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육림은 백년대계, 사람 키우듯 숲 가꿔야죠”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사진 김성남 기자

    입력2005-07-29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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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나무를심는 사람’이란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양치기 노인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나무가 부족해 땅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안 노인은 홀로 묵묵히 황폐한 고원에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심었다.

    10여 년이 흘러 주인공이 황무지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은 맑은 시내가 흐르고 녹음이 우거진 숲으로 변해 있었다.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죽어가는 땅을 생명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영화를 본 지 10년이 흘렀지만, 화면에 비친 파스텔톤의 푸른 숲과 미묘한 자연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욱 오래 가슴에 남는 건, 숲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노인의 숭고한 정신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꺼낸 건, 한 기업이 걸어온 길이 바로 ‘나무를 심는 사람’과 닮아 있어서다. 산간 오지 황무지를 사들여 30년 동안 30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키워온 기업, 눈 앞의 이윤보다 국가 차원의 이익을 위해 ‘조림(造林) 백년대계’를 세운 회사…. SK건설 임업부문이 그 주인공이다.

    SK임업(구 서해개발)은 국내 유일의 조림 기업이다(지난해 말 SK임업은 업무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SK건설에 합병됐다). 이윤 창출이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할 목적으로 1972년에 설립됐다. SK임업은 고(故) 최종현 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이란 장학재단을 설립하면서 운영비와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림을 시작했다.

    그 결과 30년 전부터 충주 인등산, 천안 방덕산, 영동 산간, 오산 일대에 일구기 시작한 임야가 지금은 4100ha(1200만평)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이르는 이곳에 조림수 40종, 조경수 80종 등 330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당장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 나무 심는 일에 30년을 매달려온 것은 “나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는 최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여의도 13배 면적의 임야 일궈

    지난해 12월 김영남(金榮南·58) SK건설 임업부문 사장이 ‘30년 장학 조림’ 정신을 이어갈 수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 사장은 1976년 조림학 석사학위를 받고 어린이대공원 식물원과 도봉구청에서 근무하다 1983년 SK건설에 입사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력이 말해주듯 나무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문가인 것.

    -‘임업 회사’라는 말이 퍽 생소하게 들립니다.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해온 곳이 제지회사들입니다. 이들은 과거 제지 원료용 임야를 확보해 나무를 심고 키웠죠.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예전에 일군 임야를 관리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로 육림(育林)이나 조림을 하지 않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SK건설 임업부문을 국내 유일의 조림 기업이라 불러도 무방할 겁니다.

    SK임업은 이익사업보다는 산림녹화와 조림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호흡이 길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란 걸 염두에 뒀기에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꿀 수 있었던 거죠. 덕분에 30년 전만 해도 민둥산이던 곳이 생명이 숨쉬는 숲으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SK임업이 가꿔온 숲은 모두 수도권 밖에 있습니다. 어떤 원칙으로 나무를 키울 임야를 선정했는지, 사업소마다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궁금합니다.

    “SK임업 출범 당시 임지 선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죠.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치 를 고려해 수도권 근처에 임야를 확보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께서 ‘나무 심기는 땅 장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지역주민과 국가에 이익이 되도록 산간 오지의 황무지를 선택하셨죠. 1970년대 당시 조림작업에 참가한 지역주민들이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줘서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집도 짓는다’며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1975년, 1000ha에 이르는 충주 인등산에 가래나무, 자작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었어요. 가장 먼저 심은 수종(樹種)이 가래나무인데, 고급 가구재로 쓰일 정도로 재질이 뛰어납니다. 천안의 대지 500ha에는 호두나무, 흑호두나무,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고요. 1980년대부터 조림을 시작한 충북 영동지역 2500ha에는 자작나무, 루브라참나무, 흑호두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경기도 오산의 경우 임야 면적이 60ha인데 소나무, 구상나무, 메타세쿼이아 등을 키웁니다.”

    -수종을 선택하는 데도 특별한 원칙이 있었나요?

    “물론이죠. 1970년대 정부는 산림녹화를 위해 상록수를 권장했지만, 우리는 산소 배출량이 많고 미관이 아름다우며 경제성이 높은 활엽수를 심었습니다. 속성수를 키워 얻는 조기 수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가가치가 더 높은 특용 활엽수를 조림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충주지역을 국내 유일의 특용 활엽수 인공림 단지로 가꾸고 있습니다.

    퀴즈를 하나 내볼게요. 팔만대장경이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아세요? 합천 해인사에 가면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씌어 있지요. 하지만 사실은 자작나무만 재료로 사용된 게 아니에요. 산벚나무, 돌배나무도 재료로 쓰였지요. 이런 활엽수들이 섬세한 조각을 만드는 데 훨씬 적당합니다.

    반면 소나무는 세포가 굵은 편이에요. 침엽수의 경우 나이테가 선명해서 섬세한 조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도 고려해 나무 종류를 선택했어요. 자작나무는 서늘한 지방에서 잘 자라 북쪽 지방에 심은 나무가 남쪽의 것보다 잘 자라더군요.”

    조경사업과 ‘우리숲’ 호두

    SK임업의 조림사업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1989년 정부가 기업의 부동산 과다보유를 규제하면서 ‘기업이 부동산을 왜 이렇게 많이 갖고 있냐’며 매각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SK임업의 장학조림 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이 약 1000ha의 임야를 충남대에 기증하는 한편, 부동산 투자를 위해 땅을 구입한 것이 아님을 정부 당국에 충분히 설명해 매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충남대에 연습림으로 제공한 이 임야를 SK임업이 관리하고 있다.

    -사회 공헌도 좋지만 기업의 최대 목적은 이윤 창출 아닙니까. 조림사업만으로 돈을 벌긴 어려울 텐데요. 흑자를 내기 위해 또 어떤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까.

    “사재를 털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엔 한계가 있지요. 처음 조림사업을 시작할 때는 이윤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투자만 이뤄졌어요. 나무를 심어 키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조경사업입니다. 공원, 가로, 아파트, 생태 등을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으로 꾸미는 사업에 뛰어든 거죠.

    또한 숲을 가꾸며 얻는 부산물로 수익을 올립니다. 예전에는 사과 과수원을 운영해 소득 창출을 모색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열매를 생산하려면 비료를 주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인력이 턱없이 모자랐으니까요.

    그래도 최근 천안사업소에서 하는 호두 농사는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 천안사업소에서 수확한 호두를 ‘우리숲’이란 브랜드로 시판하고 있죠. 지난해 총생산량은 2000kg이지만, 올해 총생산량은 1만8000kg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량이 증가한 까닭은 2~3년 전부터 꾸준히 비배(肥培)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죠.”

    호두 이야기가 나오자 김 사장은 ‘식물박사’다운 해박한 지식을 드러냈다.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한 한국산 호두가 중국산 호두보다 품질이 뛰어나며, 나폴레옹도 건강식품으로 호두를 상식(常食)했다는 등 갖가지 호두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품질 좋기로 소문난 ‘우리숲’ 호두를 입에 넣자 입안 가득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조경수 사업, 조경 공사, 호두 생산 등 ‘복합 임업’을 통해 SK건설 임업부문은 1995년부터 흑자경영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체 매출 394억원에 영업이익 40억원, 당기순익 11억원의 성과를 기록했다. 제조업의 성과에 비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임업 기업으로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울산대공원의 친환경 설계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도심생태공원을 표방하는 울산대공원 전경.

    최근 SK건설 임업부문은 SK(주)가 시행하는 울산대공원 기본·실시 설계를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SK(주)는 10년 동안 1000억원을 들여 공사한 이 공원을 울산 시민에게 기증했다. 울산대공원은 설계 당시부터 능선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저수지도 그대로 보존하는 친환경 공법을 고집한 덕에 완공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 ‘빨리’보다는 ‘제대로’ 된 시공을 고집한 울산대공원의 건설방식은 친환경 설계의 모범으로 기록될 듯싶다.

    -울산대공원 건설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입니까.

    “SK건설 임업부문이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인에게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선사하자는 겁니다. 울산대공원도 최고의 도시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공업지대로 각인된 울산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할…. 그래서 기존에 자라던 나무를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습니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이 나무를 베어내야 할 경우엔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죠. 울산엔 특히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많더군요. 이들을 옮겨 심는 데만 수천만원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공존과 조화

    -김 사장께서 생각하는 ‘자연친화적 공간’이란 어떤 것입니까. 다른 조경공사에서도 이런 친환경 마인드가 적용되고 있습니까.

    “‘자연친화적 공간’이란 바로 공존과 조화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거든요.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하기보다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환경이 쉽게 파괴될 리 없어요.

    최근 SK건설 임업부문은 인천 송도신도시 개발사업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메운 매립지인 만큼 염해(鹽害) 방지 시설을 철저히 갖춰 나무가 고사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어요. 해풍에 강한 육송도 골라 심고 있고요. 그 어떤 황무지나 버려진 땅도 숨쉬는 자연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며 묵묵히 나무를 심어온 이 기업에도 딜레마가 하나 있다. 골프장 조경공사가 그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산을 깎아내고 상당량의 농약을 뿌려대는 골프장 건설을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간주한다. 경기도 포천 일동레이크골프장 조경을 담당한 SK건설 임업부문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한 김 사장의 생각은 어떨까.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충주 인등산 ‘인재의 숲’에서 신임 팀장을 대상으로 명상 강의가 열린다.

    “자연파괴는 사실 농경사회의 출발과 함께해요. 식량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지으려면 일정 면적의 산림이 훼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식량 해결을 위한 욕구도 있지만, 레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있습니다. 골프장 건설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판하기 전에 합리적인 대안을 고민해봐야겠지요.

    골프장을 건설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토를 해칠 만한 무분별한 골프장 준공은 막아야겠지요. 다만 골프 수요가 늘어나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전답으로 분류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황무지를 골프장으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황무지를 논밭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잔디가 자라는 골프장을 논밭으로 개간하는 것이 훨씬 쉽기도 하고요. 자연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나무와 김 사장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 김영남이 숲을 동경하게 된 것은 영화 ‘초원의 빛’을 보고 나서다. 농장 입구에 흐드러지게 늘어선 미루나무, 녹음이 우거진 시골 풍경이 그를 사로잡았다. ‘영화처럼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아름드리 전나무숲에 매료되다

    언제부턴가 그는 숲에 들어서면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이 쿵쿵 뛰었다. 중학교 시절, 광릉임업시험장에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곧게 뻗어 끝이 보이지 않던 아름드리 전나무숲에 매료된 것이다. 그 시절부터 숲과 나무를 키우는 일을 꿈꿔온 그가 건국대 임학과에 진학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73년 문을 연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그는 1974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초대 식물원장을 맡은 것이다. 개장 당시 어린이대공원은 관광객이 숲속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다. 산림 훼손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시민이 우거진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숲 개방이 식물 생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개방된 임야와 그렇지 않은 임야에서 자라는 나무의 생장상태와 성장속도를 비교해봤다. 3년 동안 생장 나이테가 어떻게 바뀌는지 꼼꼼히 조사한 것이다.

    ‘토양견밀도가 수목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그의 석사학위 논문에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이 논문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개방된 숲의 나무가 그렇지 않은 나무에 비해 성장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생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의 논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어린이대공원은 시민에게 잔디밭과 숲을 개방했다.

    그렇다면 나무 전문가인 김 사장이 가장 아끼는 나무는 무엇일까.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는 식의 질문에 그는 껄껄 웃으며 애틋한 나무 사랑을 드러낸다.

    “정말 숲에 가면 사랑스럽지 않은 나무가 없어요. 곧게 뻗은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흰 빛깔의 자작나무는 자작나무대로 각자 향기가 있어요. 수종에 상관없이 제가 매료되는 것은 상태가 좋은 싱싱한 나무들이죠. 상처 없이 곧게 자란 나무를 보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올해 초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김 사장을 안타깝게 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아온 그이기에 불타는 산림을 지켜보는 것은 자신이 화상을 입는 듯 고통스러웠을 게다. 산림정책에 관해 혜안을 지닌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김영남 사장은 “임업이 활성화되려면 국가 지원은 필수”라고 말했다.

    “올해 식목일에 일어난 대형 산불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최근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국민의 경각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감시요원이 부족한 산림청의 시스템이 안타깝습니다. 산림이 국토의 65%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정작 산림 관리에 대한 국가적·국민적 관심은 턱없이 열악한 실정이지요.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침엽수와 활엽수를 교대로 심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낙산사까지 불태운 지난 산불의 경우 수관화(樹冠火·나무줄기 윗부분에서 일어난 불)였는데, 침엽수림 중간에 활엽수가 가로막고 있었다면 불길이 쉽게 끊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소방차가 올라갈 수 있는 임도(林道)가 부족한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은 1ha당 평균 2.4m의 임도를 확보하고 있는데, 독일은 42m, 미국은 10m, 일본은 5m의 임도를 갖추고 있어요. 임도는 진화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운반기능을 강화해 궁극적으로 목재 수익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SK임업이 가꾼 충주 임야의 임도는 17m에 이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조림사업이야말로 임업 강국으로 가는 필수 조건이에요.”

    임업 법인, 국가가 지원해야

    일제 수탈과 6·25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국토, 무주공산에 무연고 묘지가 판치도록 만든 전통적 관습…. 한국이 임업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었던 역사적, 문화적 한계다. 그러나 김 사장은 임업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도 임업 강국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세계적 임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의 산림 면적은 국토의 30%에 불과합니다. 한국보다 산림 비율이 현저히 낮은 독일이 왜 임업 선진국으로 불릴까요? 바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산림 관리 정책 덕분입니다. 독일에서 자라는 나무의 평균수령은 300세에 이릅니다. 북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고요. 독일은 절대 산림면적이 부족하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목재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SK임업이 가꿔온 임야 면적은 전국토의 0.06%에 불과합니다. 그 기간도 30년에 지나지 않고요. 우리의 작업이 양적으론 공헌도가 미미하지만, 조림사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선언적 효과는 분명 컸다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의 목재 자급률은 2~3%에 불과하지만, 전 국토의 65%인 산림을 잘 관리한다면 목재 생산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가 문제겠죠.”

    -임업 선진국으로 가는 데 한 기업의 힘만으론 불충분하겠지요. 정부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우리의 조림 백년대계도 달라질 겁니다.

    “사실 임업은 국가가 이끌어가야 할 사업입니다. 국토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요. 임업 기업이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현행법상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영리법인을 지원할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이죠.

    임업은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어서 기업들이 뛰어들길 꺼립니다. 하지만 세금 혜택 등이 주어진다면 사정은 달라질 겁니다. 많은 기업이 앞다퉈 국토를 푸르게 하는 일에 동참하겠지요. 저희와 같은 법인 독림가(篤林家)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져야 합니다.

    임업 선진국의 경우 국가의 적극적인 주도로 조림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나무 심는 일은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토를 위한 활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쳤으면 합니다.”

    ‘나무 심는 사람’, 김영남 SK건설 임업부문 사장

    조림 전(①) 충주의 인등산은 30년이 흘러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 인공 활엽수림(②)으로 변모했다.

    -나무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숲의 소중함을 간과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림청에서 우리나라 산림의 경제적 가치를 환산한 결과 해마다 58조9000만원의 수익을 낸다고 보고했습니다. 산림의 가치는 생산된 목재, 부산물(열매 등), 나무가 제공하는 산소의 가치 등을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산림에 의한 수익을 우리 국민의 숫자로 나눠보면 1년에 1인당 23만원의 혜택이 돌아가는 셈입니다. 산소를 공급하고 물을 생산하며 대기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나무의 역할은 재삼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육림과 인재 육성은 ‘공통분모’

    1983년 SK건설에 입사한 김영남 사장이 처음부터 조림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 공관 조경공사의 현장 대리인으로, 도시 빌딩과 아파트 공사의 감독자로 건축현장을 누볐다. 현장에서도 그가 결코 잊지 않은 것은 친환경 건축을 향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SK건설 경영기획실 부장, SK 구조조정추진본부 상무를 거쳐 지난해 봄 SK임업 부사장으로 발령받으며 어린 시절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숲을 가꾸고, 나무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은 그에게 무엇보다 큰 기쁨을 주는 듯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지방사업소를 찾아 사원들을 격려하고, 충주의 그룹 연수원(SK 아카데미)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에 강사로 나선다. SK임업의 임무가 계열사 사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강의엔 조림사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녹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배꼽을 잡게 하는 유머나 촌철살인의 언어유희는 없지만, 자연을 향한 신실한 자세와 폭넓은 지식이 직원들을 감화시킨다는 것이다.

    “SK는 2년 전부터 그룹 연수원에서 진행하는 집합교육 때 임직원들이 직접 충주 인등산 ‘인재의 숲’을 답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지요. 특히 인재 육성을 담당해야 할 경영자급은 ‘인재의 숲’ 산행이 필수 덕목입니다. 30년 나무 육성은 인재 육성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최태원 회장도 직접 인등산 ‘인재의 숲’을 찾아 임직원과 함께 산행하는 등 장학 조림사업을 SK의 기업문화로 정착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듯 나무도 키워야 한다.’

    김영남 사장이 늘 되새기는 말이다. 조림사업의 과학적·체계적 방안을 연구하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제안하는 그에게서 치열한 고민을 엿본다. 충주에 가면 꼭 한번 인등산 자작나무 숲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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