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최근 내놓은 ‘강북 뉴타운 개발’ 등 일련의 야심찬 서울시정 계획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언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이시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일단의 전문가들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가세했다.
- 그러나 서울시의 반응은 “근거없는 비판론일 뿐”이란 강변. ‘장밋빛 기대’로 충만한 이들 계획의 허(虛)와 실(實)은 무엇인가.
10월21일 ‘마곡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10월23일 ‘강북 뉴타운 개발’, 10월28일 ‘서울시정(市政) 4개년 계획’ 등 한꺼번에 쏟아낸 굵직굵직한 각종 계획들로 인해 시민들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뉴타운 개발 시범지구로 선정된 지역들의 땅값이 치솟으면서 투기조짐마저 이는가 하면, 연말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선 미묘한 시정계획 발표시기는 여야간 정치쟁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시정계획은 전임 서울시장들도 취임 이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큰 논란으로 번진 예는 없다. 그렇다면 언론과 전문가들은 왜 하필 이시장의 시정계획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이는 뉴타운 개발계획은 물론 서울시정 4개년 계획(2002∼06년)에 포함된 내용들이 가위 서울을 ‘개조(改造)’하는 수준의 야심찬 계획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비전 서울 2006’이라 명명(命名)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은 ‘20대 중점과제’를 바탕으로 청계천 복원, 도심광장 조성, 서민용 임대주택 10만가구 건설, 뚝섬공원 조성 등 파격적 사업계획들을 망라해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서울을 ‘세계 일류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이시장의 이런 계획들은 과연 비판받아 마땅한 것일까. 말 많고 탈 많은 이 계획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문제점들을 내포한 것일까.
이번 논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이번 계획의 모태(母胎)는 이시장 취임 후 발족한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 학자,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 등 60여명이 위원으로 참여한 이 위원회가 10월 중순 활동을 종료하며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이다.
‘이유 있는’ 전문가 비판
이 계획에 대해 서울시는 “이시장이 4∼5년 이상 준비기간을 거쳤고,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가 완벽하게 검토한 후 발표한 것이므로 임기 개시 4개월 만에 나온 즉흥 계획이란 비판은 어불성설”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쏠린다.
당시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 위원이었던 한 인사의 말. “서울시는 ‘위원들과 서울시청 실·국장들이 함께 60여 차례 토의를 거쳤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체 위원들이 모여 토의한 적은 거의 없다. 각 소(분과)위원회별로 따로 모인 횟수가 연(延) 60여회쯤 된다. 위원들이 한 일은 이시장의 선거공약을 포장해 시정계획 수립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가 시정혁신·도시발전·환경·교통·안전·복지·주거·경제·문화관광 등 각 분야에 따라 1∼9위원회로 나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완벽한 검토’라는 서울시의 주장과는 달리 ‘느슨한’ 부분이 분명 있는 셈이다. 더욱이 위원회의 검토는 어디까지나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생략된 내부회의일 뿐이다.
서울시는 또 “시정계획은 모두 6·13 지방선거 당시 이시장의 공약사항들을 수정·보완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잠시 공약집을 보자. ‘서울 신화 창조를 위한 서울 경영 보고서-1000만 서울시민과의 약속’이란 제목의 이시장 공약집엔 뉴타운 개발계획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공약집 13쪽에 ‘강남·북 주거격차를 해소해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요지의 추상적 표현만 들어있을 뿐이다.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다루기 힘든 선거공약의 특성상 대강의 줄기만 잡은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공약에 일언반구도 없던 뉴타운 개발계획이 취임 후 불과 4개월 만에 구체화돼 튀어나온 것을 두고 4∼5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게다가 각기 날짜를 달리해 발표된 뉴타운 개발계획과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은 사실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몸’이다. 서울시가 제작한 ‘비전 서울 2006’ 책자를 보자. 뉴타운 개발계획은 시정계획을 두루 소개한 이 책자 5∼7쪽에 걸쳐 언급된 내용이다. 즉 시정계획 중 일부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각기 별개의 계획처럼 따로따로 발표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시 강승규 공보관(40)은 “뉴타운 개발계획은 관련기사가 남발될 경우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핵심사안이어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 일정시기에 발표하기로 협의한 뒤 다른 계획들과 분리해 앞서 보도한 것”이라 해명한다.
뉴타운 개발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당측은 10월31일 뉴타운 계획을 겨냥해 “100만㎡ 이상 개발하려면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사전절차가 없었다”고 몰아붙였다. 개발면적이 359만3000㎡인 은평뉴타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건교부 도시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가 뉴타운 개발 실행단계가 아닌 계획 수립에서부터 건교부와 사전협의할 의무는 없으며, 협의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도시개발의 성격상 서울시의 이번 계획들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여운을 남겼다.
어쨌든 계획 수립과정에는 절차상 하자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비판은 이런 절차상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시정 4개년 계획엔 ‘20대 중점과제’ 해결을 위한 사업계획이 많지만, 우선 ‘간판사업’격인 뉴타운 개발계획부터 살펴보자. 알려진 대로, 왕십리뉴타운(성동구 상왕십리동), 은평뉴타운(은평구 진관내·외동), 길음뉴타운(성북구 길음동) 등 강북지역 3곳을 시범지구로 선정, 기존 민간 주도의 주택재개발 방식을 탈피한 ‘뉴타운 개발방식’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며, 2006~12년까지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게 이 계획의 골자다.
이는 강남·북간 불균형 개발에 따른 각종 도시 생활인프라의 수급 불균형이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원인이란 인식 하에 도로·학교·공원·주차시설 등 도시기반시설을 공공이 직접 조성해 계획적으로 도시를 정비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강북 주민들은 물론 환영 일색이다. 서울시는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한 듯 서울시민 70% 이상이 뉴타운 개발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뉴타운이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한다. 제대로 된 뉴타운 개발을 위해서는 최소한 준비기간만 3∼4년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신여대 권용우 교수(54·도시지리학·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대표)는 “뉴타운 개발시 도로·학교 등 기반시설을 넣기 위해선 토지수용이나 환지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보상가 등을 둘러싼 갈등이 필연적이어서 개발기간을 10년 정도로 여유 있게 잡아야 하지만 뉴타운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권교수는 또 “공청회 등으로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조급하게 뉴타운 개발계획을 마련해 교통, 원주민 이주대책 등 여러 면에서 개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뉴타운 3곳의 개발사업을 2012년까지 각기 3단계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추진하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서울시의 답변이다.
또다른 비판의 축은 이시장이 공약과 서울시정 4개년 계획에서 공히 제시한 ‘사람 중심의 편리한 서울’이란 비전과 달리, 뉴타운 개발계획에선 ‘사람에 대한 배려’가 희박하다는 데 있다. 공공 주도라고는 하지만 지역역량 개발보다는 물리적 사업에 치우쳐 있다는 것.
이시장과 서울시는 낙관론자
서울시는 부동산 투기가 우려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시장의 공약 중 하나가 강남·북간 경제격차 해소”라며 “강남 평균 땅값이 평당 3000만원에 이르는 반면 강북은 평당 500만원에 불과한데 땅값이 좀 오르면 어떠냐”는 반응이다.
서울시는 뉴타운 계획은 ‘개발’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 강조하며 언론에 ‘개발이란 표현을 삼가라’고 불만을 털어놓지만, 사실 ‘뉴타운 개발’이란 표현은 서울시가 ‘비전 서울 2006’ 책자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런 논란의 와중에도 이미 발표한 3개 뉴타운 외에, 2012년까지 강남을 제외한 서울전역에 뉴타운 29개를 더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가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숭례문·시청앞 등 3곳에 2005년까지 1만8000여평 규모의 시민광장을 조성한다는 도심광장 조성계획에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복잡한 도심에 광장을 만들면 교통대란이 빚어질 게 불 보듯 뻔한 데 이를 해결한 방안이 있냐는 것.
이런 비판에 대해 서울시는 “도심광장 중 시청앞 광장은 전임 고건 시장 재임시절 이미 시뮬레이션을 거쳐 결정한 사항”이라며 “이를 위해 기존 교통운영체계를 대중교통 위주로 조정하고 일방통행제 실시 등 일련의 교통대책을 마련해 교통흐름을 최적화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하겠다’는 내용뿐 ‘언제 어떻게’는 빠져 있다. 시민의식의 성숙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비판의 초점은 시정계획 달성의 관건인 재원조달에도 맞춰져 있다.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을 2006년까지 집행하는데 소요되는 금액은 14조9305억원. 대중교통체계 개선에 4조7683억원, 지하철건설부채 50% 감축에 3조3667억원, 임대주택 10만가구 건설에 1조6468억원, 강북 뉴타운 개발에 9337억원, 청계천 복원에 3754억원이 각각 필요하다.
서울시는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하다는 건 기우(杞憂)”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필요한 재원은 향후 4년간 서울시의 총예산 54조9000억원 중 경직성 경비 및 법정 의무경비인 24조6000억원을 뺀 사업비 24조9000억원에 포함된 통상 예산으로 충당하면 되므로 별도 재원이 필요없다는 것.
이와 관련해 ‘비전 서울 2006’ 68쪽엔 ‘4666억원의 부족재원이 발생하나 실 예산편성시 20대 중점과제 투자비 중 일부가 삭감될 것으로 추정’이라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재원조달이 어렵다고 자인한 내용 치곤 상당히 낙관적인 전망이다. 어쨌든 ‘경영마인드’ 도입으로 재원확보가 가능하다는 게 이시장의 생각이다.
청계천 복원에도 추가사업비가 들 것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성신여대 권용우 교수는 “시가 추산하는 3754억원으로 청계고가도로를 허물고 청계천에 물을 흘려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낙후된 인근 상가를 정비하지 않은 채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적 복원이라 할 수 있느냐”며 “물리적 복원을 넘어서려면 청계천 복원엔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더욱이 청계천 복원은 2005년 완공 목표로, 내년 하반기엔 본격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라면서도 올해 기본계획을 마련해 내년초 시민의견 수렴과 전문가 자문절차 등을 거치기로 하는 등 더딘 행보를 보이는 형편이다.
다른 시정계획들과 달리, 마곡지구 개발계획엔 조금 미묘한 측면이 있다. 강서구 마곡동·내발산동·외발산동·가양동 일대 121만평 규모(여의도 면적의 1.3배)인 마곡지구는 조순 시장 재임시절인 1997년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며 후대를 위해 2011년까지 개발 유보지로 남겨둔 곳.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미개발지구다.
그러나 이시장이 10월21일 마곡지구 신도시 조기개발을 시사한 데 이어, 서울시는 11월7일 마곡지구 개발시기를 ‘이시장 임기말쯤’으로 못박았다.
마곡지구 개발은 이시장이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은 사항. 때문에 “이시장이 유권자들이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대규모 개발을 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공약에서는 당연히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1997년 당시 도시기본계획(상위계획)에서는 마곡지구를 개발 유보지로 정했으나 하위도시계획에서는 여전히 ‘시가지조성사업지구’(서울시가 1994년 9월 ‘5대 전략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지정했다)로 지적고시해두는 바람에 상하위계획간 불일치가 생겼다는 것. 그후 2000년 12월 강서구가 막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고시했으나 법적으로 2003년 12월까지만 토지형질변경과 일반 건축물 건립이 금지된 터여서 이후 토지소유주의 막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체계적인 종합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시장이 취임 후 그런 사실을 알게 돼 그동안 강남·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온 서남권(西南圈)을 다른 지역과 형평을 맞춰 균형개발하려는 취지”라며 “그러나 아직 기초용역결과가 나오진 않았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란 얘기다.
“이시장이 ‘포스트(post) 이회창’을 꿈꾼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서남권 30여만표가 특정정당으로 굳어졌다” “인근 발산지구에 대규모 임대주택단지 조성계획이 발표되자 강서구 주민들 반발이 너무 거세 마곡지구를 풀게 됐다”는 등 세간의 의혹도 마곡지구 개발을 비켜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마곡지구 개발은 한 경제신문과 이시장간 인터뷰에서 처음 얘기가 나와 10월21일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는 군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서울시의 해명처럼 비록 마곡지구 개발이 이시장의 ‘의지 표명’에 불과하더라도, 정작 의문은 그런 ‘의지’를 왜 굳이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종합개발계획도 없이 내놓은 ‘방침’은 ‘선심행정’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원 조성계획엔 이견 없어
한편으로는 이렇게 비판하면서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시장의 대규모 공원 조성계획에 대해선 반대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 되레 환영하는 분위기다. 뚝섬 일대 35만평과 서초구 정보사령부 부지 5만5000여평에 공원을 조성해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전임시장의 개발계획들을 뒤엎은 것으로 볼 수만은 없는 친환경적 계획이란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일각에선 뉴타운 개발에 따른 비난을 중화(中和)하기 위해 전임시장이 세운 계획을 백지화하면서까지 녹지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 하지만, 뚝섬과 정보사 부지 두 곳 모두 시유지가 대부분인 만큼 비판의 설득력은 약하다.
뚝섬 일대는 1989년 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전한 후 뚝섬종합개발(1995년)-서울시청사(1996년)-LG 야구구장(1998년)-문화관광타운(2001년) 등 이런 저런 개발계획이 난무하던 곳. 서울시는 이 뚝섬지역에 4489억원을 투입해 한강변의 특성을 살린 대형 테마공원을 꾸민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시정 4개년 계획에 허점이 많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10월23일 뉴타운 개발계획 언론브리핑 장면
녹색연합 유상오 녹색도시위원장은 “시정계획 대부분이 건교부, 재경부, 기획예산처, 행자부 등 유관기관과 조율 없이 발표된 것이긴 하지만, 정보사 부지의 경우 생태분석지도상 1등급에 해당하는, 대단히 좋은 입지로 보전하는 게 마땅하므로 이시장이 그나마 소신 있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시장의 시정계획이 비판받는 또다른 이유는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과 쓰레기 소각장 광역화 등 시민생활과 직결되는 시급한 현안들이 아예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문제는 고건 전 시장 재임시절 서울시가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로 착공도 못하고 보류된 사안. 급증하는 화장(火葬) 수요를 위해 원지동 일대 5만여평에 화장로 20기를 갖춘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오히려 서울시는 이시장 취임 이후 소규모 화장장과 납골당 등 장묘시설을 시내 곳곳에 건립할 방침을 밝히는 등 전임시장 때와는 상반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표류중인 쓰레기 소각장 광역화도 조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시정계획에서 배제됐다. 내용은 2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건립한 소각장 3곳(강남·노원·양천)의 가동률이 30%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건립 당시 서울시가 ‘1구 1소각장’ 원칙에 따라 ‘다른 구의 쓰레기는 처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주민들에게 해서 빚어진 현상인데 문제는 쓰레기 배출량 예측을 잘못했던 것. 이 때문에 나머지 구(區)들은 남아도는 인근 구의 소각장을 놔두고 인천 수도권매립지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문제들이 시정 4개년 계획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혐오시설 등 골칫거리 사안들을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에 참여했던 단국대 조명래 교수(47·도시계획학)는 “추모공원이나 쓰레기 소각장 문제를 시정계획 중 하나로 다루기로 했다면 마땅히 내가 속한 3위원회(환경) 소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나 녹지 관련계획들을 주로 다뤘을 뿐, 그 문제들은 3위원회 에서조차 한번도 거론되지 않아 의아했다”고 털어놨다.
비인기 행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전임시장과 차별화를 꾀하는 이시장의 독특한(?) 행정스타일을 시사하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서울시에 주요 환경정책을 제시하는 시 산하 자문위원회인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시민·기업·서울시 3자의 파트너십 기구. 이 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중 1명은 서울시장이다. 이시장 취임 후 열린 이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위원의 얘기.
이시장의 행정 독주
“위원회가 열린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이시장에게 ‘난지도 골프장 건립 문제를 재고해달라’고 했다. 이시장의 답변은 너무도 간단명료했다. ‘나는 전임시장이 한 일에 다시 손대고 싶지 않다’.”
11월7일 서울시 김병일 지역균형발전추진단장이 한 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은 이시장에 대한 찬사 일색이다. 그중 일부를 보자.
‘서울시의 경우에도 민선1기 시장부터 줄곧 ‘경영시정’ ‘수요자 중심 시정’ ‘고객만족 시정’ 등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했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고자 여러 측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제시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경영시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명박 시장의 몸에 밴 민간경영원칙과 기법이 시정에 직접 반영되면서 서울시의 철밥통 세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서가 1만여명에 달하는 서울시 공무원(본청 및 사업소) 모두의 것은 아니란 점이다. 11월8일 서울시청공무원직장협의회는 김단장의 글에 대한 반박문을 협의회 홈페이지에 올려 그의 주장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화려하지만 세부계획은 미비한’ 시정계획이 나오게 된 배경엔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시장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스타일이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뉴타운 개발계획과 관련해 실무를 맡은 한 고위간부가 원주민 정착 여부가 불확실한 뉴타운 방식이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시장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다는 얘기가 시청 내외부에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시장은 지난 8월 자신의 승인을 받지 않은 교통정책을 사전협의 없이 발표했다는 이유로 교통관리실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모조리 물갈이한 바 있다. 서울시청의 한 직원은 “당시 외부로 발표된 내용은 신규업무가 아니라 그야말로 ‘루틴(routine)’한 업무와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다”고 털어놨다.
서울시 과장급(4급) 이상 간부직원 230여명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2박3일간 합숙시키며 경영마인드를 불어넣는 교육을 실시하는 등 경직된 관료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이시장의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이 자칫 권위적으로 비칠 수 있는 ‘위로부터의 주입’이란 점이다. 서울시청공무원직장협의회 관계자는 “이시장 취임 후 시청사에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상하간 대화가 실종된 점”이라며 “행정 스킬(skill)이 부족한 이시장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꺼내면 ‘나쁜 사람’으로 매도당할 정도여서 직언(直言)하는 간부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지금 시청 내부엔 언로(言路)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시정계획을 둘러싼 우려는 계획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집행부인 서울시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서울시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한다.
서울시의회 의원 102명 중 민주당 소속 14명, 민주노동당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이런 구도로 보면, 역시 한나라당 소속인 이시장을 서울시의회가 제대로 견제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자칫 시정이 정치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는 셈이다.
뉴타운 개발계획과 관련, 이성구(60·서초구1·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장은 “사업계획 수립과정에 지역적 여건과 주민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합리적·점진적으로 추진한다면 뉴타운 계획은 실현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도심광장 조성은 청계천 복원 완료 후 재검토하는 게 도심 교통소통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또 “서울시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벌인다고 생각되는 측면이 있어 구체적 개발계획들이 의회에 접수되면 추진과정이나 예산확보상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따지겠다”며 “집행부와 의회는 그 기능이 다르므로 서울시의회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점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이의장의 말처럼 시의회의 집행부 견제가 순조로울지는 의문이다. 민주당 소속의 한 시의원은 “의원들간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특별관리한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귀띔했다.
공약(公約)은 공약(恐約)이 아니다
일부 언론이 이시장에게 ‘불도저 시장’이란 닉네임을 붙일 만큼 시정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이시장은 11월7일 한 일간지에 실은 ‘개발이 아니라 균형발전’이란 제목의 기고문에 ‘물론 지역균형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변화는 고통스럽다. 그리고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성원이 있는 한 서울시는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가뜩이나 취임 직후 인기를 의식한 즉흥적 정책 발표가 잦다고 지적받은 바 있는 이시장이 ‘개발’이란 용어에 지나치리만치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그의 ‘개발론자’ 이미지는 좀체 희석되지 않는다. 비판자들은 “시정계획의 발상은 참신하지만, 각종 계획의 집행단계에서 주민 반대나 이해관계와 부딪칠 경우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결여됐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바로 여기에 이시장의 CEO식 행정스타일이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광범위한 여론수렴은 외면한 채 ‘하면 된다’식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정계획에 대한 비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어지는 비판여론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이시장과 서울시가 언론에 난타당하는 건 시정계획 수립단계에서 소외된 일부 학자들이 ‘근거없는’ 비판론을 제기한 때문으로 ‘추정’한다”는 ‘근거 없는’ 불만까지 털어놓을 만큼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는 “계획에 대한 검증과 평가는 실행단계에서 하는 것 아니냐”고 강변한다. 물론 그 말은 맞다.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의 성공 여부는 어차피 이시장 임기가 끝나는 2006년까지는 판가름난다.
이시장의 의욕과 추진력을 폄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계획들이 졸속일 경우 파생되는 부작용은 서울시민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날아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정운영이라기보다 도박(賭博)에 가깝다. 이시장이 유난히 강조하는 ‘경영마인드’란 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