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는 사실에 입각해 진술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고 여러 안을 놓고 실무자선에 책임지게 했다. 경영진은 각자의 진술을 불일치시키고, 애매한 상황이 되도록 만들어 피고발인들의 책임이 모호해지게 하려 한다. 현대는 직원들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사전 각본된 답변 내용대로 진술케 지시하고, 조사후 이들을 다시 불러 검찰에서 각본대로 진술했는지 확인한다.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이다.…”(검찰 수사보고서 중에서)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 다만 끊임없이 승부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일 뿐이다.”
위험을 즐기는 투자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해외에 체류 중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무슨 이유로 위태로운 게임을 시작한 것일까. 그는 3년만에 입을 열어 자신을 키운 현대그룹을 상대로 ‘위험한 카드’를 펼쳐보였다. 현대중공업 고문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가 1998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주가조작을 사전에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대선을 50일 앞두고 터져나온 그의 폭로는 메가톤급 폭탄이 되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1999년 11월3일 서울지방법원이 이 전회장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후 잊혀져갔다. 이 사건에 연루된 현대증권,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은 현대그룹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재정적 손해도 컸다. 이 전회장은 법정에서 드러난대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부실 덩어리 국민투신(현 현대투신)을 인수하고, 해외펀드를 동원해 현대 계열사 주식을 매집했다가 결국 깡통계좌로 전락시켰다. 이런 것들을 합하면 현대증권이 입은 손해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현대증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전회장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죽은 얘기’를 다시 끄집어 냈을까. 이 전회장이 이 사건을 다시 헤집어놓자 현대증권과 현대중공업은 발끈했다. 이들은 이씨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증권 고위 관계자는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고, 그를 통하면 안되는 일도 없었다”며 “자신이 단독으로 주가조작을 계획하고 지휘했으면서 다시 말을 뒤집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회장은 뒤늦게 자신의 죄를 부인했다. 그가 주가조작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누가 했을까. 이미 세상을 떠난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일까. 1998년 4월 주가조작이 시작된 시점부터 1999년 9월 이익치씨가 구속되기까지 17개월 동안 벌어진 사건의 전모를 검찰 수사일지와 관련자 심문조서, 검찰과 참여연대 등에서 입수한 현대그룹의 내부 대책 문건 등을 토대로 살펴보자.
‘현대중공업 살리기’ 논의
사상 최대 규모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1998년 4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벌어졌다. 은밀하게 진행된 주가조작의 실상은 1999년 4월12일 오전 11시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사무실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부터 드러난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노정익 전무·강연재 이사·장호진 차장 등 3명, 현대증권 김기영 감사·박철재 상무 등 2명, 현대상선 박재영 이사, 현대중공업 서태환 이사 등이었다. 회의의 이름은 ‘현대전자 주식 관련회의’. 주로 노정익 전무가 질문을 하고 김기영 감사가 의견을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고딕체로 처리된 부분이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대기업의 엘리트 임직원들이 주가조작과 관련해 어떤 대책을 세우는지, 어떻게 입을 맞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얘기들이 담겨 있다. 우선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내용이 회의 안건으로 올랐다.
“증선위의 제재종류에는 검찰 고발, 검찰 통보, 검찰 수사의뢰가 있다. 본건(현대전자 주가조작件-편집자)에 대한 금감원 내부방침은 고발인 것 같다. 검찰수사는 통상 증선위의 의결사항이 검찰에 넘어간 이후에 이뤄지고, 본건은 4월23일 검찰로 넘어갈 예정이다. 증선위에서는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사항이 거의 그대로 가결되기 때문에 혐의 자체에 대한 의결 번복은 극히 드물고 제재 수위에만 조정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건은 제재수위 조정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상 주가조작 사건은 증권거래소의 매매심리 분석 → 금감원 통보 → 금감원 증선위 조사 → 검찰고발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회의는 이미 증선위가 주가조작을 입증하는 자료를 토대로 고발 방침을 정한 뒤에 열렸다. 현대 임직원들은 상당히 다급했다. 이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떤 점이 법을 위반한 것인지 파악하기에 분주했다.
“증권거래법 위반의 심의대상이 될 수 있는 건은 현대중공업 및 현대상선의 부당 시세조정 혐의 및 개인 대주주의 부당이득 취득 혐의가 될 것이다. 이중 개인 대주주의 부당이득 취득혐의는 금감원 조사과정에서 뚜렷한 혐의를 밝히지 못해 제외될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정책적으로 문제삼을 소지는 있다.”
회의는 현대상선의 고발대상 제외 가능성과 제재수위 조정여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실제 매매행태의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현대상선의 혐의는 현대중공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하므로 노력에 따라 고발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발을 막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면 부작용이 예상된다. 거시적으로는 현대중공업 및 상선의 매수 사유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거래 건전성 측면에서 설명이 곤란한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종가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매수한 것은 해명이 어렵다. 현대증권이 거래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해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당시 문제가 됐던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1998년 5월26일부터 11월12일까지 현대전자 주식 805만7000주를 매수했다. 직전가 대비 고가 매수주문, 종가 결정을 위한 동시호가시 대량 고가 매수주문, 허수주문 등의 시세조정 주문을 냈다. 이를 통해 현대전자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최저 1만4800원에서 최고 3만2000원까지 116% 상승시켰다. 이점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임직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이다.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하기 위해 현대증권을 이용,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1998년 현대전자 주가조작이 일어난 시점에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빅딜 논의가 한창이었다. 당시 LG와 현대는 서로 합병 반도체 회사의 경영권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현대 계열사 임원들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매수시점과 빅딜 일정상 시차가 있고, ADL(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실사기관으로 선정된 아서 D 리틀社-편집자)의 경영평가 항목에 주가는 들어있지 않으므로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감원에서 공식적으로 반도체 빅딜과 주식매수를 연관해 발표한 적은 없다.”
회의가 열렸을 때는 이미 빅딜이 끝난 시점이어서 그런지 빅딜과 관련해서는 이렇듯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현대건설 경영전략팀의 주가조작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현대건설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군 기업으로 그룹의 모태같은 곳이다. 현대건설이 주가조작건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는 현대그룹이 주가조작에 조직적으로 동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전략팀이 매수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고 할 경우 그룹 차원에서 계획되고 집행된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따라서 경영전략팀이 매수결정에 개입한 사실이 없으며 1998년 말 각사의 경영실적 점검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매수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해야 한다. 주식매수는 구조조정 관련 점검 보고 사항이 아니며, 양사의 취득 목적이 다르므로 각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설명해야 한다. 또 대주주(정씨 일가-편집자)가 매각을 지시했다고 말할 경우에도 그룹 차원에서 계획된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경영전략팀 내에서 유상증자시 개인 재원 조달 목적으로 기안해 대주주에게는 구두보고한 정도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경영전략팀 관련 논의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씨 일가가 주가조작을 사전에 알았느냐 하는 대목이다. 정씨 일가가 사전에 알았다는 부분이 정확하게 기술돼 있지는 않지만, “그룹 차원에서 계획한 것으로 보이지 말자”는 부분은 세간의 의혹대로 대주주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룹 차원에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는 이렇게 논의됐다.
“현재 정부 방침이 현대를 부도덕하게 모는 듯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해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해명 시기는 증선위가 검찰에 사건을 이관한 뒤에 하는 것이 낫다. 의결 전에 하는 것은 맞대응으로 보인다. 또 언론의 속성상 해명 기사 자체가 왜곡될 소지가 있으므로 검찰 이관 전에 해명하는 것은 불리할 수 있다. 또 본건에 대해 증선위의 고발 이전에 강력히 어필하는 것은 금감원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금감원과 전체적인 관계 및 향후 타사 안의 처리문제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여기까지 논의하고 다음날인 4월13일 오전 8시에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사무실에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선 주식매수 회사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과 보고과정 등에 대해 대책을 수립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같은 날 오후 3시에는 현대증권 감사실에서 실제 매매와 관련된 피조사인들과 변호사 간에 진술 내용을 협의, 조정하자고 했다. 회의는 4월19일과 4월22일로 이어졌고, 조사 대상자를 상대로 금감원과 검찰 조사에 대응하는 모의훈련까지 실시했다.
4월13일 오전 회의에서는 현대중공업의 매수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는 데 동감했다. 특히 1998년 5월29일부터 6월15일까지 개인 대주주와 법인의 연결매매가 집중적으로 나타나 통정매매로 의심받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임원들은 “주가가 본격 상승하기 전인 5월29일에 미리 매도한 사실을 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되면 매도 목적이 부당이득 취득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5월29일 평균 매도가는 1만6100원, 종가는 1만8350원이었다. 6월5일 종가는 1만9500원이었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종가를 관리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의도적으로 주가를 관리한 게 아니라 매수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주문행태’라고 주장하기로 했다. 1999년 계열사가 현대전자 주식을 집중 매도한 이유에 대해 감독당국이 물으면 ‘당국의 재무구조개선 압박이 심해져 전자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핑계를 대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당시 재벌들에게 강요된 정부의 방침을 역이용하기로 모의하는 장면이다.
이들이 회의를 거듭하면서 늘 거론하고 걱정한 부분은 정씨 일가에 대한 수사 가능성 여부였다. 정씨 일가가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수사결과가 나오면 큰 일이었다. 다음은 율촌법무법인 변호사까지 회의에 참석한 4월19일 회의의 내용으로, 정몽준 고문을 위한 진술서 초안이다.
“현대전자 주식 매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 추진 및 공정거래법상 보고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계열회사 주식 및 그 매수 또는 매각에 직접 필요한 통장을 경영전략팀에 맡겼다’고 진술할 것. 그리고 구체적인 질문이 있는 경우에만 ‘계열회사에서 배당소득이나 근로소득이 개인소득의 대부분이어서 개인종합소득세 신고도 계열사 주식을 보관하고 있는 경영전략팀에 맡겼다’고 진술할 것.
만약 감독당국에서 계열회사 주식거래 관리를 경영전략팀에 맡긴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경영전략팀에서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들의 주식 변동상황을 파악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므로 개인 대주주와 경영전략팀 업무수행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말할 것. 매각목적에 대해서는 ‘본인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의 주식 추가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진술할 것(실제 정몽준 고문은 1998년 9월부터 11월까지 현대전자 주식 매각대금 전액을 현대중공업 주식 매수대금으로 사용했다-편집자).
‘시세조정, 주가조작’ 등에 대해 ‘본인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전념해 계열사의 경영이나 주가 동향에는 직접 신경을 쓰거나 관여하지 않았음’이라고 답변할 것. 또 ‘현대전자 주식거래는 이미 주주로 있던 현대전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본인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주식매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중이던 현대전자 주식 전량을 매각해 그 자금으로 모두 현대중공업 주식을 매수한 것이어서 위법행위나 부당한 동기가 없었다’고 말할 것. 현대건설 경영전략팀도 ‘몽헌과 몽준의 매도 주식에 경영전략팀이 관여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계열기업 대표 또는 임원이어서 부수적으로 관여한 것’이라고 답할 것.”
정고문을 보호하기 위해 대책팀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문건이 있다. 이는 이 글 뒷부분에서 대책회의의 ‘결정판’ 격인 ‘현대전자 관련 문제점, 파급효과, 대책’ 등을 소개하며 언급할 것이다.
역외펀드 이용한 주가관리 권고
금감원 증선위의 고발, 검찰 조사에 대응하기 위한 현대 계열사 임직원들의 회의 내용 등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주가조작’은 없었고, ‘주가관리’만 있었다는 게 요지다.
이 대목에서 시간을 1996년 7월로 옮겨보자.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조짐은 사실상 이 무렵부터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익치 전회장이 1996년 1월 현대증권 사장으로 발령난 지 6개월 후인 그해 7월, 현대증권은 ‘역외펀드 설립을 통한 그룹사 주가관리 방안’이란 대외비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통해 현대증권이 계열사 ‘주가관리’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살펴보자.
우선 보고서의 제안 배경으로 ‘각 그룹사의 효과적인 주가관리를 위해서는 IR 등을 통한 정보관리 외에 주식시장의 물량수급에 직접 참여하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주가관리의 목적을 지분관리, 투자이익 확보 등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할 때 원활한 자기주식 매매수단은 필수적이라고 보고서는 권고했다.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의 매매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자사주 매입과 자사주 펀드 참여방식 등 두 가지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두 가지 방식은 매수 한도, 매매 가격 및 시기 등에 대한 제한으로 실효성이 적다고 지적하면서 역외펀드 설립을 추천했다.
역외펀드는 거래시기와 가격 등에 제한이 없고, 10개 계열사가 출자한다면 1개 회사는 출자지분의 10배까지 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말하자면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펀드 명의로 무보증 채권을 발행하면 자본금의 3∼4배에 이르는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과 신주인수권 등 주주권 직접행사로 지분관리가 쉽고, 계열사 정보를 신속하게 투자에 반영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도 소개돼 있다. 이는 내부 정보를 주식 투자에 이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역외펀드 설립지역으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나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회피지역을 권하고 있다. 주주구성은 현대그룹 계열사, 각 펀드 규모는 100만 달러(당시 1달러=800원대의 환율을 적용하면 8억원대), 자금조달은 주주 납입으로 250만달러, 펀드 차입으로 750만달러 등 총 1000만달러다. 물론 운용은 현대증권에서 담당하며 운용자문은 출자회사의 주식담당자와 종합기획실 담당자, 현대증권 펀드담당자 등이다. 현대그룹의 주가관리 계획은 계열사 기획실과 자금 담당 임직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도 마찬가지다.
2000년 3월24일 열린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며 따지고 있다.
아울러 펀드 운용시 위장지분 취득 또는 내부자 거래로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에 대해 ‘실질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어 문제의 발생 소지가 없다’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이익치 전회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런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며 “증권사에서는 애널리스트 등이 작성하는 수많은 보고서가 나돌기 때문에 사장이 일일이 찾아서 읽어보기 어렵다”고 했다.-편집자)
아무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1998년에 벌어졌지만, 현대증권은 사실상 2년 전부터 이를 치밀하게 준비한 셈이다. 실제로 현대증권은 1996년 4월 1000만달러를 투자해 드래곤 코리아 펀드(Dragon Korea Fund)를 설립했다. 그해 여름에는 코리아 슈퍼 펀드(Korea Super Fund)를 역시 1000만달러를 투자해 설립했고, 연말에는 코리아 옵티마 펀드(Korea Optima Fund), 1997년 2월에는 퍼시픽 마스터 펀드(Pacific Master Fund), 비슷한 시기에 코리아 맥시마 펀드(Korea Maxima Fund)를 만들었다.
이 모두를 현대증권에서 관리했는데, 일례로 드래곤 코리아 펀드의 경우 원래는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기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투자자산의 100%가 한국 증시에 투자됐다. 그밖의 다른 펀드들도 국내 종목들을 매매했다. 역외펀드 운용과 관련, 1999년 6월 현대증권 국제영업본부 이태석 이사는 서울지검에서 현대전자 주가조작과 역외펀드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1998년 당시 현대증권 박철재 이사의 지시로 회사 국제영업부 창구를 통해 약 6회에 걸쳐 현대증권 상품과 외국계 증권사 간의 대량 매매를 알선했다. 현대증권 상품의 주식을 매수했다가 되팔아줄 기관을 섭외했는데, 메릴린치, SG증권, 다이와증권, 쿨라인워트증권, 닛코증권 등이었다. 박철재 이사는 ‘현대증권 상품에서 보유한 현대전자 주식을 외국 증권사가 매수하면 현대증권이 일정액의 이익을 보장하는 금액으로 재매수해 줄 것이고, 만약 주가가 상승하면 매수인이 임의로 매도해도 좋다는 조건을 이들 증권사에 제시하라’고 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외국계 증권사와 협의해 대량의 자전매매를 성사시켰다.”
그의 증언을 계속 들어보자. 대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범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상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위 방법대로 매도인과 매수인이 짜고 주식을 사고 팔면 일반 투자자들이 현대전자에 어떤 호재가 있어 주식거래가 활발해진 것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 또 증권가에서 현대전자 주식의 거래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점도 알았다. 박철재 이사에게 이같은 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필요성이나 배경에 대해 시원한 답변이 없었다. 그는 현대전자 주식을 받아줄 기관이나 외국계 증권사를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나는 박이사의 지시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인으로서 상사의 지시를 거절할 수 없고, 박이사가 제시한 조건으로 매매 상대방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지시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는 박철재 이사의 지시를 받아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관여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박이사는 누구의 지시를 받아 주가조작을 지휘했을까. 박이사는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현대건설 경리부 종합기획실에서 근무했고, 현대중공업 재정부 차장을 거쳐 1989년 현대증권에 들어왔다. 1997년 현대증권 자산운용본부장(이사), 1999년 기업금융본부장(상무)을 역임한 후 지난 3월 현대중공업 재무관리담당 전무로 옮겼다.
그러나 박씨는 철저하게 이익치 전회장을 주가조작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현대증권에서 2500억원 상당의 국내 현대전자 전환사채를 인수한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이익치 회장의 판단에 따라 매수된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
또 검사가 현대중공업 명의의 계좌로 현대전자 주가를 관리하게 된 경위를 묻자 “이회장은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할 때 가격도 조금씩 올려주라고 지시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진술을 더 들어보자.
“현대중공업 명의의 계좌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기 2∼3일 전쯤인 1998년 5월22일 이익치 사장이 사장실로 불러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산다는 연락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다’고 했더니 ‘곧 연락이 올 테니 연락이 오는 즉시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5월26일 현대중공업 정기송 재정부장으로부터 전화로 매수요청이 있고 나서 중공업의 매수요청 사실을 보고했다. 이에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매수요청한 현대전자 주식을 단가에 구애받지 말고 주가를 조금씩 올려가면서 정액을 차질없이 매수하라’고 지시했다. 이사장에게 ‘주가를 꼭 올려서 사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현대중공업이 살 때 주가가 올라가면 우리가 보유한 현대전자 CB(전환사채)를 빨리 다른 곳으로 넘길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특별히 현대중공업에서 무슨 이유로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말이 없었다.
현대중공업의 매수강도는 6월 중순부터 더욱 강해져 계속 보내오는 돈을 그날그날 당일에 소진할 경우 현대전자 주가가 너무 오르게 되고, 매매심리 및 시세조정 우려가 있을 것 같아 이사장을 찾아갔다. 내가 현대중공업 매수량을 줄이겠다고 보고하면 당연히 사장이 매수량을 줄이라고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익치 사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네가 뭔데 남의 물건을 다 사주지 않느냐’ ‘자기 돈으로 주식 사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쓸 데 없는 생각말고 중공업에서 보내주는 대로 매일매일 다 사줘’라며 역정을 냈다. 내가 이익치 사장의 지시를 받아 현대중공업 계좌로 현대전자 주가를 인위적으로 관리한 것이 사실이고, 위와 같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도 사실이다.”
현대중공업 자금을 관리한 이영기 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2001년 퇴직) 역시 이익치 전회장의 ‘권고’에 따라 현대전자 주식을 매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최근 이 전회장이 “정몽준 후보가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사용된 현대중공업 자금 1800억원을 핸들링했다”고 폭로한 뒤 잠적했다. 그는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는 미묘한 뉘앙스의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정후보는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해 “떳떳하게 나와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1999년 9월 이 부사장이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어떻게 진술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검사가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이부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1998년 5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본사 사옥 15층 이익치 사장 사무실에 찾아가 차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눴다. 그때 이사장이 ‘현대중공업은 돈이 많으니 현대전자에 투자하라’고 했다. 또 ‘현대전자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큰 돈도 벌고, 외자 유치가 진행중인데 외자 유치가 잘 되면 앞으로 주식이 좋아지니까 얼마든지 사도 좋으니 좀 많이 사두라’고 권유해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게 됐다.”
“현대맨이라는 각오로 진술 유지하라”
이영기 부사장은 이익치 사장의 권유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기로 결정한 뒤 박철재 이사와 협의,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몽헌 회장이나 정몽준 고문에게 현대전자 주식 매수건에 관해 지시를 받거나 보고를 한 사실이 있는지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사전이나 사후 보고를 한 사실이 없고, 전적으로 이익치 사장의 권유를 받고 투자했다”고 답했다.
검사의 다음 질문은 흥미롭다. 검사는 “현대중공업에서는 지금까지 현대중공업 정기송 재정부장의 건의를 받아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했다고 진술했는데, 이제 와서 현대증권 이익치 사장의 요청으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게 된 것이라고 말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왜 뒤늦게 이익치 사장을 걸고 넘어지냐는 질문이었다. 이영기 부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 회사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한 목적은 투자 차원이었는데, 만약 현대증권 이익치 사장의 권유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했다고 진술하면 우리 회사가 현대증권측과 짜고 현대전자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체적인 판단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어떤 논의가 있었길래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가담한 임원들이 모두 이익치 사장을 언급하게 된 것일까. 처음 계열사 임원들이 모여 논의했을 때 이익치 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자는 얘기는 없었다.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5개월 동안 누군가에 의해 입이 맞춰진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들이 진술한 대로 이익치 사장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지휘한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직답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임원들의 진술이 디자인됐다는 점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현대전자 관련 문제점, 파급효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대책회의의 결정판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문건에 따르면 대책과 파급효과에 대해 현대측은 3가지 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관련자들이 금감위에서 진술한 대로 검찰에서도 일관되게 진술하는 경우를 1안으로 삼고 있다. 관련 임원들이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대로 될 경우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측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는 것은 거의 명백하다. 이에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및 현대증권 관련자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를 면하고자 금감위에서의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며, 처벌조항도 증권거래법 제188조의 42항 1호(실제 거래에 의한 시세조정)가 아니라 위법 제188조 41항(통정매매 등 위장거래에 의한 시세조정)으로 확대될 것이다. 관련 처벌자의 범위도 예상외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진술자들은 검찰 조사에서도 ‘현대맨’이라는 각오로 원래의 진술을 유지한다. 이 경우 검찰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두 번째 안은 금감위 안을 다소 수정해 중공업과 상선측에서 친분이 있는 현대증권 박철재 상무(주가조작 당시 직급은 이사)에게 증권 매수에 관한 자료를 부탁하고, 이에 따라 박상무가 자문의 형식으로 ‘김대리(현대증권 매매 실무자)’에게 매매를 지시하는 경우다.
“박상무의 관련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여론이 시세조정의 주동자로 현대증권을 지목해 사회적 파동이 예상된다. 그러나 형사처벌의 범위는 박상무 선에 국한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현대상선이나 중공업이 왜 담당자인 법인영업부에 주식 매수에 관한 자문을 의뢰하지 않고 자산운용팀의 박상무에게 매수자문을 했는지 집중 추궁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박상무의 전력, 패밀리(정씨 일가-편집자)와의 관계, 맡은 바 업무의 성격을 파고 들다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나서 사건이 예상외의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에서의 탄로는 시간 문제이므로 차라리 2안은 채택하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 안은 의미심장하다. 박상무가 현대상선이나 중공업의 포괄적 위임을 받고 시세조정의 주동자 역할을 한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문건은 이 안의 효과와 대책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박상무에게는 4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현대전자 주작조작에 왜 현대증권 법인영업팀 대신 자산운용팀을 담당한 그가 관여했느냐다. 이는 중공업·상선·증권 3사간의 공모 가능성 및 패밀리와의 연결가능성을 제기하게 된다. 둘째, 왜 금감위의 진술에서는 관련자들이 그를 은폐하고 검찰 진술에서도 처음에는 이를 밝히지 않았느냐다. 이 역시 중공업·상선·증권 3사간의 공모 가능성을 제기한다. 셋째 그가 정몽준씨와의 대학 동창관계 및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패밀리와의 공모 가능성이 제기된다. 마지막은 현대증권이 시세조정을 주동했다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검찰 및 여론은 바로 현대그룹 전체가 조직적인 시세조정을 했다고 들고 나올 것이며, 이런 혐의는 설령 법정에서 무죄판결이 나오더라도 좋지 못하다.”
문건의 결론은 1안이 가장 타당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안의 관철 중에 설령 2안이나 3안으로 변경돼야 할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이나 사회적 파장에 있어서 처음부터 2안이나 3안으로 나오는 경우와 큰 차이가 없다. 우리 법체계상 수사단계에서의 허위진술은 처벌이나 형의 가중 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1안대로 진행되더라도 시세조정의 목적을 검찰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검찰은 김대리의 진술을 토대로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상선의 관련자들의 시세조정 목적을 자백받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제3의 관련자 개입 가능성에 관한 수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착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관련자들은 반드시, 어떠한 형사책임을 받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현대를 믿고 금감위의 진술대로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
이 경우 검찰은 제3의 관련자에 대한 의혹에서가 아니라 증권거래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2000억원이라는 거액을 1개 증권회사의 대리가 취급해 좌지우지하는 데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 경우 증권회사 법인영업부의 일반적인 업무처리방식, 즉 말단 대리라고 해도 기관투자가로부터 주문을 직접 받아 처리하며 본부장이나 팀장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김대리의 이 건 처리의 성격 즉, 이 건 업무는 현대증권의 업무신장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계열사의 주식 매수를 도와주는 업무처리의 단순성을 검찰에 직접 설명해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1안으로 인해 형사기소가 될 경우라 하더라도 전문변호인들의 조력으로 무죄가 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1999년 9월8일, 서울지검 조사실에서는 이익치 회장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회장은 검사가 “1998년 5월 말부터 11월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의 자금으로 현대전자의 주가를 관리한 사실이 있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술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현대증권 박철재 이사에게 지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에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할 때 주가를 관리하도록 한 사실이 있다.”
마치 현대중공업에서 매수하려는 행위가 먼저고 이회장은 단순히 관리만 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또 한편으로 그는 이영기 부사장을 찾아가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좋아질 것이니 현대전자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검사는 법인영업본부를 담당하던 노치용 이사에게 현대전자 주가관리를 지시하지 않고 자산운용담당인 박철재 이사에게 지시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익치회장에게 물었다.
이회장은 “박이사가 현대중공업 출신이어서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 주식을 매수할 때 주가를 관리하도록 지시했다”고 답했다. “현대증권이 현대전자 전환사채 2500억원어치를 보유했고, 현대증권 역외펀드에서 스왑거래로 보유한 현대전자 주식이 많아 현대전자의 주가를 관리했다”고도 털어놓았다. 또한 “박철재 이사에게 현대전자 주가를 관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으므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실무 책임자들의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 그가 사실상 단독범행임을 자백하는 순간이었다.
이익치 회장이 스스로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인지 정씨 일가는 모두 불기소됐다. 서울지검은 “정주영·정몽준·정몽헌·정몽구·정몽규·정몽근은 이익치의 범행에 의해 현대전자 주식의 시세가 상승한 뒤 피의자들이 보유중인 주식을 매도한 사실 및 상당한 이익을 취득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피의자들 중 가장 많은 주식을 매도한 피의자 정몽헌은 계열사 증자 참여를 위한 재원 마련 등 각자의 필요에 따라 주식을 처분한 것일 뿐 이 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범행을 부인했다”며 “이익치도 현대증권의 영업용 순자본비율 상승을 위해 독자적으로 범행한 것이지 피의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혀 범죄 혐의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룹 차원의 조직적 축소·은폐”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9년 9월8일, 서울지검 특수1부의 한 직원은 주임검사에게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관한 수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피의자 현대중공업 등에 대한 증권거래법위반 피의사건(현대전자 주식 시세조정)과 관련, 현대그룹측에서 금융감독원 조사시부터 변호인들의 조력을 받았다. 현대는 본건 조사에 대처하여 오면서 사실에 입각해 진술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고 여러 가지 안을 놓고 실무자선에 책임지도록 했다.
그리고 회사 경영진은 ‘각자의 진술을 불일치시키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되도록 진술하여 피고발인들의 책임이 모호하도록’ 범죄사실을 은폐·축소하려고 한다.
게다가 현대는 사건과 관련한 직원들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감사실로 불러 사전 각본된 답변내용에 따라 진술토록 지시하고, 조사를 받고 나면 이들을 다시 불러 검찰의 조사시 각본대로 진술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