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는 여름의 뙤약볕을 이겨내야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올릴 수 있다. 골퍼도 겨울 동안 착실히 연습해야 다가오는 봄에 한 뼘은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겨울은 비시즌이 분명하지만, 의외로 실력을 키우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알차게 동계훈련을 계획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겨울 골프는 골퍼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준다.
김씨는 지난해 겨울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금융계 지인의 소개로 특별한 전지훈련을 가기로 했다. 괌에서 3박5일 일정으로 무제한 라운드와 함께 필드레슨을 받기로 한 것이다. 훈련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앞으로 내기에서 이길 생각을 하니 감수할 만했다. 그는 비지땀을 흘리며 샷을 가다듬었다. 레슨프로와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배운 기술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동안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연습법도 배웠다.
괌에서 돌아온 김씨는 매일이다시피 골프연습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승리의 그날을 그리며 한겨울 강추위와 싸웠다. 드디어 D-day가 잡혔다. 날짜는 2011년 3월 중순, 골프장은 경기도 여주의 한 회원제 골프장. 멤버는 그에게 매번 수모를 안겼던 대학동문회 선후배였다. 김씨는 라운드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96타를 기록했다. 바지주머니는 지폐로 두둑해졌다. 동반자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다시 시즌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
골프장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골프시즌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다. 마음은 항상 골프장에 가 있는 골퍼도 잠시 클럽을 놓을 시기다. 우리나라 겨울은 골프를 즐기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라운드를 운용하기가 쉽지 않아 즐거움이 반감된다. 더욱이 부상 위험이 벙커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겨울은 골퍼에게 휴식기인 동시에 충전기다. 프로 골퍼는 지난 투어를 복기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실시한다.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시즌의 성적이 결판난다. 갑자기 성적이 좋아진 프로 골퍼는 지난 동계훈련 기간을 알차게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겨울은 아주 중요한 계절이다. 칼의 날을 세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겨우내 실력을 쌓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골프연습장에서 꾸준히 샷을 가다듬는 게 첫 번째다. 이 기간에 좀 더 안정된 스윙을 익히기 위해 원 포인트 레슨을 받는 것도 괜찮다. 연습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클럽을 휘두르기보다 내가 자주 다녔던 골프장의 한 홀을 공략한다고 생각하며 샷을 날리는 게 좋다. 그러면 효과가 나타나고 연습이 흥미로워진다. 특히 체력 훈련은 필수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계단 오르내리기로 충분하다. 하체가 단단해지면 스윙이 안정되어 비거리가 늘어나고 정확성이 높아진다.
다음은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은 따뜻한 남부지방이나 제주도로 ‘투어’를 떠나는 것이다. 봄이나 가을에 비해 라운드 환경은 열악한 반면 장점도 있다. 성수기와 비교해 부킹이 쉽고, 그린피가 저렴하다. 평소 동경해 마지않던 지역 명문 골프장의 잔디를 밟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골프장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고 특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것은 기분 좋은 덤이다.
골프는 없고 알파만 있다?
아무리 그래도 겨울의 꽃은 해외 전지훈련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고 시간의 여유가 허락하면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 수 있다. 전지훈련의 장점은 샷의 구질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장점은 언제든 단점으로 변할 수 있다.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내상을 입힌다. 필리핀 클락 지역에서 수년째 국내 골퍼들을 유치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골퍼 대부분은 도착하자마자 긴장부터 푼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 한껏 들떠 있게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 유혹에 빠지면 골프는 뒷전이다. 체류기간 내내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는 골퍼를 여럿 봤다. 차라리 한국에서 놀지, 여긴 왜 왔는지 싶다. 해외로 나가는 이유가 골프+알파 때문이라고 하지만, 골프는 없고 알파만 있는 것 같다. 실력을 쌓으면서 색다른 골프를 즐기고 싶다면, 도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골프장을 추천한다.”
해외 골프장에서 우리나라 골퍼들은 금방 눈에 띈다고 한다. 목소리 크고 빨리 치기 때문에 대번에 알아본다는 것이다. 굳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빨리빨리 문화’를 전파할 필요는 없다. 설문조사 때마다 해외골프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여유’를 꼽는 대답이 항상 1, 2위를 차지한다. 전지훈련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이유는 충분하다.
해외에서의 라운드는 국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대개의 경우 뒤 팀에 신경 쓸 필요 없고, 앞 팀을 따라잡아야 할 이유도 없다. 재촉하는 캐디가 없으니 샷에만 집중하면 된다. 카트까지 페어웨이에 들어갈 수 있어 라운드 시간은 한결 절약된다. 국내에서는 18홀을 도는 데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반면 해외에서는 절반의 시간으로 가능하다. 하루 36홀을 돌아도 시간이 남는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린을 향해 무작정 전진하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김종수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조언했다.
“닭장에 비유되는 국내의 인도어 골프연습장과 달리 그곳에는 드라이빙 레인지가 갖춰져 있었다. 라운드에 앞서 연습을 했는데, 거리감을 키우기에 그만이었다. 라운드 때는 스코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스 샷이 났을 때는 그 자리에서 볼 한 개를 더 쳤다. 그린 주변에서는 여러 개의 웨지로 다양한 샷을 연습했다. 중간에 레슨 프로가 가르쳐준 기술이 큰 도움이 됐다. 현장에서 즉시 적용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라운드 방법을 달리했다. 오전에 연습을 위주로 했다면, 오후에는 실전에 집중하는 식이다. 괌에서 돌아온 후에는 전지훈련에서 배운 것을 다시 연습했다. 올해 첫 라운드 때 곧바로 짜릿한 ‘복수’를 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해외전지훈련 경험 덕분이다.”
좋은 결과의 조건은 충분한 준비
해외 골프장의 라운드 상황은 국내와는 사뭇 다르다. 국내의 많은 골프장이 산악지형에 기대어 있는 반면, 해외 골프장은 평지에 조성돼 있다. 국내 골프장은 아직 한국형 잔디가 많은 데 비해 해외 골프장은 양잔디가 주를 이룬다. 억센 양잔디의 특성은 정확히 임팩트가 되지 않으면 미스 샷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내 골프장도 점점 양잔디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해외에서 양잔디를 경험한 골퍼는 우리나라 양잔디 골프장에서 한발 앞서갈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다. 전지훈련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효과다.
비용 대비 좋은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떠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힘들다. 라운드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스코어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팁 하나. 매년 크리스마스부터 연초까지는 겨울 골프투어의 최대 성수기다. 이때를 피해서 가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분 좋은 대접까지 받을 수 있다.
여유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저절로 웃게 만드는 묘한 끌림이 있다. 또한 실력까지 향상시키는 동기가 된다. 동계훈련을 핑계 삼은 겨울 골프는 그 여유를 만끽하게 한다. 다시 돌아오는 봄의 첫 라운드에서 마음껏 즐기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동계훈련 기간을 알차게 보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