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KT-SK텔레콤 ‘밀약’ 있었다

한국통신 민영화 막전막후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4-09-07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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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 민영화 과정에서 KT와 SK텔레콤 사이에 사전 협약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공개청약 방식으로 진행되는 민영화 과정에서 국가 소유 주식의 처리 문제를 놓고 비밀 협상을 벌인 것. 양사가 주장하는 ‘약속’의 내용조차 일치하지 않는데….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올 경제계 최대 이슈이자 전국민적 관심사인 한국통신(이하 KT) 민영화 과정에 관계 기업간 밀실 협의가 있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SK텔레콤과 KT가 공개청약 직전, 지분 참여의 폭·조건 등에 대해 치밀한 사전 논의를 벌인 것. 그러나 두 회사는 일이 뜻대로 풀려가지 않자 협의내용은 공개 못한 채 상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는 딜레마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지극히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할 민영화가 ‘밀약’의 희생물이 돼 방치되고 있음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22일, 15년을 끌어오던 KT 민영화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2~3개월 전만 해도 ‘성사되기 힘들 것’이란 부정적 시각이 많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KT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SK텔레콤이 전체 지분의 11.34%를 획득해 대주주로 부상했다는 것.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으나 재계와 KT 경영진은 물론 정부조차 이를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며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SK텔레콤이 연막 작전으로 대지분 획득에 성공, 향후 KT의 실질적 주인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생존을 위한 방어일 뿐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정당한 권리 행사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KT”라고 맞받아쳤다.

    그 과정을 취재하던 중 예기치 않은 사실과 맞닥뜨렸다. KT 민영화 과정에서 KT와 SK텔레콤 사이에 비밀 협의가 있었음을 확인케 된 것이다. 협의내용에는 지분 매입 규모, 양사가 보유하고 있는 상대방 주식의 매물압박(오버행) 해소 방안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계약 내용을 담은 ‘협약서’의 실체에 대해서는 양사 모두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



    더 큰 문제는 양사가 주장하는 협의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 두 회사 중 한 쪽은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업 도덕성이란 측면에서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쪽 말이 사실이냐에 따라 SK텔레콤이 KT의 대주주가 된 데 대한 양측의 공방과 그로 인한 상황 전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 게임’의 승패를 떠나, 공개청약 방식으로 진행되는 민영화 과정에서 국가 소유 주식 처리 문제를 놓고 사전 비밀 협상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예상된다.

    KT는 LG전자 등 다른 입찰참여 업체와도 다각도로 협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KT측은 “큰 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의 논의였을 뿐”이라 주장하고 있다. SK텔레콤-LG전자 사이에도 지분 참여율 조절을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KT와 SK텔레콤의 주장은 어떻게 다른가. SK텔레콤 측은 “KT는 SK텔레콤이 9% 이상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럴 경우 스와핑(주식 맞바꾸기)은 없다는 내용에 합의했으면서도, 막상 결과가 나오자 SK텔레콤을 비난하며 스와핑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KT측은 “애초 SK텔레콤은 5% 지분만 획득키로 했다. 그럴 경우 KT가 보유한 SK텔레콤 주식 지분율을 같은 수준(5%)으로 낮추기로 합의했으나 상대편이 상한 5%라는 약속을 깨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KT는 협약서의 존재가 문제시되자 “SK텔레콤과 ‘약속’ 했다는 것은 발언한 임원이 전후사정을 잘 몰라 한 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면서도 “SK텔레콤은 5%만 들어오기로 했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측의 주장을 포함, 민영화 막전막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KT 민영화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 온 공기업 개혁의 핵심이다. ‘2002년 6월내 민영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투자자 한 사람이 한번에 취득할 수 있는 지분한도를 5%에서 15%로 확대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특정 기업이 KT의 ‘주인’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주관 증권사에 LG·현대·삼성증권 등 국내 3사 외에 JP모건을 포함시켜 선진 금융기법을 적극 수용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규모 교환사채(EB: 일정 기간 경과 후 발행회사가 보유한 자사 혹은 타사 구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 발행과 전략적 투자자(30대 재벌)를 선순위·후순위로 나눠 그 권리 및 매입가능지분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게임의 룰은 복잡했다. 여기에는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인수 예상 기업간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기한 내에 정부가 원하는 모양새로 민영화를 달성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매각해야 할 지분 28.4% 중 5.7%는 일찌감치 우리사주로 할당했다. 남은 것은 22.7%. 이 중 8.83%는 주식으로, 나머지 13.83%는 EB 형태로 팔기로 했다. 주식 판매 물량 8.83% 중 5%는 전략적 투자자에게, 2%는 기관투자가(금융기관)에게, 1.83%는 일반투자자에게 배정됐다. 주식을 산 투자자들에게는 EB를 우선 배당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됐다. 대기업은 취득주식의 두 배까지, 기관 및 일반 투자자는 매입 주식만큼 EB를 살 수 있었다.

    게임의 묘미는 주식 5%와 그로 인한 EB 10%를 합쳐서 15%의 지분을 배분하는 방식에 있었다. 전략적 투자자를 선순위와 후순위로 나눈 것. 30대 재벌에 속하더라도 금융기관이거나 컨소시엄에 금융기관이 포함된 경우는 후순위로 밀려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선순위지만 삼성생명은 후순위다.

    5월17~28일. 드디어 공모주 청약이 시작됐다. 정통부와 재계의 촉각은 전략적 투자자 몫인 주식 5%를 어느 회사가 얼마만큼 가져가느냐에 모아졌다. 애초 정통부가 원한 것은 삼성·LG·SK·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재벌그룹들이 지분을 ‘황금분할’하는 것이었다. ‘소유-경영 분리’ 구조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편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입찰이 임박한 시점까지 정통부는 황금분할 실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KT의 중요성과 복잡다기한 룰을 고려할 때 주요 그룹들의 참여는 기정사실이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효성과 대림산업, LG전자 등이 입찰참여 의사를 밝힌 데 반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일찌감치 “내 일도 바쁜데 남의 사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며 뒤로 빠졌다. SK텔레콤도 “삼성을 좀더 두고 보겠다”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5월20일 이후 ‘사전 세일즈’ 작업은 삼성과 SK에 집중됐다. 여기에 두 그룹의 복잡한 속사정과 이해관계 등이 얽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SK텔레콤이 입찰 마감시간 5분을 남겨놓고 1개사 청약 한도인 5%를 몽땅 신청해버린 것이다. 삼성 또한 전략적 투자가 아닌 ‘재테크’ 관점에서 삼성생명을 통해 1%를 청약했으나 주식은 한 주도 가져갈 수 없었다. 전략적 투자자의 청약 물량이 배정 총량(5%)을 넘을 경우 은행 등 금융기관은 후순위로 밀린다는 게임의 규칙 때문이었다.

    KT 지분 5%는 전략적 투자자 중 선순위인 세 업체에 신청 비율에 맞춰 배분됐다. SK텔레콤이 3.78%, LG전자가 0.75%, 대림산업이 0.47%였다. 세 업체는 각기 자사가 획득한 지분의 두 배만큼 EB를 가져갈 수 있으므로 SK텔레콤은 한순간에 KT의 대주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주식청약 결과가 발표된 5월19일부터 EB 매각 완료일인 5월21일까지 정통부와 KT, SK텔레콤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사실상의 선택권은 SK텔레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SK텔레콤이 얼마만큼의 EB를 가져가느냐에 따라 ‘민영화 KT’의 주주 구성도 결정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조6천억원으로 3조원 막았다”

    SK텔레콤의 과감한 베팅을 두고 KT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SK텔레콤은 “생존 차원의 방어였다”며 진화에 나섰다. 삼성 견제와 주가 관리를 위한 선택이란 설명이었다. SK텔레콤은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통해 3%만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삼성그룹 내 구조조정본부와 삼성전자는 마지막까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안다. 또 3%만 가져간다 해도 KT 이사회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SK텔레콤에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더 큰 목적은 주식 물량 부담 해소라고 했다. KT는 지분 9.27%(2조5000억~3조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의 2대 주주다. 그 동안 KT가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SK텔레콤 주식을 ‘곶감 빼먹듯’ 내다 팔아 주가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따라서 우선 배당된 EB 7.56% 중 5.77%만 청약해 양사가 갖고 있는 상대 회사의 지분율을 똑같이 맞추겠다고 공표했다.

    이미 받은 3.78%에 5.77%를 합하면 9.55%가 된다. SK텔레콤은 “KT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판 신주인수권부사채(BW :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미리 약정한 가격으로 발행회사의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를 MS가 주식화할 경우 9.55%의 지분율은 KT가 갖고 있는 SK텔레콤 지분율(9.27%)과 똑같아진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5월20일 실시된 추가 주식청약에서 EB 배정량 5.77%를 원주 형태로 취득했다. EB가 아닌 원주를 택한 것은 “주식을 오래 갖고 있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SK텔레콤 측은 “1조6000억원(KT 지분 9.55% 확보를 위해 지불한 액수)으로 2조5000억~3조원을 막았다”며 흡족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통부와 KT는 “SK의 대주주 등극이 예상 밖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특정 기업이 10% 안팎의 지분을 획득해 대주주가 되는 것은 게임의 룰에 따라 예견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정통부와 KT로서도 노골적으로 공세를 펼치거나 불쾌감을 표시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해 보이던 KT 민영화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었다. 경쟁률도 기대 이상이었고 가격도 높았다. 이는 분명 평가할 만한 업적이다.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대주주가 된 사실을 두고 “민영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지만, 민영화가 완결된 시점에서 이는 자칫 공허한 울림이 될 수 있다. 민영화 성공을 위해서는 투자자 유인책이 필요했고, 정부는 ‘견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당근’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통부와 KT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통부 측은 “무엇보다 SK텔레콤이 한번에 그 정도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차입도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지분 인수 자금의 약 30%를 차입금으로 충당했다.

    다소 곤혹스러우나 비교적 조용히 마무리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악화된 건 SK텔레콤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지분 인수는 없다”는 약속을 깨고 5월21일 실시된 EB 청약에서 자사에 주어진 잔여배정 물량 1.79%를 모두 청약한 것. 이로써 SK텔레콤은 KT 지분 11.34%(약 1조9300억원어치)를 보유하게 됐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SK텔레콤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5월19일까지도 더 이상의 지분 인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다. 그런데 20일 아침회의에서 최고 경영진이 ▲정당한 권리이며 ▲KT 지배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규모의 물량이 분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 견제와 오버행 해결을 위해서는 추가 청약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말을 뒤집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지만, KT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통부와 KT의 생각은 달랐다. SK텔레콤의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SK텔레콤이 “추가 매입한 1.79%는 KT와 의논해 SK 계열사가 아닌 투자자에 매각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으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5월24일 KT 이상철 사장은 SK텔레콤에 상호보유 주식지분 스와핑을 제의했다. “SK텔레콤이 주장한 삼성 견제와 주가 안정 문제는 이미 해결됐으니, 공정경쟁체제를 확립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스와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었다.

    같은 달 27일에는 정통부 양승택 장관이 이 같은 KT의 제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의 SK지분 대량 매입은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KT민영화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이라며 “SK텔레콤이 KT 지분을 조속히 처분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정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양장관은 또 “SK텔레콤이 표명한 1.79%의 지분 매각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만큼 KT 2대 주주 수준이 될 때까지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정통부와 KT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애써 숨기고 있던 불만과 경영지배에 대한 위기감이 SK텔레콤의 추가 청약으로 인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정통부·KT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설이 존재한다. 양쪽 모두 SK텔레콤이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생명 이름으로 입찰에 참여했을 경우 후순위로 밀리는 건 자명한데, SK텔레콤이 최소한 3.5~5% 청약하리라는 걸 알고 있는 정통부나 KT가 그런 상황을 짐작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것. 물론 이는 정통부와 SK텔레콤, KT와 SK텔레콤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을 때나 상상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업계에는 정통부가 SK텔레콤에 “3.5%만큼 들어오라”고 요청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주관 증권사들은 오히려 SK텔레콤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며 많은 걱정을 했다. 그만큼 SK텔레콤은 여러 방식으로 (청약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투자만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SK텔레콤이 과도한 지분을 가져갈 경우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점도 충분히 설명했다. 그런데 EB까지 싹쓸이하리라고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KT와 SK텔레콤 간 교감이라면 앞서 언급한 ‘협의’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양사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두 회사가 동시에 인정하는 부분은 사전 협약이 있었다는 것, 거기에 지분 매입 규모와 오버행 해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SK텔레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KT는 SK텔레콤의 행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KT 주장이 진실이라면 SK텔레콤은 협약을 깨고 비신사적으로 행동한 것이 된다.

    스와핑 문제만 하더라도 SK텔레콤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KT의 스와핑 요구는 ‘약속’을 깨는 행위이며, 반대로 KT의 주장이 사실일 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정인가.

    상한 5%냐 하한 5%냐

    먼저 KT 측 주장이다.

    “민영화를 위해 우리 임원들은 여러 청약참가 예상 업체들과 다각도로 논의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좀더 많은, 또 다양한 투자자들이 KT 지분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SK와도 그런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SK텔레콤과 KT 사이에는 오버행 문제가 걸려 있었다. 우리가 SK텔레콤의 지분 9.27%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SK텔레콤은 ‘EB 포함 5%의 지분을 가져가겠다. 그러면 두 회사가 교차 소유하고 있는 지분 사이에는 4.27%의 차이가 생긴다(SK텔레콤 보유 KT 주식 5%, KT 보유 SK텔레콤 주식 9.27%). 그 4.27%의 지분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5%란 언급은 우리뿐 아니라 정통부와 삼성그룹 쪽에도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SK텔레콤의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원주 청약은 최대 한도인 5%까지 하겠다. 그래야만 경쟁이 치열해 원주 배당을 1~2%밖에 받지 못하더라도 EB까지 합쳐 5%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혹시 경쟁률이 낮아 원주를 많이 확보하게 될 경우에도 우선 배당되는 EB를 모두 사들이지 않고 총 지분 5%선에서 맞추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SK텔레콤은 3.78%에서 9.55%로, 다시 11.34%로 지분을 계속 늘려갔다. 사실 9.55%까지는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주식 가격이 고정되니까 4.27%를 따로 처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취한 조치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물론 KT 입장에서는 약속 위반이었으나 최소한 SK측이 경영권에 욕심 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1.79%를 추가 청약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주식 지분을 훌쩍 넘겨 버렸다. 9.55%에서 멈추고 스와핑을 했으면 아무 문제도 안될 것을 SK텔레콤이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5%가 약속한 상한선’이라는 주장은 KT 임원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KT 이상철 사장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장 크게 들어와야 5%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정통부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상 들어온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사간 협약에 대해서는 “임원들 선에서 (KT 주식 청약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한번 고려해보겠다’는 식의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밝혔다.

    이제 SK텔레콤의 주장이다.

    “우선 밝힐 것은, 우리는 신뢰를 깨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KT와 한 약속에 ‘하한선’은 있되 ‘상한선’은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뒀던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전체 지분의 15%까지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KT로부터 요청받은 것은 (원주 청약에) 가능한 한 크게 들어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선 이상으로 들어가겠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EB 포함 5%로 지분을 맞추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협의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일단 원주 청약은 약속한 선 이상, 최대한도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후 처리는 EB 포함 지분율이 5% 이하일 때, 5~9.27%일 때, 9.27% 이상일 때로 나눠 협의했다. 먼저 5% 이하일 때는 KT가 보유한 SK텔레콤 주식 중 4.27%를 우리에게 팔기로 했다. 5~9.27%일 때엔 7이면 7, 8이면 8 하는 식으로 똑같은 수준에서 맞추기로 했다. 9.27% 이상일 때는 주고받을 게 없는 것으로 했다. 이 얘기는 우리가 9.27% 이상 지분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음을 KT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물론 스와핑의 가능성을 아주 닫아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하면 조금씩 줄여나가자는 얘기는 있었다.

    우리가 상당한 분량의 지분을 가져가게 됐을 때를 대비해, KT의 의결권에 반(反)하는 권리 행사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지분율이 높은 것에 대해 KT가 걱정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으며 간섭하지도 않겠다는 믿을만한 약속을 했다.

    물론 KT가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설마 SK텔레콤이 5% 이상 들어오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수는 있다. 또 KT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구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지금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KT-SK텔레콤의 최대 쟁점은 스와핑이다. KT는 물론 스와핑을 원하나 SK의 입장은 매우 유보적이다. 그럼에도 협상을 시작한 건 독점과 담합을 우려한 정통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현재 상황에 대해 “SK텔레콤이 상도의를 거스르고 이제는 정부 시책에까지 정면 도전하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쪽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이미 민영화된 회사의 주식을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민영화시킨 후에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간섭을 하고, 더 나아가 ‘주인 있는 회사는 안 된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떤 기업이 담배인삼공사,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우리은행 등의 민영화에 적극 참여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양장관의 언급은 바람직한 업계 구도에 대한 희망사항과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 결코 주식 처분을 강요한 것이 아니다. 기자들이 앞 뒤 얘기는 다 빼고 강경 발언 위주로 기사를 써 발언의 취지가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민영화한 회사의 지분 문제에 관여할 생각은 없으며 그럴 근거도 없다. 모든 결정은 업계 자율로 이뤄져야 한다. 다만 경쟁업체 간 상대편 주식을 교차 보유하고 있는 상황(크로스 오너십)은 담합이나 독점을 야기할 가능성이 큰 만큼, 공정경쟁체제 확립과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고 불공정행위 감독에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통부는 SK텔레콤의 KT 경영 참여 배제를 위한 여러 대비책을 마련중이다. 전환우선주 도입, 사외이사제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정관 개정을 통해 SK텔레콤의 ‘입김’을 원천봉쇄한다는 복안이다.

    주식 맞바꾸기와 ‘열쇠론’

    한편, 스와핑 논의에서 원만한 협상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사전 협의 내용에 대한 양사의 입장 차이와 그로 인해 촉발된 감정 싸움이다. 게다가 스와핑에 대한 견해도 전혀 다르다. KT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SK텔레콤이 내세운 삼성 견제와 오버행 해결이란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그럼에도 스와핑 제안에 적극 응하지 않는 것은 SK텔레콤이 KT의 주인이 되려 한다는 의혹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미 ‘추가 지분 매입은 없다’는 약속을 깨고 1.79%를 더 가져가지 않았나.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SK텔레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SK텔레콤의 2대주주라고는 하지만 1대 주주(SK그룹 계열사) 집단의 지배가 워낙 확고한 탓에 경영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SK텔레콤은 다르다. KT의 명실상부한 대주주다. 민영화 이후에는 시장에서 자유로이 지분 매입을 할 수 있으므로 SK텔레콤이 지분을 더 늘리고 LG가 데이콤을 ‘접수’했던 방식대로 제3의 회사를 내세우면 공정거래법을 피해 KT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다. 또한 서로 그 정도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담합’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부는 강력한 독점 규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결국 SK텔레콤은 독점기업에 해당되는 규제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지분을 낮출 것이냐, 둘 중에 한 길을 택해야만 한다. 규제 강화는 KT에도 큰 부담이 된다.”

    SK텔레콤의 생각은 어떨까.

    “우리가 KT의 경영권을 접수할 수 없다는 건 정통부도 알고, KT도 안다. 그렇게 불확실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2조원 가까운 돈을 묶어둘 회사가 어디 있나. 우리가 원한 건 KT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지분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도록 그에 상응하는 KT 주식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 지분을 가져올 수 없다면 입찰에 참가하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청약한도인 5%를 몽땅 베팅한 것이다. 지금처럼 양사가 보유한 상대편 지분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서로의 주식을 처분할 수 없다. 한쪽이 상대편 지분을 시장에 내놓아 주가를 떨어뜨릴 경우, 다른 한편에선 오히려 그 쪽 지분을 더 사들여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누구도 원치 않는 만큼, 자연히 지배도, 매물 압박도 없는 ‘평화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KT를 ‘무주공산’으로 내버려둘 순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대주주가 된다 해서 KT 경영에 간섭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다른 세력의 진입을 방지할 수는 있다. 성을 점령하지는 못하지만 성문 열쇠를 쥐고 있는 효과랄까. 그래서 스와핑 제의에 선뜻 응하기 힘든 것이다. 스와핑이란 열쇠를 내주는 행위다. KT가 돌려받은 열쇠를 다른 투자자에 넘길 경우 그 동안 지분 확보를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스와핑 협상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KT와 의논해 EB 청약 지분 1.79%를 처리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후 문제도 양사간 협의를 통해 차근차근 풀어가려한다.”

    7~8월 중 KT 임시주주총회가 열리고 나면 KT 민영화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정부와 KT 경영진의 적극적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문제는 후유증이다. 국내 최대 무선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세계적 유선통신업체 KT의 대주주가 됐다는 사실은 분명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다. 게다가 두 기업이 청약 전 비밀 협약을 맺었음은 물론, 그 내용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앙금이 돼 건설적인 협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점은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설사 그것이 한 관계자의 말대로 “민영화 성공을 위해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다 벌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법적·제도적 보완 서둘러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래다. 두 회사는 밝힐 것이 있다면 밝히고, 털어 버릴 것이 있으면 털어 버린 뒤, 주주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한양대 경제학과 나성린 교수는 “상호 주식 보유는 경쟁사간 담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두 기업은 경쟁보다 협력을 택할 공산이 크며 이는 곧 소비자의 피해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민영화 과정에서 두 회사간 비밀 협약이 있었다면 국민의 비판과 우려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양사는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두 회사가 담합 대신 공정한 경쟁을 택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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