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역전 홈런 노리는 야심만만 업계 '넘버 투'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입력2002-10-02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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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 1등'은 '똘똘한 2등'이 바짝 따라붙을때 더 힘을 낸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발전의 보폭도 커지게 마련이다. 정상을 향해 맹추격에 나선 업계 2위 기업들의 진공(進攻) 작전과 이에 맞선 1위 기업들의 수성(守城) 전략.
    역전 홈런 노리는 야심만만 업계 '넘버 투'
    대한항공 S부장은 번개표 형광등을 사지 않는다. 번개표 형광등을 만드는 회사가 금호전기라서이다. 대한항공과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아시아나항공이 바로 금호그룹 계열 아닌가. 금호전기가 금호그룹에서 계열분리된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S씨는 그저 ‘금호’라는 이름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돋는 것 같다.

    아시아나항공 C과장은 한진택배를 이용하지 않는다. 대한항공과의 치열한 전방위 경쟁에서 대응논리를 짜내는 게 그의 주업무다. 그러니 눈엣가시 같은 대한항공을 간판 계열사로 둔 한진그룹에 고운 시선을 보낼 턱이 없다.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

    지난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액은 5조6706억원과 2조2181억원. 72대 28이었다. 올 상반기엔 각각 2조9148억원과 1조1904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 대한항공이 71대 29로 2위 아시아나를 여전히 압도하는 양상이다. 9월13일 종가 기준으로 대한항공 주가는 1주당 1만3900원, 아시아나는 2820원이다. 이 정도 격차라면 두 회사를 ‘라이벌’로 보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그러나 두 회사를 단지 외형이나 주가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국내 항공운송업계엔 1위 기업과 2위 기업만 존재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단 두 회사가 양분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한 회사에게 ‘+1’이 되면 다른 회사에겐 즉각 ‘-1’이 된다. ‘너의 행복은 곧 나의 불행’이 되는 냉혹한 제로섬 게임인 만큼 경쟁이 불꽃을 튀기는 것은 불문가지. 비방공세와 흑색선전도 난무한다. 그 전초기지 격인 두 회사의 홍보실은 입구부터 전운(戰雲)이 화약냄새를 풍긴다.



    항공운송업은 기업이 직접 상품을 개발해 소비자를 파고드는 여느 업계와는 경쟁 양상이 다르다. 항공사는 정부가 배분하는 운항노선 면허에 따라 비행기를 띄우고 영업활동을 벌인다. 때문에 정부로부터 어떤 운항노선을 얼마나 많이 받아내느냐가 기업의 수익과 성장을 좌우한다.

    올 상반기 말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운항횟수 비율은 56대 44. 후발주자인 아시아나가 이미 상당 수준까지 근접했다. 더욱이 양사의 주력사업인 국제선 여객사업 중 흑자 노선인 일본·중국·동남아 노선 운항횟수는 51대 49로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대한항공이 “‘글로벌 캐리어(Global Carrier)’를 지향하는 우리는 아시아나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좀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한항공은 1997년 괌공항 사고 이후 1999년까지 수차례 거듭된 사고로 1년6개월 동안 노선 운항권 배분제한 조치를 받으면서 아시아나에 추격의 빌미를 줬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기간에 국가간 항공회담이 자주 열려 신규 노선 운항권이 대량 확보됐고, 이들이 모두 아시아나에 돌아간 것. 게다가 그 대부분은 수익성이 높은 일본·중국 노선이었다.

    대한항공은 “정부가 운항권 배분제한 조치를 법적 근거없이 소급 적용하는가 하면, 제재기간이 끝난 후에도 운항권을 편파적으로 배분하는 등 아시아나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는 “벌을 받은 학생이 반성하기는커녕 ‘벌 받느라 수업을 못 들어 성적이 떨어졌다’고 떼쓰는 격”이라고 받아친다.

    두 항공사의 기(氣)싸움은 앞으로 배분될 노선 운항권을 놓고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뉴질랜드 주 4회 운항 노선권을 확보했고, 올해중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과도 항공회담을 열어 신규 노선권 허가여부를 협의할 계획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의 운항지역과 겹치기 때문에 노선권이 확보될 경우 양사는 사세(社勢) 경쟁 차원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동맹체 가입을 둘러싼 두 회사의 공방도 그런 조짐을 읽게 한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Star Alliance)’에 가입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나는 스타 얼라이언스가 취항국가 및 노선 수, 보유 항공기 수, 수송객 규모, 수송분담률 등에서 대한항공이 가입한 ‘스카이팀(Sky Team)’을 크게 앞선다고 과시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관계자는 “스타 얼라이언스는 외형을 확장하기 위해 특별한 제한 없이 많은 항공사를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회원사 중에는 군소 항공사나 경영이 부실한 항공사, 또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항공사들이 뒤섞여 있다”고 깎아내렸다. 핵심 멤버인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경영 부실로 파산 가능성이 제기됐고, 회원사였던 호주 안셋항공은 이미 파산했다는 것.

    불안한 ‘넘버 원’ SKT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과 업계 2위 KTF도 올 들어 강도높은 비방전을 계속해왔다.

    올 초 KTF는 한 민간기구의 조사결과를 제시하며 자사의 통화품질이 SK텔레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며 각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KTF가, 평가 내용에 문제가 있어 발표를 연기한 자료를 근거로 어거지를 쓰고 있다”고 맞받았다. 그 직후에는 IMT2000의 초기 버전인 CDMA2000 1X EVDO 서비스를 자신들이 최초로 상용화했다며 ‘원조’ 논란을 벌였다.

    두 회사의 갈등은 지난 7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보도와 관련된 광고 공방전으로 극에 달했다. KTF는 ‘비즈니스위크’가 신용평가기관 S&P에 의뢰해 조사한 세계 100대 IT기업 중 KTF가 1위, SK텔레콤이 3위에 선정됐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그러자 SK텔레콤은 바로 다음날 “KTF가 왜곡된 자료를 제출해 매출액과 매출액 성장률을 부풀렸다”는 반박광고를 게재했다. 이후 몇 차례 광고공방이 거듭된 끝에 KTF는 SK텔레콤을 상대로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8월25일 서울지방법원은 SK텔레콤의 비방광고를 금지해달라며 낸 KTF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분유 시장에서 1, 2위를 달리는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여러모로 닮은 꼴 기업이다.

    남양은 1964년, 매일은 1969년 설립돼 30년 넘게 분유와 이유식을 만들며 한국의 아기들을 키워왔다. 두 회사의 창업주는 모두 이북이 고향이다.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도 영변, 매일유업 김복용 회장은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두 사람 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지난해 매출규모는 남양이 6660억원, 매일이 6620억원으로, 외형까지 비슷하다. 시장점유율에서는 남양이 43.5% 대 35.2%(분유), 42.7% 대 31.6%(이유식)로 다소 앞선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두 회사 다 보기 드문 우량기업이라는 사실.

    남양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며 은행을 뛰어다닐 때도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며 회사 빚을 모두 갚아 주변을 놀라게 했다. 지난 5월, 5만여 평의 부지에 건립한 충남 천안의 제4공장은 첨단 무인 자동화 시설을 갖추느라 1000억원의 건설비가 투입됐지만, 외부에서 한푼도 차입하지 않고 사내 유보금만으로 비용을 댔다.

    매년 600억∼700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리고 주가가 1주당 30만원이 넘는 알짜 기업이지만, 변변한 사옥 하나 없이 서울 남대문의 한 빌딩 4개 층을 32년째 빌려 쓰고 있을 만큼 알뜰하다. 남양유업 직원들은 1999년에 사무실 집기를 바꿔주기 전까지는 30년도 더 된 낡은 책상에 앉아 일했다. 홍보실에서는 과거에 회장실에서 쓰던 케케묵은 소파를 가져다 천만 갈아 접대용으로 쓸 정도다.

    매일유업도 알뜰하기로는 그에 못지 않다. 외형 불리기보다는 철저한 내실 경영으로 유동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기업들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치던 1998년에도 8.2%의 고성장세를 유지했다. 매일유업 역시 매출액이 7000억원을 바라보는 지금도 사옥을 구입하지 않고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케팅에서는 매일이 남양보다 상대적으로 적극성을 보인다. 매일은 유제품 업체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신제품을 출시한다. 최근에는 ‘뼈로 가는 칼슘우유’ ‘우리 아이 성장우유’ 등 ‘뼈로 가는’과 ‘우리 아이’ 시리즈가 히트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판매관리비도 남양보다 더 많이 지출한다. 올 상반기 매일유업의 매출은 3362억원으로 남양의 3548억원보다 적었지만, 광고비·물류비·판매수수료 등의 판매관리비로 899억원을 써 남양(719억원)보다 많았다. 매출에 비해 판관비를 많이 썼다는 것은 남양보다 유통망이 미비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매일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낙농가공을 전신으로 설립된 매일유업엔 과거의 공기업 성격상 구색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출시한 제품이 많았다. 매일은 제품 구조조정을 통해 현재 450여 종에 이르는 제품 수를 150여 종으로 줄여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과연 매일이 남양을 누르고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치고올라오는 기세 만큼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일유업은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급속도로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므로 단기적인 주가변동에 신경쓰지 말고 장기 투자에 나설 만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8월 말 현재 SK텔레콤은 1679만1000명의 가입자를 확보, 53.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KTF(1012만8000명·32.3%)와 LG텔레콤(440만6000명·14.1%)이 그 뒤를 이었다. 1위 SK텔레콤의 점유율이 2위 KTF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지난해 SK텔레콤은 6조2271억원 매출에 1조140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4조4946억원 매출에 433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KTF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4조460억원 대 2조5888억원, 순이익 9000억원 대 3078억원으로 격차는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SK텔레콤은 KTF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한다. 홍보는 물론, 마케팅과 중·장기 사업전략 등 기업경영 전반의 코드를 KTF의 동선(動線)에 맞춰놓고 있다. 전 간부들이 ‘KTF 타도’ 아이디어 짜내기에 골몰해 있다.

    KTF는 막강한 잠재력을 지닌 회사다. 무엇보다 KTF의 뒤에는 거대 통신그룹 KT가 버티고 있다. KT는 국내 최대의 유선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다. 이동통신은 무선으로만 연결되는 게 아니다. 기지국과 기지국 사이에는 유선으로 연결되는 곳이 많다. 이동통신업체는 이 경우 유선망 업체로부터 망을 빌려써야 한다. 따라서 이동통신업체가 안정된 유·무선망을 갖추면 경쟁력이 배가된다. 하지만 SK텔레콤에겐 유선망이 없다. KT는 자사 직원들을 동원, KTF 가입자를 무더기로 유치해주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또한 SK텔레콤 가입자 중 40대 이상이 40%를 넘는 데 비해 KTF는 10∼20대 가입자가 절반에 가깝다. KTF는 무선 인터넷 등을 내세워 젊은 층 가입자를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이들은 전화를 많이 쓰고 충성도가 높은 장기 고객이다. 이런 요인에 힘입어 올 상반기 KTF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했다(SK텔레콤은 48% 증가).

    이동통신사업도 항공운송업과 마찬가지로 제로섬 게임이다. 전체 가입자가 이미 3100만 명을 넘어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경쟁사의 가입자가 는다는 것은 자사 가입자가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1위라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추격자의 위세가 영 만만치 않아 보일 때 ‘불안한 도망자’의 처지는 더욱 그렇다.

    고화질의 첨단 디스플레이 장비인 TFT-LCD(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 시장은 반도체 뒤를 잇는 ‘제2의 노다지’로 손꼽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노트북 컴퓨터 정도에 제한적으로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PC, 디지털 TV, 휴대전화, 게임기, 캠코더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 지난 2·4분기 전세계 TFT-LCD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한 1600만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매출은 244억달러 규모로 전망된다.

    역전 홈런 노리는 야심만만 업계 '넘버 투'

    KTF는 KT의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이동통신시장 정상 등극을 꿈꾼다. 교통요금을 휴대전화로 낼 수 있게 한 KTF의 '케이머스 폰'.

    세계 TFT-LCD 시장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 1, 2위 업체가 세계 1, 2위를 달린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각각 21%와 18.3%의 점유율을 기록, 세계 시장의 약 40%를 나눠 가졌다. 올 상반기에는 16.6%와 14.9%를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 두 회사가 대량 생산라인 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지난해 수준의 점유율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LG필립스의 약진. 2000년에는 삼성전자와의 세계시장 점유율 차이가 7.0% 포인트였지만, 지난해엔 2.7% 포인트, 올 상반기엔 1.7% 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특히 상반기 모니터용 LCD 시장에서는 LG필립스가 15.8%를 차지, 14.5%에 머문 삼성전자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4월 LG필립스는 구리를 배선 재료로 사용, 화면의 밝기가 35% 개선되고 떨림현상이 40% 가량 줄어든 차세대 TFT-LCD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LG필립스는 삼성전자가 최근 40인치짜리 TFT-LCD를 개발하기 이 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30인치 TFT-LCD를 개발한 바 있다. 노트북 컴퓨터의 소비전력 문제를 크게 개선한 세계 최초의 반투과형 LCD를 만들어낸 것도 LG필립스다.

    이처럼 LG필립스가 호시탐탐 1위를 넘보게 된 것은 삼성전자보다 한 발 앞서 라인을 증설,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LG필립스는 2000년부터 1조6000억원을 투자, 세계 최초의 5세대 라인을 구축하고 지난 5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화면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기존의 1∼4세대 라인으로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 일찌감치 투자를 결정한 것. 내년 상반기에는 1조4000억원을 더 투자, 5세대 2라인 설치를 완료해 생산능력을 월 6만장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5세대 라인의 생산량은 4세대 라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LG필립스는 “5세대 라인 가동에 힘입어 3·4분기 이후에는 삼성전자의 생산능력을 추월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5세대 라인이 깔린 LG필립스 구미 공장에는 ‘1등 합시다’ ‘Number1 company’ 같은 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어 LG의 ‘삼성 따라잡기’ 의지를 실감케 한다.

    가전, 반도체, 통신기기 등에서 삼성과 폭넓은 전선을 구축하며 경쟁해온 LG는 1998년 미래 수종 사업인 반도체를 ‘빅딜’로 잃은 후 또 하나의 미래 사업인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결코 삼성에 뒤질 수 없다며 칼을 갈아왔다. LG 구본무 회장도 틈만 나면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1등 LG’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다급해진 삼성전자는 천안공장에 설치하고 있는 5세대 생산라인을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9월 말부터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생산능력은 월 2만대 수준. 하지만 라인을 계속 증설해 연말까지는 월 6만대, 내년 상반기에는 월 1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1998년 일본 업체들이 불황을 우려해 투자를 주저할 때 한국 업체들이 과감한 시설투자로 시장 선점의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을 삼성이 모를리 없다.

    그러나 세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LG필립스가 경쟁적으로 라인을 늘리는 데다, 대만 업체들까지 5세대 라인을 증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초과공급에 따른 가격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TFT-LCD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삼성이 LG를 맹렬하게 뒤쫓는 분야도 있다. CD롬, DVD롬, CD-RW 드라이브(CD에 임의로 데이터를 기록·삭제할 수 있는 드라이브) 등 차세대 미디어로 일컬어지는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ODD) 분야가 그것이다.

    이들 제품군을 ‘월드 퍼스트’ 상품으로 선정, 집중 육성해온 LG전자는 세계 최대의 광학 데이터 저장장치 제조업체. LG전자는 세계 롬(ROM) 기기 시장에서는 28%, CD-R(CD-Recordable) 기기 시장에선 19%, CD-RW 드라이브 시장에선 20%의 점유율로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제품의 판매량이 LG전자 제품에 맞먹는 규모로 치솟았다. 특히 CD롬 드라이브 등 일부 제품에서는 삼성이 LG를 앞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봄까지만해도 서울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LG 제품과 삼성 제품의 판매비율이 2대 1 정도로 격차를 보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삼성이 애프터서비스망을 확대하고 판매상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 그 주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비해 LG는 지난 5월 자사 CD-RW 드라이브 고급 모델에 장착되는 데이터 버퍼 램 사양을 예고 없이 8MB에서 2MB로 변경하는 등 소비자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두 회사는 지난해 중국 CD롬 시장에서도 똑같이 22%대의 점유율로 1, 2위를 다투며 박빙의 접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두 회사는 신제품 출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콤보 드라이브(CD롬·CD-RW·DVD롬 드라이브를 하나로 합친 것) 개발 경쟁이 그 대표적인 예.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 8배속짜리 콤보 드라이브를 내놓았다. 그러자 LG전자는 12배속짜리로 응수했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5월 세계 최초의 32배속 드라이브를 내놓았고, 이에 뒤질세라 LG는 7월 40배속 제품을 선보이며 맞불을 놓았다.

    LG전자는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 제품에 대한 공동 연구와 마케팅을 위해 일본 히타치와 합작회사(HLDS·Hitachi-LG Data Storage)를 설립, 신제품 조기 출시 전략을 짜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삼성전자도 관련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고, 2005년까지 세계 ODD 시장 점유율을 1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과 LG의 정상 다툼은 제조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 그룹은 증권가에서도 1, 2위 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이고 있다.

    19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에 뛰어든 삼성은 7년 만인 2000년부터 부동의 시장점유율(약정 기준) 1위를 지켜왔다. 2002 회계연도 누적 점유율은 9.25%. 시장점유율뿐 아니라 수익증권 판매액, 영업이익, 주가, 시가총액 등에서도 단연 업계 선두다. 특히 삼성증권은 경제신문 등이 뽑는 업종별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가장 많은 수의 직원이 선정될 만큼 리서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삼성증권에게 LG투자증권이 도전장을 던졌다. 같은 기간 LG증권의 시장점유율은 8.47%로 업계 2위. 삼성증권보다 0.78%포인트 뒤지지만, 정상 탈환(LG증권은 1999년 말 점유율 1위에 올랐다)을 향한 공세가 여간 다부져 보이지 않는다. LG는 이번 회계연도 안에 점유율 1위 등극을 자신하고 있다.

    LG증권은 2000 회계연도에 영업이익(-3014억원)과 당기순이익(-2544억원)이 모두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엔 영업이익 1381억원, 순이익 1366억원을 기록, 흑자로 돌아섰다. 세전이익이 2036억원에 달해 삼성증권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지난해 3월, 5600억원대의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면서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LG증권의 특화분야인 기업금융(IB)에서는 472억원의 수익을 올려 업계 1위를 고수했다. 올 들어서도 LG증권의 1·4분기 순이익은 삼성증권의 두 배 규모였다. 또한 지난 8월까지의 수익증권 판매액 증가율도 LG가 19%, 삼성이 11%였다.

    이같은 양상이 빚어진 것은 두 회사 CEO의 대조적인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LG증권은 지난해 3월 서경석 사장이 취임하면서 ‘일등주의’를 지향하는 공격경영을 천명했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는 게 서사장의 지론. 지점·법인·국제·온라인영업 등 전 부문에서 1위에 오르자는 ‘로컬 마케팅 1위’를 구호로 내걸었다. 영업망을 늘리고 새로운 온라인 트레이딩 시스템 ‘ifLG’를 개발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객과 끊임없이 접촉해 관계를 유지하는 밀착 마케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채권형·주식형 펀드 등 금융상품 수탁고가 업계 최고 수준인 7조원대에 이르렀다.

    또한 LG는 올해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에 근접하고 거래대금은 10% 정도 증가한다고 보고, 주식·선물·옵션시장의 점유율 목표를 각각 9.2%·5.9%·8.0%로 설정했다. 지난해보다 1∼2%포인트 이상씩 높여 잡은 것이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은 스타일이 LG 서사장과 딴판이다. 황사장의 슬로건은 ‘정도(正道)경영’이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정도경영을 위해 약정경쟁을 포기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회사의 단기적인 수익성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매일 증권관련 정보를 담아 천편일률적으로 작성하던 데일리 리포트부터 없애버렸다.

    그러면서 이른바 ‘전세버스론’을 설파했다. “노선만 맞으면 아무 거나 타도 다를 게 없는 시내버스가 아니라 최신 편의시설을 갖추고 고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전세버스가 되자”고 했다.

    그러나 당장은 변화의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취임한 후 상당수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리서치의 귀재’로 통하는 이남우 상무(현재 리 캐피탈 투자자문 대표)가 삼성증권에서 나온 것도 황사장과의 노선 차이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약정 경쟁 지양을 선언한 결과 지난해엔 10%대를 넘었던 약정 기준 시장점유율이 최근 한때 8%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서비스 차별화’의 가시적 성과를 지켜보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백화점업계 매출(할인점 등 非백화점 분야 매출 제외) 1, 2위인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경쟁은 다분히 자존심 대결의 양상을 띤다. 두 백화점은 매출규모 차이가 상당히 큰 데도 일진일퇴의 신경전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롯데백화점에선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신 부회장은 신규 사업 진출과 전략적 제휴 주요 결정사항을 전담한다. 현대백화점에선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고 정주영 회장의 3남)의 장남인 정지선 부사장이 기획·관리·IR 등 핵심 업무를 챙기고 있다.

    오너 2세 경영인이 입지를 다지고 있는 만큼 두 백화점의 세(勢) 불리기 경쟁에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피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롯데와 현대가 울산에서 벌이고 있는 고객 쟁탈전은 지역 맹주들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다. 현대백화점은 1998년 울산 삼산동에 울산점을 열고 일찌감치 터줏대감으로 눌러앉았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롯데백화점이 길 하나 건너편에 울산점을 개점했다. 현대의 ‘무경쟁 상권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두 백화점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사은행사와 경품증정 이벤트를 열며 손님 끌기에 열을 올렸다. 신격호 회장의 고향인 울산에서 결단코 1위를 양보할 수 없다는 롯데와,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이 몰려 있어 ‘현대시(市)’로 불리는 울산에서 절대 텃밭을 내줄 수 없다는 현대의 대결은 지금껏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혼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서울 목동에서 복수의 칼을 빼들었다. 8월30일 현대의 13번째 점포인 목동점을 오픈한 것. 중산층이 많이 사는 목동 등 서울 서부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목동에는 대형 백화점이 없어 주민들이 인근 영등포의 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 등을 주로 이용해왔다. 현대는 이들의 발길을 모으기 위해 목동점의 영업면적을 기존 현대백화점 중 가장 넓은 1만8000평으로 설계했다. 롯데백화점(1만여평)이나 신세계백화점(5000여평)보다 2∼3배 큰 규모다.

    현대는 목동점 개점을 계기로 조만간 서울에서만은 롯데를 따라잡고 말겠다는 의욕에 넘쳐 있다. 롯데는 전국에 19개, 현대는 13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나 서울의 점포 수는 7개로 같다. 현대는 서울 전체 점포 매출에서 롯데의 80% 수준에 다가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서울에서 추격의 고삐를 더욱 죄기 위해 압구정 본점과 신촌점의 영업면적도 넓힐 계획이다.

    현대의 이같은 의도를 간파한 롯데는 고심 끝에 잔뜩 체중을 실은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미도파백화점을 거액에 사들인 것. 롯데는 지난 5월 미도파백화점 공개입찰에서 5800억원의 인수가를 써내 3000억∼4000억원을 제시한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삼성플라자 등의 경쟁업체들을 따돌렸다.

    입찰 전 미도파의 적정 인수가는 4000억원 정도로 추산됐다. 또한 미도파를 인수한 후 건물을 개·보수하는 데도 2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롯데가 이처럼 거액의 판돈을 걸고 베팅을 감행한 것은 현대의 서울 진공전(進攻戰)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듯하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오프라인 유통공간의 양대 산맥이라면 LG홈쇼핑과 CJ39쇼핑은 온라인 유통공간의 거물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홈쇼핑 회사 간에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격렬한 난타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국내 홈쇼핑 시장이 워낙 빠른 속도로 성장한 덕분에 두 회사에겐,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LG홈쇼핑과 CJ39쇼핑은 1995년 출범한 후 7년 만에 매출액이 1000배 가까이 늘어났다. LG는 1995년에 13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올해 매출 예상액은 2조원으로, 무려 1538배 성장할 전망이다. CJ도 1995년 매출액이 21억원인 데 비해 올해에는 1조5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여 738배의 매출 신장이 예상된다. 분기마다, 달마다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고객들을 치다꺼리하느라 경쟁사와 주먹질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나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그간 급증세를 지속해온 케이블 TV 가입자 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케이블 TV 시청 가구는 830만가구 수준. 시청 가구 한계를 대략 1000만가구로 보기 때문에 거의 올 때까지 온 셈이다. 이로 인해 TV 홈쇼핑 시장의 고성장 추세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두 회사는 그제서야 비로소 경쟁다운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LG와 CJ의 1, 2위 구도는 1995년 이후 한번도 역전된 적이 없다. 지난해 LG는 매출 1조637억원에 순이익 389억원, CJ는 매출 7779억원에 순이익 232억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의 누계 매출액은 LG가 1조1714억원, CJ가 9081억원.

    주목할 만한 점은 CJ가 매출액 규모에선 여전히 LG에 뒤지지만, 수익은 LG를 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CJ는 지난 2·4분기에 169억원과 144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 각각 134억원과 112억원을 기록한 LG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같은 기간 CJ의 매출이 3618억원으로 LG의 4566억원보다 작았던 점을 고려하면 CJ가 훨씬 짭짤한 장사를 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 성장률도 CJ가 110.2%로 LG(91.6%)를 앞섰다. 최근에는 외국인 지분율에서도 CJ가 LG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역전했다.

    한화증권은 “CJ가 선전(善戰)한 것은 마진이 낮은 가전제품 등의 편성을 축소하고, 역시 마진이 낮은 인터넷 쇼핑몰 부문도 고(高)마진 상품 위주로 단장하는 등 효율적으로 제품 구성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LG는 전체 매출의 40%가 가전제품에서 이뤄지고, 인터넷 쇼핑몰 또한 가전제품을 위주로 구성한 탓에 수익성이 외형 증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

    대우증권도 “지난해 말부터 CJ가 LG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좁혀들며 따라붙자 LG가 수익성보다는 매출 확대에 치중하느라 PC, 에어컨 등 수익성이 낮은 가전제품 판매비중을 높였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하지만 LG가 하반기에는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으로 전환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만큼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른 듯하다.

    올 초 현대증권은 “경영 정상화를 통해 새로운 경쟁구도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에 대해 매수를 확대하는 것이 유효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유동성 위기로 부도 위기에 몰렸던 현대건설이나, 모그룹이 무너지면서 워크아웃 대상이 된 대우건설이나 ‘경제사범’으로까지 일컬어지면서 증시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회사는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수익은 따져보지도 않고 매출 부풀리기에만 급급하던 수주 관행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이들은 아무리 대형 공사라고 해도 수익성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아예 입찰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 이제야 비로소 실속경영에 눈을 뜬 것이다.

    외형에 연연하지 않다보니 현대건설의 올 상반기 매출은 2조535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2% 줄었다. 하지만 영업이익 1530억원, 순이익 89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반전했다. 2000, 2001년 두 해 동안 3조8000억원의 적자를 낸 데 비하면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대우건설도 1조6120억원의 매출과 181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각각 12.1%와 13.1%의 증가율을 보였다. 부채비율도 2000년 말 461%에서 200%대로 떨어졌다.

    덕분에 두 회사는 지난 7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시공능력 평가(도급순위)에서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시공능력이란 건설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로, 업계에선 사실상 기업의 서열로 인식된다. 이로써 현대는 올해로 41년째 시공능력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하마터면 대우건설에 1위를 뺏길 뻔했다. 지난해 3위였던 대우건설은 삼성물산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섰는데, 간발의 차이로 현대건설에 1위를 내줬다. 대우는 토목·건축·산업설비 공사업 등 부문별로는 현대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으나, 매출액 평가에서 현대에 뒤져 2위로 물러났다. 대우건설은 2000년 말 기업분할을 했기 때문에 ‘신규 업체’로 분류돼 2000년도 매출액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 이것만 아니었으면 ‘건설 종가(宗家)’ 현대를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대우는 올해 주택공급 실적이 3만가구를 넘어 2년 연속 주택공급 1위를 기록했고, 아파트 분양실적에서도 임대주택 전문 건설업체인 부영에 이어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대우의 돌격전이 내년에도 계속돼 42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느냐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3년 5월 한국 최초의 맥주회사인 조선맥주가 첫 선을 보인 맥주 ‘하이트’는 회사의 위상을 바꿔놓은 대역작이다.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인 1996년 OB맥주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만년 2위에 머물러온 조선맥주는 아예 회사 이름까지 ‘하이트맥주’로 바꿨고, 이후 하이트는 단 한번도 OB에 1위를 내주지 않았다. OB는 1999년 진로그룹의 카스맥주를 인수해 덩치를 키웠지만, 하이트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하이트와 OB의 시장점유율은 54.3% 대 45.7%.

    그러나 하이트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지난해 벨기에 국적의 세계적인 맥주회사 인터브루가 OB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OB는 인터브루에 인수된 후 물량공세에 치중하는 국내 주류업계의 관행과는 대조적으로 광고나 판촉활동에 열을 올리지 않고 있다. 한국인 임원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고 종용했지만, 인터브루측 최고경영진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트가 내심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OB의 태도다. OB 간부들은 공공연하게 “시장점유율이나 판매경쟁엔 신경쓰지 않고 재무구조를 견실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담담해 한다. 실제로 OB는 2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을 만큼 재무구조가 탄탄해졌다고 한다. 부채비율도 하이트보다 낮다.

    더욱이 과거처럼 요란하게 홍보하지 않으면서도 OB맥주와 카스맥주는 꾸준히 팔려나가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OB측은 “안정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의 내실 경영에 주력하면 1위 탈환은 어렵지 않다”고 자신한다.

    하이트는 올 초 OB가 ‘참이슬’ 소주 신화의 주역인 한기선 부사장을 전격 영입한 것을 본격적인 반격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한부사장은 진로그룹 부도 직후인 1998년 7월 진로 영업담당 전무를 맡은 뒤 참이슬 소주를 출시, 1년 만에 국내 소주시장의 40%를 장악케 한 전설적인 인물. OB는 그를 영입하면서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한국신용정보는 “OB맥주가 인터브루의 자회사 성격이 뚜렷해지고, 이로 인해 대외 신인도가 높아졌다”며 OB맥주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올렸다. 주력 브랜드인 ‘OB라거’와 ‘카스’의 양호한 브랜드 인지도를 배경으로 꾸준한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

    하이트로선 또 한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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