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유통단계 점진 축소 바람직 농협 도소매 경쟁력 키워야”

朴 정부 농축산물 유통공약 총괄 김동환 안양대 교수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입력2013-04-19 16: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연일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관련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근본적으로” “혁신적으로” “국민 피부에 와 닿게”로 강도도 높아졌다.
    • 박 대통령은 서민 물가가 안정되려면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돼야 하고 그러려면 불합리한 유통단계가 축소돼야 한다고 본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의 해묵은 과제인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유통단계 점진 축소 바람직 농협 도소매 경쟁력 키워야”
    “농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근본적으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직거래 등의 새로운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도매시장의 운영을 효율화해 유통경로 간의 건전한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새 정부는 유통구조 개선을 중점 추진해 소비자들이 가격 변동에도 믿고 농축산물을 애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겠습니다. 특히 유통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데 있어 그 성과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아야 하며 소비자들에게 수급 상황이나 장바구니 정보를 수시로 제공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13일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축산물 유통 관계자들에게 한 이야기다. 돼지고기 가격 폭락으로 양돈 농가들은 자식처럼 키운 돼지를 살처분해야 할 상황에 몰렸지만 정작 소비자의 밥상에 오르는 고기값은 그대로인 현실을 질타하며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농축산물 가격 불안정의 근본적 원인으로 불합리한 다단계 유통구조를 지목했다. “작년에 방문했던 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최다7단계에 이르는 돼지고기 유통단계를 3단계로 줄여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제공한다”며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심한 경우 밭을 갈아엎을 정도로 낮은 판매가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 때문에 밥상 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유통구조를 혁신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관련한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새 정부는 생활물가를 잡기 위해선 우선 농축산물 가격을 안정시켜야 하며, 그러려면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박 대통령은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공약집에서 농축산물 유통구조 축소, 직거래 유통채널 확대, 도매시장 운영 개선을 약속했다.

    농민 괴롭히는 유통구조



    박 대통령과 새 정부가 구상하는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의 밑그림을 알아보기 위해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동환(55) 안양대 무역유통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대 농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농업과 응용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근무한 뒤 농축산물 및 농축산식품 유통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도 미국 식품가공산업이고, 농축산물 유통관리 및 유통구조 개선과 관련한 수백 편의 논문과 보고서, 저서를 냈다.

    2002년 이후에는 농림부에서 각종 위원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는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입법 자문위원을, 2010년부터는 농림수산식품부 농식품업무 자체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에는 박근혜 후보 대선 공약 작업을 진두지휘한 국가미래연구원과 새누리당 행복한농어촌추진단에 들어가 농정 공약 중 유통분야를 총괄했다. 김 교수는 “2010년 10월쯤 김광두 교수(현재 국가미래연구원장)가 주관하는 공부 모임에 초청받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 앞에서 농산물 유통개선 방안에 대해 발표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설명했다.

    ▼ 우리 농업과 농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기본적인 인식은 어떤 것입니까.

    “처음 만났을 때 농업과 농촌 현장을 잘 이해하고 농업 문제의 핵심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농촌의 현실을 주의 깊게 봐온 거죠. 특히 도시민에 비해 낮은 소득으로 고통받는 농민의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농업, 농촌 문제 해결의 핵심은 ‘농민을 잘살게 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 농축산물 유통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유통단계가 많고 복잡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큽니다. 특히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면 서민 물가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장 중심적 사고가 강하죠. 유통단계 축소로 소비자, 생산자가 모두 이득을 보는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유통단계 축소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된 것 같아요.”

    ▼ 농축산물 유통 개선과 관련된 대선 공약은 어떤 게 있나요.

    “농가소득 증대, 농촌복지 확대, 농업경쟁력 확보라는 3개의 축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습니다.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은 농가소득 증대 카테고리에 들어가죠. 유통단계가 줄면 농민의 소득이 증가하니까요. 공약에는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현행 6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고, 직거래 유통채널을 확대하며, 도매시장 운영을 개선한다는 세부사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비효율, 영세성이 문제

    김동환 교수는 우리 농축산물 유통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낮은 효율성과 주기적인 수급 불안정을 꼽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는 다단계 유통구조와 높은 물류비를 지목했다.

    “유통구조가 복잡해지면 유통비용이 많이 듭니다. 결국 농민이 손에 쥐는 돈은 적은데 소비자가격은 비싸지는 거죠. 현재 농산물은 생산자 → 수집상 혹은 생산자단체(농협, 영농조합법인) → 도매시장(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 소매상 → 소비자의 단계를 거쳐 유통되는데, 유통비용이 소비자가격의 41.8%(2011년 기준)에 달합니다. 농산물이 공산품처럼 규격화, 표준화돼 있으면 전자상거래 등 효율성 높은 거래가 가능한데 그것도 미흡하고, 도매시장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도 문제입니다. 물류비가 공산품보다 비싼 것도 한 이유가 됩니다. 지게차로 옮기기 쉽도록 팔레트화가 잘돼 있으면 운송비가 크게 줄어듭니다.”

    “유통단계 점진 축소 바람직 농협 도소매 경쟁력 키워야”

    박근혜 대통령이 3월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클럽을 방문, 직접 구매한 돼지고기를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있다.

    최근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산업통상부에 제출한 ‘유통산업 구조개선을 통한 물가안정방안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농산물 유통비용은 평균 소비자가의 43.4%에 달했다. 소비자가격이 100원이면 농가가 가져가는 돈이 56.6원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전통시장에서 판매되는 축산물 소비자가격에서도 유통비 비중이 매우 높았다. 한우는 평균 20.5%, 육우 17.2%, 돼지 30.2%, 닭고기는 52.8%에 달했다.

    대형마트는 신선식품 상품군을 직접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물류비를 제외한 유통비용이 거의 없지만 대신 판매관리비 등이 높았다. 물류비용은 마트 판매가의 10∼20% 수준인 반면 농축산물의 손상이나 시세 변동 등에 따른 손실비용이 10∼20%에 달했고 별도의 판매관리비도 15∼20%에 달했다. 결국 대형마트 판매가에는 농가에서 사들인 가격에 40% 가량의 마진이 붙는다는 얘기다.

    ▼ 각 유통주체의 역량도 문제입니다.

    “산지 유통조직이 영세해 대형 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늘 불리하죠. 지역농협과 품목농협은 많지만 읍면 단위로 조직돼 있어 규모가 작고 품목도 다양하지 않습니다.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 등 법인경영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산물 브랜드가 5200개를 넘어가지만 파워브랜드가 거의 없는 형편이고요. 산지 수집상, 도매시장 중도매인 등 유통주체가 영세하다보니 불공정행위가 만연하고 효율적인 거래가 안 되는 겁니다. RPC(미곡종합처리장), APC(청과물 산지유통센터), LPC(축산물종합처리장) 등 선진화한 산지 유통시설이 설치됐지만 가동률과 수익성이 낮아 산지 유통의 핵심시설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 도매시장은 어떤가요.

    “우리 농산물 유통의 70%를 담당하는 게 농수산물도매시장(공영 및 유사도매시장 포함)인데 운영상 비효율적 요소가 많죠. 정부가 투자한 공영도매시장은 경매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공급망 관리가 안 되고, 지게차 등에 의한 하역 기계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 물류비용이 과다합니다.”

    ▼ 농축산물의 가격이 너무 출렁거립니다.

    “농가의 생산규모가 영세하고 조직화돼 있지 않아 농축산물 수급이 불안정하고, 또 그렇다보니 주기적으로 가격 폭등과 폭락이 반복되죠. 정부가 수급안정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수입이 개방되면서 정책적 한계를 보이는 겁니다.”

    대전제는 ‘규모화’

    ▼ 유통구조를 어떻게 개선해야 합니까.

    “영세한 유통상인 위주의 다단계 구조를 규모화한 생산자조직 → 물류센터/도매시장 → 소매상 경로로 단순화해야죠. 산지에선 생산자(농가) 혹은 수집상 위주로 되어 있는 출하체계를 대규모 유통조직으로 전환해 출하비용을 절감하고 브랜드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됩니다. 소비지에서는 비효율적인 도매시장 유통을 단순화해야죠. 특히 농협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산지부터 소비지 매장까지 유통단계를 계열화해서 한 번에 유통시키면 유통비용이 크게 절감됩니다. 농협을 통한 계통 유통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 박 대통령은 직거래 활성화를 강조했습니다.

    “기존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한편 생활협동조합, 로컬푸드, 인터넷쇼핑, 소비자 주도형 직거래 등 다양한 형태의 신유통경로를 확대해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직거래가 활성화하면 중간 유통단계의 마진도 사라지고 수송비와 같은 유통비용도 확 줄죠. 가격변동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선진국형 유통이 되는 거죠. 일본에서도 도로변 직판장(道の驛) 등 다양한 형태의 생산자단체 직판장이 1만7000개가 넘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유통단계 축소나 직거래 활성화가 유통비용 절감이나 농축산물 가격 안정화까지 이어지려면 대전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규모화’가 그것이다. 농가의 처지에서 적은 양을 팔면 운송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직접 농산물을 싣고 도시에서 판매하는 형태의 직거래는 유통단계는 축소되지만 오히려 숨어 있는 비용이 많아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죠. 농민이 직접 소비자에게 팔면 상인에게 팔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만 물류비, 자가 노력비 등 간접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손해인 경우가 많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직거래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실패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직거래도 많은 농가가 모여 함께 해야 합니다. 로컬푸드 형태가 좋죠. 가까운 곳에 공급하면 물류비도 적게 드니까요.”

    ▼ 유통단계를 축소하면 중간유통 상인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산지 수집상과 도매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분명히 불만이 표출될 겁니다. 하지만 유통단계 축소는 유통경로 간 경쟁의 결과로 이뤄지는 것이라 저항이 크진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강제로 해선 안 되고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해주면 됩니다. 산지 수집상이나 도매시장 상인들도 스스로 개혁하고 조직화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으므로 바꿔나갈 수밖에 없죠.”

    ▼ 전통시장과 슈퍼마켓을 보호한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또 다른 정책기조이기도 합니다. 서로 충돌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농축산물 유통 효율화는 중소유통 보호와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정책 수립에 애로가 큰 게 사실입니다. 효율성 측면에서만 보면 영세 상인보다 대형 유통업체를 파트너로 해서 정책을 수행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만, 이는 경제력 집중 문제를 야기하고 중소 유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어려운 과제입니다. 정부는 중소 유통과 영세상인의 조직화에도 정책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스템으로 폭·등락 예방

    ▼ 박 대통령은 돼지고기 가격 폭락을 예로 들며 유통단계 축소를 강조했는데요.

    “농축산물 가격의 폭·등락은 수요와 공급의 일시적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유통단계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농산물은 가격이 변해도 필수재이기 때문에 수요가 크게 변동하지 않고 공급도 단기간 내에 변동되지 않아요. 이는 반대로 수요와 공급이 조금만 변동해도 가격이 크게 변동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과거 기상이변으로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만 원을 넘긴 것도, 최근 돼지고기 공급과잉으로 가격(산지 수매가격)이 과도하게 떨어진 것도 다 그 때문이죠.”

    ▼ 그렇다면 농축산물 가격의 널뛰기를 막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합니까.

    “가격 안정화를 위해 별도의 수급 안정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미래의 가격을 전망하는 관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과잉 생산, 과소 생산을 막을 수 있죠. 기상이변에 대비한 공급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고요. 최근 채소류 가격이 계속 치솟는 이유는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재배면적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가격폭락 때 일정 규모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는 농가소득 안정화 정책이 도입돼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죠. 수급이 극도로 불안한 경우 신속하게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합니다.”

    ▼ 돼지고기 파동의 근본적 해결책은 없을까요.

    “구제역 사태 이후 고기값이 사상 유례 없이 치솟자 축산농가들이 너도나도 사육 두수를 늘린 탓에 돼지고기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 파동은 소형 농가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대규모 농가 위주로 재편되는 구조조정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농가 스스로 공급을 감축하는 수밖에 없죠. 정부와 업계에서 모돈(母豚)을 감축하고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가 클 것 같진 않습니다.

    돼지 사육처럼 산업이 어느 정도 규모화, 전업화한 경우 정부의 관여는 최소화하고 업계 스스로 수급조절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돼지 생산자 및 가공업체 전체를 포괄하는 조직, 예를 들어 돼지위원회(pork committee) 같은 것을 만들어 업계가 자체적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죠.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은 품목별로 이러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수급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 도매시장의 비정상적 경락 가격도 문제 아닐까요.

    “도매시장 경락 가격은 수급이 조금만 불안해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죠. 이럴 때는 경매를 중단하고 정가 수의매매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주식시장에서 가격 급·등락 때 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크와 같은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매시장 난맥상 수술 불가피

    “유통단계 점진 축소 바람직 농협 도소매 경쟁력 키워야”
    농산물 유통 개선은 수십 년 해묵은 과제다. 역대 정부 모두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통 개선의 효과가)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고 몇 번씩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스테디 앤 슬로(Steady and Slow)’를 강조했다.

    ▼ 박 대통령은 최근 돼지고기 파동을 계기로 농축산물 유통단계를 혁신적으로 축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과연 임기 내에 실현 가능할까요.

    “농산물 유통 시스템은 오랜 상행위 관습과 인식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부가 몇 가지 제도를 개혁하고 시설을 확충한다고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죠. 농산물 유통 개선을 위해선 하드웨어와 제도 개선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인식, 관습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선을 꾸준히 추진해야 합니다. 농축산물 유통 개혁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당장 지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로컬푸드와 같은 직거래는 가능하면 즉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적절한 입지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면 조기 활성화가 가능하죠. 앞에서 예로 든 일본의 국도변 농가 직판장은 교통위반 범칙금을 활용해 지원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벤치마킹할 만합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은 당장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도매업체 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유통단계를 늘리는 데 규제가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시장원리상 경매가 불가능한 품목도 경매를 강제화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등 도매시장 유통주체에 대한 과도한 영업 규제도 풀어서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영업을 유도해야 할 거고요.”

    박 대통령이 3월 13일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곳은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이었다. 양재동 하나로클럽은 농협의 전국 농축산물 판매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도매와 소매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당일 바로 팔린다. 지역 농협을 한 단계 거치지만 거의 직거래로 봐도 무방하다. 박 대통령이 굳이 이곳을 선택해 방문한 것은 유통구조 혁신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 듯하다. 양재 하나로클럽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무언의 신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농협은 농축산물 유통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산지 유통에서 농협의 청과물 점유율은 약 40%, 도매는 12%에 달한다. 농·축산물 도매에서는 17%, 소매에선 11%를 차지한다.

    “유통단계 점진 축소 바람직 농협 도소매 경쟁력 키워야”
    농협, 품목 중심으로 전환해야

    ▼ 농협이 유통단계 축소를 위해 나아갈 방향이라면.

    “산지 농협은 산지 농가의 조직화를 통해 과거 수집상이 담당했던 기능을 하고 있죠. 농협중앙회는 도매사업을 통해 경매시장보다 단축된 유통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일단 방향은 맞게 가고 있습니다. 농협은 산지에서부터 도매, 소매에 이르는 일관 유통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 농협은 품목별 수직계열화로 유통구조 개선에 일조하겠다고 합니다.

    “농협을 중심으로 한 품목별 수직계열화란 산지 유통을 주도하는 지역 농·축협, 농협중앙회 도매, 농협중앙회 소매로 이어지는 계통판매 시스템을 의미하죠. 현재는 농협중앙회의 소매사업 비중이 낮기 때문에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농협 중심의 수직계열화가 필요한 이유는 대형 유통업체의 수직계열 시스템에 맞서 견제하기 위해서죠. 바람직하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산지에서만 강점이 있고 도소매에선 취약한 구조는 바꿔야 합니다. 대형 유통업체에 필적하는 효율성을 도소매에서도 확보하는 게 농협 수직계열화의 핵심 성공요인이라고 봅니다.”

    ▼ 농협 개혁의 핵심은 경제사업 활성화이고,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유통단계 축소가 관건입니다. 경제사업 활성화와 유통단계 축소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농협이 농축산물 유통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소비자나 농민을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게 사실이죠. 공공적 측면에서 농협이 상인이나 대기업보다 유통단계 축소의 첨병이 돼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농협이 취급량과 시장점유율만 높인다고 농축산물 유통이 절로 효율화하진 않습니다. 지역조합 중심의 기존 경제사업을 품목 중심의 전문 농협체제로 전환해 유통사업에 전념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 농협은 도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오는 6월 경기 안성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5대 권역에 도매물류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는데, 정부도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권역별 도매센터의 성패는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에 달렸습니다. 도매시장과 달리 도매센터는 소매상에게 배송하는 형태로 농축산물을 판매하기 때문에 사전예약 시스템 구축이 필수일 뿐 아니라 고도로 세밀한 물류전략이 요구됩니다. 농협은 이를 위해 전사적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겁니다. 특히 신규 거래처를 뚫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하나로마트 등 계통점에 대한 판매만으로는 거대한 도매센터 운영에 충분하지 않고 대형 유통업체, 중소 슈퍼마켓, 영세 식당 등 다양한 거래처를 개발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도매센터 운영이 성공하려면 농협중앙회는 물론 회원 조합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앙회 임직원들의 확고한 실행 의지가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식탁에 오르는 농축산물 가격을 떨어뜨리려면 유통단계 축소 외에도 물류비용, 그중에서도 포장비를 확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2009년 농축산물 물류비용은 9조9000억 원으로 농축산물 유통비용의 33.3%를 차지합니다. 농산물 물류비를 항목별로 보면 포장가공비 40.7%, 운송비 29.3%, 보관비 11.5%, 청소비 6.7%, 하역비 6.0%, 물류관리비 5.7%입니다. 포장가공비 비중이 의외로 큽니다. 따라서 유통비용을 절감하려면 물류비, 그중에서도 포장비 절감이 절실합니다. 특히 선물용 과일의 과다 포장 문제가 심각하고, 채소도 불필요한 포장이 많습니다. 농산물의 경우 재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등 선진적 물류 시스템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