부가 중대한 지휘와 통제 지시를 내릴 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곳은 남북한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밤이건 낮이건, 궂은 날이건 갠 날이건 24시간 한반도를 감시한다.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U-2R 정찰기도 수집한 정보를 이 센터에 보낸다. 말하자면 한반도 전역이 오산 기지의 수집 권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 걸러지는 정보는 한반도 주둔 미공군과 한국 공군, 미 태평양함대가 공유한다.

    신축 정동 대사관은 이미 지난 2001년 9월30일자로 국내의 삼성물산이 뼈대와 골조 공사를 끝냈다. 이 기간에도 러시아 보안담당관은 시멘트 버무리는 것까지 옆에서 감시했다. 9월30일 이후에는 한국인 직원은 들이지 않고, 러시아 본국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공사를 하고 있는데도, 본국에서 온 보안요원 10명이 건물에 들어가는 시멘트, 돌, 철근 등 모든 자재를 일일이 검색대를 통과시킨 후 들여보내고 있다. 미국 CIA는 건축 자재공장까지 스파이를 침투시켜 재료 자체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대사관 공사 현장은 외국인 출입금지다. 통역이 필요하면 보안담당자가 곁에 붙어 데리고 들어간다. 최근 러시아대사관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직원을 북한전문가로 대거 교체한 것이다.

    지난 1월2일 부임한 미나이예프 정무참사관과 무관부의 니키프로프 참사관, 부산 총영사관의 마체고라 영사는 모두 북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북한전문가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북한에서 근무했다. 과거 러시아는 북한 근무자를 한국에 보낼 때 본국에 불렀다가 일정 기간 복무시킨 뒤에 파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전문가를 동시다발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주한러시아대사관 관계자는 “러시아는 벌써 한반도 통일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전문가를 남북한에 동시다발적으로 파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재 한반도에 관한 러시아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반도 횡단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정보요원들은 주한 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벨라루스 대사관 등 독립국가연합(CIS) 출신 정보원들과 긴밀히 정보를 교류한다. 이들은 일반 외교관들과 달리 과거 KGB 교육을 같이 받았기 때문에 끈끈한 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한강 둔치에서 축구시합을 벌이는데, 유니폼을 맞춰 입고 모두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이때의 호칭은 지금은 쓰지 않는 소련 시절 말인 ‘따바리시(동무라는 뜻)’다.

    러시아의 정보 역량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미·러간의 정보전이다. 두 나라 사이의 신경전은 현재까지 미8군이 러시아외교관에게 미군부대 차량출입증인 ‘데칼’을 공식 발급하지 않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여러 통로로 미군측 정보를 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주한 미군 클럽에서 일하는 러시아 여종업원이 의도적으로 미군장교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잦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측의 시도가 사전에 들통난 사례도 있었다. 한 흑인 미군여자하사관이 한국어 수업을 듣는데, 주한러시아대사관 무관이 같이 수업을 들으며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미국측이 러시아측에 항의하려고 하자, 러시아측에서 미리 알고 해당 무관이 귀국했다고 한다.

    이처럼 서울에서 외국 스파이들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은 어떠한가?

    이와 관련한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사람은 보안의식이 약하다. 외국의 경우는 주요 공직자가 외국공관원이나 외국인을 만나면 반드시 이를 보고하고 발언 내용을 확인받아야 한다. 이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기밀 수준에 따라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를 추진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논란이 분분할 것이다. 또 한국인의 뇌리에는 알게 모르게 외국인에게 잘보이려는 사대근성이 있어서 국가 주요기밀을 술술 내놓는 경우가 많다.”

    통상 국가는 외국의 정보활동에 대해 방어활동을 벌이는데 이는 수동적인 방법인 보안활동과 적극적인 방법인 방첩활동으로 나뉜다.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 보안이다. 사실상 보안은 정부시설물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거나 테러·방첩 활동 같은 물리적인 활동과 겹쳐 있다.

    현재 우리 정부에서 외국정보원들의 한국내 활동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대비하는 주무부서는 국가정보원이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더라도 테러에 대비하고, 외사 방첩·대북 수사·국제 범죄 및 해외정보 수집을 담당할 강력한 국가 정보수사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아 일반 국민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외국정보기관과 공작원,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국정원의 보안·방첩 활동은 곧바로 국익과 연결된다.

    국정원은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도 했지만, 이는 모두 국내 담당부서 몫이었다. 현재 국정원은 2002월드컵을 앞두고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울이 스파이 천국이고, 월드컵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떤 형태로든 대비는 필요하다.

    일본 처지에서도 한국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어간 이후 부쩍 한반도 문제에 예민해졌다. 더구나 서울은 일본의 아시아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현재 일본의 정보활동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은 내각조사실(이하 내조실)이다. 내조실은 총리가 직접 지휘하며, 총리의 외교 및 국방정책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와 분석활동을 수행한다. 이곳에서 취합 분석된 정보는 곧바로 총리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 국가정보원과는 달리 취합된 정보를 분석만 하고 발로 뛰는 요원이 없다. 즉 현장에서 올라온 정보를 분석하는 기관이다.

    내조실은 1952년 창설되었고, 1986년에 내각정보조사실로 명칭을 바꾸고 기능을 강화했다. 1986년 평가에 따르면 직원은 122명, 예산은 2500만달러로 규모가 작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인원은 300∼400명 정도이고 예산도 알려진 것보다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내조실은 수사권이나 체포권이 없다.

    조직은 총무부·국제부·국내부·경제부·자료부·내각정보집약 센터 등 6개로 구성돼 있다. 요원들은 일반공무원과 경찰, 자위대 및 행정부의 각 부처에서 파견된 겸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조실의 최고간부는 내무성 차관과 법무성 차관, 경시청장이 맡고 있는데, 내조실장은 반드시 경시청장이 맡는다.

    내조실은 인원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인사권·재정권·사업방향을 직접적으로 감독하며 통제하는 외곽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내조실의 정보활동과 관련된 외곽단체로는 국민출판협회·세계정경조사회·내외정세조사회·민주주의연구회·국제정세연구회·동남아조사회·일본해외뉴스센터 등 7개 기관이 있다.

    이들 단체들은 모두 내조실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다. 내조실과 정책협력을 하는 실질적인 외곽단체는 총 25개다. 내조실의 손발 노릇을 하는 기구가 법무성 산하의 공안조사청이다. 공안조사청은 내조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공작기관이자 수사기관으로 보면 된다.

    일본은 이밖에도 군 정보기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1997년 1월 각 군별로 분산되어 있던 전략정보수집·분석 업무를 일원화하기 위해 방위청 산하에 통합정보본부를 창설했다. 조직은 총인원 1580명으로 본부장 예하에 총무·기획·분석·영상·전파해석 등 5개 부서가 있다.

    방위청 산하에 통합정보본부를 만든 것은 내조실이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어 본격적인 국가정보기관을 만들려는 데 있었다. 방위청의 통신실(FI·別班)은 통신감청만 하는 기구인데, 세계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치른 일본의 감청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1년 12월22일 동중국해상에서 북한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 침몰 사건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은 북한 인민군의 주파수까지 도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이 통신 정보에 유리한 것은 일명 ‘코끼리 코’라고 부르는 거대한 안테나를 홋카이도 바로 밑에 있는 에히메와 오키나와, 그리고 미사와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에 내조실 공식요원을 파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대사관은 다른 대사관과 달리 직원들과 외곽 인사를 활용한 정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일본대사관에서 한국내 정치정보를 총괄하는 이는 스기야마 정치공사로 알려져 있다. 스기야마 정치공사 밑에 정치과 소속으로 참사관 3명이 역할을 나누어 그를 보좌한다. 이 가운데 야마노치 정치참사관은 위안부 문제나, 피폭자, 사할린 교포 문제 등 한·일 간의 민감한 현안을 주로 다루며, 다른 2명의 역할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본대사관은 금전력과 로비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인간정보 수집력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부서간 이기주의도 덜해서 정보 공유력이 뛰어나다. 일본대사관의 정보 수집활동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자국 언론사 기자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에는 17개사의 일본 언론사 기자가 나와 있다. 이는 서울주재외신기자클럽(SFCC)에 등록된 상주외신기자의 30% 정도로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일본 외신기자들은 기자인지 정보원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대사관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한 정보 관계자는 “일본 해외정보의 힘은 언론에서 나온다. 일본 언론은 미국과는 달리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국내에서도 절대로 기사를 쓰지 않는다. 기자들이 해외에 파견될 경우 이런 성향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일본 기자들은 해외에 파견되기 전에 아예 정보기관에서 일정 기간 행동지침을 교육받고, 해당국에 파견되면 본국 정부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긴밀히 협조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 기자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일본 기자들은 한국 관료와 인터뷰할 때 ‘오프 더 레코드’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그러나 그 내용을 기사로 쓰지는 않지만, 정보 보고를 통해 일본대사관에 올린다. 또 한국 관료들은 일본 기자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한국말을 못하는 일본 기자일 경우, 내가 통역을 맡는데, 한국 관료들이 국익에 손상이 가는 발언을 적나라하게 내뱉아 통역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린 경우도 있다.”

    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일본 기자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정부의 주요 정보가 일본측으로 흘러들어간 사례를 거론했다.

    “1998년께 일본의 한 외신이 KEDO 한국측 대표를 인터뷰했다. 이때 일본은 이행사항인 10억달러 지원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당시 경수로 시공업체로 선정된 GE의 사업안에는, 일본 부속품을 쓴다는 안이 들어 있었다. 인터뷰에서 KEDO 한국측 대표는 비보도를 전제로 이런 내용을 일본 기자에게 밝혔다. 이 내용은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고스란히 일본정부로 들어갔다. 이후 KEDO 협상에 나온 일본 대표는 현금은 안되고 10억달러에 상당하는 부속품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인터뷰한 내용으로 일본은 한국쪽의 속내와 패를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대사관과 일본 외신기자들의 정보 협조는 서울 외교가에 널리 알려진 ‘목요모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서울 주재 일본 외신기자들은, 일본대사관에서 일본 대사와 모임을 가진다. 이 모임은 일본인만 참가할 수 있고 일본 언론사에 근무하는 기자라도 한국인이면 모임에 낄 수가 없다. 이 자리에서, 주한일본대사는 북한의 움직임 같은 한반도 주요 현안과 한국내 정치권 동향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기자들도 한주일간 취재한 내용을 취합해 대사에게 ‘보고’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 목요모임에서 다루어진 정보들은 정확도와 깊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서울에서 활동중인 세계 각국의 정보요원들은 목요모임의 정보를 빼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대사관측도 논의내용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치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최근에는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이 기침소리까지 녹음되었다는 첩보가 있어 일본대사관측에서 모임 장소를, 대사관에서 100여m 떨어진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뒤에 있는 이마빌딩으로 옮기는 사례까지 있었다.

    일본 언론인과 일본 대사관의 밀착 관계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2001년 여름, 한일 간에 교과서 분쟁이 났을 때, 한국 정부는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일본대사를 외교통상부로 불러 엄중 항의했다. 그런데 텔레비전 카메라에 비친 일본대사의 표정이 주한 일본인 사이에서 문제가 됐다. 데라다 대사가 너무 굽실거리고 히죽거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일본 외신기자는 “당시 서울 주재 일본 기자 가운데 가장 고참격인 K기자가 데라다 대사에게 표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말을 들은 뒤부터 데라다 대사는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 카메라에 노출될 때, 의식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대사의 표정까지 좌우한 것이다. 데라다 대사에게 표정을 코치한 이 기자는 거의 매주 일요일 데라다 대사와 골프 회동을 가지면서 국내외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기자들이 정보 수집의 선봉이라면, 그 뒤는 일본의 상사 주재원이 잇고 있다. 상사주재원들은 한국의 증권시장에 나도는 온갖 정보를 다 모아 세밀히 분석하고 일본대사관과 본국에 보고한다.

    물론 모든 일본기자가 대사관에 협조하는 것은 아니다. 대세가 그럴 뿐 강요사항은 아니다. 일본 기자들의 ‘목요모임’에 견줄만한 일본 경제인들의 회합은 매달 둘째 주 수요일 서울시청 옆 프레스센터 8층에서 열리는 ‘서울일본인회(SJC)’다. 이는 서울에 나와 있는 일본 경제인들의 모임인데, 일본대사가 명예회장이기 때문에 대사와 대사관직원들이 참석하여 주로 경제 현안을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모든 국가는 국가안보차원에서 자국 정보기관의 조직과 활동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중국의 경우는 이 경우가 특히 심하다.

    중국 정보조직의 규모나 예산은 외부에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홍콩의 시사주간지 ‘쩡밍(爭鳴)’은 중국 부총리 조우자화(鄒家華)가 1996년 9월 ‘정보공작강화회의’에서 약 50여 개 국가, 170여 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수만 명의 중국 정보요원의 공로를 치하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 보도가 사실일 경우, 중국은 대단히 광범위한 해외 정보조직을 운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성상 정보조직도 상당히 복잡하다. 한국국방연구원 김태호 박사는 중국의 정보단위는 당(黨)·정(政)·군(軍)에 모두 존재하며, 이를 나누어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정·군 가운데 가장 입김이 센 당 정보기관은 당중앙대외연락부(중앙연락부)가 대표적이다. 중앙연락부는 당의 대외관계 주무부서로서 사회주의 국가, 전세계 공산당, 좌파 정당 및 단체와의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주임무다.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앙연락부의 위상은 외교부보다 높다. 중앙연락부는 당의 대외정보 수집을 전담하는데, 특히 북한과의 당(黨) 대 당(黨) 관계는 모두 여기서 도맡는다.

    외교부 부부장(차관) 출신인 다이빙궈(戴秉國)가 1997년 8월 이후 중앙연락부의 부장직을 맡고 있다. 다이빙궈는 2001년 4월에 서울, 2000년 9월에 평양을 방문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중국과 북한 간의 공식 교류는 과거에 견주어 상당히 줄어들었다. 특히 중국측 인사의 북한 방문이 크게 감소했는데도 중앙연락부 부부장급 인사는 거의 매년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정보기관은 중앙연락부 이외에도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가 있다. 이 조직은 대만·홍콩·마카오 및 전세계 화교단체에 대한 통일공작을 편다. 통전부 조직은 한국 내에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한국 내 화교와 대만대표부를 상대로 공작을 펴고 있다.

    다음은 국무원의 정보조직이다. 국무원 정보조직인 국가안전부(국안부: MSS)는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이다. 정식 설립목적은 “국가안전 및 반간첩 공작을 영도·관리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및 조국통일의 대업을 보위·촉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가안전부는 1983년 설립 초기에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꾸며졌다. 설립 이후 중국의 대외 접촉이 증가하고 컴퓨터, 정보통신, 위성, 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이 늘어나면서 업무 범위와 조직을 크게 늘렸다. 1990년대 말 현재 국가안전부는 17개 공작국과 10여 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되어 있다.

    국무원의 또다른 정보조직인 공공안전부(공안부: MPS)는 사회 공공치안을 담당한다. 공안부는 경찰업무 이외에 국경수비, 출입국관리, 소방 및 산불예방, 민간항공, 산아제한, 기술 정찰 등 온갖 잡다한 업무를 떠맡고 있다. 현재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의 청소부와 운전수가 만약 중국 사람이라면 공안부 소속의 정보원이라고 봐도 틀림없다.

    역시 국무원 소속인 ‘신화사(新華社NCNA)’는 언론사 기능과 정보기관 노릇을 함께 수행하는 독특한 언론사다. 현재 ‘신화사’ 서울지국에는 직원 두 명이 활동중이다. ‘신화사’는 중국의 소식을 대외에 전파하고, 외국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일반 통신사 기능 이외에도 전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 번역, 요약, 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로 보고한다.

    ‘신화사’ 서울지국의 경우 매일 아침 본사로부터 당일 확인 사항을 지시하는 팩스가 들어온다. 서울주재 기자는 본사에서 들어오는 이 팩스를 중심으로 그날 행동반경을 결정한다. ‘신화사’는 국가안전부 등 정보기관 요원이 해외로 파견될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신화사’는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신화사’ 사장은 ‘런민일보(人民日報)’ 사장과 마찬가지로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해당한다. ‘신화사’는 국내 31개 지부, 국외 107개 지국을 운영하며 고용인원도 1만명이 넘는다.

    국무원 소속의 해외조직 가운데 중국 외교부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보조직이 아니며, 중국정부의 대외공식창구로서 당 정치국과 중앙외사영도소조(中央外事領導小組)의 결정을 집행하는 외교실무조직이다.

    중국은 군 정보기관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의 정보조직은 군 총참모부에 들어있다. 군 총참모부는 작전, 기획, 정보, 훈련, 동원을 담당하는 전국 군사력의 지휘기구다. 이곳에는 총참모장 이외에 부총참모장 6명이 있는데, 이중 슝광카이(熊光楷) 상장이 군 정보조직을 책임지고 있다. 중국군의 정보 수집 업무는 총참모부 2부(정보부: 일명 군정보부), 3부(통신부), 4부(전자부)와 총정치부 연락부 등 4개 부서에서 수행한다. 이중 가장 중요한 부서는 총참모부 2부다.

    총참모부 2부는 군 정보활동의 총괄부서로 7개 활동국(공작국)과 6개 행정지원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1국은 해외정보수집과 간첩 파견업무를 맡고 있다. 1국은 베이징, 선양, 난징과 광저우에 분국(일명 연락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베이징 분국은 주중 외국대사관 무관부를 중심으로 외국인을 감시하고 대간첩 활동을 수행한다. 말하자면 베이징에 나가 있는 한국대사관의 상대역으로 우리 대사관의 중국 내 정보수집활동을 통제하고 공격한다.

    현재 주한중국대사관 무관부 직원은 모두 4명이다. 이들은 모두 군정보부인 총참모부 2부 3국에서 파견되었고, 중국인민해방군 국제관계학원에서 훈련도 같이 받았다. 서울에서 중국의 당·정·군 정보 조직 요원들이 벌이는 활동은 모두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기조와 목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국익에 어긋나는 활동도 상당수 있다.

    정보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의 정보 활동을 방어하기는 다른 국가보다 특히 어렵다고 한다. 이는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정보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중국의 대미 정보 활동이 조직적이고 현대화되기보다는 기본적인 대인 정보활동을 광범위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방첩활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한마디로 ‘인해전술’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한국 내에서의 중국의 정보 활동도 마찬가지다. 한중 수교 10년이 지났으나 중국이 서울에 파견한 공관원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공식 정보 요원도 많지 않고 정보력도 미약한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 엄청나게 늘어난 민간 교류를 활용하여 낮은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중국 정보원은 주로 언론사·항공사·합작 기업같은 주재국 내의 중국상주원으로 위장하여 활동한다. 또 직접 움직이지 않고 협조자를 이용하는데, 현지인보다는 화교를 쓴다. 공작 형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협력자는 간접 접촉을 통해 포섭한다. 대상자에게는 장기적으로 여러 형태의 특혜와 금전을 제공한다. 이같은 중국의 정보활동은 한 군사관계자의 증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느날, 서울에서 한국사람끼리 모여 중국의 첨단 군사 기술에 대해 논의했는데, 며칠 뒤 중국 출장을 가서 정확하게 그 논의 내용이 중국쪽으로 넘어간 것을 확인했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 친구가 그 내용을 말해주었는데, 내부보고서를 보니, 내 이름 석자 중 한자 하나가 틀렸더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 날 모임에 외국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 내용이 중국으로 넘어갔는지 모르겠다며 중국의 정보수집 능력을 경고했다.

    민간인을 활용한 중국의 정보수집 사례는 민간기업체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투자한 한·중 합자기업의 경우, 한국쪽 투자지분이 높을 경우 보통 사장은 한국인이 맡고, 부사장은 중국인이 맡는다. 그런데 나이 지긋한 중국인 부사장이 젊은 중국인 회사 운전사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젊은 운전사는 공산당 정보기관 요원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비당원일 경우 아무리 직책이 높더라도 당원에게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서울의 몇몇 중국식당도 우리측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가기 쉬운 곳이다. 주한중국대사관 직원들이 한국의 여러 인사들과 자주 식사를 하는 여의도 A중국식당과 신촌의 B중국식당이 그 대표적인 장소인데, 아는 사람들은 이 식당에서 기밀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공식적인 만남 이외에는 이곳에서 중요 인사를 접촉하지 않는다. 현재 이 식당들은 중국 정보원들이 안가처럼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국내는 외국보다 정보수집 활동이 더 치열하다. 중국은 민간거주 주택 뿐 아니라, 공장·학교·연구소·공공기관 등 모든 곳에 감시원이 상주하고 있다. 중국의 정보기관은 중국에 잠시 또는 오래 머무는 외국인을 24시간 감시하고 도청한다. 외국인에게 제공되는 중국 내의 숙박시설, 회의장도 무제한적으로 도청된다고 보면 된다.

    중국의 정보체계를 이해하면 한중관계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중국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중국은 1당 지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와 정보·안보 업무 책임자의 재임기간이 매우 길다.

    그래서 타국에 견주어 정책의 일관성·지속성이 매우 높다. 역으로 권한과 권력이 최상부의 소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정책과 노선이 바뀔 경우,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또 복잡한 체제와 조직에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당·정·군의 의견을 수렴하는 ‘계통(系統)’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정보 계통은 한국으로서도 본받을 점이 많다. 한국의 외교당국과 정보당국은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고 전문가를 정권의 향방에 따라 자주 교체한다. 관련 부처 사이에는 전혀 업무 협조가 안되고, 자문기구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주한중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측 파트너가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누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를 꼬집었다.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 1991년 12월 KGB도 해외정보부(SVR)와 연방보안부(FSB)로 분리되었다. 이중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SVR은 KGB의 제1총국이 전신이며 인원은 1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한반도는 아시아와 호주를 담당하는 SVR 제5국 요원들이 전담한다.



    러시아대사관 화이트요원은 2명


    미국의 FBI격인 FSB는 해외공작, 대통령경호업무, 통신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KGB 업무를 흡수했다. 그런 점에서 FSB는 KGB 후신으로 간주된다. FSB는 1995년부터는 업무영역을 국내 활동에서 국내외로 확대하여 명실공히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변신했다. FSB는 연방행정기관뿐 아니라 군부대와 여타 정보보안기관은 물론 국경수비대·내무부보안군 등 준군사조직까지 조직망을 넓혔다. 직원 규모는 지난 1995년 8월까지 알파부대를 포함하여 약 8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밖에 러시아는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를 다루는 기구로 연방통신정보국(FAPSI)을 운영하고 있다. 연방통신정보국은 고위공직자·군간부·주요 재계인사가 사용하는 통신망 관리, 통신보안관련 법규 개선, 암호장비 승인 및 시험, 비밀 및 암호통신분야 정보 수집이 주임무다. 직원은 통신부대를 포함하여 약 10만명이나 된다.

    러시아는 또 군정보기관으로 참모본부 정보총국(GRU)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은 러시아의 군대를 위한 전략·전술 정보를 수집한다.

    그렇다면 서울의 러시아 정보 인력 실태는 어떨까? 현재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정보기관 요원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온 직원은 2001년 6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V)에서 나온 세바스찬 노프와 2001년 여름 부임한 해외정보국 소속의 야로보이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사람의 직책은 모두 보안담당 참사관 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한국의 정보기관에 정보원이라는 사실을 공식 통보하고 입국했기 때문에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다. 이들은 한국 국정원과의 공식 교류, 한국내 공안기관(경찰청, 법무부, 대검찰청, 관세청, 해경, 국세청)과 접촉하는 공식 교류활동을 한다. 이 가운데 야로보이 참사관은 국정원과의 교류업무를 맡고, 세바스찬 노프 참사관은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기관과의 접촉 교류를 맡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대사관도 이들 같은 공식 요원뿐 아니라 블랙 요원(비공식 요원)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우리 정보기관은 주한러시아대사관의 블랙 정보 요원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20여 명 선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대사관 내부 직원은 영사부에 2명, 정무부에 3∼4명, 무관부에 2∼3명 등 모두 1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1997년 한러 외교관 맞추방 사건 때 한국에서 추방된 아브람킨 참사관은 한국 내의 러시아 정보기관 거점장이었다.

    이외에 주한러시아무역대표부(3∼4명), 서울주재 러시아 언론사 기자(1∼2명), 유학생, 과학자, 상사주재원을 모두 합쳐 10여 명 선으로 파악된다. 러시아의 비밀정보원을 파악하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확실한 것은 미국 CIA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요청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게 할 경우 한 달 이내에 자료가 오고, 80%이상은 성분을 판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추방당한 아브람킨 참사관의 경우 수교 이후 한국에 세 차례 입국했는데, 첫번째는 기자로, 두번째는 사업가로, 세번째는 외교관으로 왔기 때문에 우리 정보기관이 손쉽게 판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20%는 추정할 뿐인데, 6개월 동안 우리 정보기관이 미행하고 감시하며 활동사항과 구독하는 간행물을 확인해서 판독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본국에서 주요 인사가 올 때 대사관 직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의 경우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의전관과 운전사 등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하는 직원은 직위에 상관없이 정보기관 요원이 장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도 우리와 똑같은 방법을 쓴다. 만약에 주한 러시아무역대표부에 한국의 정보요원 C씨가 기자라는 신분으로 두세 번 방문했다고 치자. 이때부터 러시아 정보기관에 C씨의 파일이 새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파일에는 C씨의 정면 사진과 측면사진이 붙는다. 대표부 정문을 통과할 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찍는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C씨가 영국의 러시아대사관을 한국의 상사주재원 신분으로 방문한다면, 그는 당장 스파이로 몰리게 될 것이다.

    러시아 정보요원들의 관심사는 정치, 경제, 한국군 정보, 북한,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시각 등 다양하나, 역시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과 국내정치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처럼 한국의 첨단기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대사관의 정보역량은 역으로 이들이 자국의 정보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있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은 공식 외교관이 40∼60명 선인데 정식 한국인 직원은 영사부에 여직원 1명 뿐이다. 또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주한러시아대사관은 최근까지 보안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다. 러시아대사관은 2001년 11월에야 젊은 외교관들의 계속된 건의로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용선이 2개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대사관은 파트타임으로 타자수를 쓸 때도 외교관 부인이 도맡는다. 하찮은 낙서를 한 종이라도 대사관 내부에서 사용된 것은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직원이 쓰레기통을 들고 대사관 내부를 돌면서 사용된 종이를 모은다. 이렇게 종이를 한데 모아 분쇄기에 넣는다. 대사관 3층의 복사기가 고장이 나더라도, 수리공을 건물 안으로 부르지 않고, 복사기 를 건물 바깥으로 들고나와 고친다.

    직원이 공식적으로 한국 사람을 만날 경우 보안참사관에게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만난 뒤에는 사후 보고한다. 이를 어길 경우 당장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러시아 본국에서 국장급 외교관의 보수는 한달에 200달러 정도다. 그런데 한국에 나오면 3등서기관만 되어도 월급 3000달러에 각종 수당이 붙는다. 이들은 한번이라도 귀국 조치당할 경우 영영 해외근무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보안 문제에 극도로 민감하다.

    한국내 러시아 정보원들의 활동은 미·일·중보다는 상대적으로 드세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의 강점은 북한 정보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서울 외교가에서는 북한에 관한 기계정보의 경우 러시아측 정보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CIA 한국지부가 러시아 첩보위성이 찍은 북한 사진을 사들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보 관계자에 따르면 평양시내를 촬영할 경우 미국측 첩보위성은 100m 정도 거리에서 본 것과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러시아 위성은 10m 상공에서 본 것과 같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CIA 한국지부는 북한의 요인 동향을 확인할 때 러시아 위성 사진을 사들인다는 것이다. 10m거리라면 주요인사의 동선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 황해도 안산 지역에 일명 ‘라모나(Ramona)’라는 비밀 레이더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오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레이더기지와 같은 격이다. 최근 러시아 저널리스트 안드레이 솔다토프가 폭로한 이 비밀 레이더기지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오키나와지역까지 감시할 수 있다. 솔다토프의 폭로에 따르면 이 레이더기지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했고,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대남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외교관 맞추방 사건 때 러시아에서 추방된 조성우 참사관은 이 레이더기지에 관한 정보를 러시아에서 빼돌리려다 꼬리를 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절부터 축적된 기계정보 역량으로 획득한 북한정보를 주변국 정보기관원과 맞교환하면서 고급정보를 취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보관계자들은 한러 수교 이후 10년이 지났으나, 현재까지는 한국 내에서 러시아 정보활동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부터는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같다. 그 계기는 주한러시아대사관 이전이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은 현재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빌딩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데, 올해 6월께 서울 중구 정동의 옛 러시아공사관 터에 짓고 있는 대사관건물이 완공된다. 정동대사관이 완공되면 신호정보를 다루는 연방통신정보국(FAPSI) 한국지부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의 주요 통신을 러시아 도감청 요원들이 낚아챌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울에서 기계 정보력은 미국이 가장 우세했으나, 여기에 정식으로 러시아가 도전장을 내미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거점공관은 일본 도쿄였다. 도쿄가 거점 공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보안문제 때문이었다. 이는 현재 주한러시아대사관에도 텔렉스나 파우치 같은 통신시설이 있는데도, 매달 1∼2번 정도 직원 3명이 본국에 보고할 주요 사항을 가지고 일본으로 출장을 가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러시아 외교관들이 보기에는 대치동의 임대 빌딩은 미덥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주한러시아대사관 직원들이 “정동에 새로 짓고 있는 대사관이 완공되면, 일본 출장가는 낙도 없어진다”고 푸념할 정도로 신축되는 정동 대사관은 철통 보안으로 시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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