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보수대연합 깃발 든 원희룡 “‘내전 상태’ 만든 건 曺 아닌 文”

“독선 버리고 반성해야 나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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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9-10-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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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라진 대한민국…국민 마음에 큰 상처

    • 검찰개혁안 발표는 최소한의 면피용

    • ‘조국 사태’에서 진보의 위선, 전투적 분열주의를 봤다

    • 관념적 이상주의로 편 갈라 강요하는 운동권 병폐

    • 검찰개혁 첫 수혜자가 조국…아전인수이자 몰염치

    • 보수통합? 安이든 劉든 ‘반(反)문재인 개혁 세력’ OK

    • 보수는 기득권에, 진보는 관념의 패거리에 안주

    • ‘집권 386’, 경제는 젬병, ‘민족경제론’ 수준

    • 40년 전 경제성장 얘기하며 보수 지지하라니…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10월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에 대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했다. 그동안 몇 차례 대학 동기(서울대 법대 82학번)인 조 전 장관에게 “친구야, 이제라도 내려오자”고 충고했던 그는 “‘위선과 궤변으로 도덕성은 무너졌고, 위세와 권력으로 상식이 조롱당하며, 국민 마음에 큰 상처를 냈다”고 ‘조국 사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두 달여간 지속된 조국 사태는 대한민국을 ‘광화문’ 대 ‘서초동’으로 양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분열된 보수세력은 결집하는 계기가 됐고, 야당 지지율은 반등했다. ‘무소속’ 원 지사의 중앙 진출을 요구하는 손짓도 이어지고 있다. 원 지사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소속으로 서울 양천갑에서 내리 3선(選)을 했고, 2014년에는 제주지사가 됐다. 지난해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10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제주도서울본부에서 원 지사와 마주 앉았다. 조 장관이 사퇴한 14일 오후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 

    “조국 사태가 남긴 것은 갈라지고 흩어진 대한민국뿐이다. 국민 마음에도 큰 상처를 냈다. 나라를 ‘총성 없는 내전 상태’로 만든 대통령이 나서서 치유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나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민생을 위한 ‘협치’에 나서야 한다. 거짓과 위선으로는 하늘 같은 민심을 이길 수 없다.” 

    -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오전에는 검찰 개혁방안을 발표했는데 오후 전격 사퇴했다. 

    “검찰개혁안 발표는 최소한의 면피용이라고 본다. 여당과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에 따른 부담이 컸을 거 같다. 그런데 조 장관이 물러난 것으로 이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데 대해 문 대통령이 반성해야 한다.”

    “관념적인 사색(四色)당파와 무엇이 다른가”

    - 서울 광화문, 서초동 집회가 말해주듯 조 전 장관 거취 문제는 세(勢) 대결 양상으로 변질됐다. 조국 사태 2개월 어떻게 보나. 

    “나라가 둘로 분열됐고, 조국 반대·지지층은 대화와 접점 없이 갈등만 불거졌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다. 이 과정에서 소위 진보는 정의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비판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두고두고 부작용이 크게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현재의 권력과 주도권을 지키려고 너무나 큰 것들, 예를 들어 진보의 가치나 국민 통합을 위한 집권의 당위성 모두를 스스로 부정하지 않았나. 상당히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자각(自覺)할 기회가 됐고….” 

    - 어떤 자각인가. 

    “투표 결과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국민을 통합한다’는 최소한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패배한 쪽도 승복을 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민 통합은커녕 진보의 위선과 여권의 전투적 분열주의를 여실히 봤다. 생각의 벽을 치고,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집권세력의 모습은 조선시대 관념적인 사색(四色)당파와 무엇이 다른가. 관념적 이상주의로 편을 갈라 가르치고 강요하려는 모습은 과거 운동권의 한계이자 현 정권의 고질적 병폐다. 이번 사태에서도 정치권 인사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국민을 가르치려들었다. 권력과 주도권을 뺏기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영원히 권력을 지킬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어떤 권력과 세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 

    - 문 대통령과 여당은 조 장관을 임명하면서 ‘검찰개혁 적임자’라고 했다. 

    “물론 검찰개혁은 해야 한다. 검찰에 출두할 때 사건 관계인을 공개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밤샘 수사 같은 기존 관행은 개선해야 한다. 검찰도 스스로 개선하려는 ‘자기 진단서’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왜 지금인가. 그동안 모든 사람이 겪었는데, 조 전 장관과 부인(정경심 동양대 교수)이 왜 검찰개혁의 첫 수혜자가 돼야 하는가. 왜 나(조국)까지만 타고 개문발차(開門發車)해야 하는가. 이건 아전인수(我田引水)이자 몰염치 아닌가. 우리의 상식과 염치의 기준을 대담하게 무시하니 우리의 (상식과 염치) 기준이 잘못된 건지 혼란스럽다. 상식이나 보편적 가치는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와 인류의 지혜, 경험과 교훈 등을 통해 체감한 거니까. 헌법을 개정할 때에도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데 자기가 개혁의 첫 수혜자가 되겠다는 게….”

    문화혁명과 홍위병

    - 서초동 촛불집회에서는 조 전 장관 지지와 검찰개혁을 외쳤다. ‘진영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일까. 

    “철저하게 현재 권력을 지키겠다, 지지하겠다는 정파적 생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10년을 갔고, 홍위병도 10년을 득세했다. 그 홍위병을 찬양하던 1980년대 운동권 서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권과 홍위병은 결국 무너졌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나서고, 워낙 많은 숫자(집회 참가자)가 우기니까 국민은 ‘이게 뭔가’라는 일시적 가치관의 혼동을 겪었지만, 위선은 오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원 지사는 앞서 대학 동기인 조 전 장관에게 몇 차례 ‘자진 사퇴’를 조언했다. 조 전 장관 등 운동권 친구도 많았을 것인데. 

    “1980년대 대학생들이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하고 정의를 추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한 저항 논리는 당시 반정부 논리의 동력이 됐다. 그런 측면에서 조 전 장관을 포함한 대학생들은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고, 일부 후배들은 친북 성향도 보였다. 그러나 운동의 출발점이자 목표는 민주화였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잘 살게 하자’는 주의 말이다. 사회주의가 인류를 파탄으로, 인권 말살 국가로 몰고 간다는 걸 경험한 후로는 많은 학생이 사회주의나 통제국가, 북한에 대해 거리를 뒀다. 이후 사회가 민주화됐고,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겪으면서 ‘진보’ 친구들도 집권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념이 아니라 현실성, 책임성을 가졌거니 생각했는데, 조국 사태를 지켜보니 그게 잘 안 된 거 같다. 아직도 나만 옳고, 나와 다른 사람은 전부 적폐, 기득권이라고 보는 거 같다.” 

    - 보수는 혁신했다고 보나. 

    “아니다. 보수는 안주한 게 문제다. 세상 변화나 국민의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려면 혁신이 필요한데 거부했다. 보수는 현실의 기득권에, 진보는 관념의 패거리에 안주한 건데, 지금은 관념의 패거리가 권력을 쥐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혁신과 숙성은 안 하고 안주하다 보니 기득권이 고착화됐고, ‘톨레랑스(관용)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 우리 사회가 극심한 좌우 대립을 겪은 해방 정국과 닮았다는 말도 나왔다. 

    “가족, 친척 간에도 보수·진보는 있기 마련이고, 보수·진보는 어떤 분야나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전부 적(敵)은 아니지 않나. 공생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소수의 인권, 부의 평등한 분배,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한 수용 같은 진보적 요소도 필요하다. 그런데 너무 이런 가치만 추구하면 기존에 성취한 것, 말없는 다수에 의해 돌아가는 것을 적대시하고, 허망한 관념론으로 흐르게 된다. 따라서 통합하고 아우르는 보수적 가치와 도전적 가치가 조화돼야 한다. 국민은 우리 사회가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면 진보를 집권시켜 개혁 과제를 추진하게 하고, 현실과 안 맞으면 전체 파이를 키우는 보수를 집권시킨다. 보수든 진보든 살림살이, 즉 민생을 튼튼히 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

    ‘집권 386’ vs ‘생활 386’

    -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1980년대 운동권 세대, 이른바 386세대가 기득권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386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집권 386’과 ‘생활 386’은 달리 봐야 한다. 다수의 생활 386은 기업이나 각종 전문 분야에서 많은 성취를 이뤘다. 생활 386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그대로 담는 전형적인 세대다. 문제는 자기들이 옳다며 이슈를 주도하고, 청와대 수석을 하면서 권력에 참여하고,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전국적 네트워크로 인맥을 챙기고 사업권을 따내는, 이른바 ‘경제 공동체’ 세력 내지 기득권 ‘상층 386’이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 더 큰 문제? 

    “집권 386이 ‘경제는 젬병’이라는 점이다. 경제에 대해선 무능할 뿐 아니라 무개념이다. 다시 말해 1980년대 ‘민족경제론’ 수준의 시대착오적 관념을 오늘날 우리 경제에 맞추려고 ‘통제 경제’를 시도한다. 집권 3년차가 되면서 안 그래도 ‘경제 무능’이라는 타이틀이 짙어져 가는데, 이번 조국 사건은 이들의 위선까지 보여줬다.” 

    고(故) 박현채 교수가 펴낸 ‘민족경제론’은 운동권 양성 교재로 불렸다. 북한식 경제체제가 박정희 산업화 모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폈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을 비판하고, 자주·자립·민주성을 추구하는 민족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한국 경제의 매판성과 종속성을 비판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어떤 위선인가. 

    “딸의 스펙이든 뭐든 자기는 다 챙기면서 새로운 가치 배분의 틀을 만드는 데 인색하다는 거다. 집권 386이 경제성장을 이끈 세대나 국운(國運)을 걱정하는 젊은 세대에게 비전이나 철학을 보여줬는가. 월급 받아보고, 세금 내는 대다수 국민의 경험을 제대로 존중했는가. ‘운동권 2기’ 정부인 문재인 정부도 먼저 실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느냐는 점에서 반성해야 한다.”

    보수 대통합의 조건

    8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 에서 원희룡 제주지사가 박찬종(오른쪽) 전 국회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8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 에서 원희룡 제주지사가 박찬종(오른쪽) 전 국회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 그렇다면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 역할이 중요한데, 국민은 여전히 야당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 거 같다. 

    “그렇다. 과거 야당은 경제성장과 안보라는 대한민국 보수의 성취를 이뤘고, 그 속에서 경제성장과 풍요라는 기득권이 생겼다. 그렇다면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키는 노력을 해야 했는데, 풍요 속에 안주하고 자기들끼리 울타리를 치면서 탐욕으로 가니 국민에게 지탄을 받았다. 안주하다 보니 권력을 갖고도 내부 분열하고 배척하지 않았나. 가장이 500원을 벌었다면, 100원은 생활비로, 100원은 세금 내고, 100원은 재투자하고, 100원은 자녀 교육하고, 100원은 어려운 친지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등 선순환 분배를 한다. 야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으로 갈 수 있다는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밥 굶던 시절에 경제성장 이뤘다는 걸로, 40년 전의 성취를 놓고 지금도 지지하라고 하면 누가 지지하겠나. 이제라도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을 수용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갈라진 보수가 대연합을 해야 한다.” 

    - 보수 통합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는 거 같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탄핵에 적극 동조한 비박계 인사 퇴출을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글쎄. 조건이 있겠나. 단 하나의 조건이라면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집권세력, 그들의 위선을 벗겨내고 정권 교체의 힘을 만들 수 있다면 다 된다고 본다. ‘반(反)문재인’ 기치를 내건 진정한 개혁 세력에게는 항상 문호가 열려있어야 한다. 안철수,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참여하고….” 

    - 다시 ‘헤쳐모여’ 아닌가. 

    “기득권으로 돌아가는 보수 세력이 모이는 게 아니다. 과거 탄핵으로 상처입고 배척했던 것에 대해선 처절한 반성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성장과 분배, 효율과 안정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협력해나가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중심 세력이 나와야 한다.” 

    원 지사는 이렇게 말하며 탁자를 두 번 내리쳤다. 눈빛이 이글거렸다. 과거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표되던 보수 개혁의 대표주자이던 그가 ‘현재의 보수 세력은 참 답답하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보수 지도자에게는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진정한 책임성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국민이 인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힘의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원 지사는 지난 8월 한 토론회에서 ‘황 대표에게 야권 통합을 주도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는데. 

    “지도자의 리더십과 기준이 중요하다. 큰 조직이라면 다수가 인정하고 권위를 부여한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든 지도부에 일정한 주도권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선 야당 지도자는 사심 없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민 다수가 수긍할 정도의 큰 그림과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요즘 조국 사태 이후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니 끼리끼리 모여 ‘우리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거다. 아직도 국민은 ‘탄핵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 보수 세력에게는 좋든 싫든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 전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가겠다. 보수대연합으로 반(反)문재인 투쟁에 나서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언급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단임제를 하는 이유는 보다 많은 정치 지도자와 집단이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되,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기념관에 역사로 남으라는 거다.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현실적인 정치력을 계속 발휘해야 한다면 단임제를 채택하지 않았을 거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건 안타깝지만, 이제는 과거의 역사이고, 역사의 공과(功過)가 있는 지도자로 정당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박근혜 역할은 끝났다”

    - 모법 답안 같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이제 와서 총선에 다시 (박 전 대통령을) ‘브랜드’로 내세워 가겠다는 자체가….” 

    -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은 끝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신적 영향력을 펼치는 식으로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지만 정치는 근본적, 중심적인 것을 먼저 세우고 나머지는 종합적으로 취합해가야 한다.” 

    - 20대 국회에선 개혁과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초·재선 의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한국당 내 미래연대(17대), 민본21(18대), 경제민주화실천모임(19대) 같은 소장파 그룹이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을 거치면서 공천이나 당내 계파 경쟁이 심하다 보니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기 마련이다. 신진대사가 잘 이뤄지려면 젊은 세대나 진보·중도층을 흡수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들이 당의 노화를 막는 항노화제 기능을 한다. 이러한 ‘체질 강화’ 노력이 어느 순간부터 약해졌고, 그 결과 후유증이 나타났다. 나이 들수록 보약을 먹고, 근력 운동을 하고, 냉수마찰을 해야 한다.” 

    이쯤에서 외교·안보 분야로 말머리를 돌렸다. 제주도 관광업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에 이어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에 따른 한일관계 악화 등으로 2년마다 대외 악재를 겪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중국 군용기가 이어도 상공을 지나 동해상에서 러시아 군용기와 만나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서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 일도 빚어졌다.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생기면 힘을 전개하려는 주변 강대국들의 틈 속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구한말보다 더 위험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구한말과 다른 점은 구한말에는 일본의 부상, 그리고 이를 용인한 미국이 있었고, 이걸 ‘운동권식’으로 말하면 ‘주요 모순’이자 도전과제였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의 부상과, 이를 용인하고 오히려 편승하려는 북한과 러시아가 동북아 질서의 축이 됐다. 문제는 이 부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다.”

    “구한말 의병처럼 독립운동을 할 건가”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우선 기존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 일본과의 준(準)동맹관계를 해체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물론 우리의 힘과 역할이 커진 만큼 과거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동맹의 ‘성숙’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우리 경제에 부담을 줄이면서 동맹에 의한 안보와 경제를 조화시킬 수 있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조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발언권이 커지면 회비도 많이 내야 하듯, 동맹을 벗어나 ‘독자 안보’를 하려면 힘의 공백도 생기고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이 상황에서 구한말 의병처럼 독립운동을 할 건가. 부담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독자노선으로 가겠다는 건 감당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동맹에서 관념적인 이념과 일방적인 실험은 위험하다. 부담과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진다.” 

    - 지난해 8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선 도 관계자들에게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했는데. 

    “영토와 역사 문제는 주권과 직결되고, 국가의 정체성이나 자존심과도 연결되는데 한순간에 결단을 내겠다고 나서면 답이 없다. 대처할 것은 대처하되, 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 안보상의 공통 이해관계에 대해선 협력하면서 유지해야 한다. 싸움이 났다고 해서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집어던지는 식의 태도는 외교안보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원 지사가 생각하는 민생은 뭔가. 

    “민생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다. 피땀 어린 노력도 배어 있고,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복지와 교육, 경쟁과 다툼도 있다. 국가 운영은 국민 삶의 확장 판이다. 따라서 정치는 국민 전체를 봐야 한다. 투쟁과 갈등은 늘 있어왔지만 그 방향은 국민 통합이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특정 운동권 이념만을 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민생을 짓밟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경제적인 풍요, 공동체 행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는 게 정치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제주의 경제도 어려워지고 있고, 제주 제2공항이나 환경문제 등 여러 현안이 있다. 도지사로서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성산읍 일대에 들어설 제2공항 건설 문제는 공론조사를 다시 하자는 반대 측 요구가 있는데, 이미 4년 가까이 여론 수렴 절차를 밟았고, 국가적 용역을 거치며 논의를 다 마쳤다. 지금 와서 공론 조사를 다시 하자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민생과 일자리,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신동아 11월호]




    배수강 편집장

    배수강 편집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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