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미얀마人 알바생 A에게 느끼는 고마움
아시아인에게 한국이란? “개방적이고 안전한 국가”
反日감정과 좋은 공화국은 상극
외국인 포용=좋은 공화국 여는 열쇠
외국에서 온 이주민이 늘어나며 한국은 점차 다문화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사진은 4월 28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열린 문화 엑스포에서 각국 전통복장을 입은 한국외대 한국어문화교육원 외국인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뉴스1]
A는 우리 가게에 ‘알바(아르바이트)’로 왔다. 오후 5~10시 동안 서빙 일을 한다. 고향은 미얀마다. 군사정권이 민주 투사 아웅산 수치를 밀어내고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다. 나이는 28세다. 미얀마에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한국에 온 뒤로 전북 군산에 있는 한 전문대에서 요리 관련 학과를 다니며 공부를 더 하고 있다. 8월이면 졸업 후 정식으로 취업할 일자리를 찾는다는데, 그때까지 돈을 번다며 알바를 2개나 하고 있다. 평일 저녁시간엔 우리 가게에서, 주말에는 다른 가게에서 일을 하는 식이다.
A는 미얀마에서 엘리트다. 일찌감치 한국에 오겠다는 계획을 세워 한국어를 연마했다. 실력이 출중하다. 우리 가게에서 전화 응대는 모두 A가 맡고 있다. 심지어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인터넷 판매 내역 입력부터 송장 출력까지 능숙하게 해낸다. 이뿐 아니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톡, 지마켓, 쿠팡 등 모든 판매처의 주문 내역을 엑셀로 작업하고 택배사와 접촉해 일처리를 해낸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하는 외부 일정이 생기면 A에게 2시간 먼저 출근해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A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오고 싶던 나라다. 오랜 준비 끝에 꿈을 이뤘다. 남동생도 유학 오게 해서 대학에 다니도록 했다고 한다. A는 보면 볼수록 성실하고 영민하다. 우리 가게에서 일한 지 7개월째인데, 참 고맙다. 카운터는 물론이거니와 설거지까지 맡고 있어서 늦게 퇴근할 때가 많으면서도 구김살 없이 손님들을 잘 응대한다.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난 셈이다.
일본 추월한 한국의 위상
우리 가게 앞엔 외국인 유학생이 모여 사는 기숙사가 있다. 아침이면 등교하기 위해 수백 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알바를 한다.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들에게 한국은 뭘까’ 하고 궁금해진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얀마·베트남·라오스 등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이미 훌륭한 인재이면서도 한국에서 새로운 꿈과 기회를 찾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의문은 이렇게 바뀐다. ‘그들에게 한국은 무엇이 돼야 할까’라고.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을 받아들여 나라를 키운 대표 사례로 로마와 미국이 있다. 이 가운데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국가 로마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시민단을 확대해 대국이 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대륙 세력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이다. 로마는 전자를 택했다. 로마는 시민단을 계속 늘려나갔고, 주변을 포용하는 이 힘으로 결국 유럽에서 가장 강한 제국이 됐다.
미국은 200년 만에 300만 명이 사는 나라에서 3억 명이 사는 나라로 커졌다. 세계의 인재를 무한대로 빨아들여 가장 강한 나라가 됐다. 인구가 늘어나고,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로마와 미국이 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자유로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해 함께 만든 정치 공동체다. 자유 시민을 무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체제다. 좋은 공화국은 결국 제국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이 좋은 공화국이 되고 아시아의 많은 젊은이가 한국의 자유 시민이 되길 선망한다면 한국도 제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에게 물었다. “미얀마인이나, 같이 학교 다니는 외국인 친구들은 일본과 한국 둘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A는 “당연히 한국”이라고 답했다.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개방적이면서도 안전한 나라라고 인식한단다. 한국은 아시아의 많은 시민에게 매력적 국가다. 그들은 한국을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뿜어내는 나라로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의 힘이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이 이뤄낸 성과다. 아시아인들의 눈엔 한국이 이미 일본을 추월한 셈이다.
反日=百害無益
이처럼 한국은 좋은 공화국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졌지만 요즘 상황을 들여다보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최근 반일(反日)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특히 그렇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반일 감정은 혈연에 뿌리를 둔, 배타적 민족감정이다. 좋은 공화국과 배타적 민족감정은 상극이다. 배타적 민족감정은 다양한 인종·국적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만들어내니 그럴 수밖에 없다.반일 감정에서 나타나는 공격성은 아주 위험하다. 일본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본다.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이고, 언론·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돈으로 매수하고 데이터도 조작하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도 있다. 이러한 공격성을 다른 아시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A는 “미얀마에서는 밤에 돌아다니다가 돈을 뺏기고 신체 위협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안전하다”고 한다. A 외에도 많은 아시아인이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하다’는 바로 이런 개념이다. 기회의 땅인 한국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공에 대해 한국인들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부당하게 빼앗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반일 감정으로 드러나는 공격성에 더해서 일본인 등 외국인을 2등 국민으로 차별한다면 누가 이 공동체에 참여하려고 할까. 이런 관점에서 나는 반일, 민족주의 등은 ‘백해무익’한 생각이라고 본다.
외국인 노동자 ‘값싼 노동력’ 취급 말아야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나라를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내가 종사하는 수산업계만 해도 어부들이 대부분 외국인 선원이다. 어부뿐 아니라 다른 직종도 외국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농촌은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계약하기까지 한다. 공장에서 힘든 일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한다. 그들을 그저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생각이다. 한국이 이룬 70년의 성과를 토대도 모든 아시아인이 부러워하는 좋은 공화국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젊은 아시아인을 비롯한, 세계인을 빨아들이는 제국으로 커나갈 수 있다.중국의 위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기죽을 필요 없다. ‘한국 땅덩어리 수준에 5000만 인구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패배주의적 생각이다. 좋은 공화국은 제국으로 발전한다. 한국도 1억 인구를 가질 수 있다. 세계인에게 한국의 시민으로서 정치 공동체에 이바지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한국이 로마와 미국처럼 될 수 있게끔 번영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20대 나이에 머나먼 이국땅에 용감하게 넘어온 A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미얀마에선 이미 최고의 인재고, 한국에 남더라도 훌륭한 국민이 될 것이다. A처럼 될 외국인이 한국엔 참 많다. 우리는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가. 좋은 공화국 한국을 만들어준 조상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이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前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