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미국에선 논문 없어도 스타 강사 된다

  • 정해윤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3-04-19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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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강사 김미경이 촉발한 논문 표절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개그우먼 김미화는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탤런트 김혜수는 서둘러 사과하고 학위를 반납했다. 논란은 건국대 송희영 총장 같은 학계 인사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같은 종교인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사회에 무풍지대는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의 사태는 과거 학력위조 사건의 진화형이다.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직후 배우 윤석화·최화정, 코미디언 심형래, 영어강사 이지영과 만화가 이현세 등도 같은 경우임이 드러났다.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까지 포함돼 충격을 안겼다. 이들은 모두 이수한 적이 없는 학력을 위조했던 반면 지금의 논문 표절 사태는 형식적 절차는 이수했다는 차이가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인구 100만 명당 석·박사학위 소지자가 미국은 192명, 일본은 130명인데 한국은 233명인 것으로 나타나 학력 거품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동기부여 강사 앤서니 라빈스와 김미경을 비교해보면 한국 유명 인사들이 학위에 목을 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라빈스는 20대 때 이미 해당 분야의 최고 자리에 오르며 백만장자가 됐다. 놀라운 것은 그의 학력이 고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은 미국인이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에서 한국인과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인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야기의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한국 사회의 표절 신드롬

    이런 풍조를 만들어낸 것이 마이클 샌델 열풍이다.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 10만 부가 팔리는 동안 한국에서는 무려 130만 부나 팔렸다. 유독 한국에서 큰 히트를 기록한 것은 저자가 ‘하버드대 교수’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외에도 현각, 혜민, 고이케 류노스케 같은 베스트셀러를 쓴 승려들은 한결같이 명문대 출신에 ‘얼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종교인조차 세속의 잣대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날 성공신화의 상징이었던 정주영 회장도 지금이라면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학위를 찾아다닐지 모른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재능 외적 요소가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성공한 이들일수록 더욱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세상이 됐다는 점이다. 이 그릇된 풍조에는 미디어와 교수 사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불어닥친 멘토, 힐링 열풍은 공중파 방송에서 강연 프로그램을 인기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마치 오디션 경연장처럼 자신의 성공담을 파는 이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 경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한때 행복전도사로 명성을 떨치던 인기 강사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례를 보자. 과연 누가 누구를 힐링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달려갈 다음 단계는 김미경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최근 대형 출판사에선 미디어믹스팀을 구성하는 것이 유행이다. 미디어에서 뜬 인기인을 저자로 내세워 책을 히트시키겠다는 게 이런 팀의 목적이다. 이들은 필력보다 방송에서 인지도를 높인 이들을 필자로 섭외하는 데 주력한다. 가장 큰 수혜자는 연예인이다. 조혜련과 김영철은 외국어 학습법을, 이적과 타블로는 소설을 출간했다. 배용준, 빅뱅, 구혜선 등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책을 출간했다. 이제 연예인 세계에서도 번듯한 저서 하나 없이는 스타로 행세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논문도 표절하는 사회에서 연예인들이 온전히 자기 능력으로 책을 썼다고 믿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실제로 방송인 한젬마와 정지영은 수년 전 대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미디어와 교수 사회가 문제

    우리 교수 사회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보듯 논문에 관한 윤리의식이 희박하다. 대학의 ‘학위장사’에 아무런 저항이 없는 것도 교수들의 묵인 탓이다.

    2011년 ‘안철수 현상’이 한창일 당시 그를 초빙한 대학가에는 ‘세계적 석학’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번듯한 논문 하나 없는 인물에게 그런 칭호를 헌납할 만큼 대학 사회 자체가 석학에 대한 개념이 없다. 선거철이면 강의도 내팽개치고 정치판을 쫓아다니는 폴리페서들이 사회적 존경을 독차지하니 대학이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논문과 학위에 매달리고 이를 위해 표절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풍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미디어와 교수 사회의 각성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이 시작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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