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곽재식의 괴물여지도

강철 : 김포, 양산, 계룡산, 철원 등 전국 각지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

  • 곽재식 소설가

    gerecter@gmail.com

    입력2019-03-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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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한국 괴물을 꼽는다면 나는 단연 ‘강철’이라고 생각한다. 강철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로 여러 문헌에서

    • 소, 말, 용 등을 닮은 것으로 묘사된다. 괴물치고는 비교적 기록이 풍부하고, 전국 각지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이야기도 많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신동아’는 3월호부터 ‘곽재식의 괴물여지도’를 연재한다. 화학자 출신 작가인 필자는 옛 문헌 속 한국 괴물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결과물을 개인 블로그와 저서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통해 공개해온 ‘괴물 이야기꾼’이다. 그와 함께 우리 선조가 남긴 진짜 옛날이야기 속 괴물의 흔적을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여정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강철 이야기는 한두 해 잠깐 돌고 만 것이 아니다. 백 수십 년 이상 계속 전해지며 전설로 자리 잡았다. 이수광, 이익, 이덕무 같은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들도 강철에 대한 생각을 짧게나마 글로 남겨둘 정도였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실학자 연암 박지원 역시 강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바로 그 ‘열하일기’에 강철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박지원이 중국 청나라에 가서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이상한 재해를 일으키는 용 같은 것이 나타나 극심한 더위와 가뭄을 초래하고 농사를 망친다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목에서다. 현지인들이 그런 재난을 일으키는 용 같은 괴물 이름을 화룡(火龍), 응룡(應龍), 한발(旱魃) 등이라고 일컫자 박지원은 ‘조선에서는 그런 성질을 가진 괴물을 강철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박지원은 강철 이야기가 외국인에게 재미있게 설명할 만한 조선의 특이한 풍속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니까 강철은 18세기 조선인이 자국을 대표하는 괴물로 쉽게 떠올리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꽝철이 쫓기’ 민속놀이

    그에 비하면 강철 이야기가 현대에는 훨씬 덜 알려진 편이다. 요즘 많은 사람에게 한국 괴물 이야기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쉽게 말하는 것이 도깨비나 사람으로 변신하는 여우 정도다. 강철이라는 이름을 아는 이조차 결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완전히 맥이 끊겨버린 것은 아니다. 18세기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한 괴물이었던 만큼, 강철 이야기가 여전히 어느 정도 흔적은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최근까지 농촌에는 농사를 망치는 재해를 쫓아내는 기원의 의미로 ‘꽝철이 쫓기’라는 민속놀이가 전승됐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 따르면 경북 남부와 경남 등의 사람들은 꽝철이가 산 능선에 앉는 습성이 있다고 믿고, 산 능선을 돌아다니며 꽹과리와 징을 쳐 꽝철이를 쫓고 풍년을 빌었다. 여기서 꽝철이가 바로 조선시대 기록 속 강철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강철을 용이 못 된 이무기 비슷한 것으로 보고 꽝철이뿐 아니라 깡철이 등의 또 다른 변형 발음으로 부르는 민속놀이가 다른 지역에 전승된 사례도 있는 것 같다.



    한국 속담을 정리한 책을 보다 보면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라는 속담도 있다. 강철이라는 괴물이 나타나면 농사를 망치게 돼 추수를 하는 가을철에도 거둬들일 것이 없어 농사를 시작하기 전인 봄과 같은 모습이 돼버린다는 의미다. 큰 재난이 한번 일어나 일을 망치면 오랫동안 공들여 노력해도 한순간 아무 소득이 없는 것처럼 끝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속담 속 강철이 바로 조선 후기에 유명했던 그 괴물, 강철이다.

    만화나 소설, 혹은 어린이 동화 등에서도 강철을 소재로 다룬 이야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조선 후기 강철 이야기가 크게 유행한 것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잊힌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철은 머나먼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이 아니고, 일제가 민족 정신을 말살하고자 이 이야기를 일부러 없애려 든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강철 이야기는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것이 됐다. 19세기에서 20세기, 불과 80~9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선을 대표하던 괴물 이야기 하나가 낯설고 특이한 전설의 한 구석으로 쪼그라들어 버린 것이다.


    ‘농작물 불태우는 소’ 또는 ‘비바람 일으키는 용’

    중국 고서 산해경에 실린 괴물 ‘비(蜚)’ 그림.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 고서 산해경에 실린 괴물 ‘비(蜚)’ 그림. [한국콘텐츠진흥원]

    지금에 와서 강철의 흔적을 다시 찾아보면, 비교적 초기 기록으로 나타나는 건 이수광이 저서 ‘지봉유설’에 남긴 이야기다. 집필 시기가 17세기인 이 책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우연히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라는 속담을 먼저 접했다. 그리고 해당 속담 뜻이 궁금해 어느 시골 노인에게 도대체 강철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노인이 강철이란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을 말한다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노인은 강철이 나타나면 근처 몇 리에 달하는 지역에서 풀, 나무, 곡식이 모두 타 죽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 얘기를 정리하고 나서 이수광은 나름대로 강철에 대해 궁리한 내용을 덧붙였다. 그는 중국 고전에서 ‘비(蜚)’라는 괴물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괴물과 강철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비’는 중국 기록에서 눈이 하나 달린 소 형태를 한 괴물이다. 그것이 나타나면 전쟁이 터지거나 전염병이 돈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이수광은 강철의 모습을 소를 닮은 괴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수광의 강철 이야기로부터 100년 정도 후에 기록된 이익의 ‘성호사설’에 담긴 강철 이야기는 앞선 것과 약간 차이가 있다. 이익은 중국의 ‘독룡(毒龍)’ 이야기를 꺼내며 조선에는 그와 비슷한 괴물로 강철이 있다고 설명한다. 강철에 대한 속담을 언급한다거나 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듯이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성호사설’과 ‘지봉유설’이 유사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성호사설’에서는 강철이 폭풍우를 일으켜 농사를 망친다고 말한다. 주위를 불태워 농사를 망친다는 ‘지봉유설’의 이야기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런 대조적 묘사는 이후 기록에도 보인다. 김이만의 시문집 ‘학고집’ 기이편에 남아 있는 기록에서 저자는 강철이 번개와 폭우를 일으키는 괴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덕무는 ‘양엽기’에서 강철이 가뭄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두 사람 기록 속에 나타나는 강철 이야기는 그 묘사가 상당히 강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김이만은 경남 양산에서 살 때 직접 하늘에 이상한 형체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며, 자신이 아마 전설 속 강철을 목격한 것 같다고 썼다. 한편 이덕무는 강철이 경기 김포에 있는 어느 늪 속에 살고 있다가 뛰쳐나와 바닷속으로 숨었는데 그러자 바닷물이 끓어올랐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농사를 망치는 강철이라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승되는데, 필자에 따라 그 내용이 폭풍과 홍수를 일으키는 쪽과 가뭄과 뜨거움을 일으키는 쪽으로 상반되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단숨에 농사를 망쳐버리는 괴물

    중국 고서 산해경에 실린 괴물 ‘신치’ 그림.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 고서 산해경에 실린 괴물 ‘신치’ 그림. [한국콘텐츠진흥원]

    강철의 겉모습에 대한 묘사도 여러 가지로 달리 전해진다. 이수광과 이익은 강철이 소와 비슷한 괴물이라고 했지만 김이만은 강철을 용과 비슷한데 털이 달린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덕무는 강철이 망아지와 비슷한 괴물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강철은 소, 말, 용이 이리저리 섞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익이 강철을 설명할 때 중국의 화룡과 견준 것을 보면 강철이 용과 비슷하다는 발상은 진작부터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인인 신돈복은 야담집 ‘학산한언’에서 ‘계룡산에 나타난 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한 괴물을 이의제라는 사람이 보고 강철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동시에 철원의 한 연못 속에 괴물이 있어 그것을 물리치려고 관청 사람들이 물속에 뜨거운 장작을 넣었더니 그 안에서 말처럼 생긴 괴물이 튀어나와 우박을 뿌리며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곁들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강철은 구체적인 자연현상 한 가지를 상징하는 괴물이라기보다는, 농사를 허망하게 망쳐놓는 재해 그 자체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컸던 지역에서는 강철을 홍수의 원인으로 본 이야기가 유행하고, 가뭄 피해가 컸던 지역에서는 강철을 열기와 메마름의 원인으로 본 이야기가 유행한 것 아닌가 싶다.

    경북 청도 대비사 대웅전 대들보의 괴물 그림. 용을 닮은 이 괴물이 강철이라는 속설이 있다. [문화재청]

    경북 청도 대비사 대웅전 대들보의 괴물 그림. 용을 닮은 이 괴물이 강철이라는 속설이 있다. [문화재청]

    강철을 중국 고전 속에 등장하는 괴물 중 어떤 것과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역시 기록을 남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수광은 소를 닮은 비와 강철을 견주었지만, 이익과 박지원은 중국의 화룡, 독룡에 강철을 견주었다. 한편 김이만은 ‘효’라는 중국 괴물과 강철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했고, 신돈복은 ‘한발(旱魃)’이라는 것과 유사하게 봤다. 효는 털이 나 있는 교룡(蛟龍)을 일컫고 한발은 원숭이를 닮은 형태로 묘사될 때가 있으니 결코 깔끔하게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이덕무는 중국의 ‘후’와 강철이 비슷한 것 같다고 언급했는데 후는 사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모아놓고 보자면, 강철 전설을 새롭고 재미있게 활용해 나간다는 점에서 강철 이야기를 몇 가지로 나누어보는 것도 해볼 만한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강철이 원래 두 종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용과 비슷한 강철 종류가 있는가 하면, 또한 소나 말같이 다리가 긴 짐승과 좀 더 비슷한 형태의 강철 종류도 있다고 보자. 혹은 용과 소를 섞은 모양인 강철이 있고, 이와 더불어 용과 말을 섞은 듯 보이는 강철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눈 뒤 용처럼 생긴 강철은 폭풍우로 농사를 망치고, 소나 말같이 생긴 강철은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곤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미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김포 강철 이야기를 전한 이덕무의 기록과 양산 강철 이야기를 전한 김이만의 기록을 구분해 한반도 북쪽 지역 강철은 가뭄을 일으키는 반면, 남쪽 강철은 홍수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강철이 서로 다투거나 겨루는 이야기를 꾸며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나타난 강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비슷비슷하게 연결되는 여러 강철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강철 이야기가 어떤 이유로 조선시대에 유행했을지, 나름대로 연원을 추측해보기도 했다. 이때 주목한 건 많은 강철 이야기에서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수광은 아예 속담만 알다가 그 뜻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철에 대해 알게 됐고, 이익 김이만 신돈복 이덕무 박지원 등 강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문필가 대부분이 항상 강철 이야기를 하며 해당 속담을 같이 언급했다. 그래서 나는 이 속담이 먼저 유행했고, 자세한 강철 이야기는 그 뜻을 설명하고자 사람들이 나중에 갖다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소설가로서의 상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강철은 원래 어떤 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처음에는 창, 칼, 대포를 상징하는 말로 전쟁을 뜻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인 이수광의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면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재산을 모아도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뜻으로 돌던 이야기가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혹은 강철이라는 별명을 가진 악독한 벼슬아치나 장군이 있어 그 사람 때문에 경제가 망한다는 한탄에서 유래한 속담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임진왜란 같은 전쟁을 겪는 와중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병사들을 통해 전해진 중국어나 일본어의 특정 단어가 잘못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어디선가 ‘단숨에 농사를 다 망쳐버리는 재난’을 두고 강철에 대한 속담이 돌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폭풍우나 가뭄의 열기를 일으키는 괴물이 강철이라고, 그 의미가 바뀐 것이 아닐까.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먹구름 사이로 지푸라기나 거적때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설핏 보면 무엇인가 괴물처럼 보일 수 있고, 그때 어디선가 들은 ‘강철이 농사를 망친다’는 속담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저게 바로 그 강철이다’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구체적인 모습을 가진 괴물 이야기가 점차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강철에 관한 여러 자료를 조사하던 중 대한민국이 건국되고도 한참 지난 후인 1957년에도 사람들이 강철을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일간지 기사를 찾아냈다. 이 강철 목격담이 돌았던 지역이 하필 200년 전 조선의 김이만이 강철 목격담을 남긴 양산이라는 건 공교로운 일이다. 해당 기사는 이렇다.


    ‘깡철의 마력’ - 양산군 금산부락 앞 물 들판에는 홍수가 휘몰아치던 지난 3일 ‘깡철’이란 동물 두 마리가 나타나 가산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은 ‘깡철’ 구경에 한창 법석댔는데, ‘깡철’의 움직임에 따라 그 지대 수면이 약 5미터가량 높았다 얕았다 동요하더란 이야기(중략, 1957년 8월 11일 동아일보)

    그날 양산에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혹시라도 당시 현장에 있던 독자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연락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곽재식 | 1982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양자공학, 대학원에서 화학과 기술정책을 공부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교양서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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