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커창 부총리 한국 방문은 한중관계 정상화 의도
-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한중, 미중관계 좌초 노린 것
- 중국의 북한 지지는 ‘등거리 외교’ 딜레마 노출
- 세력전이 시대에 불안정성 가장 잘 나타나는 지역은 아시아
- 상대 존중하며 공동이익 찾는 화이부동 지향해야
- 남북관계 개선과 상호협력 설파할 외교력은 필수
10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리커창 중국 상무부총리와 악수를 하고있다
따라서 리커창 부총리는 남북한 지도자들과의 면담에서 중국의 기본적인 대(對)한반도 정책기조를 반복 설명했다. 즉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시에 남북한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기본 입장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표면적 목적 이외에도 리커창 부총리의 한국 방문에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상처를 입은 한중관계를 다시 ‘정상화’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중관계는 1992년 국교 수립 이후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확대 발전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은 심각한 전략적 이익의 충돌 가능성에 노출됐고,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감싸는 것 같은 중국의 태도에 깊이 실망하고, 이처럼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중국과 과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이 생겨났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폭발적이라 할 만한 속도로 발전해왔다. 수교 당시 63억7000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10년 말 무려 33배가 증가한 2072억달러를 기록했고, 2010년 현재 양국 간 인적 교류는 약 600만명에 달한다. 매일 120여 대의 항공편이 운행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에게 제1의 교역 대상국, 제1의 투자 대상국이 됐다. 정치·외교적 교류와 협력도 빠른 속도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 정상은 매년 1, 2회 이상 공식 및 비공식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고, 총리급 고위회담을 포함하면 양국 지도자들은 연평균 3, 4회 이상 대면하면서 각종 현안을 협의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한중 충돌 가능성
한중관계의 정치·외교적 성격과 위상도 격상됐다. 한중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김영삼 정부까지 ‘우호협력관계’로 정의됐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협력동반자관계’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 발전시켜가기로 합의했다. 당시 양국 정상들은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켜나갈 필요가 있으며,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긴밀한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
이처럼 한중관계가 빠르게 확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국의 지리적 인접성, 역사적-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높은 경제적 호혜성이 적극적으로 작용했다. 탈냉전과 세계화, 다원화시대의 협력적인 국제사회 분위기 또한 양국관계 발전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21세기 들어 체제와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 실리적 국가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상호의존성이 증대되면서 국가와 지역 간 대결보다 공동 발전을 모색하려는 여건이 마련됐다. 바로 이런 세기적 변화에서 한중 수교가 실현될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 발전은 한중관계의 비약적 발전에 중요한 배경적 조건이 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탈냉전과 세계화, 다원화라는 세기적 변화 시기를 맞아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지도부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부분은 그대로 두고 공동이익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원칙을 표방하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주의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을 적대시하고 억제하려는 봉쇄와 대결의 정책보다는 ‘개입과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의 정책기조를 견지하면서 중국을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와 국제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도 대담한 개혁개방을 표방하면서 미국과 서방세계가 제공하는 발전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제발전을 실현하려고 했다. 따라서 덩샤오핑은 유명한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름)’의 대외 정책노선을 강조했다. 미국과 서방세계와의 갈등을 피하고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도 낮은 자세를 견지하면서, 현대화와 경제발전이란 국가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자고 역설했다. 이런 정책노선으로 중국은 서방세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한국과 같이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들과도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이른바 ‘동반자 외교’를 추진했다.
동반자 외교로 한반도 정책 변화
이와 같은 기본 정책노선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에도 미묘한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를 과거 혈맹관계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국가 간 우호협력 관계로 정상화하려고 했다. 따라서 냉전시대와는 달리 북한의 ‘합리적 주장’에 대해서만 지지하고, 북한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하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悍然) 핵실험을 했다”면서 신랄하게 북한을 공개 비판했다. 동시에 북한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무력 제재나 북한의 안정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외부세력의 위협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관점에서는 한미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 안정이 필요하다며 전통적 우호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견지하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 사이에는 미묘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에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바로 이런 전략적 합의가 한중관계 발전의 기반이 됐다.
세력전이 시대의 불안정성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중관계의 비약적 발전은 21세기 탈냉전과 세계화시대가 열어놓은 기회의 창을 양국의 실용주의적 지도부가 적극 활용해 공동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21세기는 이런 긍정적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무한경쟁 시대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중국 등 신흥 강대국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제정치는 이른바 세력전이(power shift)의 불투명한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세력전이는 거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5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한 서구문명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변동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정치의 세력구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탈냉전과 더불어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잠시 등장했지만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계기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의 쇠락이 가시화되고 다양한 신흥강대국이 등장하면서, 복수의 강대국 간 상호 경쟁과 협력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력전이 시대의 불안정성과 불투명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바로 아시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강한 중국의 등장은 미국 중심의 아시아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대담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연평균 9.9%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그 결과 중국은 미국 다음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군사·외교 차원에서도 영향력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일본이나 한국과의 관계 개선도 실현했고,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더구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상호의존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인의 자신감이 증대되면서 중국 사회 내부에서는 ‘도광양회’와 ‘화평발전(和平發展)’의 대외정책 노선보다 더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중국의 권리와 요구를 떳떳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중화 민족주의’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 중국은 더 분명한 목소리로 중국의 입장과 주장을 강변하면서 자국 이익을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문제들, 이를테면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문제라든지 티베트-신장 위구르 등 소수민족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더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 전 북한 김일성대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는 리커창 부총리.
이와 같이 최근에 중국이 보여준 기세등등한 대외 행동(口出口出逼人的行動)은 탈냉전 이후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기대하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놀라게 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중국위협론을 다시 촉발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회복에 기여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간 상호 의존도가 급등하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내심 우려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의 강경하고 오만한 행동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촉발하자 미국은 때가 왔다는 듯 중국을 견제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스스로 아시아-태평양 국가라고 선언하고, 아시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분명히 했다. 한국-일본-호주 등 전통적으로 미국의 동맹국가와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인도-베트남-러시아-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추진하며,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부각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의 오만이 불러온 미국 영향력
이처럼 2010년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은 전형적인 세력전이 시대의 강대국들처럼 상호 대립하고 견제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따라서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면,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도전국가인 중국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란 비관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의 주류세력들은 여전히 강대국 간 대결과 충돌은 재앙을 초래할 것이고, 상호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같은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는 의미의 ‘동주공제(同舟共濟)’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중국도 2010년 전후로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이 위세를 과시한 효과는 있었지만, 동시에 중국위협론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반성하면서 ‘도광양회’와 ‘화평발전’의 대외정책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산된 미국 쇠퇴론, 그리고 중국의 자신감이 만들어낸 세력전이 시대의 위험한 일탈현상은 일단 억제·봉합됐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그리고 아시아 국제질서는 다시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의 정상적인 상호 의존적 협력관계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2010년 아시아 지역에서 돌출된 여러 가지 분쟁과 갈등은 세력전이 시대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위험성을 잘 보여주었다. 2010년 한반도에서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했다. 미중 간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세력전이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북한이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같은 무력행동을 감행한 배경과 의도, 목적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행동은 ‘한국의 공격에 대한 보복·응징’ 차원을 넘어,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의 긍정적 분위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의 상호 협력관계에 충격을 주었다. 또 세력전이 시대에 내장돼 있는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의 잠재적 갈등요인을 표출시켰고, 아울러 동맹국가로서 중국의 신뢰도를 검증해보려는 복합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의도는 사건 초반에는 어느 정도 적중하는 것 같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관계와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그리고 미중관계의 모순, 긴장, 마찰이 노정됐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일본-유럽연합 동맹국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도발 행동을 규탄하고, 제재하려고 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중단하고, 한미동맹의 틀을 활용해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을 단행하면서 군사적으로 압박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재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외교적 압박도 추진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한국의 동맹국가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특히 미국은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해 강경 입장을 표명하면서 중국도 북한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박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호전성을 부각하고, 한미동맹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연루설을 매개로 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 경계심 확산 노린 미국
물론 한국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한중관계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006년 북한 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누구보다 강경하게 북한의 ‘제멋대로의 행동’을 규탄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도 한미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에 대해 중국이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묵시적으로 인정하거나 이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한국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중국은 공개적으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강경 압박정책을 비판하고, 북중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강경책에 대응하려고 했다. 왜 중국은 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감싸 안으려고 했을까?
돌이켜보면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한에 대한 중국의 ‘등거리 외교’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노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었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전까지는 그런 중국의 등거리 외교가 그런대로 잘 작동하고 있었고, 중국과 남북한 모두에 윈-윈 게임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력전이 시대가 전개되면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에 미국과 서방세계에 도발적인 북한은 중국에 부담이었지만, 세력전이가 이루어지는 불투명한 시대에 북한은 중국의 동맹국이며 완충국가로서 전략적 자산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북, 대중국 압박정책이 노골화되고, 북한도 중국이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 예의 주시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묘책을 찾으려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묘책 말이다.
결국 중국은 모든 관련 당사국의 냉정하고도 신중한 대응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결국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해석되면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타격을 받게 됐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북한의 공격 목표에는 한국의 대북 강경정책뿐만 아니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와 미중 협력관계의 좌초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한국 국민이 볼 때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중국이 우리 편을 들어주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북한을 감싸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국제정치 현실은 역시 냉혹했다. 중국은 세력전이 시대에 북중동맹 강화가 중국의 현실적 국가이익이며, 북한의 안정이 중국의 ‘핵심이익’이란 사실을 재인식하게 되면서, 동맹국인 북한을 감싸고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반응은 북한 도발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던 우리에게 좌절과 실망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자각하게 했다.
사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한중관계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해 우리식으로 안이하게 낙관했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한중관계에서 핵심적 안보 이슈, 이를테면 북한문제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채 상호이익이 합치되는 경제 협력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공통적인 경제이익이 확대되면서 핵심적 안보이익의 차이점도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동존이’의 낙관적 확산효과(spil-lover effects)에 대한 기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통해 의문시됐다. 호혜적인 경제·사회문화적 교류 협력관계의 발전이 곧 군사·안보적 차원에서의 긴밀한 전략적 협력관계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중관계의 안이한 낙관은 반성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한미동맹의 강화가 북중동맹의 강화를 초래하는 신(新)냉전 상황의 위험성에 대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불안정한 세력전이 시대에 북한의 모험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군사-외교적 차원에서 한미동맹을 확대 강화해야 하겠지만, 중국의 이해를 얻지 못하면 중국을 자극해 북중동맹 강화라는 부작용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이 대립적으로 추진되는 신냉전적 상황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신냉전적 상황이 전개되면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따라서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중 간 공동 이익이 큰 경제적 호혜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조화, 북중동맹과 북미관계의 개선이라는 3차 방정식,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력전이 시대의 위험성에 빠지지 않고 한미동맹 강화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상호 조화· 발전할 수 있을까.
우선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상호 협력관계를 지탱하는 구동존이의 논리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즉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 전략적 핵심이익의 차이는 그대로 두고 실용적 이익을 확대해가는 구동존이 방식의 협력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세력전이 시대와 같이 불안정한 요소가 많은 시기에는 오히려 핵심적 이익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상호 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상호 협력과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외교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화이부동의 외교를 추진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전제에서 상호 공동 이익을 모색해야 한다. 즉 한국은 북중 특수 관계를, 그리고 중국은 한미 특수 관계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한국-북한-미국-중국의 상호 협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의 조화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적대적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대결적이고 적대적인 남북관계는 한국의 가장 큰 취약점(liabilities)이다. 한미동맹에서 우리의 입지를 확보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에게 레버리지(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은 대중·대미 의존도를 낮추고 한반도 안정과 관련해 우리의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경쟁과 갈등보다 상호 의존과 협력의 이익을 설파할 수 있는 외교력을 축적해야 한다. 20세기에 우리는 경제발전으로 국가부흥의 기회를 찾았다면, 21세기 한국의 운명은 외교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세력전이 시대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가 제공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 번영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를 구비한 외교력과 정치력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