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의 지리학’<br> 하름 데 블레이 지음/ 유나영 옮김/ 천지인/ 447쪽/ 2만원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기근과 식량 부족, 영양결핍의 원인이 알고 싶다면 분쟁 지역 지도와 겹쳐보면 된다. 놀랍게도 기근을 겪고 있는 지역과 분쟁 지역이 대부분 겹친다. 앙골라와 모잠비크, 소말리아,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이런 나라들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 탓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 탓이다. 이제 지도 위의 유전 지대를 따라가 보라. 유전이 있으면 그걸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지고 분쟁이 생긴다. 해협은 통과의 지점이면서 감시의 지점이다. 민족들이 국경 이쪽저쪽에 흩어져 살면 당연히 국경을 두고 분쟁이 생긴다.
때로는 지도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왜 그처럼 첨예하게 대치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북극을 중심으로 지도를 다시 그려보라. 미국과 소련이 얼굴을 맞댄 이웃나라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방법은 블레이도 2005년에 펴낸 ‘Three Challenges Facing America: Climate Change, The rise of China, and Global Terrorism’(한국에는 ‘분노의 지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천지인)에서 사용한 바 있다. 블레이는 ‘분노의 지리학’에서 대규모 기후 변화의 위험성,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충돌 가능성,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무슬림의 테러리즘, 옛 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계속 ‘독립국가연합’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의 욕망, 미래 아프리카에 거는 희망까지 지리학적 도구들을 활용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해 각광을 받았다. 물론 이 책은 매우 미국 중심적인 관점, 즉 어떻게 하면 ‘미국의 세기’를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이 책의 제7장 ‘떠오르는 붉은 별: 중국의 지정학적 도전’에서 미국 본토와 중국 지도를 겹쳐보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인들은 중국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두 나라는 면적이 거의 비슷하며(알래스카까지 합치면 오히려 미국이 중국보다 약간 더 크다) 위도 상으로도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지리적 위상은 곧 힘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충돌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블레이는 두 나라 사이에 상호 유대가 필요하며, 특히 미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처럼 지도에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세계’를 예측케 한다. 그래서 지리학자들은 우리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이란은 핵보유국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 유럽연합의 국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은 정말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될 것인가? 테러로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알고 싶다면 지도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