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사고 투철한지 의문이고 디테일 약해
- ‘우리가 계속 해먹겠다’는 제도가 온당한가
- 공천 컷오프 유효하다
- 대구·경북 ‘의원 교체’ 여론 높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중 김 대표는 야당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전격 합의한다. 청와대가 이를 비난한다. 김 대표가 “이렇게 모욕하느냐. 오늘까지만 참겠다. 앞으로 안 참겠다”며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다음 태도를 바꿔 “더 이상 공방으로 가지 말자”며 참는다. 이어 공천특별기구 선임을 놓고 새 전선(戰線)을 만든다.
관전자들은 ‘참 재미있게 싸우네’라고 느낀다. 앞으로도 룰 문제로 국지전,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 판세, 차기 대선 구도가 요동칠 게 뻔하다.
‘야당 대표와 왜 붙냐’ 반감
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현행 공천 룰의 기틀을 세운 김재원 대통령정무특보를 최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현역 국회의원인 그는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자주 회의하며, 청와대와 국회 친박계를 잇는 희소성 있는 역할을 한다. 나무로 만든 널찍한 평상에서 고풍스러운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양반다리를 한 채 초록색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전통차를 함께 마셨다. 그는 한시(漢詩)의 한 구절이 연상되는 이런 목가적 분위기에서, 특유의 겸손한 말투로, 김무성안(案)을 맹렬히 폭격하기 시작했다.
▼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 김무성 대표가 “당 특별기구에서 논의하고…”라며 여지를 뒀는데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같은 날 여야 함께 완전국민참여경선 실시)를 주장했다가 야당 반대로 안 되니 대안으로 불쑥 낸 것이죠. 그러니 기술적 검토가 안 된 것 같아요. 이 제도는 이름만 거창하지 투표 대신 휴대전화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거예요. 당헌당규에 규정된 공천 방식을 변경해야 하는데, 김 대표는 당원이나 국회의원과는 토론하지 않고 어느 날 야당 대표와 협의해 와요. 그러니 일부는 반감을 갖고….”
▼ ‘반감’이라 함은….
“‘야당 대표하고 왜 붙느냐’ 이런 거. 이 제도는 더는 논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봐요.”
▼ 김 대표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일 때도 전화 여론조사를 했지 않나, 이번에 잘 보완했다”라고 말합니다.
“전화 여론조사를 했다는 건 맞아요. 지금도 당헌당규에 당원 50%, 일반 국민 50% 투표…그러니까 일반 국민을 선거인단으로 구성해 투표를 하든지, 편의적으로 여론조사를 하든지 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안심번호 같은 100% 전화 여론조사 경선은 해본 적 없어요.”
▼ 김 대표 측은 ‘여론 반영의 정확도가 높다’고 합니다.
“잘못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마다 투표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가 크게 엇갈리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다. 김 특보는 “(김무성 룰은) 이동통신사로부터 고객정보를 강제로 받겠다는 건데, 통신사가 보유한 주소와 인적사항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전부 이리 가자’면 가야 하나”
▼ 김 대표 측은 여론조사 100%를 목표로 하되, 실제로는 100%까진 아니더라도 여론조사 비율을 50%보다 훨씬 높이는 방향으로 룰을 바꾸려는 것 같은데요.
“그 50대 50을 만들기 위해 십수 년간 피맺힌 투쟁을 해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야, 이거 전부 이리 가자’ 하면 그리 가야 하나요?”
▼ 50대 50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봅니까.
“지난해 지방선거 때 어떤 경선 후보는 다른 후보보다 여론조사에서 0.017%포인트 뒤져 탈락했어요. 이런 지역이 부지기수죠. 이 방식이 합리적이고 정확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 당원 투표에 대해선 조직선거, 금권선거를 우려하는데요.
“기본적으로 당원은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죠. 한 100명쯤 모아놓고 투표하면 몰래 동원할 수 있지만 2000~3000명 되면 불가능합니다.”
친박계에 따르면, 김무성 룰은 현역 의원이 공천받기 수월한 면이 있다고 한다. 현역은 정치 신인보다 인지도가 높아 여론조사에서 유리한데 김 대표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이려 한다, 현역은 경선 없이 탈락할 수 있는데 김 대표는 이 확률도 낮춰주려 한다는 것이다. 김 특보는 “19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듣는다.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게 공천이 이뤄지는 룰이라면 이에 대해 문제점을 좀 지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 공천을 통한 물갈이 여론이 높다고 보나요.
“김태호 최고위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에게 두렵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죠. 우리도 돌이켜봐야 합니다. 한 조사를 보면 국민이 19대 국회에 만족하지 않아요. 현역 의원 지지 여론이 대구·경북에서 가장 낮더라고요. 이런 곳에서 현역 의원이 전원 공천받도록 해주자는 게 정당한가, 국민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데 ‘우리는 계속 해먹어야겠다’는 제도가 온당한가…이런 문제 제기가 나올 겁니다. 물론 저는 공천 학살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선추천을 변형해 공천 학살? 제가 수용하지 못할 거예요.”
▼ 당내 일각에서 컷오프나 우선추천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봅니까. 물갈이가 가능할 것 같은가요.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될 거예요. 공천을 통한 인적 쇄신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면 그렇게 심판받아야합니다.”
“유승민, 피해의식 가질 수 있어”
▼ 유승민 전 원대대표가 “측근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냥 있을 수 없을 거다”라고 했는데요.
“대꾸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공천 학살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봐요. 당권을 잡은 김무성 대표도 공천제를 합리화하려고 하잖아요.”
▼ 유 전 대표가 공천 학살이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면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여러 생각이 있겠죠. 지금 여론이 돌아가는 걸 보면 본인이 피해의식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봐요.”
▼ 유 전 대표의 말을 대구 지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니, ‘대구 의원들이 전부 공천받아야 된다’라고 했을 때, 그건 대구시민이 평가하겠죠.”
공천특별기구 수장 자리를 놓고 친박계는 이주영 의원을, 김 대표 측은 황진하 총장을 민다.
▼ 황진하 총장은 친박계인가요, 아닌가요.
“제가 그걸 감별할 위치에 있진 않고….”
▼ 청와대 관계자는 얼마 전 김 대표를 비판했는데요.
“(김 대표가) 야당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합의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공동발표문을 냈어요. 그게 합의한 거 아니겠어요? 그 내용이 야당 공천 제도를 100% 수용하는 것으로 우리는 알아들었죠.
여야 대표가 법률을 개정해 그렇게 가겠다고 하니 청와대가 ‘여기에 브레이크 걸 주체가 당내엔 없다’고 봤을 수도 있죠. 그래서 이야기했다고 봐요.”
▼ 청와대가 안 나섰으면 그 방향대로 갔을까요.
“좀 더 세게 갔을 거고, 당도 끌려가는 분위기였겠죠. 그때 김 대표의 의지가 아주 강력했으니까.”
▼ ‘김 대표가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나요.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말하는 게 다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 김 대표가 자꾸 그렇게 하면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나요.
“김 대표는 스스로 민주주의 사고에 투철하다고 말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나올 수 있죠. 그렇다보니 이번에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와 감정싸움을 하는 거 같고요.”
공천 룰 갈등의 본질은 결국 박 대통령 세력과 김 대표 세력 간 공천을 둘러싼 대결이라는 시각도 있다. 차기 의회권력과 대권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이라는 해석이다. 김 특보는 이런 견해를 부인하면서 김 대표의 불신과 오해를 갈등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 어떤 불신인지….
“청와대에 대한 김 대표의 불신이 커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대통령은 공천에 관여할 생각도 없고 지분을 요구한 적도 없어요.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런데 ‘과도하게 지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해요. ‘전략 공천으로 학살할 것 아니냐’고 해요. (박 대통령의) 그림자를 보고 싸우는 형국입니다. 그러니 실체적 논쟁이 안 되고 오해와 갈등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대표 퇴임 후 지지율 유지하면…”
▼ 대통령이 해외순방 떠났을 때 김 대표가 야당과 합의해온 것에 대해선….
“김 대표가 일부러 그랬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추석 연휴 여유로운 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고. 김 대표가 디테일에 약하기도 하지만, 의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 김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1~2위를 차지하는데요. 당 대표의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이라고 봅니까.
“그거야 뭐,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현 지지율을 유지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언제 물러나죠?
“내년 7월 14일 전당대회 때죠.”
김 특보는 ‘우선추천에 의한 공천 학살’ 논란과 관련해 “우선추천이나 전략공천으로 공천 학살을 한 역사가 없다”고 말했다.
▼ 그럼 뭘로 공천 학살을 했습니까.
“컷오프 명목으로 사전에 다 잘랐죠. 저도 거기에 당했고. 여론조사에서 저는 60%를 받았고 다른 분은 6% 받았는데 당은 그분을 공천했어요. 그때 친이명박계 지도부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김재원은 여론조사 결과가 좋은데 여론이 나쁘다’였어요. 그냥 학살이죠. ‘난 네가 싫다’죠.”
▼ 컷오프는 없어졌나요.
“컷오프는 지금도 존재해요. 공천관리위원회가 컷오프를 통해 현역 의원이고 뭐고 사전에 탈락시킬 수 있죠. 컷오프는 경선에 붙일 후보를 내보내는 방식이거든요. 전과자를 배제한다든지, 컷오프 기준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김 대표 측은 컷오프가 이미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김 특보는 다르게 설명하는 셈이다. 김 특보에 따르면 컷오프는 폭발력이 큰 뇌관이 될지 모른다. 김 특보는 “김무성 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가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돌았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 비대위원장 또한 관리자일 뿐이다. 절대권력자가 없어 누구도 공천 학살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공천관리위원회 인선이 중요한 것 같네요. 위원장과 위원이 누가 되느냐….
“그렇죠. 그래서 저는 ‘지금 왜 저러나’ 하고 생각해요.”
▼ ‘김 대표가 맥없이 후퇴하자 친박계가 김무성 무력화로 전략을 바꿨다’는 설도 있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친박계가 그런 일을 벌인다면 저도 느낌으로 알 수 있을 텐데 한 명도 못 봤어요. 순리대로 하는 게 맞죠.”
지역구 찢어지는 꿈
▼ 김 대표 사위의 마약 전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 대표는 마음이 아프겠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죠. 김 대표는 당을 무난하게 잘 이끌었어요. 그는 어쨌든 외면적으론 청와대와 평화롭게 잘 지내려 했어요. 다만 디테일에 약하다고 할까. 때로 그런 부분을 제대로 못 챙기다 보니 가끔 이상한 국면이 조성됐죠.”
지방 의석수가 줄어드는 문제와 관련해 김 특보는 “저 한 명이 서울시 네 배 면적인 경북 군위, 의성, 청송을 대표한다. 엊그제 이 세 곳이 찢어져 옆 지역구에 붙는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났다.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동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 지역을 답사했다. 이 내용으로 곧 책을 낼 예정이다. 그는 “지금 우리에겐 보수도 진보도 아닌 연암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