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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인화의 ‘리니지’ 게임론

“가상현실에서도 정의가 승리 해야…그래서 ‘바츠 해방전쟁’ 일으켰다”

작가 이인화의 ‘리니지’ 게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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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혈맹의 압제와 세금인상

이러한 바츠 해방전쟁의 발발에는 두 가지 경제·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요인은 10%에서 15%로 바뀐 2004년 2월16일의 세율 인상이었다. 세율이란 성을 차지한 지배혈맹과 개발회사가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대금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높은 레벨의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다른 사용자와 직거래하므로 세율인상에 구애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상점에서 무기와 옷, 마법방어를 위한 장신구, 각종 물약과 마법서를 사야 하는 40레벨 이하 사용자에게 세율 인상은 생계를 위협하는 변화였고, 이러한 불만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혈맹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해방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둘째 요인은 극에 달한 정치적 압제였다. 바츠 서버에는 1000개가 넘는 혈맹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쟁혈’이라는 전쟁혈맹과 ‘친목혈’이라는 사교혈맹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쟁혈 내부에도 사교 활동이 있고 친목혈도 다른 혈맹에 전쟁을 선포하면 전쟁혈이 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리니지2’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전쟁혈이다.

전쟁혈은 다른 혈맹보다 더 레벨이 높고, 더 오랜 시간 활발히 접속하며, 더 PvP 전투(플레이어간 대인전)에 능한 혈맹원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세력 경쟁에서 승리한 혈맹이 지배혈맹이 된다. 때로 최강의 조직을 구축한 거대 지배혈맹의 군주는 다른 유력 혈맹과 단합해 공포와 전율로 얼룩진 철권통치를 구현할 수도 있다. 바츠 서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지배혈맹의 철권통치였다.



2003년 7월6일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직후부터 바츠 서버를 지배해온 것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일명 DK) 혈맹이었다. 이미 ‘리니지1’에서부터 활동해 조직을 정비한 상태에서 ‘리니지2’로 넘어온 DK혈맹은 가장 먼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혈맹원을 규합한다. 그 뒤 DK혈맹은 ‘리니지2’의 신화적 고대 세계에서 집단으로 구현되는 인간 의지의 강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냥터 통제로 이윤 독점

이들은 ‘통제령’을 통해 좋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를 봉쇄해 다른 사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나아가 ‘척살령’을 발동해 피의 독재를 전개하면서 자신이 독점한 사냥터에서 ‘오토’라고 부르는 자동 매크로 프로그램 사냥을 통해 24시간 아덴(리니지 세계의 통화)을 벌어들였다. 또 그때그때 유력한 다른 혈맹과 적절히 제휴함으로써 대항 혈맹들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분쇄했다.

게임 사냥터 통제는 ‘리니지1’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리니지1’에서 사냥터 통제를 통한 이윤 독점을 학습한 DK혈맹은 일찍부터 ‘통제’와 ‘오토’를 은밀히 행해왔다. 그러나 2004년 3월 거대 3혈맹 단결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확인한 DK혈맹은 아예 ‘통제’와 ‘오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기에 반항하는 사용자들을 살해하는 ‘척살’을 확대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 아무런 가치 이념도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물리력의 발현은 일반 민중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세금 인상에 따른 민중계층의 광범위한 불만과 결합하면서 마침내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서전(序戰)은 2004년 5월9일 붉은혁명혈맹이 DK혈맹 군대가 방어하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를 선언한 것.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층 민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단독으로 DK혈맹에 전쟁을 선포했다가 무참하게 진압당한 바 있던 더킹혈맹, 순수한 마법사들만의 혈맹인 해리포터혈맹, 수원성혈맹, 하드락혈맹, 리벤지혈맹 등 지배혈맹은 아니지만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혈맹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이 ‘바츠동맹군’을 결성하고 ‘반3혈(反三血)’의 기치를 높이 들자 민중은 하나 둘 그 옆에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 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돼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 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방안은 인해전술이다.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하는 DK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명이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 죽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반3혈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긴바지를 입은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다른 서버 사용자들이 참전해 바츠 서버가 만성적인 접속 장애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 많은 호소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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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 소설가, 이화여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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