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분만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해외출장을 갔다가 어제 돌아오는 바람에 인터뷰 질문지를 제대로 못 봤어요.”
2월3일 오후. (주)유한킴벌리 문국현(文國現·56) 사장은 약속시간보다 먼저 인터뷰 장소인 서울 신문로 환경재단 사무실에 도착해 인터뷰 질문지를 읽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 인사를 나눈 후 “질문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않고 인터뷰하면 충실하게 답변할 수 없다”며 시간을 조금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 질문지를 읽어 내려갔다.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빼곡히 적기도 했다. 인터뷰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데 인터뷰어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기자도 문 사장에 대한 자료를 꺼내들었다.
문국현 사장은 기업가이자 환경운동가다. 1984년 유한킴벌리 기획실장이던 그는 나무심기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기획해 지금까지 전국 국유지와 공유지에 25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이후에도 1998년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2000년 ‘학교 숲 가꾸기 운동’을 시작하는 등 직접 환경보호운동에 뛰어들었다. 대외적인 캠페인 외에 회사에서도 모든 제품의 설계단계부터 생산, 유통, 폐기까지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환경경영’을 시행해 전 사업장이 환경친화기업으로 공인받았다.
2003년 1월, 그는 환경재단 최열 대표와 함께 환경보호에 뜻을 가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매출액의 1만분의 1을 기부하는 ‘만분클럽’을 출범시켰다. (주)유한킴벌리는 제1호 회원이 됐고 이어 포스코, 삼성전자, LG칼텍스 정유, 롯데백화점 등 총 66개 기업과 기관이 가입했다(2005년 2월 현재). 2004년 모금액은 37억원에 이른다. ‘만분클럽’은 단지 기부에 그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포럼을 가지며 환경경영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각종 워크숍과 세미나에 참여한다. 다시 말해 환경경영을 위한 CEO들의 스터디 모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활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문국현 사장이다. 또 그는 2003년 2월 탄생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 ‘136포럼’의 공동대표이다. 이런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그는 이제 국내 ‘환경경영의 개척자’로 불린다.
교토의정서는 ‘기회’
어느덧 30여분이 흘렀다.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답변을 꼼꼼하게 적던 그는 “시간이 많이 걸려 미안하다”며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했다.
-많이 바쁘시군요. 해외출장은 어디로 다녀왔습니까.
“1월25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후 이탈리아에 가서 섬유산업을 살펴봤습니다.”
-다보스포럼엔 처음 참가한 것으로 아는데, 어땠습니까.
“그 전에는 다보스포럼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편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종 한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유한킴벌리를 ‘튀는’ 사례로까지 소개하지요. 하지만 그곳에 가보니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이 많았어요. 우리 수준은 딱 중간이더군요. 일찍부터 그들과 정보를 교류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보스포럼은 1월27일 세계 각국의 환경지속성지수를 평가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한국은 146개국 중 122위에 머물렀더군요.
“2002년엔 142개국 중 135위였으니 약간 오르긴 했죠. 하지만 이번 조사에 포함된 29개 OECD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꼴찌입니다. 참 부끄러웠지만 깨달은 바도 많았어요. 사실 다보스포럼은 주요 의제를 2000여명의 참석자가 직접 투표해 선정하거든요. 그런데 3위가 바로 지구온난화 문제였어요. 그만큼 전세계 기업이나 국가기관이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거죠. 또한 각국 기업들은 환경보고서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사회의 관심도 높고요. 하지만 우리의 경우 환경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기업도 많고 이사회에서는 환경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한국이 꼴찌를 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죠.”
-최근 환경문제가 다시 부각되는 것은 아무래도 2월16일 정식 발효되는 교토의정서 때문인 듯합니다. 2013년부터 시작되는 2차 공약기간에는 우리나라도 감축의무를 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국내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남들은 ‘위기’라 말하는데, 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수송 에너지를 일본보다 2배 이상 사용합니다. 수송 에너지만 반으로 줄여도 연간 13조원 가까이 절약할 수 있어요. 그러면 대기오염도 줄고 사람들도 건강해지죠. 국제적으로 환경지수가 높아지면서 관광객도 늘어나고요. 1석3∼4조의 기회인 거죠.”
“꼭 회사에 나와야 하나요?”
-옳은 말씀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줄이느냐가 문제겠죠.
“경기도 양평이나 분당, 수지 등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일이에요. 그러니 다들 차를 몰고 나와 도로는 막히고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지요. 우리나라는 하나의 권역이 너무나 커요. 환경설계 없이 도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진국은 모든 시설이 15분 이내로 오갈 수 있게끔 위치해 있어요. 우리도 이젠 변할 것입니다. 행정도시가 새롭게 들어서면 인구가 어느 정도 분산될 것이고, 30년 가까이 된 낡은 건물을 재건축하면서 환경을 고려해 설계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모든 직원이 꼭 출근해서 일해야 하나요? 가령 디자이너라면 굳이 회사에 나올 필요 없이 집에서 디자인해서 이메일로 보내줘도 되잖습니까. 그러면 수송 에너지가 100% 줄어드는 거죠. 꼭 출퇴근해야 한다는 생각은 재래식, 군대식 사고예요. 디지털 시대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그렇다면 유한킴벌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송 에너지를 줄이고 있습니까.
“우선 본사 사무직은 이른바 버추얼(virtual) 근무 시스템이에요. 꼭 회사에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죠. 재택근무, 원격근무, 현장근무를 기본으로 합니다. 회사에는 꼭 나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나와요. 물론 생산직은 사정이 좀 다르지만, 수송 에너지는 많이 들지 않아요. 공장이 군포, 김천, 대전에 있는데, 근로자들이 대다수 공장 근처에 살거든요. 거기에다 4조 2교대 근무 시스템을 도입해 출근일수를 줄였습니다. 그러니 수송 에너지가 확 줄어들지 않겠어요?”
유한킴벌리 공장의 4조 2교대 근무 시스템은 청와대에서 벤치마킹하겠다고 했을 만큼 유명하다. 전 직원이 4조로 나뉘어 주야간 교대로 4일(하루 12시간) 일하고 4일 쉬는 시스템이다(주간근무 후 1일은 교육). 3조 3교대 근무를 적용하는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인력이 25% 더 많다. 또 근로자 1명의 연간 근무일수는 180일로 크게 줄었지만 공장 가동일수는 오히려 260일에서 350일로 늘어나 생산성이 30% 가량 높아졌다.
“기계를 쉬게 하면 그만큼 낭비입니다. 토지, 건물, 기계에 대한 투자는 적게 하지만, 필요해서 들여온 것들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또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는 청정 에너지,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기름 1ℓ로 36km를 운행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국내 차는 10km 내외라고 하죠. 3분의 1밖에 못 가니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재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수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주 56시간 이상, 연간 2800시간 이상 초장시간 근무하는 근로자가 290만명에 이릅니다. 주 44시간 이상, 연간 2200시간 근무하는 장시간 근로자도 추가로 630만명이나 되지요. 이들의 과로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심각해요. 산업 재해자나 산재 사망자가 나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죠. 이 역시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낭비’예요. 이렇게 피로한 근로자들에게 어떤 새 기술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또한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평생학습을 시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주 6일 근무하고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날 교육받으라고 하면 직원들이 제대로 받겠어요? 하지만 우리 회사는 4일이나 쉬기 때문에 그중 하루는 교육받을 수 있는 거죠. 필수는 아니지만 사내교육이 직무역량을 높이거나 교양을 쌓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직원 대다수가 교육을 받습니다. 직무교육의 경우 심화과정까지 잘 갖춰져 교육과정만 마치면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교양교육도 커리큘럼이 무척 다양하고요. 또 교육을 들으면 당일 수당도 받고, 근무 관련 자격증을 따면 월급이 올라가죠. 그러니 참여할 수밖에요. 참여율이 가장 낮은 공장은 84%이고 높은 곳은 90%가 넘어요. 이것이 바로 사람중심의 건강과 평생학습 체제이자 21세기형 뉴 패러다임 경영이죠.”
유한킴벌리가 4조 2교대제를 도입한 이후 매출액은 1996년 3447억원에서 2004년 7227억원으로, 순수익도 144억원에서 90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또 이직률은 2000년 이후 0%에 가까워졌으며, 생산성도 합작 파트너인 킴벌리클라크가 운영중인 세계 156개 사업장 중 1위다. 유아용품의 경우 생산성이 2003년 기준 시간당 3만6300개로 호주 공장의 2배에 가깝다. 공부 시간이 많아진 근로자들이 공정과 제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낸 결과로 보인다.
-말씀을 듣고 보니 문 사장께서 주장하는 뉴 패러다임 경영이 곧 환경경영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환경경영에 돈이 많이 든다는 주장은 사후관리나 하는 기업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유해물질을 마구 배출해놓고선 뒤늦게 이것을 처리하려고 하니 비용이 많이 들죠. 하지만 생산단계에서부터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게 하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환경경영은 곧 기업의 전략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어요. 그러려면 기업의 최고 ‘심부름꾼’인 최고경영자가 환경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환경재단 등 환경단체에서 CEO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유한킴벌리의 모든 공장이 한국능률협회에서 환경경영시스템 인증(ISO-14001)을 받고, 환경부에서 환경친화기업으로 지정되었는데요. 구체적인 환경관리정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선 전과정 분석(LCA·Life Cycle Assesment)을 실시합니다. 제품의 설계부터 납품, 생산, 유통, 폐기에 이르기까지 자원낭비의 요소는 없는지, 반품될 소지는 없는지, 세계의 앞선 기술을 도입할 여지는 없는지를 평가하는 거죠. 2001년엔 화장지, 2002년엔 종이기저귀, 2003년엔 디지털 날염, 2004년엔 소각로에 대해 LCA를 실시했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원료 수입의 효율성을 높였고 청정연료를 사용하게 됐으며, 협력업체도 LCA를 수행하게 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죠. 국내에선 이런 과정을 실시하는 기업이 10개 미만인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선 보편화한 일이죠.
또한 공급망 관리체계(SCEM·Supply Chain Environmental Manage- ment)를 통해 협력업체들을 통합관리하고 있습니다. 협력업체들과 환경정보를 교류하면서 환경경영을 확산하자는 거죠. 또 협력업체들이 청정생산기술을 도입하고 LCA나 환경디자인 등을 적용하며 환경보고서를 발행하게 함으로써 친환경 제품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이게끔 도와주는 거죠. 사실 협력업체나 중소기업일수록 환경경영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들은 주로 부품업체인데, 유럽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부품에 유해물질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수출할 수 없게 되거든요. 반면에 친환경 부품을 만들어낼 경우 국내 기업뿐 아니라 세계 각 기업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겁니다. 어쨌든 SCEM을 실시한 결과 협력업체 중 18개사가 ISO인증을 받았습니다. 환경감사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부인뿐 아니라 외부인사들도 감사에 참여하죠.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모아 1998년부터 현재까지 4건의 환경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생리대
-친환경 정책을 펴고 있다지만, 유한킴벌리는 결국 환경을 ‘이용’하는 기업입니다. 유한킴벌리가 생산하는 화장지, 종이기저귀, 생리대의 원료인 펄프를 얻기 위해서는 삼림을 파괴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저희 제품은 미국에서 폐지를 수입해 만들어요. 국내 목재시장은 제지, 생활용품 회사에 원료를 공급할 만한 생산규모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펄프를 일부 구입하기도 하는데, 이 때 수입펄프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으로 생산된 것인지 꼭 검증합니다. 외국에서 인증된 제품, 즉 지속가능한 삼림업을 하는 나라,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목재 건물을 짓고 남은 부스러기 등을 모아서 만든 펄프를 쓰는 거죠. 물론 동남아 열대우림에서 나오는 펄프는 가격이 앞서 말한 나라들의 펄프보다 25% 정도 싸요. 우리나라에도 여기 물건을 쓰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럴 수 없어요. 지구의 허파를 잘라내서 제품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인증되지 않은 펄프는 화학표백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한킴벌리의 주 생산품은 부직포, 즉 섬유로 만듭니다. 순이익의 90% 이상, 매출액의 70% 이상이 섬유제품에서 발생하죠. 그러기에 삼림을 파괴한다고는 볼 수 없어요. 오히려 2001년 ‘디지털 날염(DTP·Digital Textile Printing)’을 도입함으로써 폐수와 화학물질의 사용을 95% 이상 줄였습니다. DTP는 컴퓨터를 이용해 옷감에 프린팅하듯 염색하는 방법이에요. 전혀 물을 사용하지 않아요. 우리의 섬유산업 시설은 대개 물가에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주로 근무하는 3D업종이자 환경파괴업종으로 취급되는데, 이는 기존 날염이 노동 집약적이고 오염물질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DTP는 유한킴벌리의 모회사인 킴벌리클라크가 수익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매각하려 한 것을 문 사장께서 운영하겠다고 해서 사업 전체를 유한킴벌리가 맡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왜 DTP 사업을 추진했습니까.
“섬유산업은 한때 국내의 최대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사양산업으로 취급하고 있죠. 하지만 이탈리아나 일본처럼 제품을 고급화하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이탈리아에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죠. 이 두 나라는 철저하게 디지털 날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몇몇 회사만 도입한 상태죠. 디지털 날염은 속도가 느리고 단가가 비싸 대량 생산에 맞지 않거든요. 이젠 소량 맞춤생산 시대니까 앞으론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지난해 3월 말 식목일을 앞두고 신혼부부 200쌍이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참여해 묘목을 정성스럽게 옮기고 있다.
“우선 생리대를 보면 우리 제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얇아요. 미국 제품의 5분의 1 수준이죠. 기술개발을 통해 얇아도 잘 흡수하고 통기성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986년에 비해 두께는 85%가, 무게는 69%가 감소했죠. 펄프 사용량도 30% 줄었고요. 그러다 보니 원료도 줄이고, 매립할 때도 공간을 조금만 차지하게 된 겁니다. 지금은 물에 녹거나 분해되는 성분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한킴벌리가 일반인에게 친환경기업으로 각인된 것은 뭐니뭐니 해도 1984년부터 이어져온 나무심기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기획실장이던 그는 해외연수차 미국과 호주 등지를 둘러보면서 잘 가꿔진 아름다운 숲과 공원에 감명을 받고 귀국 후 ‘숲 가꾸기’ 캠페인을 회사에 공식 제안했다. 이후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산림조합중앙회에 기금을 조성해 조림사업에 나섰다.
1985년부터는 신혼부부를, 1988년부터 여고생을 대상으로 나무 심기와 숲 알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젊은 세대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아야 사회가 변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95년부터는 흙먼지와 회색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학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 숲 만들기 운동’을 펼쳤고, 그 결과 2005년 현재 380개 학교에 숲을 선사했다. 1998년 IMF 관리체제 이후 실직자가 대량 발생하자 정부에 건의해 13만여명이 5년간 국유림 조성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생명의 숲’ 국민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시선을 나라 밖으로 돌려 동북아 지역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중국과 몽골에 나무를 심는 ‘동북아 산림포럼’(1998), 북한의 조림사업을 돕는 ‘평화의 숲’(1999), 서울의 녹지를 가꾸는 ‘서울그린트러스트’(2002) 운동 등을 시민단체나 지자체와 연대해 꾸준히 전개해왔다. ‘만분클럽’을 통해서는 유엔 산하 생태환경평화대학원을 강원도에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숲 보호 활동을 펴고 있다. 2001년 1월부터 숲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익 사이트 ‘포리스트코리아(www.forestkorea. org)’를 운영하고 있는 것.
-이런 환경사업을 벌이려면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매출액의 어느 정도를 환경운동에 씁니까.
“환경운동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문화운동 등을 모두 합친 사회공헌활동에 매출액의 1.2%를 씁니다. 만분클럽에 들어가는 금액의 120배 정도죠. 지난해 매출액이 7200억원이 넘었으니까 86억원 넘게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 것입니다. 여타 기업보다 12배는 더 쓴다고 볼 수 있죠(웃음).
하지만 이렇게 노력해도 우리나라의 숲이나 공원이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최소 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보다 2배 이상 공원이 들어서야 해요. 앞으로 50년은 더 나무심기 운동을 펼쳐야 지금의 선진국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경에 무지한 정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환경지속성지수는 100점 만점에 43점으로 122위를 기록했는데, 문 사장께서 보기엔 우리나라의 환경점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저는 그것보다는 좀 높을 거라고 보는데요. 한 50점? 50점이 된다면 70위로 올라가요. 정부와 기업, 국민이 모두 조금만 노력하면 그렇게 될 것 같은데….”
-현재 노무현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환경정책인데요. 핵폐기장 건설을 놓고 지난해 내내 지역주민들과 승강이를 벌였고 최근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한 지율 스님의 단식도 있었죠.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경경영에 기회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정부에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환경부나 산업자원부 등 일부 유관 부처에나 좀 있을까, 다른 부처에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 환경으로 합쳐집니다. 선진국에서는 환경부처가 모든 정책에 대해 친환경적이냐, 아니냐를 놓고 사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딴판이죠. 관료들이 환경에 대해 너무 몰라요.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 후에야 사후약방문처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겁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환경문제가 무척 ‘비싼’ 것으로 착각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요. 큰 문제죠.”
-한때 환경부 장관 하마평에 오른 적도 있는데요. 만약 정·관계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저는 공인정신보다는 ‘유한정신’에 더 투철한 걸요. 또 유한과 합작한 킴벌리클라크가 아시아 경영을 유한킴벌리에 맡겼어요. 그러다 보니 유한킴벌리에서 제가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하기야 제가 하도 완강히 거절했더니 이젠 아무도 부르지 않던걸요(웃음).”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요.
“이제 유한킴벌리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많다 해도 전세계의 1.5%밖에 안 됩니다. 이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특히 중국시장에 포커스를 맞추려 합니다. 중국시장의 15%만 차지해도 최소 1조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올해에만 6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렇다고 공장을 새로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있는 공장으로도 환경경영을 하면 생산량을 충분히 맞출 수 있으니까요.”
문국현 사장은 1971년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 후 세상을 떠난 유한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의식에 감동해 그 이듬해 유한킴벌리에 입사했다고 한다. 기획조정실, 투자계획팀을 거쳐 전산실장, 기획조정실장, 사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등을 맡은 후 1995년 2월 사장에 올랐다. 전문경영인인 그는 “유한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가에겐 은퇴가 없다
문 사장은 술, 담배를 안 하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그는 “골프장 하나 만들면 환경피해가 엄청나다. 나무 심는 사람이 애써 심은 나무를 긁어내고 만든 골프장에서 노닐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골프보다는 시민단체 사람들이나 학생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딸만 둘이라는 그는 가족과의 대화를 중요시해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대화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싶은가”고 물었다. 대답은 정말 그다웠다.
“환경운동가는 평생 은퇴라는 게 없잖아요. 나무 심는 일, 또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숲 전문가로서 죽을 때까지 활동할 겁니다. 물론 여행도 다니면서 세계의 멋진 공원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나라 땅에만 나무를 심고 가꿔왔는데, 은퇴하면 작으나마 내 땅에 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만들고 싶어요. 동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