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국민연료 ‘썬연료’ 이제는 해외 식탁문화도 바꾼다

대한민국 1등이 곧 세계 1등

  •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0-04-29 16: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어둠이 깔리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크고 작은 회사들이 운집해 있는 서울 충정로 먹자골목에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오늘은 무얼 먹을까? 조개가 듬뿍 들어간 수제비도 좋겠고, 얼큰한 생태찌개도 생각나고, 샤브샤브와 버섯전골에 라면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것도 좋겠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부탄가스만 있다면…. 찌개, 전골, 탕처럼 끓이는 음식이 많은 우리 식문화에서 ‘휴대용 부탄가스’는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 같은 존재다.
    국민연료 ‘썬연료’ 이제는 해외 식탁문화도 바꾼다
    국내 최초로 휴대용 부탄가스 ‘썬연료’를 생산 판매해온 태양산업의 발전사는 우리나라 음식점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산업 창업자 현진국 회장이 1979년 승일산업사(현 세안산업)를 설립해 휴대용 부탄가스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부탄가스는 소수의 상류층에게만 알려진 흔치 않은 물건이었다. 당시 식당에서는 통으로 배달되는 프로판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식당 창업이 크게 늘면서 식당에서 소비되는 부탄가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친 1997년 이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식당을 차리면서 부탄가스 매출은 다시 한번 급신장했다. 결과적으로 경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외식산업이 꾸준히 번창한 것이 태양산업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 셈이다.

    태양산업의 대표 상품 ‘썬연료’는 국내 시장점유율 70~80%, 세계시장점유율 60%를 자랑한다.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부탄가스 10개 중 6개는 태양산업에서 만든 제품인 셈이다. 지식경제부는 2009년 ‘썬연료’를 ‘세계일류상품’으로, 태양산업을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인증했다.

    1분당 600개 생산



    4월9일. 충남 천안에 있는 태양산업 공장을 찾았다. 공장 한쪽에 네모반듯한 철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캔의 표면이라고 했다. 철판에 잉크가 잘 스며들도록 스티커를 붙인 뒤 윤전기를 통과시키자 ‘SUN’이란 낯익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처음에는 빨간색, 두 번째는 파란색 잉크가 담긴 윤전기를 통과하자 완성됐다.

    다음은 캔을 말아 용접하는 공정. 마크가 인쇄된 철판을 제품 크기에 맞춰 가로와 세로로 절단한 뒤 하나씩 기계를 통과시키자 동그랗게 말려 용접돼 나왔다. 1분당 600개씩 만들어진다고 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기는 했지만, 캔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신기했다.

    그 다음 순서는 위아래 마개 접합. 부탄가스는 폭발 위험성이 큰 만큼 접합부위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공장 관계자는 “위아래를 조금씩 벌려 서로 맞잡는 형태로 이어 붙인다”고 했다.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안과 밖에 있는 철판이 꽈배기처럼 꼬여 서로 맞잡고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통에 노즐을 끼우고 가스를 충전하면 제품은 완성된다. 휴대용 부탄가스는 규격화돼 있기 때문에 높이가 정확해야 한다. 이 때문에 노즐이 끼워지고 나면 반드시 높이를 측정한다. 충전한 이후에도 캔의 높이와 무게를 측정하는 장비를 통과해 높이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거나 중량이 다르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돼 있다. 1분당 600개의 캔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자동화 설비 덕택이다.

    높이와 무게 측정이 끝나면 갓 생산된 부탄가스 캔은 예외 없이 50°C의 따뜻한 물이 담긴 통으로 보내진다. 가스가 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기포가 올라오는 캔은 즉석에서 건져낸다. 여기까지 무사히 통과한 제품은 소비자가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4개들이 한 묶음으로 포장돼 박스에 차곡차곡 쌓인다.

    태양산업의 주력 제품은 휴대용 부탄가스지만, 무스와 스프레이, 모기퇴치용 ‘홈키파’ 등 다수의 에어졸도 생산하고 있다. 생산과정은 부탄가스와 유사한데, 원액을 먼저 담은 뒤 노즐을 끼우는 것이 다른 점이다.

    태양산업의 공장 바닥은 어디를 가든 왁스칠이라도 해놓은 듯 깔끔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4월10일 서울 서초동 태양산업 사옥에서 현창수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부탄가스도 그렇지만, 에어졸 때문에 청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에어졸은 원액과 가스가 함께 분사되는데, 0.5㎜ 구멍으로 나오거든요. 작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구멍이 막혀 불량품이 됩니다. 반도체 공장처럼 클린룸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청결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국민연료

    국민연료 ‘썬연료’ 이제는 해외 식탁문화도 바꾼다

    태양산업은 하루 최대 60만개, 1년에 2억5000만개의 부탄가스를 생산한다.

    태양산업은 현진국 선대 회장이 1961년 ‘승일공업사’를 창립한 것에서 유래한다. 당시 현 회장은 라이터용 기름을 제조해 판매하다가 에어졸 선진국인 일본에서 국내 최초로 에어졸 용기를 도입해 제조, 판매했다.

    일본을 자주 드나들던 현 회장 눈에 띈 것이 부탄가스였다. 그는 일본에서 부탄가스가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부탄가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1979년 승일산업사를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탄가스를 생산해 보급했지만 기대만큼 시장이 확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뜻밖의 호재가 찾아왔다. 북한의 도발이 그것이다.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전쟁 대비 비축물품으로 비상식량과 함께 썬연료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썬연료가 국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북한의 도발은 썬연료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고 곧바로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외식업이 발달하면서 식당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태양산업에는 호재였다. 프로판가스에 비해 별도의 설치가 필요 없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부탄가스에 매력을 느낀 업주들이 너도나도 썬연료를 사용했기 때문. 호황으로 야외 활동이 늘면서 편리한 휴대용 부탄가스를 찾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수요가 밀려들자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했고, 공장 밖에서는 트럭들이 물건을 달라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썬연료가 국민연료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85년 제품을 배송하던 중 한 도매상의 잘못으로 남대문시장에서 부탄가스가 대량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거래가 끊기고 매출은 급락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태양산업이 좀 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태양산업에는 현재 30여 명의 연구진이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천안의 태양산업 공장 2층 에는 실험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공장에서 막 생산된 시제품을 가져다 규격에 맞는지 높이와 무게를 재고, 얼마만큼의 압력까지 견뎌내는지 수압을 높여 점검하는 등 성능 향상에 열심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부탄가스 캔은 8kg 정도의 압력으로 충전돼 있다. 실험실에서 장비를 통해 시연해본 결과 압력이 15kg에 이르면 변형이 일어나고, 18kg 정도로 압력을 높이자 물이 튀었다. 즉 18kg 이상으로 압력이 높아졌을 때에는 폭발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실온에서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열하면 압력이 높아져 폭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품 표면에 ‘가열금지’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은 겁니다.”

    태양산업이 국내시장에서는 점유율을 높이며 승승장구했지만, 해외 진출은 그리 원활치 못했다. 음식을 데워가며 뜨겁게 먹는 우리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음식 문화는 다르기 때문이다. 휴대용 부탄가스를 처음 제조해 쓰기 시작한 일본이 그나마 큰 시장이었다. 태양산업은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진출 기회를 잡았다. 대지진이 발생하자 전기가 끊기고 가스도 끊겼다. 사회 기반시설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린 재난 상황에서 간편하게 취사를 도와주는 부탄가스가 요긴하게 쓰였다.

    재난에 강한 제품

    일본은 부탄가스가 잘 보급된 나라였지만 갑작스러운 수요 폭증을 일본 자체 생산시설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에 물건 공급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생산기술을 배워온 일본에 오히려 수출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오기는 했지만, 태양산업은 이미 세계 최대의 부탄가스 생산시설을 갖춰 놓은 상태였다. 기술력에서도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국민연료 ‘썬연료’ 이제는 해외 식탁문화도 바꾼다

    갓 생산된 부탄가스 캔은 가스 누출을 확인하기 위해 예외없이 따뜻한 물속에 잠수시킨다.

    태양산업 관계자는 “부탄가스 최대 소비국이던 일본에 역수출할 기회를 엿보던 상황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내수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과 한국 제품에 대한 불신 때문에 부탄가스 수입을 꺼렸다. 그러던 일본이 국가 재난 사태가 터지자 어쩔 수 없이 시장을 개방했던 것이다.

    태양산업이 일찌감치 ‘썬연료’의 우수성을 일본에 적극 알려왔던 터라, 일본은 주저 없이 썬연료를 선택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부탄가스 일본 수출 1위는 항상 ‘썬연료’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 진출을 계기로 썬연료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제는 전세계 부탄가스 시장의 60%를 석권하는 세계일류상품이 됐다.

    한번 파트너는 영원한 파트너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국민연료 썬연료!’

    가사도 멜로디도 귀에 친숙한 썬연료의 로고송이다. 썬연료가 30여 년간 우리 곁을 지킨 친숙한 제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로고송에 나타난 ‘오랜 신뢰’는 오늘의 태양산업이 있게 한 비결이기도 하다. 태양산업은 대부분의 협력업체와 30~40년을 한결같이 거래해왔다. 한번 거래를 시작한 뒤 믿을 만하다는 판단이 선 협력업체외는 몇 십 년이고 끝까지 협력한다는 것이 ‘썬연료’의 정신이다. 사업 초기 영남지방의 경쟁업체였던 ‘영일부탄가스’는 현재 동업자로 같은 길을 가고 있고, 부품 공급업체인 ‘삼원산업’ ‘동서화학’ ‘영일수출포장’ 등과도 40년 이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번 파트너는 영원한 파트너’라는 정신으로 협력업체와 오랜 신뢰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협력업체는 태양산업에 납품할 때 품질과 납기에 최선을 다하고, 태양산업은 최고의 부품을 공급받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신뢰의 경영은 오늘의 ‘썬연료’가 변함없이 부동의 1위를 지키게 하는 중요한 밑거름인 셈이다.

    대리점이 잘돼야 본사가 잘된다

    위기와 재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썬연료는 수차례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시장 가격이 평소보다 몇 배나 뛰고 물량이 달리는 호황기를 누렸다. 이때마다 초창기 대리점들은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물량을 더 달라고 본사에 아우성치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별 소득이 없었다. 현진국 선대 회장은 여느 때처럼 생산물량 전부를 남김없이 대리점에 넘겼고 누구에게도 더 주거나 덜 주는 일이 없이 공정하게 물량을 배정했다.

    시장가가 폭등했을 때에도 대리점 납품가를 덩달아 올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시장가가 몇 배 올랐으니 납품가를 어느 정도 올릴 법도 한데, 현 회장은 단기적 안목으로 가격을 올리고 내리면 시장이 혼란해질 거라는 우려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원자재 가격에 변동이 없으면 대리점 납품가도 항상 같은 수준을 유지해 본사는 물론이고 대리점도 이익이 증대하도록 배려했다. 이는 ‘대리점이 잘돼야 본사가 오랫동안 잘될 수 있다’는 현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창수 대표도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관계사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 초기 ‘썬연료’ 대리점을 시작했던 10여 개 대형 대리점은 지금까지 단 한 점포도 중단하지 않고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물량 공급에 있어 항상 공정함을 유지하고, 납품가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인상하기 전에 대리점에 평소 물량의 두세 배까지 밀어주는 것이 태양산업의 전통이 됐다.

    제품은 물론 생산기계도 수출

    일본을 비롯해 60여 개국에 휴대용 부탄가스와 에어졸 제품을 수출하는 태양산업은 제품 외에도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계와 라인도 수출하고 있다. 1980년대 초 태양산업은 제품 안에 들어가는 밸브 조립 기계를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당시 수입한 밸브조립기의 속도는 분당 60개 수준. 그러나 국내외 수요가 증가하면서 연구팀이 기계를 해체해 속도를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해 분당 90개까지 조립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이후 밸브 조립기를 최초로 수입한 지 10년여 만에 일본에 역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속도만 향상시킨 것이 아니다. 조립 후 공정인 포장 부분까지 완전 자동화해 라인 일체를 수출했다. 이전까지 수작업으로 밸브를 포장해왔던 일본 기업이 대환영한 것은 물론이다. 태양산업은 2000년대 들어서는 분당 130개로 속도를 향상시킨 밸브 조립기를 개발해 수출하고 있고, 조만간 250개까지 속도를 올릴 계획이다.

    밸브조립기뿐만 아니라 태양산업이 보유한 기계, 라인은 대부분 사업 초기에는 수입에 의존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체 보완하고 개발한 기술이 보태져 성능이 한층 높아진 기계를 역수출한다. 이제 태양산업은 휴대용 부탄가스와 에어졸 부문에서 제품 품질은 물론 기술력에서도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현 대표는 공장을 방문할 때 항상 현장을 가장 먼저 둘러본다고 한다. 그는 선대 회장에게 배운 대로 ‘현장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현장 중시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현 대표가 공장에 내려오면 모든 종업원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장 구석구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현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사원으로 입사해 공장에서부터 근무하기 시작한 현 대표는 기계설비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현장통이라고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대표가 현장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보니 직원들이 더 분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 대표는 일본 바이어들과 통역 없이 직접 상담할 정도로 일본어에 능통하다. 군복무를 마친 뒤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일본에서 근무하며 익힌 일본어 실력 덕분이다. 휴대용 부탄가스와 에어졸 캔을 생산하는 태양산업의 경우 두 분야 모두 일본의 기술이 필요했고, 지금은 소비시장으로서 태양산업에 중요한 거래선이 일본이다. 이런 일본을 상대하는 데 현 대표의 일본어 실력과 일본 체류 경험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통

    태양산업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2003년 중국 칭다오에 부탄가스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시장의 10분의 1밖에 안되지만 중국의 부탄가스 시장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미 시장 성장의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어 머지않아 우리나라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에는 미국에도 해외합작법인(USPEC)을 설립해 현재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P·G 상표이던 ‘썬파워’를 인수해 토종브랜드로 전환했다. 미국은 아직까지는 교포들이 주요 고객이지만, 현지인들에게 부탄가스의 편리함이 점차 알려지고 있어 태양산업은 미국 전역으로 시장이 확대될 날에 대비하고 있다. 또 ‘썬연료’의 수출 대상 국가는 동남아는 물론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올해 목표다.

    최근 태양산업은 썬앤리빙유통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생활용품 유통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썬연료 대리점 중 많은 대리점이 생활용품, 잡화 대리점이기 때문에 ‘썬연료’를 배송할 때 생활용품을 같이 배송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했다. 또 다른 신규 사업도 구상 중이다. 녹색성장분야인 ‘연료전지’사업 진출을 위해 관련 전문가들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태양산업은 부탄가스의 세계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아직 부탄가스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편리성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난을 이겨내는 비상용품으로, 늘어가는 여행과 캠핑용품으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한 음식 도우미로, 부탄가스가 필요한 곳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태양산업의 미래는 그 이름만큼이나 밝은 셈이다.

    현창수 태양산업 대표 인터뷰

    “따뜻하게 먹는 우리 식문화가 세계 제패 요인”


    4월10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태양산업 6층 접견실에 들어서는 현창수 태양산업 대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부터 물었다.

    “한국 나이로 54세”라는 답이 돌아왔다. 1957년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 대표의 첫인상은 ‘젊음 그 자체’였다. 청바지에 재킷을 받쳐 입은 차림새가 그를 더욱 젊어 보이게 했다.

    국민연료 ‘썬연료’ 이제는 해외 식탁문화도 바꾼다
    - 썬연료가 국내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친께서 휴대용 부탄가스의 내수 시장 가능성을 보고 일본에서 들여왔는데, 시대를 잘 만나 적중한 것이죠. 우리가 시장을 주도했다기보다는 국내외 시장이 커가는 상황에 맞춰 생산능력을 키워 제때 공급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 국내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요인은 뭡니까.

    “우리 식문화와도 관련이 깊어요. 우리나라 음식에는 따뜻하게 데워 먹어야 맛이 나는 음식이 많잖아요. 그런 식문화가 바탕이 돼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요인이 됐지 않나 싶습니다.”

    - 부탄가스는 일본에서 시작됐는데, 한국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둔 셈이군요.

    “준비된 사람만이 과실을 거둔다는 얘기가 있죠. 우리나라에서 휴대용 부탄가스 수요가 크게 늘어난 시점에 (공급을 위한) 준비가 안됐더라면, 일본에 시장을 빼앗겼을지도 모르죠. 일본이 라인을 증설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면요. 그런 점에서 보면 (태양산업이) 휴대용 부탄가스를 세계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휴대용 부탄가스 소비는 현재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부탄가스 수요 시점에 차이가 있다. 일본은 추운 겨울에 냄비에 우동이나 어묵을 데워 먹는 데 많이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 부탄가스 성수기는 여름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여름에 뜨거운 찌개나 탕을 먹고 ‘시원하다’고 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 기술은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이제는 일본에 오히려 수출하고 있다면서요.

    “고베 대지진이 계기가 됐어요. 일본에 본격적으로 수출하면서 우리 회사 제품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1년에 2억5000만캔가량 생산하는데, 내수와 수출 비중은 7대 3 정도 됩니다. 일본에도 많이 수출하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 미국 등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남아 시장에서도 수요가 서서히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현 대표는 현진국 선대 회장의 외아들로 1998년 선친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다. 10여 년간 회사를 이끌어 오는 동안 400억~500억원 규모이던 매출을 3000억원대로 끌어올렸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속설을 깨뜨리며 오히려 ‘청출어람’의 경영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현 대표가 이 같은 성장을 일궈낸 것은 선친으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은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회사 정문을 지키는 수위에서부터 공장 이곳저곳을 돌며 회사에 대해 배웠어요. 한번은 관계회사를 책임지라고 해서 갔더니, 갚을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부족한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돈 다 주고 하라면 누가 못하겠느냐’며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은행을 찾아다니며 돈을 구하고, 그때 알았죠. 당좌대월을 쓰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것을요. 아주 급할 때는 도와주시기도 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회사를 경영해보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현 대표가 일본어를 배운 경험도 남다른 데가 있다. 어학연수나 체계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고, 실전에서 ‘생존’을 위해 익혔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선친께서 일본 회사에 가서 일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그때 한일사전과 일한사전 두 권을 들고 가서 생활 속에서 일본어를 배웠어요. 꼭 필요한 말을 알아들어야 밥도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 그랬는지, 그때 들었던 단어나 문장은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어는 조금 할 줄 압니다.”

    ‘유창한 수준은 아니다’며 겸연쩍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공을 감춘 고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취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태양산업도 현 대표와 많이 닮아 있다. 겉으로 화려함을 치장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더 정성을 쏟는 회사 경영 방침이 그랬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