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를 그만둘 무렵에는 아이들이 아무래도 부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당시 나는 교육에 대한 깨달음이 많았고, ‘내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학교를 안 다니지만 아이들이 잘할 수 있다는 결과를 빨리 내고도 싶었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보다 묻는 방식을 택했다. 섣불리 가르치려들면 우선 아이들이 싫어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는 사실 내 나름대로 답이 있을 경우다. 내 질문은 일종의 유도 질문에 가깝다. 뻔한 답이 나오면 다시 물었다. 질문을 통해 근본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방식을 일러 ‘물음을 남기지 않는 배움’이라 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꼬장꼬장 묻는 나를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으면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된다. 또 아이들은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면서 공부를 내면화해갔다. 그래서인지 공부하는 이유가 다양해졌다. 지난 기록을 더듬어 시간 흐름에 따라 몇 가지를 살펴본다.
‘불안’과 ‘괜히’의 차이
자연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왜 공부하는지 물었다.
“안 하면 불안하잖아요. 친구들은 학원도 몇 군데 다니고, 선생님은 잘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시골에도 경쟁은 있다. 말이 시골이지 교육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도시 변두리다. 그 무렵 자연이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경쟁 교육을 받는 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학교를 그만둔 직후 자연이는 이랬다.
“안 하면 ‘괜히’ 불안해요. 지금쯤 학교에서 친구들은 공부하고 있을 텐데…. 공부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해요.”
답변이 비슷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학교를 그만두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 ‘당연’한 불안이 아니라 ‘괜히’다.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닌데, 뭔지 알 수 없는 불안. 공부를 함으로써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 짜인 학교생활, 또래 친구랑 놀이에 익숙하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아이보다 아내는 불안감이 더 컸다. 과연 아이들이랑 집에서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경쟁사회인데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아내는 자연이와 영어를, 무위와는 수학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만뒀다. 자연이 실력이 아내를 앞섰고, 무위는 혼자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아내는 저절로 ‘해고’ 당했다. 교사로서 남아 있던 마지막 끈이 끊어진 셈이다. 나는 속으로 내 교육 방식이 옳다고 쾌재를 불렀다.
학교를 그만두니 아이들에게 시간이 많았다. 특별히 짜인 일정도 없는데다 학교를 오가는 시간도 고스란히 남았다. 게다가 안테나를 달지 않아 TV도 안 나온다. 그러니 가끔 심심하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심심함을 견디기 힘들어함을 알 수 있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 나름대로 놀이를 만들기도 한다. 무위는 정말 많은 놀이를 스스로 만든다. 대나무를 베다가 활을 만들기도 하고, 돌멩이로 볼라(bola·투척용 밧줄)를 만들어 산토끼를 잡겠다고 던지기도 한다. 집 뒤 비탈길에서 흙 썰매를 타기도 하고, 칡덩굴을 밧줄처럼 타고 오르내리기도 했다. 무위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놀이만 모아도 책 한 권이 되지 싶다. 하지만 그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가 없다.
산골 아이들에게 심심함은 자신을 찾게 해주는 보약 같은 것이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돌아보게 된다. 안 보던 책에 눈이 가고, 신문 기사를 보는 면도 다양해진다. 책 한 권 집어 들면 한두 시간은 금방이다. 계절별로 보면 한여름과 겨울에 공부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집을 떠나 어디 먼 곳을 갈 때 아이들은 책 한두 권을 꼭 챙긴다. 심심할 때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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