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北은 왜 中 지척에 ICBM 기지 만들었나

韓美 타격 까다롭게 한 전술… 일종의 休火山

  • 고재석 기자

    입력2022-02-2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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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민생 강조했지만 속내는…

    • 회중리 기지, 여의도 면적 2배 이상

    • 中 국경에서 불과 25㎞ 거리

    • 美 본토 겨냥하며 무기 방어 이중 포석

    • 2월 중 ICBM 도발 감행하면 존재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1월 19일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 해제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1월 19일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 해제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올해로 집권 11년차를 맞았다. 최근 2년(2020, 2021년)과 마찬가지로 따로 신년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지난해 12월 27~31일 열린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의 결과가 노동신문에 보도됐다. 이를 보면 그가 제시한 올해의 열쇠 말은 ‘먹고사는 문제’다. 김 위원장은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자고 했다. “인민의 식생활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음식 위주로 바꾸는 데로 농업생산을 지향”하고, “경제부문이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전선”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비상 방역이 “국가사업의 제1순위”라고도 했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전반적으로 민생을 강조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대북 유화정책을 지지하는 국내 일부 언론은 “‘김정은식 새마을운동’ 선언”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정말로 북한은 노선을 선회했나.

    핵과 미사일의 나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를 통해 공개된 북한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 위성사진. [Beyond Parallel]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를 통해 공개된 북한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 위성사진. [Beyond Parallel]

    현실에서 북한은 여전히 핵과 미사일의 나라다. ‘북한이 경제를 살릴 수만 있다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여권 저변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행보는 이와 같은 분석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미 협상 결렬 이후 대북제재 장기화로 민생고가 심해지자 공세적으로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 위원장에게 중요한 건 세습 정권 유지 여부다. 핵과 미사일은 이 과제를 완수하는 데 가장 요긴한 카드다. 냉소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위기 때 대응할 카드를 허망하게 잃고 만다.

    그런 면에서 북한 자강도 화평군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이하 회중리 기지)는 ‘북한식 미사일 정치’가 현재진행형임을 오롯이 보여준다. 회중리 기지는 2월 7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를 통해 공개됐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와 조지프 버뮤데즈 연구원 등은 보고서 ‘북한의 미신고 시설: 회중리 미사일 작전기지’를 통해 회중리 기지가 “1990년대 후반 공사를 시작했고, 최근에 완공된 북한 전략기지 중 하나”라고 밝혔다. 빅터 차의 이름값 때문에 해당 보고서는 곧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조지타운대 교수인 빅터 차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과 6자회담 차석대표를 지냈다. 이론과 실무에 모두 능통한 대북 전문가로 꼽힌다. 2018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됐다. 다만 트럼프 정부와 북핵 정책에 대한 의견 차를 보여 실제 한국에 부임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자기 소신이 뚜렷한 편이다. 그는 최근 수년간 공개되지 않은 북한의 20여 개 미사일 기지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지속해 왔다.

    회중리 기지에 관한 심층분석 보고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회중리 기지의 규모를 약 6㎢로 추산했다. 국내 다수 언론은 이를 두고 여의도 면적(2.9㎢)의 두 배가 넘는 규모라고 표현했다. 이동식발사대(TEL) 등을 수용할 공간도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이 기지가 “상남리 기지와 유사하다”는 표현도 썼다. CSIS가 지난 2019년 2월 15일(현지 시간)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함경남도 허천군 상남리 기지는 무수단으로 불리는 화성-10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과 대대급 혹은 연대급 부대를 갖춘 기지다.

    이번 보고서의 첫째 줄에는 핵심적 발견(Key Findings)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 아래로 3줄짜리 설명이 있는데, 언론 기사로 치면 ‘야마’(글의 주제나 핵심)에 해당한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비건도 영변 이외 시설 언급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쪽으로 338㎞, 중국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자강도에 위치한 회중리 미사일 작전 기지에는 ICBM을 장착한 연대급 부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뒤이어 보고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작전용 ICBM을 사용할 수 없으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1월 30일 자강도에서 화성-12형 IRBM이 발사된 사실을 덧붙였다. 또 회중리 기지가 그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논의 대상에 오른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거리 3000~5500㎞는 IRBM, 사거리 5500㎞ 이상은 ICBM으로 분류된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IRBM은 미국령 괌과 알래스카 기지 등이 사정권에 해당하고 ICBM은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 본토 주요 대도시까지 사정권에 들어온다. 특히 ICBM의 경우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핵무기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ICBM을 레드라인, 그러니까 넘어서는 안 될 선으로 분류해 왔다.


    2월 9일 미국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나는 북한 내 (미사일 기지) 설치 상황에 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만 답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무적 답변’이다. 실제로 정보가 없었는데 민간 싱크탱크에서 ‘발견’한 것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회중리 기지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보고서가 나온 뒤 1주일이 넘었는데 미국 측이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은 점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월 8일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지역의 동향과 활동에 대해 한미 정보 당국이 긴밀한 공조하에 오랫동안 면밀히 추적 감시해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 조야의 외교 당국자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미국 내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미국 정보 당국에서는 (회중리 기지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던 걸로 보인다. 2019년 초에 스티브 비건이 한 대학 연구소에서 연설한 문구를 보면 영변 이외의 시설을 언급한 적이 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협상이 깨진 것도 이것이 핵심 이유였다. 북한에선 영변만 포기하면 미국이 대북 제재 등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해 왔고, 미국에선 최소한 전체 리스트라도 내라고 해서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미국은 이미 (기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이든 정권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산 뒤에 설치하거나 산 밑을 파거나

    북한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 주변에 산골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동서남북으로는 청석산, 외양산, 현도산 등에 둘러싸여 있다. 숲이 우거진 계곡 기슭에 기지 입구와 검문소가 있다. [Beyond Parallel]

    북한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 주변에 산골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동서남북으로는 청석산, 외양산, 현도산 등에 둘러싸여 있다. 숲이 우거진 계곡 기슭에 기지 입구와 검문소가 있다. [Beyond Parallel]

    그러니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회중리 기지 공개’라는 사실은 대중적으로는 뉴스지만 안보 당국에는 뉴스가 아니다. 그보다는 ‘회중리 기지의 나비효과’를 살펴야 한다.

    위치를 보면 전략적 노림수가 읽힌다. 회중리 기지는 “중국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북·중 접경 지역에 대규모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한미의 선제타격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해석한다. 미국 본토까지 겨냥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전략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이중 포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의 핵심 타격 리스트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다. 북한 처지에서는 그것(미사일 기지)을 한미가 타격하기 까다롭게 만들어야 자신들의 공격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그래서 (기지를 설치하기 위해) 산 뒤에 설치하거나, 산 밑을 파기도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처럼 (미사일 기지를) 중국 국경 인근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물론 요즘 개발되는 미사일의 경우 워낙 정확도가 높아져 (타격 과정에서) 크게 실수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폭격기나 한국의 전투기들의 접근성을 낮추려고 한 의도는 있을 거다. 그와 같은 군사적인 필요성을 고려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보고서에 나타난 지도를 살펴보면 회중리 기지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보인다. 특히 여러 개의 작은 산골짜기가 눈에 띈다. 동서남북으로는 청석산, 외양산, 현도산 등에 둘러싸여 있다. 또 숲이 우거진 계곡 기슭에 기지 입구와 검문소가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북한 미사일 기지가 중국과 가까이 있을 경우, 미국 처지에서는 더 신중한 작전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가령 전투기가 출동하면 중국 영공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미국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자칫 사소한 실수로 확전에 이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중국 처지에서는 북한 미사일이 중국을 겨누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별달리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북·중 접경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확인해 볼 기회다. 그러니 북한 처지에서는 묘수다.

    이와 반대로 한국 처지에서는 골치 아픈 수다. 박원곤 교수는 “타격 목표를 까다롭게 만듦으로써 한미가 더 많은 자산을 투자하게 만드는 전술”이라며 “우리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기술적으로야 대응이 가능하지만,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돈을 더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이 4년간 유지해 온 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 해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그 전초 단계로 북한은 올해 1월에만 일곱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1월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라면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에 건설한 각종 시설. [Beyond Parallel]

    북한이 회중리 미사일 운용기지에 건설한 각종 시설. [Beyond Parallel]

    “북한이 ICBM을 쏴버리면…”

    한미일 외교 당국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2월 12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3국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이러한 행동이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핵실험·ICBM 해제 행보를 시작함에 따라 2월 중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신형 ICBM 시험발사 등의 고강도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1월 30일 IRBM 발사는 단계적으로 ICBM 도발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1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우크라이나·이란에 외교정책을 집중하는 사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뒤 대북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북한 정권이 틈새를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을 다시 차릴 필요가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일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악재 중 악재다.

    박원곤 교수는 “최근 1년 동안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적극성도 없고 (외교에서) 우선순위도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만약 북한이 ICBM을 쏴버리면 바이든 행정부에도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된다”며 “트럼프는 미국 본토를 안전하게 했는데, (후임인) 민주당 정권이 그걸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임기 말의 고약한 처지

    말머리를 다시 회중리 기지로 돌려보자. CSIS의 보고서는 회중리 기지에 ICBM 관련 부대가 배치됐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세 가지 이유로 추측했다. ①기지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 ②ICBM 제조과정에서의 어려움 ③훈련된 미사일 운영 인력의 미비가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보고서는 회중리 기지에 ICBM 또는 IRBM이 배치될 경우 북한의 진화하는 탄도미사일 전략을 보여줄 핵심적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당장 회중리에 ICBM이 배치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일단 현실화하면 그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해석이다.

    앞선 미국 내 소식통의 말마따나 회중리 기지 공개 자체는 바이든 정권의 대북정책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아니지만 북한이 ICBM을 통한 고강도 도발을 감행할 경우 회중리 기지의 존재감이 한껏 부각될 수 있다. 일종의 휴화산(休火山)인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회중리 기지는 지금도 소규모로 인프라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위성사진으로 노출될 것을 알면서도 운영과 개발을 지속해 온 데 노림수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핵실험·ICBM 시험 발사 모라토리엄에 굳이 얽매이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읽혀서다.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가 고약한 처지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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