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6일 선임, 10월18일 경질. 3개월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70일 천하’다.
- 그 70일 동안 박항서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43)은 ‘월드컵 4강신화의 공로자’에서 ‘아시안게임의 패장’으로 추락했다.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후 유럽 여행을 다녀온 그는 11월8일 신동아와 자리를 함께했다. 박 전 감독이 털어놓은 축구협회와의 갈등, 남북통일축구경기 벤치 사태의 전말, 협회와 기술위원회에 대한 고언 등을 수기 형식으로 정리한다(편집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상황이 안 좋았고 생각도 많았다. 그냥 서울에 남아 있으면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미워하거나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하지 않았던 패배의 아픔도, 빠른 경질의 고통도 간단치 않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가 이어졌다. 극에서 극을 달린 몇 개월을 보내고 난 느낌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왔다가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와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은 나로서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패장의 변명처럼 들릴 수 있으며, 면피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위원 같은 공식적인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이라면 논리가 서겠지만 지금의 박항서는 이도 저도 아닌 ‘백수’일 뿐이다.
그럼에도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은 지나간 몇 달 동안 대표팀이나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개인 박항서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지만 이번 일로 축구계의 행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부분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히딩크 만나 오해를 풀고
독일로 출발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난 사람은 다름아닌 히딩크 감독이었다. 경질이 되고 나자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우선 마음에 걸렸던 것은 9월7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 당시 감독님의 벤치 착석문제로 일어난 일련의 잡음, 이른바 ‘벤치사태’였다. 나에게 누구 못지않게 큰 영향을 끼친 분이고 함께 월드컵 4강이라는 큰 일을 해낸 분인데, 그렇게 떠나 보낸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님이 서운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꼭 찾아뵙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10월25일 네덜란드로 잠시 건너가 아인트호벤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뵌 히딩크 감독은 나를 무척이나 반겼다. 바쁜 와중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감독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벤치 착석 문제는 내가 뭐라고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남들 말에 신경 쓰지 말자. 당신과 나는 말이 필요한 사이가 아니지 않으냐. 우리는 영원히 함께 가야 할 형제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아시안게임 문제에 대해서는 “수고 많았다. 빨리 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최근의 한국축구상황, 정치적인 문제들, 선수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아도 히딩크 감독은 누구보다 한국축구를 둘러싼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일인 11월8일 이후에 귀국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독일에서 보낸 시간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또 한가지 경험은 쾰른체육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유럽 축구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일이다. 그들 또한 한국축구의 최근 상황이나 나의 대표팀 감독 경질 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한국축구가 월드컵 4강에 진출했는데, 당신이 보기에는 한국축구의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그만한 수준이나 여건이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할말이 많은 듯했지만 대표팀에서 경질되어 독일까지 날아온 내 앞에서 쏟아놓기는 민망한 모양이었다. 한국 축구인들이나 국민들의 시선은 높아졌지만, 해외에서 한국축구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서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누구 책임일까.
당초에는 8월10일경에 독일에 다녀오려고 했다. 연말까지 해외에 머물며 공부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에 7월 축구협회에서 연락이 와 면담을 가졌다. 아시안게임까지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많은 생각이 겹쳤다. 아시안게임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짧은 시간에 지나가듯 감독을 맡는 게 무슨 의미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주위의 충고가 이어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말린 것은 다름아닌 히딩크 감독이었다.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국제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감독님은 “그건 미친 짓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으냐. 절대로 맡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감독이 역량을 발휘해 팀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대회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최소한의 보장도 없지 않냐는 것이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기술위원회에 “아시안게임까지만이라는 조건이라면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독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자 8월6일 기술위원회가 열려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임기를 보장해 주겠다고 다시 제안했다. 운전 중에 협회의 제안을 들었다. 내가 한 말이 있었으므로 팀을 맡겠다고 승낙했다. 연봉이나 대우 등 세부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간의 관례와 관행에 따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감독 선임 결정은 기술위원회 소관이지만 계약은 행정을 담당하는 사무국에서 담당한다. 계약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협회에 들어가 남광우 사무총장과 마주앉았다. 당연히 구체적인 계약서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A4 종이 한 장에 담긴 설명이 전부였다. 계약조건도 그동안의 관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표팀 코치시절의 조건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선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세 이하 대표팀이 월드컵 대표팀과 다르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서로에게 예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상벌위원회에 청바지를 입고 가면 안 되듯 계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러 들어간 자리에는 세부 계약내용을 준비해주어야 옳은 것 아닌가.
연봉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을 두고 단순히 금액 문제로 기분이 나빴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기본 상식이라는 게 있다. 협회가 나를 감독으로 불렀으면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이 나를 선임했다면 감독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자리에 나온 개인이 박항서라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든 감독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옳다고 생각한다(당시 박감독이 요구한 금액은 히딩크 감독 이전 대표팀 감독의 연봉 수준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박감독에게 제시한 연봉이면 대표팀 감독을 할 사람이 줄을 섰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편집자). 그저 치사하게 돈 몇 푼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다.
“적당히 줘도 일할 사람은 널려 있다”는 발상을 협회가 계속 갖게 된다면 이는 축구인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우리가 월드컵을 통해 4강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위상이 올라갔다면 지도자들은 물론 축구협회도 위상이 올라간 셈이다. 그렇다면 축구협회의 시스템이나 일하는 방식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야 할 것 아닌가. 언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축구인들은 협회가 불러준 것에 감지덕지해야 하는가.
이후 내가 생각했던 금액을 제시하는 등 대화가 오갔지만 이미 감정은 상해있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기술위원장, 조중연 전무가 최종조건을 제의했다.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양자택일 하라는 것이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솔직히 염려가 앞섰다. 나 스스로는 명분이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바깥에는 돈 때문으로 알려질 게 뻔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차버리고 한국 축구의 앞길과 아시안게임 준비에 혼선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예상되었다. 협회는 거대한 조직이고, 나는 무력한 개인일 뿐이다. 혼자 힘으로는 협회의 언론플레이를 당해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고민 끝에 “차라리 무보수로 하겠다”고 말했다. 돈 문제로 싸운다는 말이 오가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코치들에게 월급이 지급된 후에도 협회는 내 보수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지금 와 생각하면 차라리 무보수로 일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왔다. 당초 보장받았던 아테네올림픽까지의 임기에 대해서도 다른 말이 들려왔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9월2일 첫 소집훈련을 앞두고 준비에 바빴다. 짧은 시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솔직히 암담했다. 남북통일축구경기를 비롯해 수재민돕기 자선경기,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 등 스케줄이 줄줄이 이어졌다. 3주동안 네 게임이니 경기하고 잠깐 쉬고 다시 경기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이 일정은 이미 감독에 선임되기 전에 결정된 스케줄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은 지나갔다는 것이 아쉬웠다.
대표팀 소집 후 닷새 만인 9월7일 남북통일축구가 열렸다. 그날 일어났던 이른바 ‘벤치파동’은 언론에서 지나치게 키운 측면이 있다. 나 또한 슬기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위원장이 나에게 말을 잘못 전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는 협회에서도 사실로 밝혀졌다. 기술위원장은 나에게 공식적으로 의사를 묻거나 통보한 일이 없다.
원래 남북경기는 경기 그 자체보다 의미가 더 중요한 자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기는 운동장에서 전개된다. 대표팀이 아무리 협회 직속팀이지만 운동장에서만큼은 감독의 권한을 전적으로 인정해줘야 옳다. 히딩크 감독이 함께 벤치에 앉는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박항서도 아니다. 최소한 내게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기술위원장이 내게 이야기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설마) 거기 앉겠어?”라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양해나 사전통보라고 받아들이지 않은 내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걸 사전통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일까.
그 사소한 문제가 오해를 낳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협회는 승낙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인 9월6일 파주 트레이닝센터로 몰려온 기자들에게 “승낙한 적 없다”고 이야기하니 “저 사람은 왜 딴소리하느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계약문제로 가뜩이나 감정을 상한 마당에 오해가 불거지니 불이 크게 번질 수밖에 없었다. 경기 당일 히딩크 감독과 나의 ‘불편한 만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나의 감독 임기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떠돌았다(9월9일 남광우 사무총장은 기자들에게 “아테네올림픽까지의 임기문제는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다시 상의할 것”이라고 말해 박감독의 임기를 사실상 무효화시켰다-편집자).
이건 아니다싶었다. 내 생각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기자들 앞에 섰다. 적어갔던 메모지 한 장은 성명서라 보도됐고 이후 협회는 나의 행동을 ‘항명’이라 표현했다(9월10일 조중연 전무는 감독 임면에 대해 공식권한을 갖고 있는 기술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감독 경질 가능성을 시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날 오후 열린 기술위원회는 박감독에게 ‘엄중 경고’조치를 내리는 한편 조속한 시일 내에 정식 계약을 맺으라는 요구를 협회에 통보했다-편집자). 무슨 이유에선지 기대와는 달리 언론보도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달되기 일쑤였다. 더 이상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꿈★은 무너지고
우여곡절 끝에 아시안게임은 다가왔다. 국민 모두가 당연히 우승할 거라고 기대하는 상황이었다. 우승해봐야 본전이고 우승하지 못하면 혼자서 덤태기를 써야 될 거라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 역시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흔치 않은 기회였고, 그 기회를 누린 사람답게 나에게 책임이 주어진 이상 피하지 않고 싶었다.
나의 팀 운영에 대해 “히딩크 흉내만 낸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그에게 배운 것들을 활용하려 한 것은 사실이다. 잘 연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시안게임 중에도 히딩크 감독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가 감독이 된 것도 히딩크에게서 배운 노하우를 잘 써먹으라는 뜻 아니었던가.
막상 대회에 임하자 선수들이 처음과 달리 빠른 속도로 적응해 갔던 것도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준결승이나 결승에서 한번쯤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송종국, 차두리 등 해외에 나가 있는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한 것도 불안한 요소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불참한 상황에 대진표상 가장 큰 고비는 이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미리 이란팀의 전력을 분석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이란에 무릎을 꿇었다.
경기가 끝나고 모여서 분석을 해보면 이긴 경기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짧은 시간에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뭉쳐 제대로 전술을 구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구나 싶다. 미리 스케줄을 좀더 치밀하게 검토해 경기 수를 조절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9월2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 집결해 훈련하고 있는 박항서 당시 감독과 축구대표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선수들이 받는 임금, 협회의 지원규모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팀 또한 23세 이하 대표팀이다.
그러나 초반에 나와 협회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상황이 예전과 달랐던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협회의 특정인이 나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지원을 소홀히 했다면 이는 직무유기다. 이를 막지 못한 협회 또한 직무유기다. 나나 대표팀에 최선을 다했는지는 그들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면 알 것이다.
개인 박항서가 미워서 대표팀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축구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그런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코치들도 모두 알고 있다. 세부적인 사항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감독으로서 협회에 요청한 사항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몽준 회장이 직접 협회 관계자들에게 “박감독이 요구하면 다 들어주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일은 제대로 풀려나가지 않았다.
기술위원회는 아시안게임 중의 경기내용에 대해 “월드컵 때의 선수들과 너무 달랐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2년을 함께한 선수들과 3주일을 함께한 선수들을 단순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원장이 감독 경질사유로 든 전술부재, 선수 장악력 부족 등의 평가는 이번 대회 한 번, 단 3주간의 훈련으로 내려진 것이었다. 아테네올림픽까지 기회가 더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감독에 임했던 나로서는 수정·보완할 틈도 없이 단판으로 끝나버린 평가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히딩크 감독이라면 그 3주동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기술위원장도 3주동안 위원장 직무를 수행하다 통솔력 부족 등의 이유로 해임되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기술위는 왜 협회에 흔들리나
협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감독을 선발하는 공식기구는 기술위원회다. 따라서 위원장은 협회로부터 자신이 결정한 감독을 보호하는 든든한 벽이 되야 한다. 협회의 벽이 돼서는 안 된다. 물론 감독이 과하다 싶으면 설득해 함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기술위원장 몫이다. 협회와 팀 감독 사이의 접점을 찾고,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 요청하는 것이 기술위원회가 할 일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감독을 위해 싸워주기도 해야 한다.
기술위원회 위원들도 대부분 축구 지도자들이다. 모두 축구를 발전시키고 좋은 성적을 내기 바라는 사람들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간섭과 지원은 다르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에 간섭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어떻게 지원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조직이다.
지난 월드컵 준비기간에 기술위원회는 선수 선발 등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감독의 캐릭터나 계약조건 자체가 그런 것을 허용하지도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바로 지원이다. 감독을 믿고 지켜보고 오해가 생기면 풀어주는 것이 바로 기술위원회가 택해야 할 지원 방법이다.
기술위원회에도 상급기관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위상은 위원회 스스로 지켜야 한다. 위상을 지키려면 자신이 내린 결정사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의 권한을 침범하면 엄중히 지적하고 항의하는 자세도 보여주어야 한다. 기술위원회가 흔들리면 대표팀이 흔들리고 대표팀이 흔들리면 한국축구가 흔들린다. 누구보다 위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용수 위원장은 히딩크 감독이 정말 어려웠던 시기에 감독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줬다. 현 김진국 위원장이 그런 몫을 제대로 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란전이 끝나고 나서 사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미 엄중 경고라는 징계는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협회에서 정식계약에 대해 별다른 얘기가 없는 것만으로도 내가 물러나길 바란다는 것은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계속 하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계약서를 들고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언제나 그랬듯 경질문제를 두고 기술위원회 입장과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10월15일 김진국 기술위원장은 “이미 2004년까지 감독을 맡는 것으로 결정한 바 있고, 감독이 실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해 박감독의 유임을 시사한 바 있지만, 기술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0월17일 조중연 전무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성적이 나쁘면 경질을 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편집자).
협회가 원하는 대로 사퇴를 할까 생각했다. 협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사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자진사퇴는 안 하겠다는 게 내 결심이었다. 경질과 사퇴는 다르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퇴가 모양새는 더 좋을 수 있고 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나았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위원회였다. 분위기가 어떻든 위원회가 공식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위원회의 권위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협회의 다른 목소리가 아닌 기술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싶었다. 기술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협회의 다른 관계자가 이렇게 될 것이다, 저렇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었다. 솔직히 대표팀 감독 자리에 계속 있어봐야 힘들기만 할 것이 뻔했다. 그 상황에 유임이 결정된다 한들 무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당시 신문지상에는 ‘미운 털’이라는 표현이 오르내렸다.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항명이라고 받아들였다면 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요소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예의를 지키지 않은 부분은 없다고 확신한다. 내가 협회보다 먼저 언론에 떠들어대 문제를 키운 것도 아니다. 단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그게 왜 항명이라는 것이며, 내게 왜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일까.
10월18일 오후 기술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감독 경질을 결정했다. 결국 정식계약도 하지 못한 채 2개월 십수일 만에 물러나게 된 셈이다.
정치는 정치, 축구는 축구
히딩크 감독을 만났다고 하니 그가 축구협회 기술고문역을 맡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본인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는 이가 많다. 나는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앞으로 축구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그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고 싶다. 히딩크 감독은 꼭 월드컵 4강의 영웅이어서가 아니라도 기술고문으로 모셔와야 할 만한 장점과 역량이 있는 훌륭한 감독이다. 그만큼 한국축구를 잘 아는 이가 또 누가 있는가.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지금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기술고문을 맡기고 2006년 월드컵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상황이 무르익어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건설적이다. 그러나 왜 협회는 지금 당장 히딩크 감독을 남북축구 경기 벤치에 앉히고 기술고문을 맡긴다고 말하고 2006년 대표팀 감독 복귀 얘기를 꺼낼까. 나는 그것이 정치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미리 전제를 해두고 그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은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복귀 여부는 전적으로 히딩크 감독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오는 것도 아니다.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 기술위원회가 결정하고, 그가 수락하면 그걸로 끝이다. 왜 미리 시끌벅적 얘기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가.
정치는 정치고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초점을 정치에 두고 축구를 생각하면 국민들도 염증을 느낀다.
얼마전 한 축구전문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응답자가 “히딩크 감독의 복귀를 반대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히딩크 감독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 복귀라는 문제가 정치에 이용되는 상황, 정치적인 행보에 따라 조정되는 현실에 거부감을 갖고 있을 뿐이다.
염증을 느끼는 것은 히딩크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의 움직임은 감독님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선에 출마하는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을 위해 히딩크 감독을 이용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히딩크 감독 또한 “정치는 싫다”고 딱 잘라 말할 만큼 현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11월20일 브라질과 겨룬 친선경기 참관을 위해 한국에 다녀간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히딩크 감독 본인의 언급이 있을 것으로 본다.
정몽준 회장이 축구에 대해 각별한 열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시키며 일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문제를 야기하고 축구의 본질이 퇴색하는 것이다. 축구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선이 끝나고 내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뿐일까.
월드컵으로 일었던 축구 붐이 싸늘하게 식었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시안게임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찬물을 끼얹은 감독으로서, 협회와의 갈등문제로 팬들에게 좋지 않은 모양을 보여주었던 당사자로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협회나 프로연맹의 행정에도 문제가 있다.
한국축구가 살려면 프로리그가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좋은 선수들이 빨리 수급되어야 한다. 이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해 장기적인 플랜을 짜고 그에 맞춰 정책을 세워나가는 것은 누구의 일인가. 당연히 축구협회 행정가들 일이다. 그들은 과연 그 몫을 하고 있을까.
사실 한국에서 대표팀 감독이 된다는 것은 싸운다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의 가장 큰 적은 상대팀이 아니라 주위의 시선이다. 히딩크 감독이 있는 동안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대표팀 감독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어서라기보다는 히딩크 감독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언론도 기업체도 히딩크 감독이 이전 지도자들과는 달리 학연·지연에 신경 쓰지 않고 선수를 선발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안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 지도자들이 그랬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도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다르다. 그 감독이 왜 그 선수를 선발했는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명을 듣거나 지켜보면 분명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차두리나 김남일이 선발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충분히 자기 몫을 해냈고 그 덕분에 한구 축구는 새 별들을 얻었다.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차두리의 분데스리가 진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이 미치지 않고서야 섣부른 지연·학연에 이끌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선발할 이유가 없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경우 쏟아질 비난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는데, 무슨 배짱으로 실력이 부족한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하겠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연히 최고의 팀을 꾸리고 싶은 것이 축구인들의 욕심이다. 그걸 인정하거나 믿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령 감독에게 선입견이 있다 해도 코치들이 있다. 1994년 김호 감독과 미국 월드컵에 다녀왔을 때나 히딩크 감독과 일한 이번 대회에서나 그런 문제로는 시비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팀 감독은 항상 그런 오해의 여지와 의심의 시선에 둘러싸여 있다. 축구계, 언론, 팬들 모두 꾸준히 지켜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감독을 비난한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보면 비판할 만한 꼬투리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히딩크 감독이 처음 얼마나 많은 비난에 시달렸는지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외국인인 그도 그랬는데 다른 지도자들은 오죽하겠는가. 국내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걷히지 않는 한 감독이 제 구실을 하기는 쉽지 않다.
나 같은 불운 다시 없기를
그 동안의 일들에 관해, 축구계와 협회에 관해 정리했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거듭 말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책임은 분명히 나에게 있다. 아시안게임 실패는 아직 때가 아니었나 보다, 아직 내게는 벅찬 일이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언제건 어디서건 나에게 맞는 자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어떤 자리가 됐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축구협회와 다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축구협회에서 미운 털이 박힌 나를 불러줄 리도 없거니와, 불러준다 한들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한가지 걱정이 된다면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축구협회를 벗어나 축구와 관계된 일을 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지만, 축구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일을 통해 축구협회의 행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다.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한 사람은 박항서 하나로 족하다. 나 같은 불운한 대표팀 감독, 이번 같은 불행한 경우가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