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은 유쾌한 영화다. ‘조용한 가족’이라는 ‘엽기코미디’를 통해 한국영화에 부재했던 ‘웃음’의 새 코드를 창안한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주목받는 연출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조용한 가족’에 비해 김감독은 ‘반칙왕’을 “슬픈 코미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의 성격이 잘 요약하는 말이다. ‘반칙왕’은 ‘투캅스’로 대변되는 여타의 사회적 함의를 지닌 작품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소시민 지향의 코미디 영화로 우리 영화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반칙왕’은 ‘반칙’이 만연한 직장, 정확히 말해 은행에 다니는 한 샐러리맨의 비애를 다루고 있다. 소심한 은행원은 걸핏하면 직장 상사에게 헤드록(목조르기)을 당한다. 그가 탈출구로 선택한 곳은 레슬링 도장. 밤이면 반칙 레슬러로 돌변하는 은행원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각의 링에서 도발(반칙)을 일삼으며 기이한 쾌감을 느낀다. 부조리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자 반칙이고 풍자다. 영화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송강호라는 걸출한 연기자의 저력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그는 ‘쉬리’와 ‘반칙왕’, ‘…JSA’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섭렵하며 고유한 스타 이미지를 확립했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그의 연기력은 스타 연기자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가뭄 끝 단비처럼 소중한 존재다.
‘비천무’와 ‘단적비연수’, ‘리베라메’는 각기 다른 스펙트럼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 같은 줄기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만화가 원작인 ‘비천무’는 무협영화의 틀을 지니고 있지만 멜로적 감성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으며, 판타지 영화의 외양을 띤 ‘단적비연수’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로맨스다. ‘리베라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향을 전제로 한 장르영화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세 작품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었다. ‘비천무’의 경우 “주연 연기자들의 역량이 형편없다”는 식으로 꼬집은 평자도 있었으며 ‘단적비연수’는 화려한 겉포장에 비해 지지부진한 이야기 구조가 폄하의 대상이 됐다. ‘리베라메’는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역류’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기획작품이란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진부하다는 평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세 편의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중국 원나라 말엽을 배경으로 몽고 장군의 서녀와 고려 유민의 사랑을 그린 ‘비천무’는 원작의 복잡다단한 구조를 짧은 영화에 억지로 구겨넣는 바람에 산만하고 허술한 내러티브를 갖게 됐다. 만화 ‘비천무’의 팬들이 영화 ‘비천무’에 맹렬한 비난을 퍼부은 이유이기도 하다. 운명적 사랑을 표현하기엔 배우들의 연기력이 역부족이었던 점도 치명적이었다.
‘단적비연수’는 이미숙, 설경구를 비롯한 스타들이 스크린을 채우고 시종일관 카메라의 화려한 움직임이 계속되었으나, 스펙터클의 측면에서는 역설적으로 상당히 단조로운 영화다. ‘은행나무 침대’의 후속편인 ‘단적비연수’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질투, 복수라는 매혹적인 모티프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 만큼 헐거운 짜임새로 인해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작 ‘은행나무 침대’가 한국영화에서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판타지를 차용한 웅장한 서사 등 연출자의 야심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면, ‘단적비연수’는 훨씬 많은 돈을 들였으면서도 상업영화로서의 장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특수효과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리베라메’가 다른 작품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멜로와 판타지의 결합
미국 영화에서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유행은 197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계의 핵심 조류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이 효시가 된 블록버스터 영화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간단없는 약진을 계속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컴퓨터그래픽이나 물량공세에 역점을 둔 스펙터클 위주로 진행되고 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 영화인 ‘비천무’와 ‘단적비연수’는 드라마의 응집력이라는 ‘기본기’에서부터 확연히 힘이 달린다. 지나치게 헐거운 까닭이다. 이로 인해 영화들은 작품 보다 마케팅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근본적이고도 피치 못할 내적 한계를 지니게 됐다.
이로 인해 ‘비천무’ 등의 영화는 일정 관객 이상을 확보했음에도 평단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영화의 질적 수준보다 홍보와 마케팅에 비중을 둔 작품은 상업적 성공은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직접 영화를 본 관객 또는 평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좀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최근 한국영화계의 움직임이 일정한 장르영화를 꾸준히 제작하기보다 시기마다 문화적 흐름이나 유행을 뒤좇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내재한 한계로 꼽을 수 있다. 소규모 장르영화에서 충분하게 연마된 연출자가 몸집이 큰 대작영화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신인감독이 데뷔작으로 대작영화를 연출하는 풍토 역시 최근 한국영화계가 지나친 상업적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가위’와 ‘동감’은 각기 공포영화와 판타지멜로영화다. 친구들끼리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의문의 사건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원혼이 그들을 급습하는 ‘가위’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10대 공포영화를 모방·참조한 작품이다. 영화 제작자는 “장르영화라는 점을 감안해 충분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가위’는 할리우드 영화 외에 일본 공포영화 ‘링’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일련의 초자연적 현상을 호러영화의 문법과 접목시킨 시도도 그러하다. 유지태, 김규리 등 청춘스타가 대거 출연한 ‘가위’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치중하기보다 ‘놀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나마 MTV 스타일의 현란함으로 포장된 ‘가위’는 근래 제작된 한국 공포영화 가운데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낸 유일한 영화라 할 만하다. ‘해변으로 가다’, ‘공포택시’ 등 일련의 공포물은 장르영화로서의 기본적 쾌감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가위’는 영화 내내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공포를 지속시킨다.
‘동감’은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남자가 무전기를 매개로 대화를 나누는 판타지 멜로영화다. ‘백 투더 퓨처’식의 SF적 상상력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각기 다른 시간에 속한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소통을 다룬다.
지난 시절을 향한 가슴속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이른바 90년대 이후 학번 세대들에게 70년대란 시간대가 역사로부터 분리된, 매우 낭만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음을 웅변한다. 정치적 이슈와 학생운동은 말 그대로 배경일 뿐. 이 점에서 ‘동감’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비롯 1970년대에 제작된 문제작들보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측면에선 퇴행한 느낌마저 준다.
‘거짓말’, ‘박하사탕’, ‘시월애’는 감독의 영화다. ‘거짓말’은 ‘우묵배미의 사랑’ 등으로 1980년대 한국 뉴웨이브를 이끌고 ‘나쁜 영화’에 이르러서는 형식적 자유분방함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졌던 장선우 감독 작품이다. ‘거짓말’은 잦은 정사 장면 등 성표현의 문제로 화제를 낳았고 베니스영화제 진출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나쁜 영화’에 이어 ‘거짓말’에서도 장감독의 성적 표현은 여전히 대담하다. 사도 마조히즘 등 주 소재와 배우들의 전라 연기로 인해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Y와 J라는 남녀의 가학적 충동과 이들의 육체관계에 내재한 처연한 슬픔을 담고 있는 영화 ‘거짓말’은 감독의 초기작 ‘우묵배미의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나쁜 영화’와는 달리 ‘거짓말’은 국내 평단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페미니즘 비평가 진영의 긍정적 태도는 ‘나쁜 영화’ 때와는 180도 다른 것이어서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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