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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혼수는 없다 낭만은 있다!

스위스에서 결혼식이란?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혼수는 없다 낭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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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객들은 우리 부부를 향한 축하 덕담을 엽서에 적은 뒤 풍선에 묶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결혼식 후 한 달 사이 우리 집으로 엽서가 다섯 장이나 배달됐다. 무려 400km 떨어진 프랑스에서도 왔다.
  • 그래, 세상엔 아직 낭만이 남아 있다고!
지난해 10월 30일, 색깔 고운 단풍이 아직 남아 있던 가을날 나는 스위스에서 스위스인 신랑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올해 5월 8일, 한국에서 내 가족과 친지들을 모시고 전통혼례를 치렀다. 이제 스위스와 한국 양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취리히에서 동쪽으로 80km쯤 떨어진 장크트갈렌(St.Gallen) 근교에 신접살림을 꾸리고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있다.

두 번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은 한국과 스위스의 문화적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앞두고 세운 원칙은 ‘무조건 간소하게’였다. 그래서 청혼에서 결혼식까지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통 스위스 커플들이 1, 2년에 걸쳐 천천히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초스피드로 진행한 셈이다.

한국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면 맨 먼저 ‘작은 결혼식’에 대한 양가 부모님의 이해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한국적 인식과 달리, 스위스에서는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의 영향을 떠나 독립적으로 결혼을 추진하는 편이다.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나를 전적으로 믿고 이해해주셨기에 나는 결혼 전부터 스위스로 생활 터전을 옮겨 스위스 생활에 적응했고 간소하게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아들 동거녀=우리 며느리

올해 만 서른 살이 된 나의 신랑 주위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가 많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인데, 대부분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 준비 중이다. 처음 스위스에 와서 놀란 건, 미혼 커플 대부분이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동거라는 게, 한국식 고정관념처럼 왠지 숨겨야 할 음습한 것이라든지,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전혀 없다.



내가 스위스에서 관찰한 바로는, 동거란 이런 것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상대에게 확신을 갖고, 둘 다 적당한 소득이 있어 월세와 생활비를 함께 충당할 수 있으면, 그때 진지하게 동거를 시작한다.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았을 뿐 사회적으로도 배우자로 간주된다. 양가 가족도 자기 자녀의 동거인을 사위, 며느리 대하듯 한다. 아직 청혼도 안 한 상태인 자기 아들의 동거녀를 ‘우리 며느리(meine Schwiegertochter)’라고 부르는 스위스 어른들을 종종 봤다.

그렇게 수년간 동거하고 상대와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면 결혼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거 커플도 많은데, 이런 경우라 해도 굳이 결혼하지 않는 커플도 있다. 동거 커플과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없고 정책적으로도 불이익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동거하다가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특히 여성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 서로 잘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쿨’하게 헤어질 뿐이다.

나는 동거 중인 커플들의 집에 몇 번 가봤다. 20대에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애인과 함께 자신들의 소득으로 아파트에(물론 월세) 차근차근 살림을 마련해 안락하게 꾸며놓고 사는 모습이 참 성숙해 보이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한국에선 신혼집 마련 등 부담스러운 결혼 비용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가 많다. 그런데 스위스에선 적어도 집과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형편에 맞게 결혼식을 올린다. 남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결혼식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고정관념도 없다.

대학을 나왔든 직업고등학교를 나왔든 정규교육을 마친 뒤 자신의 전문 분야에 취업하기가 어렵지 않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먹고살 만큼의 소득을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이 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해 살거나 애인과 동거하면서 차근차근 결혼비용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결혼식을 치르려면 기본적으로 예복, 사진 촬영, 피로연 등으로 목돈이 든다. 하지만 한국에서 예단, 예물, 허례허식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다. 돈이 많으면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없으면 없는 대로 간소하게 한다.


‘살던 곳’에서 ‘쓰던 것’으로

스위스에선 성인이 되면 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해 사는 게 일반적이다. 신랑신부가 결혼 전에 혼자 살았건 이미 동거를 했건, 쓰던 살림살이를 합쳐 신접살림을 꾸린다. 갑자기 혼수로 목돈이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혼집은 당연히 월세이기 때문에 다달이 월세 낼 만큼의 소득이 있다면 집 문제로 결혼 못 하는 경우는 없다. 신혼여행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면 나중으로 미룬다.

우리 부부는 두 번의 결혼식 모두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소박하게 치렀다. 살림은 신랑이 혼자 살던 스위스의 월세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혼수라고는 내 옷을 수납할 장롱을 맞추고, 화장대로 쓸 수납장을 새로 들이고, 내겐 너무나 중요한 전기밥솥과 수저를 한국에서 가져온 게 전부다. 스위스에는 예단, 예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내가 시댁에 해갈 것도 전혀 없었다. 예물이라고는 둘이 결혼반지 한 쌍을 맞춘 게 전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전세 개념을 처음 설명 들은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사회 초년생이 수억 원의 전세 비용을 마련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그 돈을 마련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얘기해줬더니 또 놀랐다. 다 큰 성인이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고, 결혼생활의 출발이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머리를 내저었다.

스위스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식 비용을 대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신부의 부모가 딸에게 웨딩드레스를 선물한다든지, 신랑의 부모가 피로연 비용의 일부를 내준다든지 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한국 부모들처럼 시집갈 딸의 예단 비용 때문에, 장가갈 아들의 신혼집 마련 때문에 잠 못 들고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

우리 시부모님은 아들 넷을 두셨는데, 그 중 둘째인 우리 남편의 한국 전통혼례를 포함해 올해에만 아들 세 명의 결혼식을 치렀거나 앞두고 있다. 한국 부모라면 아들 셋을 한 해에 결혼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해 가을 우리는 국제결혼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꼼꼼히 준비해 시청에 제출했다. 그리고 2주 간의 검토를 거쳐 ‘결혼해도 된다’는 공식 허가를 받았다. 스위스는 외국인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 나라인 데다가, 스위스 시민권을 노리고 위장결혼 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 허가 절차가 까다롭다. 사랑한 죄밖에 없는 우리는 은근히 가슴 졸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스위스는 행정 당국에서 행정 수수료를 엄청 많이 물린다. 우리 부부도 440스위스프랑(약 53만 원)을 냈다. 국제결혼이라서 비싼 건 아니다. 스위스 커플도 결혼하려면 이 정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



시청 결혼식, 교회 결혼식

스위스에서 공식적인 결혼식은 시청 부속 공간인 ‘결혼식 방’에서 공무원 주재하에 혼인 서약을 하고 서명을 하는 시청 결혼식(Ziviltrauung)이다. 결혼식 장소에서 바로 혼인신고가 이뤄지는 셈. 여기에는 보통 신랑신부와 증인 두 명, 양가 부모 정도만 참석한다. 그리고 며칠 뒤 교회에서 친지들을 초대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레스토랑을 빌려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파티를 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종교가 없어 교회 결혼식은 생략하고 시청 결혼식만 하기로 했다. 결혼식 당일 오전에 동네 근처 연못가에서 한 시간 정도 사진 촬영을 한 뒤 시청 근처 별도의 건물에 마련된 결혼식 방으로 향했다. 1750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30여 명의 하객이 결혼식 방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시청에서 나온 여성 공무원이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탁자 앞에 앉아 결혼식을 주재했다. 공무원이 결혼의 의미를 설명한 뒤 “신부는 신랑을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가 “네”라고 대답하자 혼인이 성립됐다.

우리는 각자 상대방에게 편지 형식으로 써온 혼인서약서를 독일어로 낭독했다. 솔직하고 낭만적인 신랑의 혼인서약을 듣고 나는 물론 하객의 상당수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저기서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증인들과 함께 혼인신고서에 서명을 하고 30여 분 이어진 결혼식을 마쳤다.

스위스에서는 보통 교회 결혼식을 마치고 교회 정원이나 레스토랑 정원, 호숫가 등에서 ‘아페로’(프랑스어 Ap´ero, 영어로는 aperitif)를 연다. 다 함께 서서 샴페인과 와인, 음료수 등을 마시고 카나페, 샌드위치, 과자 같은 간식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결혼식뿐 아니라 직장 행사, 명절의 가족모임, 생일파티, 일상적인 저녁식사 초대 등에서 항상 식전에 아페로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입맛을 돋운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통성명을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이런 아페로 문화를 참 좋아하지만,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까지 서 있는 것이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된다. 스위스 사람들은 다리도 안 아픈지 다들 잘도 서있다.

우리는 시청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결혼식 방 앞의 넓은 복도에서 한 시간 반쯤 아페로를 즐겼다. 이때 신랑신부를 향해 하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신랑신부는 하객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포옹과 볼 키스로 인사를 나눈다. 아페로를 마치면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피로연을 치른다.

스위스 결혼식에서 가장 낯설었던 점은 하객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즉 결혼식과 아페로에 초대받은 하객들이 모두 레스토랑 식사에도 초대받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 소규모로 초대한다.

스위스 사람들도 당연히 결혼 선물을 하지만 한국처럼 축의금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1인당 식사비가 와인을 포함해 10만 원을 훌쩍 넘는 이곳에서 수백 명의 식사 값을 감당하긴 어렵다. 그래서 식사에는 양가 가족, 가까운 친척과 정말 친한 친구들까지만 소규모로 초대한다. 따라서 청첩도 아페로까지만 초대할 하객용, 레스토랑까지 초대할 하객용 두 가지로 나눠 찍는다.


하객에도 등급이 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축하해주러 온 고마운 하객인데, 누구에게는 밥을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 게 어쩐지 민망했다. 하지만 신랑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위스에서는 결혼식에 초대받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야. 아페로에만 초대받은 손님들도 자신들을 초대해준 것에 충분히 기뻐하고 고마워한다고.” 우리는 시청 결혼식과 아페로에는 30여 명, 레스토랑 식사에는 신랑의 가족과 우리의 결혼식 증인들까지 12명만 초대했다.

아페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예쁜 풍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 친구 말리스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헬륨가스를 채운 각각의 풍선에는 우리 부부의 이름과 집 주소가 인쇄된 엽서가 달려 있었다. 하객들이 이 엽서에 우리를 향한 축하 덕담이나 저녁식사 초대 같은 약속을 적어 다 함께 하늘로 날려 보냈다. 시간이 흘러 풍선에 바람이 빠지면 엽서는 산이나 숲 속, 호수, 혹은 길목 어딘가에 떨어질 것이다.

놀라운 건, 결혼식 후 한 달 사이에 우리 집으로 엽서 다섯 장이 배달됐다는 사실! 누군가가 길에 떨어진 엽서를 주워 자신의 이름과 엽서가 발견된 장소를 적고, 1000원 상당의 우표를 사 붙여 우체통에 넣어준 것이다. 무려 400km 떨어진 프랑스에서 발견돼 국제우편으로 도착한 엽서도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신혼부부에게 소소한 기쁨을 전달하고자 이런 작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참 고마웠다. 그래, 세상엔 아직 낭만이 남아 있다고!

가톨릭교도가 다수인 스위스에선 결혼식에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증인(Trauzeuge) 제도가 있다. 결혼을 하려면 신랑신부 각자 증인이 한 명씩 필요하다. 보통 가장 친한 친구가 증인이 된다. 결혼 증인의 가장 큰 역할은 시청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의 결혼을 증명한다는 뜻으로 혼인 서류에 서명하는 것이다.



“결혼식 증인이 돼줄래?”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증인은 결혼식 준비부터 식이 끝날 때까지 잡다한 일까지 돕는다. 스위스의 서비스 물가는 정말 살인적이기 때문에 비싼 웨딩플래너를 이용하기보다 신랑신부와 증인들이 직접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꼼꼼하게 할 일이 참 많다. 증인들은 결혼식 전에 신랑신부의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각종 이벤트를 열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일명 ‘총각/처녀 파티’를 직접 준비한다. 이어 결혼식에 필요한 각종 예약과 식순 구성, 파티 프로그램 짜기, 하객에게 e메일과 전화로 사전연락하기, 사진 촬영 돕기, 신랑신부를 위한 깜짝 이벤트 준비도 증인이 한다.

결혼식 규모가 크면 증인들은 친구 결혼식 준비에 몇 달을 꼬박 바쳐야 한다. 그러니 증인 되는 것이 귀찮을 법도 한데, 증인이 돼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스위스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간택’됐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한다.

지난 5월 21일, 이웃에 사는 친구 아드리안과 카트린의 결혼식은 우리 부부에게도 특별한 행사였다. 나의 남편 라파엘이 아드리안의 결혼식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간 나는 우리의 한국 전통혼례를 혼자서 열심히 준비했고, 라파엘은 아드리안과 카트린의 결혼식 준비로 무척 바빴다. 아드리안과 라파엘은 청소년기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친구인데, 사실 결혼식 증인을 할 만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아드리안이 수줍은 얼굴로 라파엘에게 자신의 결혼식 증인이 돼달라고 부탁하자 라파엘은 매우 기뻐하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기술담당자로 일하는 아드리안과 간호사 카트린은 20대 후반으로 4년간의 동거를 거쳐 결혼했다. 저녁식사와 파티까지 포함된 전형적인 스위스 결혼식을 경험해본 건 나도 라파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을 빌리고 DJ까지 섭외해 밤늦도록 신랑신부를 위한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하객들은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춤을 추며 파티를 즐겼다.



초대해줘서 고마워!

이 커플의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나는 하객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결혼식과 축의금 문화, 청첩 받는 것을 부담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 남의 결혼식 참석을 즐겁다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마음…. 나 역시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하객으로서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와 한국에서 두 차례 결혼식을 올리고 스위스 친구 커플의 결혼식을 보면서 결혼식에 대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됐다.

‘증인’ 라파엘은 신랑신부와 수차례 회의를 열고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몇 달간 바빴지만 귀찮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라파엘이 카트린의 증인인 마누엘라와 함께 준비한 결혼식 식순에는 저녁식사에 에피타이저, 메인 메뉴, 디저트 나오는 시간까지 분 단위로 꼼꼼히 기록돼 있을 정도니 이 행사를 위해 얼마나 수고를 들였는지 알 만했다.

라파엘과 아드리안이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사이라 라파엘은 이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했던 친구들을 모아 깜짝 연주회를 준비했다. 신랑신부가 웨딩카를 타고 피로연이 열리는 호숫가의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이 친구들은 지난 몇 주간 비밀리에 모여 연습한 음악을 연주하며 신랑신부를 환영했다.

또한 라파엘과 마누엘라는 결혼식 몇 달 전부터 하객들에게 e메일을 보내 아드리안과 카트린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각각의 하객이 이 커플에게 추천하는 여행지와 소풍 장소 등을 골라 직접 종이에 사진과 그림을 넣어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증인들이 이 종이를 모아 제본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으로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마감 기한까지 하객의 참여도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는데, 식사에 초대받은 하객 45명이 전부 참여했다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저녁식사와 함께 열린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라파엘이 특별히 이 커플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제작한 재미난 패러디 뮤직비디오를 상영했고, 신부의 동생과 친척들은 커플을 위한 퀴즈쇼와 노래, 콩트를 준비했다. 하객의 참여 없인 완성될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객들이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발을 디디는 신랑신부의 앞날을 얼마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축하하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초대받은 것을 얼마나 큰 기쁨으로 생각하는지 관찰한 것은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잔치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또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결혼하고 조금 더 성장했으니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성미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동아 일보 경제부·문화부, 동아 비 즈니스리뷰 기자로 일했다.
2015년부터 스위스인 남편과 스위스 장크트갈렌(St. Gallen) 근교에 산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가 스위스에서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살면서 느낀 단상과 스위스 사회, 문화에 대해 블로그(blog.naver. com/sociologicus)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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