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사바나

“어떤 의미에서는 정유라보다 더 나빠”

2030세대 공정 강조하던 조국 후보자의 딸 논란에 실망과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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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8-23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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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몇 해 전, 그렇게도 싫어하던 운동과 시위에 동조하고 광화문에 나가 큰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친 것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 광장에 한 번이라도 나가 소리를 지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공정하고 평등한 대한민국이 시작될 것이라고, 좌우를 떠나 올바른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약 2년 반이 넘게 흐른 지금 그 염원은 처절한 실망으로 바뀌는 중이다. 좌우를 떠나 올바른 정치를 하라고 명받은 이들은 지난 2년간 누구보다 더 교활한 프레이밍을 이용해왔다. 수년 동안 조 선생님께서 올바름에 대해 얘기해왔지만 조국 씨는 전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8월 22일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게시 글이다. 지난 대선 젊은 세대 대다수는 문재인 후보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실세로 보이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에 대한 입시 및 장학금 부정 수급 의혹이 불거지자 그 지지는 싸늘히 식었다. 조 후보자와 딸의 출신 모교에서는 집회까지 열리고 있다.

    정유라 사건보다 상대적 박탈감 더 심해

    고려대는 8월 23일 오후 6시 교내 광장에서 조 후보자의 딸 조모(28) 씨의 입시 과정 문제점을 제기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학교 측이 처음에는 조씨가 고교 시절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등이 입시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조씨의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로 추정되는 문건이 발견됐다. 해당 문서에는 논문 이력이 전부 적혀 있었다. 이에 고려대 학생들은 조씨 입학에 대한 의혹을 학교 측이 소상히 밝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대 학생들은 같은 날 오후 8시 30분 서울대 교내 광장에서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및 교수직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서울대 집회 주최 측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2주간의 인턴 기간 동안 병리학 논문 제1저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냐’고 따졌다 이어 ‘(조국) 교수님의 자제분께서는 우리 학교 환경대학원에 진학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지원하는 관악회 장학금을 2학기 연속 수혜받고, 의전원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냐’고 되물었다. 

    일각에서는 왜 조 후보자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서울 관악구의 김모(55?여) 씨는 “전 정권의 최순실처럼 없는 제도를 만들어 자녀 스펙을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가족이 머리를 써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달랐다. 서울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이모(26) 씨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씨가 정유라보다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승마 메달리스트를 꿈꾸며 노력하는 학생은 대부분 부유층이고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특목고, 명문대, 장학금, 의사를 꿈꾸는 학생은 수없이 많다. 다들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는데, 그 자리를 부모의 인맥과 영향력으로 차지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밝혔다. 


    고려대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서도 조 후보자 가족의 반칙 의혹과 불공정 행위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게시자는 ‘정유라 사건에 비해 약하냐 강하냐 비교는 1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여당에서는 필요 이상의 비판이라며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8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기자간담회에서 “진보적 인사들이 특목고를 비판하면서 자녀는 특목고 보낸다고 비난하는데, 개인이 사회제도를 뛰어넘어서는 살 수 없다. 특목고가 존재하는데 자녀가 특목고 가는 걸 막는다는 건 독립운동 수준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 누리꾼은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그간 여당이 주장해왔던 ‘공정한 경쟁’이 독립운동 수준의 이야기라면, 특목고를 줄이겠다는 정부 ?여당은 국민에게만 독립운동처럼 어려운 과제를 던지고, 본인들은 기존 폐단을 계속 따르겠다는 이야기인가’라고 반박했다.



    “지지했던 만큼 실망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실망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이원재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대학원 교수는 “통계를 보면 지난 대선에서는 20대의 절대 다수가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을 지지했다. 젊은 세대는 공정한 경쟁과 그에 따르는 정당한 결과가 통용되는 사회를 꿈꾸며 여당을 지지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 정권 인사가 자녀 입시에 불공정한 경쟁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지한 만큼 실망도 크다. 당연히 젊은 지지층은 고스란히 조 후보자에 대한 비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조 후보자의 논란은 여당과 정부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8월 19~21일 전국 2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신뢰수준 95%에 ±2.5%p)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에 비해 2.3%p 하락한 38.3%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6.7%로 하락세를 보였다. 부정평가는 49.2%로 긍정평가를 앞섰다. 북한어선 삼척항 입항이 있던 6월 3주 차 이래 9주 만이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전 세대에서 조 후보자에 대한 실망 여론이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공정과 정의가 이 정부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데, 조 후보자는 정부 인사 중에서도 개혁적 인물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지지자들의 실망도 큰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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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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