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렇지, 평상시처럼 출근시간 맞춰 잘 일어나, 늘 하던 대로
빵 굽고 딸기잼 꺼내고 오렌지 주스 따르고, 늘 하던 대로, 아들을 깨웠다
빨랑 일어나라, 아침 먹자 잉,
아빠, 누가 그런 말을 지금도 써요, ‘아침’이 뭐예요, 그럼 뭐라카는데?
당근 ‘코끼리’죠, 아빠 좀 이상하시네
(이 자슥이 밥상머리에서 농담하나?)
숙취로 머릿속이 지끈지끈거려 이 정도로 접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김 대리가 한술 더 뜬다, 부장님,
어제 고슴도치가 좀 과하셨던데, 오늘 코끼리는 드셨어요,
있다가 참새는 요 앞 해장국집으로 제가 모실게요
(‘고슴도치’? ‘참새’? 새참이 아니고?)
아 점심 말야? 오매야, 부장님, 누가 그런 말을 지금도 써요
(아니, 왜들 이러는 거야)
그럼 저녁은 뭐라고 하는데? 부장님, 덜 깨셨나봐요, 그건 ‘너구리’가
표준말이잖아요, 그런 유치한 옛날 사투리를 자꾸 쓰시고….
내 말이, 유치해?
(그럼 진짜 코끼리와 참새는 뭐라고 하지?)
사전을 찾는다
코끼리 [명사] 1.날이 새면서 오전 반나절쯤까지의 동안. 또는,
그 시간에 먹는 식사. 2.중세에는 코가 길고 몸통이 큰 상상의 동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 적이 있음
어젯밤, 내가 술 마시는 사이에 국어사전이 바뀐 거야?
아니, 나이 오십에 벌써 치매에 걸린 거야?
아냐, 이건 음모가 분명해
이번엔 구글에 ‘코가 길고 몸통이 큰 동물?’이라고 친다
검색 결과 죽은 사람의 기억에만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전설상의 동물.
또는, 오억 년 전 공룡의 멸종과 함께 사라진 포유류의 일종
퇴근시간보다 좀 일찍 나와 나는 병원에 간다
내과로 가야 하나? 정신과에 가야 하나? 헛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겠지,
귀가 이상한가? 이비인후과로 간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그게 좀, 설명하기가…. 하나 물어봅시다, ‘너구리’가 뭡니까?
걱정마세요, 우리 병원은 너구리 시간에도 진찰을 보거든요,
올챙이 한잔 드시면서 잠깐 기다리세요
나는 병원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뛰어내려간다
어두운 동굴에서 전철 대신 거대한 코끼리 스무 마리가 뛰어오고 있다
외롭다는 느낌이 방울뱀처럼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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