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어린이 경제교육 A to Z

통장 만들어 ‘금융개론’ 눈뜨고 주식투자로 ‘경영원론’ 익힌다

  • 이원재 휠리스쿨 원장 wjlee@filischool.co.kr

    입력2005-01-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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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런 그린스펀, 워렌 버핏, 잭 웰치…. 어린 시절부터 실용적인 경제교육을 받으며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전문가로 성장한 이들이다. 최선의 합리적 판단을 유도하는 어린이 경제교육은 혁신적 기업가는 물론 현명한 시민을 양성하는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어린이 경제교육 A to Z

    1월8일 서울 대치동 휠리스쿨에서 경제교육을 받는 어린이들.

    신라시대거문고의 달인 백결 선생의 부인이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이웃 사람들이 떡방아를 찧으며 즐거워하자 “이웃집은 모두 새해 맞을 준비를 하는데, 우리 집엔 곡식 한 톨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며 한탄했다. 백결 선생은 “사람이란 모름지기 바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오. 어떤 이는 부자가 되고 어떤 이는 가난해지는 것도 스스로 원해서 그리 되는 게 아니오. 당신을 위로하고자 아주 즐거운 음악을 만들었으니 한번 들어보시오” 하며 거문고를 뜯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흥겨운 가락에 아내의 근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로부터 우리 가락 ‘방아타령’이 세상에 전해졌다.

    백결 선생의 안빈낙도와 청빈 속에서 방아타령이 탄생했다는 내용이지만 경제활동의 관점에서 보면 허구와 비합리성으로 가득 찬 이야기다. 곡식이 떨어져 굶주릴 처지라면 당장 산에 가서 나무라도 해오는 것이 합리적이건만, 음악으로 배고픔을 달래려 했기 때문이다.

    유교적 전통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에선 돈과 경제를 둘러싼 비현실적이고 이중적인 관념이나 태도가 자주 관찰된다. 반면 체계적으로 실시되는 경제교육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어린이들은 그릇된 경제관념에 노출된 채 자라나 기성세대와 별 차이가 없는 경제의식을 갖게 됐다.

    현명한 소비자, 혁신적 기업인

    ‘산 입에 거미줄 치랴’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들은 저마다 생겨난 배경이 있겠지만, 직업을 선택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거나 가난은 극복할 수 없기에 소득향상을 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부지불식간에 전파했다.



    요즘 들어 어린이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다. 경제단체와 금융기관 중심으로 각종 경제캠프가 열리고, 경제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도 생겨났다. 이는 올바른 경제 마인드 없이 어른이 되면 현명한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에게 경제적 자립능력을 길러줘 우리 사회의 건강한 경제 주체로 자라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것이다.

    경제교육 열기가 확산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교육의 목표를 구체화하자면 어린이를 현명한 소비자와 합리적 시민, 그리고 혁신적 기업가로 길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소득수준에 맞는 합리적 소비와 신용관리 방법 등을 가르쳐 올바른 소비 습관을 기르고 돈 관리 능력을 키워 현명한 소비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아이가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달라고 부모에게 떼쓰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평균 아홉 번 이상 같은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면 굴복하고 만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돈주머니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사람의 욕망에 비해 자원이 한정돼 있고, 마찬가지로 부모의 돈도 유한하다는 희소성의 원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아이에겐 희소성 때문에 사람은 항상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한번 선택하면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선의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에 4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가 생긴 것도 자신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남의 돈으로 일단 소비부터 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신용관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경제교육은 아이들이 경제적 원리에 입각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필요한 지식과 습관을 길러준다. 합리적 경제행위의 밑바탕은 논리적 사고와 자율적 책임이다. 따라서 경제교육만큼 삶에 대한 주체적 태도를 갖게 하고 문제의 합리적 해결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도 드물다.

    경제교육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장경제를 이끌어갈 혁신적 기업가 정신을 고취할 수 있어야 한다. 장차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글로벌화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가 될 것이며, 이런 사회일수록 창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 각광받는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풍부한 실물경제와 생활금융의 세계를 이해하고 유연하고 창발적인 사고를 할수록 아이는 혁신적 기업가의 자질을 키울 수 있고 미래 사회의 경쟁력 있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를 현명한 소비자로 키우는 것이 경제교육의 출발점이라면 혁신적 기업가로 양성하는 것은 지향점이다. 경제교육은 한마디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경제교육의 필요성이 이렇듯 절실한 데 비해 우리의 어린이 경제교육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초등학교의 사회과목 교사들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교사의 전문성에도 한계가 있고 교사용 통합 매뉴얼도 준비된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 학교에서는 민간 경제교육기관을 통해 위탁교육을 하기도 하고, 일부 사설 교육업체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경제캠프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교육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경제교육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중·고등학교 교과내용 중 경제 분야가 중학교 3학년 사회과목 2개 단원과 고등학교 1학년 사회과목 1개 단원에 불과해 경제교육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입시 위주의 교과목에만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경제체험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돈 관리 능력, 합리적 사고능력과 같은 평생의 자산을 길러주겠다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청소년 경제 금융교육이 매우 앞서 나가 있다. 특히 미국은 1994년 경제교육을 학교교육의 핵심 9개 과목 중 하나로 설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또 미국 의회는 2001년 조기금융교육법안을 제정, 초중등학생 금융교육에 5년간 5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서명한 ‘No Child Left Behind(어떤 어린이도 낙오자로 만들지 않는다)’ 법안은 학교에서 경제·금융·소비자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미국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모의주식투자를 하는 장면을 보면 더욱 놀랍다. 1977년에 도입된 주식시장게임(Stock Market Game)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연간 60만명 이상이 참여해 저축과 소비, 금리 등 경제와 금융의 기본개념을 익힌다.

    조기 교육이 배출한 경제 대가들

    미국의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5세부터 펀드매니저인 아버지에게서 주식과 채권 등에 대해 배우면서 경제와 금융의 세계에 일찍이 눈떴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는지, 또 자신의 월급은 얼마이며, 이중 얼마가 생활비로 지출되고 은행의 빚은 얼마이며 매달 얼마의 이자를 납부하는지를 가르쳤다.

    그린스펀은 한때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경제학을 전공해 결국 세계 최고의 경제전문가가 됐다. 그는 “돈에 관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청소년들이 평생 후회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양한 현장체험은 훌륭한 경제교육의 마당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 최고경영자 잭 웰치는 열차 차장인 아버지의 권유로 어릴 때부터 골프장 캐디로 일했다. 거기서 그는 성공한 기업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의존적이던 웰치의 성격도 이때부터 자립적으로 바뀌었다.

    ‘오마하의 현자’로 불리는 전설적 투자자 워렌 버핏은 11세에 아버지가 근무하던 증권사 객장에서 시세판 적는 일을 했으며 ‘시티 서비스’라는 주식을 매입, 주식투자를 비롯한 경제교육을 체험했다.

    국내에서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겨난 오해가 한 가지 있다. 경제교육이 아이들에게 돈을 벌거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황금만능주의적 사고에 빠져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그래서 경제교육을 통해 아이가 돈을 가까이 하기보다는 순수하고 청렴한 생각을 갖도록 키우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이가 현실 세계와 분리돼 있으며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동안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돈과 경제에 대해 훨씬 현실적이다.

    서울교대 부설초등학교 이인종 교장의 ‘초등 경제교육의 공교육화를 위한 심포지엄’ 주제발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한 초등학교 전교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2%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돈이 많아야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58%가 긍정적으로 답변해 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이 매우 현실 지향적임을 알려준다.

    성교육 한번 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청소년들을 그릇된 성관념에 빠져들게 한 것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경제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돈의 가치와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경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우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개념을 이해시키고 올바른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경제교육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어렵다.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 분야 내용이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기술돼 있고 실물경제와 동떨어진 점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둘째, 경제교육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국내 경제교육의 최대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상당수 경제교육이 경제캠프처럼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 체계적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학교, 정부기관, 경제단체, 민간업체 등의 조직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경제교육협의회(NCEE)가 1996년 경제교육 표준 권고안을 마련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인 점프스타트는 금융교육 표준 권고안을 만들어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활동수업 방식의 경제교육이 필요하다. 예컨대 기업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하자.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 해서 고용창출이나 기술개발, 경제성장 등 기업의 순기능만 아이들에게 강조한다면 과연 교육 효과가 있을까. 아이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대상으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아이들의 귀가 솔깃해질 만한 교육방법은 회사라는 실체를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찾게끔 만드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푹신한 침대는 누가 만든 것인가. 침대든 가구든 모두 주식회사가 만든 것이다. 학교 갈 때 들고 가는 가방이나 입고 가는 옷, 신발은 또 어떤가.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질하면서 쓰는 치약 칫솔도 한결같이 주식회사의 제품이다. 이처럼 하루 일과를 쭉 훑어보면서 회사가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업을 자신의 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친숙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사업계획서 만드는 아이들

    회사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저는 ‘Kids have their brains’ 주식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한번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놀고 행동할 수 있는 휴식처를 원합니다. 이런 휴식처를 친구들에게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혜의 샘’ 출판사를 세우겠습니다. 제가 만드는 책은 두껍고 내용이 많기 때문에 ‘끈기 있는 사람’을 주요 고객으로 삼겠습니다. 제 회사에 많이 투자해주세요.”

    사업계획서를 스스로 만들고 투자설명회를 여는 아이들을 보면 어른보다 더 진지하고 치열하다. 아이들은 이런 수업과정을 통해 먹고 싶은 과자를 하나 더 사달라고 생떼를 쓰는 철부지 아이에서 돈의 가치를 깨닫고 책임 있게 행동하려는 의연한 어른으로 자라난다.

    넷째, 일상생활의 체험이야말로 살아 숨쉬는 경제교육이다. 아이에게 은행 통장을 만들어 주더라도 부모가 아이를 금융기관으로 데려가서 통장 개설 신청을 직접 해보게 하라. 구체적인 체험만큼 인상적인 배움은 없다.

    아이에게 주식을 사주면 어떨까.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그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지, 정치 경제 국제 현안들이 주식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고 분석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주머니가 커진다.

    끝으로 모든 교육이 다 그렇듯이 밥상머리 경제교육이 중요하다. 집 거실의 테이블이든, 식탁이든, 자동차 안이든 끊임없이 경제와 금융을 주제로 아이들과 대화하라. 특히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무시하지 말고 성실하게 답변하며 그들이 계속 생각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요즘 어린이들을 ‘아이원트잇(I want it) 세대’라고 한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부모를 졸라서 사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올바른 소비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모범이 절대적이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부모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닻을 올린 지 오래다. 첨단기술 개발과 글로벌 마케팅 역량 확대의 강조 등 2만달러 시대의 기관차가 주로 기업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그러나 2만달러 시대의 개막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공동 향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교육 혁신은 2만달러 시대를 향한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그 한가운데에 경제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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