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나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향후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됐을 때 기술종속에 따른 경쟁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지구 곳곳의 얼음을 녹여 섬나라를 수몰시키는 것은 물론
기상학자들은 “몰디브가 지진이 발생한 인도네시아 아체주 해안에서 2300km나 떨어져 있는데도 이같이 감당하기 힘든 해를 입은 것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해수면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진 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몰디브 정부도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계속 상승해왔기 때문에 쓰나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실제 몰디브는 지표면 고도가 해수면보다 고작 1m정도 높을 뿐이어서 평소에도 국가 존립이 위태로웠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토의 80%에서 해수면과의 표고차가 1m에 불과한 몰디브는 앞으로 30년쯤 후에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고 2100년이면 완전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도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차츰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주민의 16% 가량이 삶의 터전을 인근 뉴질랜드로 옮겼으며 앞으로 이주민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급속히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현상과 이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이처럼 태평양과 인도양, 카리브해의 수많은 저지대 도서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UN 기후변화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COP10)에서 태평양과 인도양, 그리고 카리브해 주변의 도서국가 대표들이 전세계를 향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눈물로 촉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일본 등 38개 선진국에 대해 오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1차 공약기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1990년 대비 평균 5.2% 의무 감축토록 규정한 교토의정서가 드디어 2월16일 정식 발효된다. 이로써 지난 1997년 말 일본 교토(京都)에서 UN 기후변화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실무 협정으로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지 7년여 만에 국제적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전세계가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가공할 위협에 공감, 온실가스 감축을 선언했던 UN 기후변화협약(1999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으로부터 따지면 무려 14년여만이다.
사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교토의정서는 미국 호주 등 일부 선진국이 비준을 계속 거부하면서 사문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았다. 미국의 불참으로 인해, ‘55개국 이상이 국내 비준을 거쳐 비준서를 UN에 기탁해야 하고 비준서 기탁국들의 온실가스 배출량(1990년 기준)이 전체 선진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55% 이상이어야 한다’는 발효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던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비준 절차를 밟으면서 교토의정서는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교토의정서가 규정하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불화탄소(PFCs) 불화유황(SF6) 등 6종류다.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EU의 경우 전체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 줄여야 한다. 회원국별로 할당된 기준은 룩셈부르크 -28%, 독일 -21%, 영국 -12.5%, 이탈리아 -6.5%, 프랑스 0% 등이다. 독일을 예로 들면 2008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년 전(1990년)보다 21%나 줄여야 한다.
일본과 캐나다의 감축 기준량은 각각 -6%, 뉴질랜드와 러시아는 각각 0%다. 미국은 목표치가 -7%이지만 협약 비준을 거부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후발 개발도상국은 교토의정서 1차 공약기간 중 의무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2012년까지는 교토의정서 발효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규제받지 않는다. 그러나 2013년 이후에 시작될 2차 공약기간에는 어떤 형태로든 감축의무를 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지고 있어 마냥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온난화가 불러올 재앙들
지구 온난화 현상이 전세계적인 기후 변화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지구 온난화가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자연생태계와 지구환경을 급속히 변화시키면서 향후 인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는 분석보고서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지구 북반구 전체에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인류가 최악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는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의 내용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남아시아 지진해일의 충격파가 계속되는 2005년 벽두부터 전세계는 유례없는 기상이변에 휩싸여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느닷없는 폭설과 폭우가 쏟아졌고, 노르웨이 등 북부 유럽지역은 폭우와 강풍으로 교통이 마비됐을 뿐 아니라 산업생산에도 차질을 빚었다. 혹한이어야 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폭우로 도시 일부가 물에 잠겼고 체코 프라하에서는 1월 기온으로는 230년 만에 최고인 14℃를 기록하는 이상 고온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가속화하는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산업화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지구촌 이산화탄소 농도는 19세기 산업화 이전에 비해 무려 33%나 증가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이 급속히 늘면서 지구 평균기온은 20세기 100년 동안에만 0.6℃가 상승했다.
쉽게 생각하면 0.6℃ 정도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온 상승이 지난 1만년 동안 지구가 겪은 가장 큰 변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구 온도는 2100년이 되면 최소 1.4℃에서 최대 5.8℃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지금까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 면적은 10%, 얼음 두께는 40%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북극의 얼음은 앞으로 100년 이내에 50% 정도 더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산 정상의 얼음과 눈은 이미 80%가 사라졌고 2015년이 되면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지구 곳곳의 얼음이 녹으면서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해수면은 10~25cm 상승했고 앞으로 100년 뒤인 2100년에는 최대 88cm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표고가 낮은 국가가 수몰될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제2의 빙하기’
지난해 2월 영국 주간지 ‘옵서버’는 미 국방부에서 작성한 ‘기후 변화로 인한 전지구적 재앙에 관한 보고서’ 내용을 보도해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보고서에는 “2007년까지 대형 폭풍이 유럽을 강타, 네덜란드 헤이그 등은 제방 붕괴로 수몰되어 사람이 살기 어려워지고 영국은 2010년부터 기온이 계속 떨어져 시베리아처럼 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 세계적인 식량난이 일어나며 나일강과 아마존강 일대에선 물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진다”는 가상 시나리오가 담겨 있었다. ‘옵서버’는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시나리오지만 ‘앞으로 지구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작지 않은 일들’이라고 소개했다.
독일 포츠담 기후충격연구소의 카를로 제이거 연구원은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구의 온도가 2℃ 상승하면 아마존의 열대 다우림 생태계가 붕괴되며 북극 만년설 해빙을 가속화해 전세계적인 해수면 상승은 불가피해진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이처럼 점증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각종 재앙의 위험을 줄여가기 위한 조치다. 2월16일 발효되는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를 줄여가기 위한 첫 번째 실천 계획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국의 속셈, 중국의 계산
그러나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더라도 전지구 차원에서 획기적으로 온실가스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심정적으로는 온난화 방지에 동의하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 소비를 갑작스레 규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희생할 국가는 지구촌에 단 한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당장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산업 피해 등을 이유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등 선진국조차 공조하지 않고 있는데다 중국·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는 후발 개발도상국도 감축 대상에서 빠져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교토의정서에 참가하지 않은 미국과 중국, 인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1년 기준으로 각각 세계 1위, 2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배출량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7%이고 중국은 13.2%, 인도는 4.4%에 달한다. 교토의정서 체제는 이처럼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는 상태에서 출범한다. 온실가스 감축의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요인들 때문이다.
게다가 의무감축에 참여한 38개 선진국도 의무를 지키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향후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탈퇴하는 국가가 나올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월러스 브로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선진국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 나서지만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이 다량의 온실가스를 뿜어낼 게 분명한 만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데 대해 환경단체 회원들이 ‘오염은 여기서 시작된다’는 팻말을 들고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예로 들면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가 없어지는 데 적어도 50~200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없애지 않는 한 온난화는 계속된다.
UN 산하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이와 관련,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9세기 산업화 이전 278ppm에서 1990년대 후반 365ppm으로 87ppm 이상 높아졌고, 메탄가스(CH₄)농도는 0.7ppm에서 1.7ppm으로 2배 이상 상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권원태 기상청 기후연구실장은 “전세계가 힘을 합쳐 온실가스를 지금부터 줄여 나간다 해도 향후 50~100년 동안은 기존 온실가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어떤 형태로든 지구 온난화 흐름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UN 기후변화협약과 그 이행합의문인 교토의정서는 애초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공익 목적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진국들이 ‘인류 공존과 번영,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평화적인 목적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먼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교토의정서 체제는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치의 양보 없이 다투는 전쟁터일 뿐이다. 미국과 호주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이고 2008~12년의 1차 공약기간 중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지 않는 중국과 인도가 2차 공약기간(2013 ~17) 중 의무부담 방식에 대한 논의마저 거부하는 것도 자국의 경제적 이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현재로서는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수용할 경우 에너지 산업 등에서 큰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 효율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미국은 당장 교토의정서 체제에 들어가면 에너지, 철강 등 일부 산업이 타격을 받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맞서 ‘온실가스 배출 축소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보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내는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대응논리를 내세우며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선진국의 요구대로 당장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되면 이제 겨우 성장단계에 접어든 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앞서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현재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만큼 선진국이 먼저,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한국은 선진국과 같은 의무 부담은 곤란하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거래 시장
첫 번째 전쟁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분담의 당위성을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이 벌이는 신경전이라면, 그보다 고차원적인 전쟁은 에너지 및 환경기술 수준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 및 환경기술은 유럽과 일본 등이 크게 앞서 있다. 따라서 개도국들은 경쟁력 있는 에너지 및 환경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할 경우 친환경 생산공정 도입에서 심각한 기술 종속이 불가피해진다. 이것이 개도국들이 독자적인 기술 확보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벌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개도국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기술이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토의정서 체제 출범과 함께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는 또 다른 대목은 ‘배출권 거래시장’이다. 배출권 거래는 온실가스 감축에 여유가 있는 기업이 감축목표 달성이 힘든 기업에 감축 여유분을 파는 것을 말한다. EU는 지난 1월1일부터 영국 런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 국내외 모든 기업이 이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게 하는 거래시장을 개설,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는 자국 기업끼리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자격을 갖춘 모든 국내외 기업으로 거래 대상이 확대되면서 대략 5000개가 넘는 EU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등록했다. 앞으로 배출권 시장 참여기업은 1만5000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배출권 거래가격은 형성되지 않고 있지만 이산화탄소(CO₂) 톤당 7~8유로(1만1200원, 유로당 1400원 기준)에 거래되는 분위기다. 2008년 이후의 미래 배출권을 사고 파는 선물시장도 등장했다. 2007년께는 전세계 배출권 거래시장이 800억유로(약 11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시장은 미 월가나 런던 금융가, 시카고 상품거래소처럼 새로운 형태의 거래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되고 배출권 거래가 전세계 기업으로 확대된다면 EU는 이 같은 배출권 거래시장을 선점한 기득권을 바탕으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챙길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교토의정서 체제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가 바로 EU와 일본이 주도하는 ‘배출권 거래시장’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금융 중심지 월가를 거느린 미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 주도의 거래시장을 만들려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정관 산업자원부 자원정책과장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진 선진국 대부분이 목표 달성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장 배출권 거래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라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이 확대되고 감축기준치도 상향 조정되면 아주 큰 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토의정서의 발효는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대부분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발효가 위기 요인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1차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 것이라는 데서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고 에너지 소비가 많은 정유나 철강, 시멘트, 화학업종 등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공정 개발 및 도입을 위한 비용을 기업들이 부담하여 원가부담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반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새로운 시장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토의정서 체제를 새로운 기회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은 물론 오는 2012년까지는 온실가스를 의무 감축해야 하는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인 한국은 선진국들로부터 빠른 시일 안에 의무감축에 동참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시작되는 교토의정서 2차 공약기간에는 어떤 형태로든 감축 의무를 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기업이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의무 부담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한편,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지만 대기업들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고 대응하다가는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은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맞춰 에너지 효율, 오염물질 배출 등의 환경분야 무역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여서 기업이 이러한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수출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
‘위기’보다 ‘기회’로 인식해야
하지만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134개 에너지 다소비 기업 가운데 60% 정도가 교토의정서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대응태세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후변화협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업이 전체의 30%를 넘고, 알고 있더라도 대응을 위한 재정적·기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24%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영우 환경부 국제협력관은 “수출시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과 똑같이 경쟁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한국은 아직 대상이 아니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서 최고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추후 감축의무를 지게 될 때 기술종속에 따른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도 시급하다. 정부가 오는 2월16일 교토의정서 발효에 맞춰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한 제3차 보고서를 발표키로 했지만 국내 온실가스의 80% 이상이 에너지 부문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에너지 이용 전반에 걸쳐 효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이후 2004년까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으며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부터 미리 조절하지 않으면 향후 직접적인 감축의무를 지게 될 때 경제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김경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교토의정서 발효로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이 본격 추진되면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생산공정 기술 또는 제품, 그리고 대체에너지 기술 등을 보유한 기업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시장을 얻을 것”이라며 “교토의정서를 눈앞에 닥친 위기이기보다는 기회라는 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시작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앞으로 지구촌에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새롭게 도래할 경제 패러다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선 기술이 있어야 한다. 환경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우리에게 충분한 기회와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