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인터넷 상거래로 ‘가정용 로봇’을 구매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가정용 로봇의 첫걸음은 청소 로봇이 될 것 같다. 5년 내 가정용 로봇 시장은 62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 ‘新성장산업’의 견지에서 가정용 로봇 산업이 면밀히 연구되지 않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대응도 구체적이지 못하다.
가정용 로봇은 인류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가전업계의 빅히트 상품이 될 전망이다.
중산층인 제럴드 마틴씨의 집으로 배달된 가정용 로봇 앤드루는 요리, 청소, 세탁, 육아, 집 수리는 물론이고 말동무, 부업, 경비 시스템의 역할까지 완벽히 해낸다. 값은 비싸도 주인집 가족을 끝없는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며, 가족이 어떠한 명령을 내려도 즉시 과제를 수행한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제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가정용 로봇을 주문하면 집으로 배달해준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아니지만 청소쯤은 맡길 수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가정용 로봇의 시대가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다. 낙관적인 과학자들은 ‘1가구 1로봇’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예상한다. 로봇은 그 개발목적대로 사람을 더 편하고,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가정용 로봇의 등장에 정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쪽은 주부가 아니라 가전업체 경영진이다. 가전업계는 지능형 로봇이 ‘대박’을 안겨줄 비즈니스 아이템이 되리라 믿는다. 이들은 영화에서 제럴드 마틴씨가 앤드루를 구매하는 것처럼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로봇 구매가 유행할 날이 곧 다가올 것으로 내다본다.
가전업계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먼 미래의 컨셉트’로만 여겨지던 고화질 HD-TV가 지금은 전세계 시장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초히트 상품으로 성장한 것을 경험했다. 그 속도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그렇다면 10년쯤 뒤엔 로봇 제품도? 안 되겠다. 지금부터라도 투자를 해야겠다.’ 대다수 가전업체의 생각이다.
PC, 휴대전화 다음은 로봇?
실제로 가전업계를 선도하는 기업들 사이에선 로봇 기술 개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당수 업계 전문가는 로봇이 TV, 퍼스널 컴퓨터, 휴대전화에 이어 인류의 삶 중심에 자리잡을 전자기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업의 논리로 접근하면 ‘로봇이 SF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로봇에 대한 인류의 기대수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제대로만 만들면 로봇 제품이 빅히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로봇은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인간처럼 직립 보행하고 인공 귀와 눈을 가진 휴머노이드, ‘사이버네틱 오거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약자로 인간의 신체를 인공장기 등으로 대체하는 개념의 사이보그, 스스로 뛰고 차고 물고 다니면서 온갖 재롱을 떠는 애완용 로봇, 인간이 갈 수 없는 극지방이나 화산 등지를 누비는 탐사 로봇, 폭탄제거 로봇, 스포츠 로봇, 곤충 로봇 등이 있다.
요즘엔 산업계의 여러 영역과 이공계 연구실에서 로봇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반인에게 로봇의 존재가 한층 실감나게 인식되는 분야는 가정용 로봇이다. 현재의 가정용 로봇은 실내를 청소하고 침입자가 없는지 집 안팎을 감시하며 엔터테인먼트-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앤드루의 ‘원시인 조상’쯤 되는 셈이다.
나라마다 로봇의 ‘진화’ 속도 차이는 꽤 크다. 이미 일부 로봇 선진국은 여느 나라보다 몇 단계 진화된 로봇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전자 기술의 강자이지만 로봇 제조에 관한 한 세계 초일류 반열에 못미치고 있다. 로봇은 센서, 집적회로(IC), 가전 등 다양한 IT기술이 어우러진 최첨단 복합기술 제품이다. 산업용 로봇의 경우 미국, 일본, 유럽이 세계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다만 휴머노이드와 가정용 로봇 시장은 이제 막 열리는 단계이다.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로봇 기술은 ‘이동성(mobility)’과 ‘지능(intelligence)’의 2가지 축으로 진화하고 있다. 로봇은 10년 안에 인간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고 스스로 판단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2030년쯤이면 일부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로봇도 출현할 전망이다. 로봇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의 확산에 힘입어 산업용 로봇보다는 가정용 로봇이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통신부는 2003년 8월 지능형 로봇을 ‘10대 차세대 성장산업’의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오는 2013년 세계 3위의 로봇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게 한국 정부의 비전이다. 정통부는 로봇이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로봇과 로봇이 연결되어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네트워크화된 로봇’, 즉 URC(Ubiquitous Robotic Companion) 개념을 제시했다.
산업자원부도 2013년에는 지능형 로봇 분야가 생산 30조원, 수출 20조원, 고용창출 10만명을 기록할 국가 성장동력산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기술평가원은 “2010년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1000억달러에 달하며, 그중 가정용 로봇이 620억달러(약 62조원)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자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1가정 1로봇’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할 가능성은 이처럼 매우 높은 편이다.
로봇 선진국 일본에선 가정용 애완 로봇이 이미 상용화되었다. 1995년 소니는 일본어로 ‘친구’라는 뜻의 강아지 로봇 ‘아이보(AIBO)’를 내놓았다. 최근 일본의 가정용 로봇산업은 확연히 진화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해 12월 일명 ‘파트너 로봇’으로 불리는 가정용 로봇에 대한 의견을 복수 응답토록 한 결과 일본 소비자들은 로봇이 집안경비(71%), 청소·운반 등 가사보조(65%), 노인·장애인 간병(52%) 등 실용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런 몫을 해내기 위한 기능으로 개인식별(62%), 회화와 커뮤니케이션(53%), 힘이 필요한 간단한 작업능력(50%)을 꼽았다.
애완용 로봇에서 가사, 간호, 육아, 교육 등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생활 로봇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기업은 이런 변화에 발맞추고 있고 일본 경제산업성도 최근 ‘로봇정책연구회’를 발족시켜 가정용 로봇 등 생활 로봇에 대한 안전기준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소니는 지난해 10월 ‘아이보’에 집안 경비 기능을 추가했다. 이제 아이보는 재롱도 떨면서 집도 지키는 강아지가 된 것이다. 아이보는 기쁨, 슬픔, 화남, 놀람, 두려움, 싫어함의 6가지 감정과 사랑, 탐색, 운동, 배고픔의 4가지 본능을 갖고 있다. 환경을 익히고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능력도 지녔다.
한편 혼다가 20여년에 걸쳐 3000억원을 들여 개발해 2000년 11월 발표한 2족 보행 로봇 ‘아시모(ASIMO)’의 손목에는 최근 센서가 추가됐다.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물건을 건네주는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아시모는 걷기는 물론, 계단을 오르거나 뛰는 자세로 빨리 걷는 능력도 있다. 후지쓰도 최근 일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면서 가사노동을 돕는 획기적인 인간형 로봇을 내놓았다. 손님 안내하기, 어린이의 얼굴과 음성을 인식하면서 대화하기, 쓰레기통 비우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생활 로봇이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가정용 로봇의 발단은 청소 로봇이 될 듯하다. 2003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청소 로봇은 2005년 들어 본격적인 대중화 시대를 맞아 외국산 제품이 장악했던 시장에 속속 국산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국산 제품의 기능도 몰라보게 향상됐다. 무엇보다 ‘가격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청소 후 스스로 달려가 충전
청소 로봇의 원리는 무인운반차와 진공청소기를 합친 것이다. 기계가 스스로 실내의 각종 장애물을 피하면서 바닥의 찌꺼기를 빨아들이는데, 로봇의 몸통엔 여러 개의 감지센서와 통제장치가 달려있다. 청소 로봇은 우선 초음파를 이용해 벽면과 자신과의 거리를 감지한다. 광센서와 달리 초음파 센서는 유리벽 등 투명하거나 경사가 진 벽과의 거리도 감지할 수 있다. 청소 로봇이 청소하는 방법은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먼저 벽면을 따라 방이나 거실을 한 바퀴 돌아 너비를 기억한다. 그 뒤 차근차근 앞뒤로 이동하면서 전진하는 방식으로 실내 공간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먼지를 빨아들인다.
청소 로봇은 높이가 10cm대로 납작한 편이다. 소파와 침대 밑을 훑기 위해서다. 모양은 대개 원형이다. 이 또한 벽면이나 가구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함인데 범퍼로 싸여 있다. 청소 로봇이 자기 위치를 인식하는 원리는 자이로스코프에 있다.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원형물체인 자이로스코프를 내장해 진로가 수시로 바뀌어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방향 감각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납작한 원형 청소 로봇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미국 아이로봇사가 내놓은 ‘룸바’ 시리즈다. ‘룸바’를 국내에 독점 수입, 판매하는 코스모양행은 “지난 1월 초까지 국내 시장에서 1만대를 팔았다”고 밝혔다. 2003년 5월부터 룸바를 판매했는데, 2004년에는 월 평균 1000대씩 팔렸다고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더 똑똑해진 ‘룸바 디스커버리’를 출시했다. 청소가 끝나면 자동으로 제 자리로 돌아가 스스로 충전하는 제품인데, 판매가격은 59만8000원.
아이로봇의 ‘룸바’는 로봇 청소기 시장을 연 세계적 히트상품이다. ‘룸바’는 당초 시장조사기관들의 예측을 뛰어넘어 출시 18개월 만에 판매대수 100만대를 기록했다. 2003년 당시 미국 조사기관들은 2003~06년 미국의 진공청소기 로봇 시장을 대략 40만대 규모로 예측했다.
1년 반 만에 100만대 판매
‘룸바’ 한국 출시 당시 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만든 ‘트릴로바이트’, 한국 LG전자의 로봇 청소기 ‘로보킹’이 경쟁에 나섰지만, 이 두 제품의 판매가격이 200만원대여서 40만~50만원대의 ‘룸바’를 이기는 어려웠다. 지난 1월 아이로봇의 그레고리 화이트 부사장은 한국을 방문, “지난해 12월 출시한 2세대 로봇 청소기 ‘룸바 디스커버리’가 미국에서 6주 만에 20만대가 팔렸다”고 말했다. 그는 “스팀 기능을 갖춘 로봇 청소기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주부들은 전통적으로 거실과 안방 바닥을 쓸 뿐만 아니라 닦기도 하는데, 청소 로봇에 닦는 기능까지 추가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로봇은 이제 ‘연구실’에서 ‘거리’로 나오려 한다. 로봇은 머지 않은 시기에 인류의 ‘생필품’이자 ‘친구’가 될 것이다.
아파트 기본옵션 된 청소 로봇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에 폭발물 처리 및 위험지역 정찰용 로봇 ‘롭해즈’를 납품해 실력을 인정받은 유진로보틱스(www.yujinrobot.com)는 지난 1월 외국산 청소로봇을 대체할 국산 브랜드 ‘아이클레보(iClebo)’를 발표했다. ‘똑똑한 청소로봇’을 뜻하는 ‘아이클레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가격이다. ‘룸바’와 유사한 형태의 이 제품 가격은 39만9000원.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 ‘CES 2005’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높이 9.5cm, 직경 35cm, 무게 4.1kg에 2시간30분 급속 충전으로 90~120분간 사용할 수 있다. 출근하면서 작동시켜놓으면 침대와 소파 밑을 헤집고 다니면서 스스로 알아서 바닥의 먼지와 이물질을 청소한다.
이 제품엔 적외선 센서와 실리콘 재질의 범퍼 센서가 장착돼 있다. 센서로 스스로 장애물을 감지해 충돌을 피함으로써 가구 등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바닥에 달린 센서로는 바닥높이를 감지해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쓸어담기와 진공흡입 등 이중 청소방식을 채택해 청소효과도 높였다. 유진로보틱스는 “3년 동안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하루 청소비로 500원 정도 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풀어야 할 과제다.
한울로보틱스(www. robotics.co.kr)는 3월쯤 고기능 청소 로봇 ‘오토로(OTTORO)’를 내놓을 계획이다. 3월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로봇박람회 ‘한국국제로봇기술전(KIROTEC)’에 맞춰 상용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는데, 판매가격을 450만원대로 설정해 중상류층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오토로의 청소방식은 독특하다. 기존 청소 로봇들이 벽면을 따라가거나 벽에 부딪치면 V자형으로 튀어나와 움직이는데 비해 이 제품은 바둑판식으로 이동하며 청소한다. 30여개 이상의 각종 센서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집안 구조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파악하며,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최적의 청소경로를 설정해 가구와 부딪치지 않으면서 안전하고 깨끗하게 청소한다.
청소기 앞뒤에 장착된 카메라는 청소할 곳의 위치와 작업환경을 인식하며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12쌍의 초음파 센서와 에어범퍼 센서가 360도로 둘러져 있어 청소의 질과 안정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3개의 바퀴와 돌출형 회전식 청소 도구를 달아 좁은 공간까지도 구석구석 청소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측은 “지금까지의 청소 로봇은 청소를 다 했는지 여부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오토로는 청소상황을 스스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로보트는 지난해 12월 한화종합화학 및 유비시티와 공동으로 바코드 인식을 통해 로봇을 이동시키는 기술인 ‘로봇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시연했다. 이는 바코드를 활용한 자율항법 시스템으로, 집안의 바닥재에 투명 바코드(랜드마크)를 바둑판 형태로 인쇄한 뒤 이를 ‘라르고’로 명명된 로봇이 읽으면서 움직이게 하는 원리다.
이럴 경우 로봇은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알게 된다. 더 이상 제 위치를 몰라 벽에 좌충우돌하지 않아도 된다. 청소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청소를 하지 않고 빼먹는 공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형지물 인식에 필요한 초음파 센서와 카메라를 장착할 필요가 없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마이크로로보트와 한화종합화학은 앞으로 신규 분양아파트에 바닥재와 로봇을 세트로 납품한다는 계획이다. 마이크로로보트는 향후 청소 로봇이 싱크대처럼 신축 아파트에 빌트인으로 제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로봇 제조업체와 아파트 건설업체의 협력은 이런 취지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
‘홈 네트워크 로봇’ 나온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2003년 각각 ‘로보킹(ROBOKING)’과 ‘쿠르보(Crubo)’로 이름붙인 청소 로봇을 내놓은 적이 있다. ‘로보킹’은 1988년부터 로봇 연구를 시작한 LG전자가 60억원 이상의 개발비용과 3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상용화한 제품이다. ‘쿠르보’ 역시 삼성전자가 크루즈 미사일 항법원리를 이용해 개발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로봇 스스로 청소를 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을 구분해 효율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청소시간을 대폭 단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두 제품은 200만~300만원대의 비싼 가격 탓에 시장에서 호응을 받지 못했다. 양사는 미미한 시장반응에 실망한 탓인지 출시를 늦추거나 오프라인 판매를 하지 않았다.
아파트 건설업체와 가정용 로봇 제조업체의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로봇보급을 더욱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적인, 더 인간적인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가정용 로봇 앤드루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로 그려진다. 두 발로 서서 걷고, 목공예 전문가의 창의력과 손재주를 가졌다. 학습을 통해 지성을 발달시켜나가며 착한 사람의 푸근한 감성마저 지녔다. 가정용 로봇은 청소 로봇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인간을 닮아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로봇이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2년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사가 자동차 조립라인에 산업용 로봇을 도입한 이래 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의 산업용 로봇이 산업현장에 배치됐다. 최근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로봇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신장 58cm, 체중 65kg의 크기에 5만~6만 단어를 인식하고 10명 정도의 사람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소니사의 엔터테인먼트용 로봇 ‘큐리오’는 지난해 3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을 지휘했다.
이어 소니는 지난해 12월, 두 발로 걷는 큐리오의 발걸음을 보다 자연스럽게 고친 ‘2세대 큐리오’를 발표했다. 초대 큐리오가 발바닥을 모두 땅에 붙이고 걸었다면 2세대 큐리오는 발바닥 앞부분과 뒤꿈치를 적절히 활용해 인간과 거의 비슷하게 걷는다. 춤을 추기도 하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난다고 한다.
일본 도요타사가 2003년 발표한 이래 기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로봇 ‘파트너’는 뛸 수 있을 뿐 아니라 입술이 사람과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트럼펫 연주도 가능하다. 도요타는 파트너가 무대 위로 사뿐히 걸어나와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멋지게 트럼펫을 연주하는 장면을 자사 인터넷 사이트(www. toyota.co.jp/en/special/robot/)에 올려놓았다. 파트너는 키 120cm에 몸무게는 35kg이며, 노인을 잘 보살핀다.
한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일본에 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열악한 환경에도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았다. KAIST의 오준호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인 ‘휴보(HUBO)’를 발표했다. 12월2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맞춰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휴보는 키 125cm에 체중 55kg이고, 41개의 관절로 이뤄져 동작이 자연스럽다. 다섯 손가락을 움직여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일본이 10여년 동안 수천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것을 오 교수팀은 3년 만에 10억원으로 해치웠다.
‘로봇 선진국’ 일본 따라잡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의 유범재 박사 연구팀은 네트워크 기반의 휴머노이드인 ‘NBH(Network Based Humanoid)-1’을 발표했다. ‘네트워크 기반’이라는 것은 로봇이 시청각 데이터를 외부의 컴퓨터시스템에 보내 이를 분석토록 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받아 말이나 동작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대용량의 외부 서버와 네트워크로 연결됨으로써 로봇은 영상, 음성, 동작 등을 통해 주인을 알아볼 수 있다. NBH-1은 움직이면서도 악수를 할 수 있다. 키 150cm 몸무게 67kg이고, 전후좌우는 물론 대각선 방향으로도 걸을 수 있다.
청소 로봇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됐지만, 그 상위 단계인 휴머노이드는 아직 연구·개발 단계에 있다. KAIST에서 3년 만에, KIST에서 1년 만에 각각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로봇기술 발전속도는 빠른 편이다.
그러나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 기업, 연구기관들이 일본을 경쟁상대로 삼아 기술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컴퓨터, 가전, 유무선통신 등 3대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로봇은 바로 이 컴퓨터, 가전, 통신이 융합된 산업이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나 기업이 로봇제품 개발 분야에서 일본만큼이나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정용 로봇은 가까운 미래에 ‘나라를 먹여살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청소 로봇보다 훨씬 진화된 형태의 다기능 로봇,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상자에 담겨 집으로 배달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이 그 때를 준비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