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대 앞을 대학로 상권으로 오판
- 아이들 없는 잠실에 영어학원 설립
- 솔루션도 모르면서 e비즈니스 컨설팅 회사 창업
- 유흥가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팔았으니…
- 유망업종 창업은 실패 1순위?
- 화이트칼라 명퇴자는 프랜차이즈의 ‘밥’
지난해 2월 성균관대 앞 주점가에 ‘포차(포장마차식 주점)’를 냈다가 6개월 만에 문을 닫은 유동석(가명·34)씨는 “입지나 상권과 같이 기초적인 것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무런 준비 없이 창업한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라고 말했다.
안 깎아주면 안 팔린다
국내 보험회사에 다니던 유씨는 방카슈랑스 업무를 다루는 은행과 외국계 보험회사들이 성황을 누리면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창업을 결심했다. 주점을 운영하고 싶어하던 그는 큰 투자금이 필요없는 ‘포차’를 내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보험 고객도 많았고 ‘살사’ ‘요가’ ‘독신클럽’ 등 활동하는 동호회도 많기에 지인들만 가게를 찾아도 충분히 장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인 대학로에 가게를 내기로 했다. 시장조사를 해봤더니 대학로 메인거리와 성대 앞 주점가의 임대료는 차이가 컸다. 고민하던 그는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성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입지조건이 좋은 점포가 나와 그의 결심을 재촉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인데다 심지어 가게 전 주인이 권리금을 1년 후에 받겠다고 한 것.
“알고 보면 전 주인은 점포가 워낙 안 나가니까 그런 고육책까지 쓴 건데, 저는 정말 좋은 조건이라고만 생각했죠. 처음 한두 달은 장사가 잘됐어요. 지인들도 많이 왔고 또 학기 초라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 등을 하며 많이 찾았거든요. 하지만 4월 말부터 상황이 달라졌어요. 우선 지인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학생들도 중간고사 기간이라 거의 찾지 않았죠. 방학이 되자 정말 손님이 없더군요. 하루에 한두 테이블만 받은 적도 있었죠.”
더구나 학생들의 주머니가 넉넉할 리 없었다. 30명이 와서 10만원어치만 먹고 간 적도 있다.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려고 대학로 메인거리에 나가 팸플릿을 돌리며 홍보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굳이 그의 가게를 찾지 않아도 주변에 널린 것이 주점이었기 때문이다. 유씨가 강점으로 내건 가격경쟁력도 쓸모가 없었다. 불경기가 심해 가격 파괴 전문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적자가 누적되자 그는 초창기에 제공하던 서비스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매일 안주 1개를 50% 할인해줬고 금요일에는 소주 2병을 공짜로 줬어요. 하지만 4명이 와서 안주 하나 시키고 소주 한 병만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 매출이 1만원도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슬그머니 할인 서비스는 없앴고 무료로 2병을 제공하던 것도 1병으로 줄였어요. 곧 반발이 거세지면서 적자폭이 훨씬 더 커졌죠.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서비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주고객인 학생층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죠.”
유씨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창업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됐다’고 자신하면서 구체적인 준비를 소홀히 했다. 거기에 불황까지 겹쳐 더는 견뎌낼 수 없었다는 그는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2000만원 넘게 손해를 본 채 가게 문을 닫았다.
과열경쟁에 경제불황 겹쳐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4년 11월 현재 자영업 종사자 수는 615만2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7.3%를 차지한다(무급 가족종사자를 포함하면 767만3000명으로 전체의 33.7%). 이런 비중은 OECD 국가(미국 7.3%, 프랑스 8.9%, 독일 10.1% 등)나 일본(10.8%), 우리와 경제구조가 비슷하다는 대만(16%)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2002년 기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창업자가 늘어나 ‘제 살 갉아먹기’ 식의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보태진 극심한 경제불황은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에 몰고 있다.
최근 노동연구원에서 전국의 자영업자 1506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4인 가족 월 최저생계비인 101만원도 못 버는 자영업 가구주가 조사대상자의 절반에 가까운 44.36%(668명)에 이르렀다(2003년 기준).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하루 190여개의 음식점이 문을 닫고 있으며 2004년 한 해 동안 10만개 이상의 음식점이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청 산하 소상공인지원센터의 통계자료를 보면 2003년 창업자금을 지원한 업체 중 24.3%가 2004년 현재 휴폐업중인데, 특히 음식숙박업의 비율이 32.2%로 높다. 이러다 보니 은행 빚조차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4년 11월 현재 자영업자들의 연체 잔액이 총 2조8900억원이고 연체율은 3.2%나 된다.
이렇게 자영업이 침체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창업에 쉽사리 뛰어들었다가는 앞서 소개한 유씨의 경우처럼 투자금액도 못 건지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창업자 중 30%는 성공, 40%는 현상유지, 나머지 30%는 실패한다는 3:4:3의 이론은 무너지고 5%만 살아남는다는 양극화가 올해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창업하지 말라’고 충고해야 할까. 한국창업전략연구소(www.chan-gupok.com) 이경희 소장은 “불황과 과열경쟁에서도 살아남은 5%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익과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 다양한 리스크와 실패한 사람들의 사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세우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가 창업 후 1년 이내 실패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창업자가 느끼는 실패요인으로는 1위 경기불황, 2위 과열경쟁, 3위 자금 부족, 4위 전문성 부족, 5위 주먹구구식 창업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소장은 “동일한 조건에 놓인 업소를 분석하면 가장 큰 실패요인은 주먹구구식 창업과 경영역량 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즉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사업자가 있다는 점에서 외부요인보다는 창업자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내부요인을 분석하고 미리 대처하면 실패를 피할 수 있다는 것. 또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다양한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업황도, 지역도 잘못 골랐다
학습지 영어교사 출신의 정모(47)씨는 유행의 끝물을 타는 바람에 창업에 실패한 예다. 1990년대 초부터 영어교육 열풍이 불면서 저렴하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각종 학습지가 인기를 끌었다.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한 정씨는 학습지 방문교사로 취직해 10년 넘게 일했지만 학습지 시장의 과열경쟁으로 본사가 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 후 ‘전공’을 살려 프랜차이즈 학습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2년 당시 사업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도 잘 아는 분야라 웬만큼 수익은 거둘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역부터 잘못 선택했죠. 송파구 잠실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곳이 모두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인구가 확 줄었어요. 재개발하지 않는 큰 평수의 아파트는 집값이 비싸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둔 가구가 별로 없었고요. 또 영어교육을 전공한 제대로 된 교사를 구하기도 힘들었죠. 방문교사는 한물간 3D 업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거든요. 결국 적자를 메우지 못하고 2년 만에 접어야 했죠.”
그 후 정씨는 전화영어 말하기 학원을 차렸다. 수익은 꽤 괜찮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원어민 교사들을 채용했는데, 이들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나 책임감이 희박하고 불성실했다.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예사고 아예 펑크를 낸 적도 많았다. 불만이 쌓이면서 고객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싫은 소리라도 하면 이들은 바로 사표를 냈다. 영어교사에 대한 수요가 많아 어느 학원이라도 갈 수 있었기 때문. 원어민 교사들과 불평하는 고객들에게 시달린 그는 1년여 만에 이 사업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지난해 여름 서울 강동구 아파트 밀집단지에 소수정예 영어 말하기 학원을 차렸다. 젊은 중산층이 몰려 사는 이 지역은 아이들도 많았다. 원어민에 질린 그는 교포나 한국인 유학생을 교사로 채용했다. 특히 영어를 전공했거나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영어전문교사 양성과정)을 이수한 사람을 우대했다. 그래도 원어민보다 봉급이 적었다. 말하기 교육이 대세인데다가 교사들이 성실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 김씨의 학원은 매달 85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간의 실패에서 얻은 노하우를 십분 발휘한 덕분이다.
2003년 봄 서울 잠실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신천에 1억5000만원을 들여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낸 강모(36)씨는 상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창업에 실패했다.
지난해 11월2일 전국의 음식점 업주들이 계속되는 불황에 못 이겨 솥단지를 들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는 음식업을 긴급 재난업종으로 선포하고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유망업종 = 경쟁업종
유망하다는 업종에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것도 실패의 1순위다. ‘유망업종’이란 이미 경쟁이 심한 성숙기 업종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뜻하기 때문.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1년 명예퇴직한 김희준(가명·44)씨. 재취업을 위해 50여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한 군데서도 연락을 받지 못하자 소규모 창업을 결심하고 24시간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문을 두들겼다. 회사와 이익을 나눠야 하고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점포를 열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중년에 소자본으로 창업하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최고 유망업종이라고들 했다.
“한 달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저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어요. 하지만 자본이 모자랐기 때문에 보증금이 싼 대신 이익의 40%를 가맹주가 가지는 조건으로 본사와 계약을 맺었죠. 또 B급 상권으로 보였지만 전세가 비교적 싼 수도권 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어요. 신도시라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작은 상권이다 보니 다른 편의점이 들어서지 않을 거라고 맹신했죠.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어요.”
가족과 함께 밥 한번 먹지 못하고 밤새어가며 열심히 일했다. 그랬더니 본사 이익과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외하고도 매달 30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그의 점포 300m 옆에 훨씬 큰 규모의 경쟁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섰다.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달 동안 30% 세일을 했다. 그러자 손님은 좀 늘었는데 마진이 낮아져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매달 손에 떨어지는 돈이 150만원이 채 안 됐다. 궁여지책으로 심야 아르바이트를 없애고 온 가족이 매달렸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2004년 4월 본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그는 1000만원의 손해를 입은 채 사업에서 손을 떼었다.
PC방 체인은 요주의
“편의점은 아무나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죠. 또 본사와 물류센터, 푸드회사, 가맹주가 이윤을 나누기 때문에 고생한 것에 비해서 마진도 적었고요. 또 프랜차이즈 본사만 믿고 목이 좋지 않은 곳에 작은 평수의 점포를 택한 것도 큰 실수였죠.”
취재중 만난 ‘시장에서 잔뼈 굵은’ 한 상인은 “화이트칼라 명퇴자들이 바로 프랜차이즈의 밥”이라고 강조했다. 사업 초보자다 보니 대부분이 본사의 기술과 홍보력을 이용하는 프랜차이즈를 택하지만 가맹비, 로열티, 보증금 등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 또 어떤 아이템이 뜬다 하면 이와 관련된 프랜차이즈 본사가 수십 개 생기는 만큼 ‘옥석’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려면 경쟁력 없는 사업모델을 가졌거나 전문성을 보유하지 못한 회사, 인테리어 물류 등 프랜차이즈 관련 인프라가 부실한 회사, 운영자금이 없는 회사가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퇴직금 등 1억5000만원을 모아 2002년 서울 광진구에 PC방을 창업한 전직 은행원인 강모(44)씨. 당시 꽤 이름을 날리던 S체인점을 이용했다. 본사가 원하는 대로 평당 140만원을 주고 30평 규모의 인테리어를 했다. 하지만 곧 냉방배선이 고장났고 문짝이 내려앉았다. 다른 인테리어 업자에게 물어봤더니 “평당 50만원짜리밖에 안 된다”고 했다. 본사가 가맹비(1000만원)뿐 아니라 인테리어비로만 평당 50만원씩 남긴 것이다. 강씨는 즉각 항의했지만 본사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지적재산권 비용, 인테리어 업자에 대한 교육비와 소개비 때문”이라는 군색한 변명만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 6개월 후 강씨의 점포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같은 체인점의 PC방이 들어섰다. 하지만 본사에선 “학생이 많이 다니는 등 입지가 좋으니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신규 PC방이 4개나 오픈했고 그중 하나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강씨 PC방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장사를 포기하고 부동산에 ‘권리금 없는 매각’을 의뢰했다. 보증금 2000만원을 제외하면 1년6개월 만에 대략 1억원의 손실을 봤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PC방은 절대로 체인을 끼지 말라’고 하더군요. PC방이라는 게 최신형 컴퓨터 시설을 갖춰놓으면 손님이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굳이 가맹비를 내고 프랜차이즈 노하우라는 걸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또 PC는 사는 즉시 구형이 되고 아무리 다른 PC방이 들어오지 못할 입지라 생각해도 경쟁점포는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PC방은 투자자금을 최소로 해서 딱 1년만 하면 좋은 사업이라고 해요. 하지만 전 부실 프랜차이즈를 이용하는 바람에 돈도 더 들었고, 버벅거리는 컴퓨터를 간신히 업그레이드해가며 1년 넘게 끌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개발과정 장악 못한 문외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업종을 선택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영업직에서 근무하던 이재흥(가명·50)씨는 이른바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2월 e비즈니스 교육을 제공하는 (주)웹비즈컨설팅을 세웠다. 회사는 CEO 대상 e비즈니스 교육 외에 사설학원용 사이버 교육 솔루션 제작을 주 사업영역으로 삼았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고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2억원을 마련했다. 사이트가 완성돼 수익모델이 구체화하면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액 공모’를 통해 10억원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서울 양재역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웹 프로그래머와 웹 디자이너 등 직원 11명을 뽑았다.
“그런데 저는 웹 프로그램이나 웹 디자인에 문외한이었어요. 솔루션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개발 과정을 ‘장악’할 수가 없었죠. 4개월로 예정된 사이트 구축은 2개월 이상 지연됐어요. 또 당시는 회사마다 웹 관련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던 때라 만약을 대비해 필요 인력보다 많이 채용해 인건비가 2배 이상 들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닷컴 열풍이 얼어붙으면서 2차 펀딩도 무산됐어요.”
2002년 8월 간신히 CEO 교육용 사이트를 완성해 영업을 시작했으나 생각만큼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CEO들이 컴퓨터로 e비즈니스 교육을 받는다는 발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고육책으로 학원 사이버교육 솔루션 쪽으로 집중했지만 대부분 사설학원 강사들이 자신의 강의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것에 반대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어음 2000만원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고, 이후 1년을 더 버티며 재기를 모색했지만 2001년 11월 폐업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영업직에서 일한 만큼 비즈니스 분야에 대해선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이버 교육이 막 시작되던 때라 제가 가진 뛰어난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면 사업이 되겠다 싶었죠. 하지만 태동기다 보니 콘텐츠 자체보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력이 더 중요했는데, 제가 그쪽에는 무지했거든요. 또 젊은이에게나 사이버 교육이 겨우 알려지던 때에 중견 CEO를 타깃으로 잡았으니 사업이 될 수 없었고요.”
그는 “이젠 사이버교육이 일반화했기 때문에 기술력이 아닌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기”라며 “차라리 지금 창업한다면 ‘훌륭한 콘텐츠’라는 나만의 핵심역량이 있으니 큰 성과를 거둘 텐데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며 아쉬워했다.
시장조사 앞서 핵심역량 키워라
창업 실패자들은 예비창업자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은 ‘시장조사’가 아니라 ‘자신만의 핵심역량 키우기’라고 말했다. 편의점을 창업했던 김씨는 “기술창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의점 문을 닫고 현재 쌀가게를 냈는데, 사실 매상이 좋지 않아요. 우리 점포가 있는 건물 지하 슈퍼마켓이 권리금도 받지 못한 채 철수했거든요. 그러자 옆에 있던 생선가게도 같이 문을 닫았고 저희 가게도 그 영향을 받았죠. 건물의 공실률이 30%에 이르지만, 개인 빵집이나 옷 수선집 등 주인이 자신의 기술로 창업한 점포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어요. 음식점도 그 집 음식이 주인의 ‘기술’이냐 아니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것 같고요.”
영어 말하기 학원을 운영하는 정씨 역시 “영어교육의 기본도 모른 채 단지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학원을 차리면 대다수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온 여성들이 자신의 영어실력만을 믿고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영어교육을 하려면 영어를 잘하는 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영어교육은 전혀 다른 분야예요. 교사들을 다루는 것도 쉽지 않고요. 교육사업 운영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쌓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잠실 신천에서 과일소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준열(가명·39)씨는 망한 점포를 헐값에 인수해 ‘대박’을 냈다. 그는 “3층인데다가 망했던 자리라 망설였지만 ‘과일소주’란 확실한 아이템이 있었기에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그의 과일소주는 여느 과일소주와는 다르다. 파인애플 소주를 시키면 파인애플로 만든 잔에, 사과소주를 시키면 사과로 만든 잔에 따라 마시게 한 것이다.
“술의 알코올 농도도 낮추고 과일 향을 듬뿍 담아 여성들이 아주 좋아해요. 술을 수저로 퍼 마시는 맛이 별미죠. 손님들은 취하는 줄도 모르고 꽤 많은 양을 마시게 되니 매출도 늘어나죠. 여성 손님들 사이에 ‘맛있는 소주’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손님이 꾸준히 늘어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됩니다.”
임금근로자로 흡수해야
창업전문가들 역시 창업주의 경영역량이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공급과잉 이전에는 유망업종과 목좋은 장소가 성공을 보장했지만, 이미 경쟁이 치열한 성숙기 시장으로 접어들면서 좋은 조건에도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젠 경영역량 부족이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점포닥터 119의 박균우 대표는 “자기에게 맞는 맞춤창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프랜차이즈에서 나올 만한 아이템은 다 나왔다고 봐요. 게다가 식자재 공급회사가 따로 있는 등 여러 제약이 많아 독창적인 맛을 낼 수 없죠. 그만큼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기도 힘들다는 얘기예요. 물론 A급 브랜드라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엄청난 창업자금을 무시할 수 없죠. 그러기에 요즘 같은 때는 아무리 발품을 팔더라도 내게 맞는 독립점포 창업이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창업 실패 후 닥칠 ‘비참한’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면 좀더 철저하게 창업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재흥씨는 창업 실패 후 2억원이 넘는 빚을 지면서 자신의 명의로는 아무런 경제활동을 못 하는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다. 2년 전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해 지금껏 가족의 얼굴도 못 보고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선 지인들은 염치가 없어 만나지 못한다. 이씨는 “창업 실패의 대가가 이렇게 혹독한 줄 알았다면 창업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업을 준비할 때는 장밋빛 미래만 꿈꾸지 실패한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회사를 접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집을 나왔어요. 그래도 가족은 나를 기다려줄 거라 믿었는데, 집 나간 지 1년 만에 이혼장이 날아오더군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신용불량자라 융자를 받기는커녕 금융거래조차 할 수 없으니 아무리 좋은 아이템으로 철저히 준비해도 새 사업을 시작하기는 힘들죠. 그렇게 영원히 재기불능의 늪으로 빠지는 거죠.”
하지만 아무리 핵심역량을 키우고 꼼꼼하게 맞춤창업을 한다 해도 경기불황과 공급과잉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선 창업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영세 자영업자들은 내수 부진과 경쟁 심화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며 “자영업이 붕괴되면 고용, 금융 모든 면에서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즉 국가 차원에서 벼랑 끝에 몰린 창업자들을 구제할 만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2일 정부는 자영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서비스산업 구조혁신 전략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구체적인 방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가 구상중인 자영업 대책의 골자는 ▲업종분산 ▲경영환경 개선 ▲임금근로자 전환으로 요약된다.
우선 정부는 비임금근로자 대부분이 음식점이나 소규모 숙박업 등 몇 가지 업종에 지나치게 몰려 과잉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자영업종을 분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업종전환 컨설팅을 강화해 자영업자의 직장경험과 특성에 맞는 창업을 유도하겠다는 것. 또 서비스산업 고도화와 중소·벤처기업 활성화를 통해 반듯한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임금근로자로 흡수할 계획이다.
구조조정 들어간 자영업
이 연구를 맡은 우천식 KDI 연구2부장은 이외에도 ▲공공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 ▲자영업자들을 국가 4대 보험체계 안으로 흡수 ▲자영업자들의 조직화 ▲지방자치단체의 창업지원 분담을 제안했다. 특히 지역경제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자영업자인 만큼 중앙정부 부처보다 지역 상권의 특성에 대해 잘 아는 지자체가 창업 및 경영지원 업무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소상공인 최근 동향과 경영안정 지원방안’도 영세서비스업 종사자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담고 있다. 우선 자영업자들의 창업과 경영개선을 지원하는 소상공인지원자금을 2004년 3500억원에서 올해 5100억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또 소상공인 세제지원을 위해 신용카드매출세액공제율을 기존 1%에서 1.5%로 확대하고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율을 2005년 일 년간 2배로 상향조정한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창업을 유도하고 경영혁신을 지원하되 과당경쟁이나 생산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과감히 구조조정한다. 즉 영세 음식업, 소매업 등 공급과잉인 업종의 경우 자금지원시 사업성 인정기준을 기존 55점에서 70점으로 상향 조정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에게만 지원함으로써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무분별하게 창업하는 것을 막는다. 또 산하 소상공인지원센터가 자영업자의 경영혁신을 위해 분야별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게 하고, 소상공인에게는 경영 컨설팅을 지원받을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할 예정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영업의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공적 보증을 통한 대출 만기 연장 ▲내수 활성화 대책 실시 ▲생계형 창업자의 양산 억제 ▲영세 자영업자의 경쟁력 확보 지원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임금피크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생계형 창업자의 양산을 억제하고 과잉상태인 자영업자들을 임금근로자로 전환하는 게 중요합니다. 퇴직자 전환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퇴직 전에 익힌 기술 및 지식을 활용한 창업을 유도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문화·관광·오락·교육 창업이 유리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위원은 “이젠 도소매 판매업이나 음식업 등 전통적인 서비스업은 공급과잉이어서 지금 사업에 뛰어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문화, 관광, 오락, 교육 등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업의 창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중에 만난 창업 실패자들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창업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점이었다. 하지만 재창업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면 대부분이 “창업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극도의 경기불황 탓에 아무리 노력해봤자 본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불황에도 성공하는 5%가 있듯 창업의 성패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여건과 ‘아주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여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안타깝게도 200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후자에 더 가까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