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한·일 ‘정보통신 왕국’ KT vs NTT

NTT 차세대 광통신망 투자 KT 14배 “6년 후 한국 제치고 IT 초강국 등극” 야심

  • 박창신 세계일보 미디어연구팀 기자,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heri@segye.com

    입력2005-01-25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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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와 NTT는 흥미있는 비교 대상임에도 한 번도 제대로 비교된 적이 없다. 두 회사 모두 전화회사로 출발해 최근 초고속 인터넷통신 등을 아우르는 거대 정보통신기업으로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범국가적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고 있어 이들이 어떻게 변하냐에 따라 두 나라 정보통신산업의 운명도 결정된다. 당장은 KT가 한 발 앞서 있지만, NTT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다.
    한·일 ‘정보통신 왕국’  KT vs NTT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인 KT(케이티·Korea Telecom)와 NTT(일본전신전화·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Corp)는 닮은 점이 많다. 공기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민간기업이 되었다는 점, 시내외전화 및 국제전화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이제 정보통신회사로 급속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KT의 경우 유선전화사업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37%를 차지한다. 아직도 상당한 비중이다. 그러나 유선전화사업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유선전화와 무선전화가 통합되고, 통신과 방송산업이 합쳐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정부 규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따라서 KT와 NTT는 “차세대 성장엔진을 찾지 않으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NTT는 1952년 공기업으로 설립됐다. 이후 1985년 4월1일 제정된 ‘NTT법’에 의해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일본 정부가 일정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년에 걸쳐 NTT 주식을 단계별로 매각했는데, 올해에도 112만주 가량을 매각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의 지분은 NTT법이 정한 대로 전체 발행주식의 33%가 된다.

    KT는 1981년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의 통신부문을 분리해 공사로 설립됐다. 이어 1997년 10월 ‘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출자기업으로 전환됐다. 이후 정부가 2001~02년에 걸쳐 보유지분을 매각함으로써 2002년 8월20일 완전 민영화됐다. 지금의 KT는 명실상부한 민간기업이다.

    NTT와 KT는 매출, 자산, 직원 수 등에서 엄청난 규모다. 특히 NTT는 거대 그룹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NTT의 총 자산은 2004년 초 현재 4조911억엔(약 41조원)이고, KT는 그 절반 정도인 20조3500억원이다. 2003년 3월부터 2004년 3월까지 NTT 매출은 3조1621억엔(약 32조원)이었다. 미국의 ‘포춘’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 명단에서 NTT는 항상 10위권에 든다. KT의 경우 2005년 매출목표가 11조9000억원이다.



    자산규모 41조원 대 20조원

    직원 수는 단순히 비교하기 곤란하다. KT그룹과 NTT그룹은 편제가 다르다. KT그룹은 유선사업자인 KT가 각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모기업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NTT그룹은 지주회사인 NTT가 각 분야 계열사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일본내 유무선 1위의 지위에 올라섰다.

    일본에서 NTT가 운영하는 유선전화에 가입한 가정은 6000만 가구. 반면 KT는 한국내 유선전화 독점운영과 함께 1200만명이 초고속인터넷통신망에 가입해 이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ADSL 등)다. NTT는 초고속인터넷통신망 사업에서 소프트뱅크 등 일본 민간기업에 밀려 현재까진 힘을 못 쓰고 있다.

    2004년 6월 현재 KT그룹은 KT, 무선통신업체인 KTF, KT하이텔을 포함 총 10개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KT그룹은 NTT와 달리 KT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이동통신을 정부방침에 따라 SK에 넘긴 후 KTF를 설립하여 32%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2위 무선사업자에 머무르고 있다. 이외 인터넷(KT하이텔), 네트워크통합(KT네트웍스), 해저 케이블 건설 및 유지보수(KT서브마린), 종합쇼핑몰(KT커머스), 휴대전화 단말기(KTFT), 인터넷사이트 ‘파란닷컴’ 등의 분야에 진출해 있다.

    NTT그룹은 통신그룹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사업영역을 갖고 있다. 지주회사인 NTT가 거느린 NTT 그룹 계열사는 2004년 10월1일 현재 433개. 사업영역, 지역별로 회사를 잘게 쪼개놓았지만 크게 4개 주력 업종으로 나뉜다. 통신사업(NTT동, NTT서), 장거리 및 국제통신사업(NTT커뮤니케이션스), 이동통신사업(NTT도코모), 데이터통신사업(NTT데이터) 등이다.

    이들 각 분야별로 다수의 다른 계열사들이 일종의 지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NTT도코모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계열사로는 도코모 서비스, 도코모 엔지니어링, 도코모 모바일, 도코모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NTT는 이밖에도 광고, 소프트웨어, 부동산, 전자, 리스, 금융, 장비 등의 분야에도 계열사를 두고 있다. NTT그룹은 그룹의 통합된 역량을 자주 강조한다. KT도 정관에 ‘부동산업’을 명기해놓고 있다. 최근 ‘파란닷컴’은 1기가 용량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전격 시행, 이 분야 최강자인 ‘다음’을 위협하고 있다. KT 역시 NTT만큼이나 사업영역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KT와 NTT는 소유-경영 형태에서도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KT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이용경 사장이다. 한편 NTT는 CEO 겸 회장 체제다. KT와 NTT 모두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소유하지는 않으며 이사회 등을 통해 선임된다. NTT는 민간회사임을 밝히고 있지만 33%의 지분을 소유한 일본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KT 역시 국내외 기관과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100% 민간회사이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의 입김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보통신부 등 정부기관의 협조없이는 사업 운영이 어려운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용경 사장의 연임과 관련해서도 일부 재계 인사들은 “사장 선임 등 KT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은밀한 형태로 간섭하려 든다면 KT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목표도 같다, ‘유비쿼터스 리더’

    KT 이용경 사장은 취임 이후 흑자경영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2005년 들어 KT와 NTT가 기회와 위기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무선전화에 기반을 둔 전통적 통신사업의 장래가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꾸고, 새로운 성장모델을 정해 역량을 투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두 회사에 있다.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되는 일인 만큼 투자의 규모도 크며 실패했을 때의 타격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범국가적 독점 통신사업자가 문어발처럼 통신외적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극복해야 한다. 과도기적 상황인 지금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가 두 회사와 양국 정보통신산업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셈이다. 2004년 두 회사의 잇따른 비전 발표는 이런 위기감을 증명한다.

    KT는 2004년 8월 ‘KT 미래전략 2010’을 대외적으로 공식 발표하고 계열사를 포함한 KT그룹 매출 27조원 달성을 위한 세부 실행계획을 밝혔다. 미래전략 2010에서 KT는 2010년까지 주력할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홈네트워킹, 미디어, IT서비스, 디지털 콘텐츠 등 5대 사업을 정했다. 2010년까지 기존 핵심 사업에서 12조원, 신성장 사업에서 5조원, 계열사 매출 10조원을 합해 총 27조원의 매출을 달성해 세계 10대 글로벌 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NTT는 일찍이 2002년 11월25일 ‘새로운 광세대(new optical generation)’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어 2004년 11월 이 회사는 2010년까지 광통신망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규모의 ‘레저넌트 커뮤니케이션 환경(resonant communication environment)’을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NTT가 제시한 ‘레저넌트’는 현재의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광대역의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환경을 일컫는 개념이다. 광통신망을 통해 통신의 궁극적 목표인 거리와 시간을 정복함으로써 인간의 가처분 시간과 기업 활동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KT와 NTT 두 기업은 사실상 내용이 동일한 사업을 추진중인 셈이다. KT는 ‘옥타브컨소시엄’을 결성해 음성과 데이터, 유선과 무선,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광대역통합망(BcN)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반면 NTT는 3000만 광가입자망 구축의 장대한 목표를 내걸고 광파이버로의 급속한 전환 작업을 전개중이다.

    이제 두 기업은 통신사업자가 아닌 ‘유비쿼터스의 리더’로 본질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NTT가 추진하는 광가입자망 구축사업은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NTT와 일본의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발표한 ‘2004년 세계 정보화 지수’에서 한국은 8위, 일본은 18위로 나타났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2004년 6월 3000만명을 돌파,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인구가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다. 초고속인터넷 보급 회선 수는 2004년 말 1200만 회선. 인구 100명당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에서 한국(21.33명)은 단연 세계 1위이며, 2위인 캐나다(14.67명)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일본은 11.7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6년 뒤인 2010년엔 어떻게 될까. NTT의 계획대로라면 상황은 역전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는 지금 한국보다는 일본에 더 주목하고 있다.

    현재의 정보통신 서비스 경쟁은 ‘질적 경쟁’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빠른 속도는 기본이다. 여기에 덧붙여 품질, 보안, 유선과 무선-방송과 통신-컴퓨터와 가전기기를 넘나드는 매끄러운 연결, 다양한 콘텐츠와 부가서비스가 혼연일체가 된 ‘차세대 네트워크’, 다른 표현으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의 경쟁 시대를 앞두고 있다.

    NTT, 광통신망에 50조원 투자

    이런 차세대 네트워크 구축에 있어 NTT와 일본의 투자계획은 실로 과감하다. 일본은 양적인 면에서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 2004년 10월 현재 일본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1700만명이다. 일본의 초고속인터넷망은 국가적 노력에 힘입어 3~4년 전 한국을 연상케 할 정도로 수직상승중이다.

    한·일 ‘정보통신 왕국’  KT vs NTT

    2001년 11월 일본 도쿄 NTT 본사 앞에서 NTT 근로자들이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등공신은 시장경쟁. 소프트뱅크의 야후BB가 ADSL(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을 저가에 공급하면서 NTT와 KDDI를 자극했고, 속도 경쟁, 가격 경쟁에 불이 붙었다. 야후BB가 연간 800억엔이 넘는 적자를 내는 등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일본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NTT가 ‘광가입자망 조기 확대’라는 회심의 칼을 뽑아든 것이다.

    2004년 11월 NTT는 “오는 2010년까지 6년 동안 5조엔(약 51조원)을 투입해 3000만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광가입자망(FTTH: Fiber To The Home)을 구축하고 현재의 유선전화망을 광인터넷(IP)망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전 가구의 FTTH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포부로 50조원이라는 투자 규모를 생각하면 입이 쩍 벌어진다.

    NTT의 이런 발표엔 일본 정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NTT측이 일본 정부에 통신망 개방의무 규정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 총무성과 NTT의 관계는 한국 정보통신부와 KT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NTT가 제시한 ‘3000만 광가입자망 가구’의 비전은 전화국에서 가정까지 전체 전화선-초고속통신망을 기존의 금속 케이블에서 광케이블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 전체의 유선전화 가입자 회선(6000만 회선)의 절반에 해당된다.

    광통신망은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ADSL망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 정보의 전송능력(100Mbps급)이 ADSL(1~8Mbps급)의 100배에 달한다고 한다. 고해상도 HD-TV 영상물 5개를 한꺼번에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정도다. 현재의 초고속인터넷통신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서비스들이 실현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NTT의 이러한 계획은 한국의 비전을 훨씬 앞지르는 것이다. 한국은 2004년부터 광대역통합망(BcN: Broadband convergence Network)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보통신부가 국가 신성장동력 육성의 일환으로 계획한 BcN안은 현재 수 Mbps급인 초고속인터넷을 50~100Mbps급의 차세대 환경으로 발전시키고, 유무선 가입자들이 통신, 방송, 인터넷 서비스를 보다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융합 인프라 환경 구축’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선과 무선, 방송과 통신이 상호 끊임없이 연결됨으로써 언제(any time), 어디서나(any where), 어떤 단말기로도(any device)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브로드밴드의 통합망이다.

    KT는 세계 최초로 파장분할수동형 광네트워크(WDM-PON) 시스템을 이용한 FTTH 시험서비스를 성공적으로 개시하여 BcN의 실현을 앞당기고 있다. NTT의 경우엔 이 같은 ‘3애니(3any)’에다가 안전하고, 단순하며, 편리한(safe, simple, convenient) 유비쿼터스 브로드밴드 서비스도 제시하고 있다.

    FTTH는 글자 그대로 광케이블을 가입자 집까지 연결함으로써 100Mbps 이상의 전송속도를 보장한다. 현재의 초고속인터넷인 ADSL은 집 근처 전화국까지는 광케이블로 연결되지만 전화국에서부터 집까지는 일반 전화선으로 연결된다. 광케이블망의 전송속도는 초고속인터넷인 ADSL보다 최소 20배 이상 빠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4년 11월 이미 광통신망 가입자가 160만명을 헤아린다.

    3000만 가구 대 175만 가구

    NTT의 광가입자망 확대 전략은 경쟁자인 야후BB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저가의 ADSL로 시장을 위협한 야후BB는 최근 ADSL보다 훨씬 빠른 최대 100Mbps급 VDSL(초고속디지털가입자망)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일본 시장에서 초고속인터넷 속도경쟁에 불을 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지난해 말 야후BB 초고속인터넷에 의한 TV방송서비스를 앞으로 광가입자망 환경에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FTTH엔 NTT동, NTT서, 우센 브로드밴드 등 3개 통신사업자와 도쿄전력 등 6개 전력회사가 참여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FTTH 경쟁이 이처럼 뜨겁지만 한국에서 FTTH는 아직 초기 단계이다. 서울 사당동 래미안아파트, 광주 선경아파트, 광주과학기술원 등에서 시범적으로 FTTH가 구축되어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2004년 1월부터 특등급 초고속정보통신건물 인증제도를 도입해 건물 설계단계에서부터 FTTH 환경을 반영토록 하면서 FTTH 공사가 차츰 늘고 있는 정도다.

    NTT가 사실상 ‘일본 전 도시 가구의 FTTH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점과 비교했을 때 2004년 9월 KT가 발표한 FTTH 구축계획은 일견 매우 빈약해 보인다. 당시 KT는 오는 2009년까지 아파트 등 일반 가정에 하향속도 100Mbps급 광케이블 174만9000회선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NTT가 목표로 잡은 3000만 가구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계획은 2005년 8000회선을 시작으로 오는 2009년까지 5년간 특등급 아파트에 33만2000회선, 기존 아파트에 82만5000회선, 일반주택에 59만2000회선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KT는 2008~09년 아파트 밀집지역을 위주로 FTTH를 보급하며, 2010년 이후 FTTH를 확산하겠다는 단계별 일정을 제시했다.

    한·일 ‘정보통신 왕국’  KT vs NTT

    2004년 12월 KT측이 서울 서초구 연구센터에서 차세대 광대역 통합망을 활용한 영상전화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NTT의 광가입자망 구축 계획은 투자 규모 면에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KT가 2009년까지 광대역통합망(BcN) 인프라 구축에 3조51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BcN은 내용면에서 FTTH와 거의 동일한 사업이다. KT는 2004년 10월 제시한 BcN 추진계획에서 2005~07년 1조6700억원, 2008~09년 1조8400억원, 2010년 이후 3조4200억원 등 총 7조원 수준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반면 NTT는 2010년까지 KT 투자액의 14배에 이르는 51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이는 KT의 5년 매출 총액에 가까운 규모이다. NTT는 FTTH에 기업의 존망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투자 규모만으로 NTT와 KT의 우열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존 인프라, 투자환경, 서비스 내용, 차세대 네트워크 구축전략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FTTH는 2년 이상의 장고 끝에 내놓은 종합 계획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NTT가 ‘3000만 FTTH’ 계획에서 언급한 ‘유비쿼터스 브로드밴드 서비스’는 음성과 데이터의 통합, 유무선 통합, 방송-통신 융합서비스 외에 금융, 유통,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2004년 11월 발표된 NTT의 계획은 3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유비쿼터스 브로드밴드 시장을 능동적으로 형성함으로써 e-재팬 계획을 선도하는 것이다. 둘째 유선전화를 IP텔레폰(인터넷전화) 서비스와 광케이블로 원활히 전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통적 개념의 전화가 사라지게 되는 셈. 셋째는 NTT그룹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다.

    유선전화 사라져가는 일본

    NTT의 몇 가지 특징적인 실천전략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무선 통합에 의한 유비쿼터스 브로드밴드 서비스는 PC, TV, 휴대전화 또는 여타의 정보 단말기에서 같은 내용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한다. 고화질 화상전화도 가능하다. 작업장의 위기관리, 재난복구 또는 업무시스템은 유무선 통합을 통해 효율성이 훨씬 높아진다.

    NTT는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첨단 화상회의, 원격진단을 겸한 원격치료, 교사와 학생간의 원격교육,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영상 통신에 의한 각종 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유선과 무선의 통합을 통해 이뤄내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선과 무선 환경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그래픽과 동영상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원스톱 검색서비스도 구현하겠다고 한다.

    지난해 말 현재 일본의 이동전화 가입자는 약 8300만명을 헤아리며, 이중 90%는 무선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또 2세대 이동통신에서 3세대 이동통신으로의 전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3세대 이동통신인 포마(FOMA)의 가입자가 오는 3월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NTT가 계열사이자 이동전화사업자인 NTT도코모와의 네트워크 연동을 제시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광가입자망 구축에 대한 NTT의 저돌성은 기존의 유선전화를 인터넷전화로 전환하겠다는 실천 계획에서도 엿보인다. 반면 KT는 기존 유선전화 서비스를 당분간 존속시키겠다는 입장이다.

    NTT는 기존의 유선 가입자를 광가입자로 전환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인터넷전화(IP텔레포니) 서비스를 급속히 확산시키기로 했다. 초고속인터넷 등으로 통신기업의 수익모델이 변했다고 해도, 통신사업자에 있어 유선전화는 존재의 기반이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단초다. 이용자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시내외 전화사업의 매출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인터넷전화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모든 통신이 인터넷 프로토콜(IP) 기반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토털 IP’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NTT는 절감했으며, 이런 인식에서 과감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전화로의 전환은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구축돼 있는 전화망이 사실상 쓸모없어지기 때문. 이에 대비해 NTT는 일반전화망의 활용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기존 전화망을 긴급전화 또는 네트워크 관리를 위한 내부 통신망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이는 IP텔레포니로의 전환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미래사회의 중심이자 관문

    KT의 경우도 IP텔레포니로의 전환이 중대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KT는 일반전화 시장을 스스로 죽이면서까지 인터넷전화 사업을 본격화할 이유가 없었고, 그에 따라 IP텔레포니 사업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 의해 공통의 식별번호 ‘070’이 인터넷전화용으로 부여된 상황에서 더 이상 유선전화의 매출을 지키기 위한 시간 벌기가 먹히지 않게 되었다.

    KT가 지난해 11월 VoIP(Voice over IP) 기반의 영상전화 상품인 ‘올업프라임’을 출시했고, 올해 초 다자간 영상회의와 e-러닝 서비스 등 VoIP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기로 한 것도 대세가 일반전화(PSTN)에서 인터넷전화(VoIP)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변화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선통신은 결국 유선전화에서 인터넷전화로, 음성 교환에서 ‘동영상 및 음성’ 교환으로 변화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용량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초고속인터넷망을 기반으로 음성서비스는 물론이고 영상, 문자전송, 파일공유, 생활정보, 영상회의, e-러닝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IP텔레포니에 결합되는 것이다.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다. 자연재해, 특히 지진은 광파이버 기반의 차세대 네트워크 건설에 있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사안이다. 이 점에선 KT가 NTT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NTT는 차세대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인데, 특히 ‘인증’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단 한 번의 로그인으로 은행 결제, 항공편 예약, T커머스, 주문형비디오(VOD)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NTT는 그룹 계열사들의 역량을 결집함으로써 미래 정보통신 서비스의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쥐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싱글 사인 온(Single Sign-on)’을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인증 방식은 NTT의 미래 수익모델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차세대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뤄지는 온갖 비즈니스의 중심이자 관문에 우뚝 서겠다는 야심이다.

    NTT는 차세대 네트워크 솔루션과 관련 비즈니스를 통해 2010년까지 5000억엔의 매출을 추가로 창출하고, 총 시설투자 규모는 5조엔을 유지하며, 유선분야의 유지비용을 8000억엔까지 줄이겠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KT의 경우 방송 진출 모색이 두드러져 보인다. 위성TV인 ‘스카이라이프’ 개통에 이어 IP-TV 산업 진출, 지상파DMB 모색 등이 그것이다. IP-TV는 초고속인터넷을 기반으로 각 가정에 사실상 방송 서비스를 해주는 것으로 기존 유선방송업계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유선방송과 초고속인터넷을 주된 수익원으로 삼는 케이블TV방송사업자 진영에선 KT가 방송을 포함한 종합 멀티미디어 제공사업자로 탈바꿈하려는 것을 육탄으로라도 저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KT는 NTT와 같은 ‘초대형 투자’에는 신중한 편이다. 이와 관련해선, “KT는 현재의 ADSL 시장에서 압도적 1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큰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ADSL 시장을 죽이는 광통신망 구축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NTT만큼 절실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인류사회의 진화방향은 의심의 여지 없이 유비쿼터스적 사회이며, 광통신망은 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일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 기간망의 구축은 한 회사의 사활이 달린 일이자 국가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현실과 이상의 이 같은 괴리에 KT의 고민이 있는지도 모른다.

    NTT의 3000만 광가입자망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환경은 일본에서 먼저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광통신망 구축은 KT에만 일임할 사안이 아니다. 정보통신 인프라의 구축은 고속도로나 공항처럼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기간사업이어서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의지, 실천력도 중요하다. 투자규모가 수조~ 수십조 단위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2010년, KT와 NTT의 운명은?

    KT와 NTT의 비교를 통해 두 회사는 상당히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변화의 방향도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KT는 FTTH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방침인 반면, NTT는 FTTH에 ‘올인’을 했다. 오늘의 이 같은 결정의 결과는 2010년이 되어야 판가름난다. 한국이 6년 후에도 세계 초일류 정보통신국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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